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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에 중립은 없다”…각자 이익 좇는 ‘다극’ 체제
“전쟁에 중립은 없다”…각자 이익 좇는 ‘다극’ 체제
  • 조준태
  • 승인 2023.04.25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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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인터뷰_『우크라이나전쟁과 신세계질서』(사계절 | 336쪽) 쓴 이해영 한신대 교수

한국은 반공, 조국 근대화, 민주화를 말하며 살아왔다.

그러면서 국제관계를 중심 사고에 놓은 적이 한 번도 없었다.

국제관계에 대한 인식 수준을 높이고

우리의 핵심 이익이 무엇인지 찾아가는 것,

이것이 한국의 대전략이라고 본다.

전쟁에 선악을 말할 수 있을까. 픽션이 아닌 현실에 일방적인 잘못은 존재하기 어렵다. 서로가 서로의 원인인 전장에서는 정의 대신 누가 나와 같은 편인지 물어야 한다. 그리고 그보다 먼저 사태를 어떻게 하면 객관적으로 볼 수 있을지 생각해야 한다. 이런 점에서 지난해 2월 발발한 우크라이나전쟁은 이상하다. 어느 쪽에 설지 고른 적이 없는데 이미 응원해야 할 곳이 정해져 있다. 한쪽의 아픔은 생생히 전해지지만 전쟁의 맞은편에 있을 다른 쪽의 아픔은 들려오지 않는다.

『우크라이나전쟁과 신세계질서』는 바로 이 점을 파고든다. “중립을 표방하기보다 객관성을 추구하기로 했다”라는 이해영 한신대 교수(국제관계학부·사진)의 말은 중립이 불가능함을 전하며 우리의 태도가 중립과는 거리가 멀다는 것을 드러낸다. 책은 한국 사회의 우크라이나전쟁의 인식 아래 깔린 미국의 그림자를 드러내며, 이번 전쟁이 초래할 지정학적 질서의 개편을 예고한다. 

새로운 질서는 어떤 모습일까. 그 안에서 한국은 어떻게 놓일까. 평화는 가능한 것일까. 한국은 우크라이나나 미국이 아니다. 그들에게 이입하는 데서 벗어나 활로를 찾아야만 할 것이다. 책은 여러 질문과 함께 전쟁을 우리의 문제로 만든다. 이 교수는 “전쟁이 정치라는 선으로 평화와 연결돼 있음을 인식하는 순간 평화를 상상하고 실행할 교두보가 생긴다”라고 썼다. 지난 13일, 한신대 연구실에서 이 교수를 만났다.

 

이해영 한신대 교수(국제관계학과)는 서울대 외교학과와 같은 대학원에서 학·석사를 마르부르크대에서 철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임정, 거절당한 정부』, 『안익태 케이스』, 『낯선 식민지, 한미 FTA』, 『독일은 통일되지 않았다: 독일통합 10년의 정치경제학』 등을 썼다. 사진=조준태

“우크라이나는 절대 못 이긴다.” 인터뷰 첫 질문의 답이었다. 전쟁의 향방에 대해 그는 우크라이나군의 준비가 충분치 않음을 강조하며 “러시아는 오히려 이걸 기다리고 있다”라고 말했다. 전투기 없이 러시아 공군을 이길 수는 없다는 것이다. 이 교수는 “우크라이나가 그대로 전진한다면 대살육극이 벌어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서아시아·유라시아 동시에 행동 개시

눈여겨봐야 할 것은 러시아의 ‘소모 전략’이었다. “소모 전략은 영토 확장을 목표로 하지 않는다. 유생역량(전투에 참가하는 모든 사람·짐승) 말살이 목적이다. 병력과 장비를 없애는 게 목적이고 이게 사실 전쟁의 원래 본질적 개념이다.” 전선을 보면 팽팽한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은 이유다.

소모 전략의 바탕에는 러시아의 정치적 목표가 있었다. 그들은 돈바스 해방과 우크라이나의 비군사화, 탈나치화, 중립화 등을 이번 ‘특수군사작전’의 목표로 삼았다. 나머지 목표는 전후 평화협상에서도 달성할 수 있지만 비군사화는 성격이 달라 전장에서 달성하겠다는 것이다. “이를 달성하기 위해 우크라이나의 무력 기반을 더 파괴할 것”이라고 이 교수는 말했다.

‘신세계 질서’는 1991년부터 30년간 지속된 미국의 단극 체제가 끝을 보인다는 것이다. 이 교수는 “지금 미국 군부 내에는 러시아와 전쟁을 한 것(미국과 러시아의 대리 전쟁)은 최대의 실책이라고 보는 쪽이 있다”라고 말했다. 이번 전쟁으로 러시아와 중국이 반동맹(semi-alliance) 형태의 전략적 협력을 취했기 때문이다.

