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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곳에 햇살을 비춘다면…‘아싸’도 행복한 학교 정글
그곳에 햇살을 비춘다면…‘아싸’도 행복한 학교 정글
  • 이동형
  • 승인 2023.02.23 08:4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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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중심에서 심리학을 외치다_ 세 번째 주제 ‘학교 정글’④

‘내 삶의 심리학 마인드’와 <교수신문>이 함께 ‘세상의 중심에서 심리학을 외치다’ 공동 기획을 마련했다. 최근 사회적으로 이슈가 되고 있는 주제를 다양한 관점으로 들여다보는 주제탐구 방식의 새로운 기획이다. 한 주제를 놓고, 심리학 전공 분야의 마음 전문가들이 다양한 시각과 분석을 통해 독자의 깊이 있고 입체적인 이해를 돕는다. 마음 전문가들의 눈에 비친 세상의 모습은 길을 잃은 현대인에게 길잡이가 될 것이다. 몸과 MBTI에 이어 세 번째 주제로 ‘학교 정글’에 대한 다양한 분석과 시각을 4회에 걸쳐 싣는다. 이동형 부산대 교수(교육학과)의 네 번째 글이다.  

학교가 기성 사회의 어두운 일면들을 투영할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라면, 
선뜻 내키지는 않더라도 학교의 정글적 측면을 그대로 직면해야 한다. 
적어도 자발적 아싸든, 비자발적 왕따든 다양한 사회적 어려움을 경험하는 학생들이 
건강한 사회성을 배우고 연습하며 행복으로 도약할 수 있는 안전한 스프링보드가 되어야 한다.

얼마 전 학교에 다니기 싫다며 우울감을 호소하는 여중생 B를 상담한 적이 있다. B는 늘 혼자이고, 마땅히 친한 친구도 없다고 했다. 다른 아이들과 가까워지고 싶지만, 무엇이 부족한 것인지 아이들은 B에게 관심이 없었고, 그래서 B는 스스로 ‘아싸’가 되어 대부분 혼자 지낸다고 했다. 자신의 마음을 이해해주거나 쉽게 다가갈 수 있는 친구도 없으니 그런 자신의 처지를 보면서 차라리 학교에 다니지 않는 것이 마음 편하겠다고 생각했다는 것이다. 

그런 어려움에 대해 선생님과 상담한 적이 있느냐고 물었더니, 선생님께 친구를 사귀는 문제까지 시시콜콜 이야기하기 어렵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그래도 말하지 않으면 선생님이 네 고충을 다 파악할 길이 없으니, 용기를 좀 내보면 어떠냐고 제안했지만, 친구들이 자신을 딱히 ‘왕따’를 시키는 것도 아닌데 괜히 개인적인 문제로 선생님을 곤란하게 만들것 같다고 걱정했다. 자신의 문제는 누구의 탓도 아닌 자신의 성격 탓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이유나 동기가 무엇이든 외로움은 즐겁지 않은 선물이다. 빈센트 반 고흐의 Melancholy, 1883.

아싸와 왕따 사이
 
‘아싸’는 영어의 아웃사이더(outsider)를 축약하여 표현한 신조어다. 대학생들이 새로운 환경에서 대인관계를 형성해 가면서 또래들과 쉽게 어울리지 못하고 혼자 지내는 사람을 지칭하는 용어로 사용되었지만, 요즘은 초중고 학생들 사이에서도 널리 쓰이는 유행어가 됐다. 심리학에서는 개인이 사회적 관계로부터 스스로 철회하는 행동을 지칭하기 위해 사회적 위축(social withdrawal)이라는 용어를 사용해왔다.

사회적 위축은 사회적 고립(social isolation)과는 개념적으로 구분된다. 고립은 다른 사람들이 개인을 배제하거나 거부하기 때문에 대인관계를 맺지 못하는 상태인 반면, 사회적 위축은 자신의 선택에 의해서 자발적으로 상호작용으로부터 철회하는 상황을 말한다. 

흥미롭게도 필자가 만난 B도 나름 그런 차이를 인식하여 자신을 사회적 고립, 즉 ‘왕따’의 상태에 있다기보다는 스스로 또래 관계에서 멀어진 ‘아싸’라고 표현했다. 그러나, 이 둘의 개념적 구분이 타당하고 또 유용할지라도 실제로는 아싸와 왕따의 경계는 그리 명확하지 않다.