그 근거로 이 교수는 지난 3월 열린 중러 정상회담을 들었다. 러시아의 가스관을 중국으로 연결하는 ‘시베리아의 힘-2’ 합의를 통해 중국이 ‘에너지’라는 커다란 약점을 극복했다는 것이다. 동시에 러시아는 “안정적인 에너지 판매처를 확보”했으며 두 나라가 서로에게 “아주 튼튼한 정치경제적 후방을 확보”했음을 강조했다.

이렇게 마련된 새로운 체제로의 동력에 석유 자원과 군대를 갖춘 이란이 가세했다는 게 이 교수의 설명이다. 여기에 러시아가 터키, 시리아, 아랍에미리트 등을 결합하고 중국은 이란, 사우디와 협력을 강화하고 있다. 이 흐름 속에서 북한도 좌절된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를 넘어 새로운 기회를 찾고 있다. “서아시아와 유라시아가 같이 움직이는 형국이다”라고 그는 말했다.

 

 

한국의 핵심 이익은 ‘평화’와 ‘발전’

지난 15일, 브라질의 대통령 룰라가 중국을 방문했다. 이 교수는 글로벌 사우스인 인도와 브라질도 유라시아와 연합을 이루고 있다며 “판이 이렇게 바뀌니 결과적으로는 미국하고 유럽만 남는다”라고 말했다. “이번 우크라이나전쟁은 이처럼 기본적으로 일극 체제와 다극 체제의 지정학적 충돌 내에서 벌어진 일대 사건”이라는 것이다.

이 교수는 이러한 대전환 속 한국 언론을 향한 아쉬움을 전했다. “일방적으로 미영에 편중되고 편향된 내러티브만 계속 재생산하며 앵무새처럼 되풀이한다. 심지어 정말 심각한 건 그걸 그대로 베낀다는 것.” 종군기자도 보내지 않으면서 미국 기사를 기계적으로 번역하는 한국 언론에 대한 비판이었다. “한국에는 러시아 4대 언론이 모두 열려 있다. 유럽 측에는 다 막아놔서 못 본다. 우리는 양쪽을 다 볼 수 있는 거다. 양측의 이야기를 골고루 전해야 균형도 맞고 독자들도 스스로 판단할 수 있다.”

글로벌 지각판이 요동치는 가운데, 한국은 어디로 가야 할까. 이 교수는 한국이 극심한 친미임을 강조하며 “실패하고 있는 미국 외교를 따라가고 있다”라고 지적했다. 현 한국 정부의 기조인 ‘가치 외교’가 바이든 정부의 모방임을 지적하며, 지금 같은 때야말로 ‘이익 외교’를 할 때라고 주장했다.

이 교수는 지금이라도 한국의 국제관계 속 ‘핵심 이익’이 무엇인지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한국은 반공, 조국 근대화, 민주화를 말하며 살아왔다. 그러면서 국제관계를 중심 사고에 놓은 적이 한 번도 없었다. 국제관계에 대한 인식 수준 높이고 우리의 핵심 이익이 무엇인지 찾아가는 것, 이것이 한국의 대전략이라고 본다.”

한국의 핵심 이익으로 ‘평화’와 ‘발전’을 꼽았다. 전쟁의 위협 아래 발전은 있을 수 없다. 한반도에서 평화는 “한가롭게 들리지만 엄청나게 무거운 목표”인 이유다. 이 교수는 “통일 문제도 이제는 공존의 문제로 재정의할 때”라며 “남북의 공존만 합의해도 지금의 지정학적 지각 변동에 덜 흔들리면서 갈 수 있지 않을까 싶다”라고 전했다.

>>> 아래는 인터뷰 전문이다.

△우크라이나전쟁의 향방, 어디로 흘러갈 것인지. 우크라이나에 승산 있는가.

현재까지의 우크라이나 상황을 보면 우크라이나는 절대 못 이긴다. 이번에 편성된 우크라이나 군이 3편째다. 1편은 모두 전사하고 2편 부대 중 살아남은 부대가 지금 싸우고 있고. 계획된 바에 따르면 12개 여단을 구성해 춘계 역공세를 하겠다는 건데, 실제 병력은 3만 명도 안 된다. 완편부대가 아니다. 잘해봐야 3만 명인데 미국은 이들에게 이리저리 긁어모은 전차를 주며 공격하라 하고 있다. 이건 해서는 안 된다. 러시아는 오히려 이걸 기다리고 있다. 우크라이나는 최근 밝혀진 것처럼 비행기를 갖고 있지 않다. 러시아는 전투기 세계 최강국 중 하나다. 우크라이나가 그대로 전진한다면 대살육극이 벌어질 것이다. 이번에 문서가 유출되면서 공격이 연기됐는데 그러기라도 해서 다행이다. 이런 준비로 돌격 들어가면 다 죽는다.

△책에도 자세히 쓰여 있었지만 믿기 어렵다. 팽팽하다고 알고 있다.

겉으로 보면 일 년째 땅이 계속 그대로다. 우크라이나가 잘 버티는 것처럼 보이지만 러시아의 전략 개념은 ‘소모 전략’이다. 소모 전략은 영토 확장을 목표로 하지 않는다. 유생역량 말살이 목적이다. 병력과 장비를 없애는 게 목적이고 이게 사실 전쟁의 원래 본질적 개념이다. 

전투력의 파괴. 러시아가 목표로 하는 우크라이나의 비무장화가 합의되지 않으니 무력으로 군사력을 제거하겠다는 것이다. 이걸 이해하지 못하면 전쟁이 계속 그대로인 것처럼 보인다. 사실 전선도 1년 전과 비교해 보면 엄청나게 밀려 있다. 현재 전선은 한국의 삼팔선만큼 극도로 무장되어 있는 지역이다. 그러니 1m만 밀린다고 해도 어마어마한 병력이 죽어간 것이다.

△이번 전쟁에서 러시아의 입장은 어떠한가.

푸틴은 처음에 이번 전쟁의 정치적 목표를 제시했다. 돈바스 해방, 비군사화, 탈나치화, 우크라이나 중립화 등. 이를 ‘특수군사작전’이라 명명했고 여전히 러시아에게 이것은 전쟁이 아니다. 전쟁이 되면 교전수칙이 달라지고 국민총동원도 해야 한다. 특히 전쟁 초기 국면, 러시아의 모습에 저게 정말 전쟁을 하는 건지 여러 이야기가 있었는데 실제로 전쟁이 아니었기 때문에 그런 것이었다. 이것은 굉장히 중요한 법적 문제이며 자의적인 게 아니다.

러시아 입장을 보면 앞서 언급한 정치적 목표에 더해 나토의 동진을 되돌리는 것까지가 목표였다. 이것을 달성해야 전쟁이 끝나는 것이다. 그런데 현재 돈바스가 러시아 연방에 가입했으니 나머지 영토만 수복하면 목표 하나가 끝난다. 나머지 목표는 전후 평화협상을 통해 해야 하는데 비군사화는 조금 성격이 다르다. 이를 달성하기 위해 우크라이나의 무력 기반을 더 파괴할 것이다.△책의 제목에도 쓰인 “신세계질서”가 이번 전쟁으로 올 것이라고 했는데.

이번 전쟁은 지정학적인 일대 사변이다. 미국의 단극질서가 자리를 잡은 지 30년이다. 세계사를 통틀어도 처음 있는 일이었다. 그간 끊임없는 여러 번의 도전이 있었다. 이슬람도 그중 하나였는데 그것을 ‘테러와의 전쟁’으로 응전했다. 그 과정에서 약 600만 명이 죽었다. 그 뒤 미국 주도의 단극 체제 내에서 도전자들이 싹을 틔웠고 대표적인 게 중국과 러시아, 인도다. 

지금 미국 군부 내에는 러시아와 전쟁을 한 것은 최대의 실책이라고 보는 쪽이 있고 그들을 리얼리스트라고 부른다. 그들은 미국 내의 신보수, 즉 네오콘과 노선이 다르다. 지금의 바이든 정권이 네오콘과 리버럴의 동맹이고 리얼리스트는 이들에 비해 소수파다. 리얼리스트들이 이번 전쟁을 엄청난 실수라고 본 이유는 그 결과 중국과 러시아가 반동맹(semi-alliance) 형태로 전략적 협력을 취하게 됐기 때문이다. 이것은 서로가 서로를 보완하는 고도의 전략적 협력이다. 국내에서는 이 양국의 관계를 자꾸 지배-종속 관계로 보려고 하는데 이게 미국 네오콘의 시각이다. 이건 현실에 부합되지 않는 설명이다. 