즉, 자신의 선택에 의해 또래 관계를 원치 않는다고 주장하지만, 실제로는 다른 아이들의 거부나 배제가 원인이 되어 사회적 위축이 나타날 수도 있다. 또 사회적 위축이 지속될 때, 주변의 아이들은 그러한 아이에 대해서 점점 더 관심을 보이지 않고 어느새 또래집단과 더욱 멀어진 고립의 상태가 심화되며 더욱 적극적으로 거부되는 상황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아싸가 ‘발달 멘토’를 만났을 때

그렇다면 학교는 사회적으로 위축된 소위 ‘아싸’ 학생들의 학교생활을 돕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할까? 최근의 연구들은 이러한 물음에 대해 한 가지 단서를 제공해준다. 바로 위축된 청소년들이 일반 청소년들에 비해 부정적 학교 환경뿐 아니라 긍정적 학교 환경에도 더욱 민감하게 반응함(발달심리학자들은 이를 ‘차별민감성’이라고 부른다)을 보여주는 연구결과가 그것이다.

일반적인 청소년들에 비해 위축된 청소년들이 부정적 환경에 노출된다면 최악의 결과를 가져올 위험이 더욱 커지는 반면, 만일 이들에게 적절한 훈육환경이 제공된다면 오히려 더 건강하고 긍정적인 발달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는 것이다. 

전통적인 문제행동 교정 중심의 훈육에 대한 대안이 될 수 있다는 연구도 있다. 학교가 학생의 사회정서적 발달을 강조하면서 책임감, 정서 및 행동 조절, 공감 등 자기규율 개발을 체계적으로 돕는 방식의 훈육체계를 도입하여 교사들이 이를 일관되게 실천하였을 때 학생들의 행복감이 전체적으로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런데 주목할 점은 위축된 학생들의 행복감이 일반 학생들보다 더 큰 폭으로 상승하여 오히려 더 높아진 점이다. 아싸 청소년들이 그들의 어려움에 공감하며 건강한 사회성과 정서를 경험하도록 안내하는 사회성 발달의 ‘멘토’를 만날 때, 그들이 직면한 위기는 건강한 발달의 기회로 되돌아올 수 있음을 보여준다. 

학교는 정글이다. 하지만 정글 속에도 햇살을 비추고, 그 안에서 학생은 행복하게 성장해야 한다. 사진=펙셀

정글에 드리운 햇볕이 되어 

학교는 대부분의 학생들이 하루 중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물리적, 심리적 공간이다. 우리는 학교가 안전하고 그곳에서 자라는 모든 학생이 행복하기를 바란다. 그러나, 학교가 기성 사회의 어두운 일면들(예컨대, 경쟁, 폭력, 권력구조 등)을 투영할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라면, 선뜻 내키지는 않더라도 학교의 정글적 측면을 그대로 직면해야 할 것이다.

동시에, 강력한 메타포(‘정글’)를 사용하여 학교를 쉽게 희화화는 태도도 경계할 필요가 있다. 교육환경을 개선하고, 학생지도와 훈육체계를 혁신하려는 일선 학교와 교사들의 치열한 고민과 다양한 창의적인 노력을 무시하는 처사일 수 있기 때문이다. 

학교가 정글이라면, 그 속에서 어떻게 하면 생존하고, 인싸가 될 수 있는지를 전수하고 배우는 곳이 아니라, 적어도 자발적 아싸든, 비자발적 왕따든 다양한 사회적 어려움을 경험하는 학생들이 건강한 사회성을 배우고 연습하며 행복으로 도약할 수 있는 안전한 스프링보드가 되어야 한다.

자기규율과 공감의 소통이 일상적으로 이루어지는 학교를 만들기 위해 헌신하는 숨은 멘토들의 수고가, 정글 깊숙이 뿌리를 내리고 있는 폭력성을 순식간에 근절하거나 정글을 당장 녹지로 만들지는 않는다.

하지만 숨은 멘토들의 노력은 B와 같이 정글 속에 묻혀 자신의 고유한 개성을 드러내지 못한 채 학교 문턱만 넘나드는 조용한 아싸 학생들에게는 그들의 숨은 잠재력을 이끌어내 자라게 하는 꼭 필요한 햇볕임을 기억했으면 좋겠다. 

이동형 부산대 교육학과 교수
텍사스 A&M 대학교에서 학교심리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휴스턴 교육구에서 다년간 학교심리학자로 활동했다. 주로 아동·청소년의 또래 계 및 사회정서 발달 문제를 학교 맥락과 관련지어 연구하고 있으며, 학생 정신건강 증진과 지원에 관심이 있다. 『괴롭힘 예방』, 『학교기반 인지치료』, 『학교기반 컨설테이션』, 『고독의 심리학』 등의 저·역서와 다수의 논문을 출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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