이번에 중러 정상회담을 하지 않았나. 제일 큰 이슈는 ‘에너지’였다. 중국은 세계 최대의 에너지 수입국이다. 만약 중국이 중동에서 석유를 수입한다면 말라카 해협을 지나야 한다. 시 레인(sea lane), 즉 해양 수송 문제가 있는 것이다. 여기가 약점이 된다. 여기서 안 되면 대만 해협에서 자를 수 있고, 여기도 안 되면 제주도 쪽에서 자를 수 있다. 그런데 이번에 ‘시베리아의 힘-2’를 중러가 합의했다. 러시아의 가스관을 중국으로 연결하는 합의다. 시 레인 의존도를 줄일 뿐 아니라 중러 서로가 안정적인 에너지 공급원과 안정적인 에너지 판매처를 확보했다고 볼 수 있다. 두 나라 모두 아주 튼튼한 정치경제적 후방을 확보한 것이다.

또한 러시아 입장에서는 중국 제조업이 세다. 러시아가 제조업이 아예 없는 건 아니지만 중국이 워낙 강하고, 결정적으로 중국에는 자본이 있다. 중국의 자본과 러시아의 자원이 결합하는 모양이 된다. 아주 강한 결합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이것이 글로벌 질서에 새로운 체제인 다극 체제를 삽입하는 동력이 될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이 동력에 이란이 붙었다. 어마어마한 석유 자원을 가졌고 군대도 센 이란이. 인구도 많다. 아울러, 북한도 여기에 어쨌든 붙으려고 한다. 북한의 입장에서 본다면 기본 구도가 이전까지는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였다. 핵심은 북핵과 경제를 바꾸는 것이었다. 어떤 이유에서든 그게 현재 좌절됐다. 그러는 사이 이런 지정학적 대전환이 발생한 것이다. 북한 입장에서는 핵을 갖고 이 추세에 올라타면 경제도 가질 수 있다는 전략적 판단이 가능하다. 북한에게 이 정세는 나쁘지 않은 것이다.

유라시아를 중심으로 하는 중러 전략적 협력 체제로서의 중러 앙탕트 트렌드에 북한이 올라타고 주변국들도 양다리를 걸치고, 또 이란은 미국과 워낙 안 좋으니까 붙고. 이렇게 재편되면서 중동도 붙고 있다. 이스라엘만 빼고. 러시아가 터키, 시리아, 아랍에미리트 등을 결합하고 중국이 나서서 이란하고 사우디를 모으고. 이번에 또 예멘이 사우디와 전쟁을 중단하기로 했다. 이스라엘만 남았다. 서아시아와 유라시아가 같이 움직이기 시작하는 거다. 엄청난 변화다.여기에 남쪽에 있는 글로벌 사우스인 인도와 브라질도 엮인다. 브라질의 대통령 룰라가 이번에 중국에 갔다. 인도와 브라질, 이들이 글로벌 사우스의 다동맹(multi-alliance)을 주도해 온 셈인데 여기와 유라시아가 연합을 이루게 되는 것이다. 

판이 이렇게 바뀌니 결과적으로는 미국하고 유럽만 남는다. 거기에 따라붙는 건 일본과 한국이다. 이번 우크라이나전쟁은 이처럼 기본적으로 일극체제와 다극체제의 단층대 내에서 벌어진 일대 사건이고 그래서 이번 전쟁의 향방이 중요하다고 할 수 있겠다.

△책에서는 이번 전쟁을 ‘간섭전쟁’이라고도 표현했다. 어떤 의미인가.

최근 들어 G7과 브릭스(BRICS)의 경제적 힘 관계가 바뀌었다. 브릭스 쪽으로 점점 더 기울고 있다. 골든 크로스가 일어나는 시점이 바로 지금이다. 그러니 긴장이 생길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곧 미국 패권의 위기고 이 패권을 폭력적으로 복원시키려는 시도가 이번 우크라이나전쟁이며 그래서 ‘간섭전쟁’인 것이다. 

우크라이나를 창끝으로 이용해 러시아를 전략적으로 약화시켜 밀어내겠다는 네오콘적인 구상이라고 할 수 있다. 결과적으로 이 전쟁은 러시아와 중국을 붙여 미국을 고립시켰다. 어떤 의미에서 이것은 ‘세계적 실수’라고도 볼 수 있겠다.

△다극체제 속에서 미국은 어떻게 될까.

미국의 패권이라는 문제도 지금 같은 형태의 글로벌 단극 패권이 위기인 거지, 미국은 그래도 여전히 세계 최강국 중 하나로 남을 것이다. 단극 패권의 소멸을 미국의 소멸로 볼 수는 없다. 중요한 것은 지금 패권의 형태가 달라지고 있고 달라지기를 강요받는다는 것이다. 현재 추세대로라면 금융과 이를 떠받치는 달러 패권이 흔들릴 것이다. 지금과 같은 형태로 존재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다극체제는 좋은 것인가. 다극체제로의 전환이 어떤 미래를 만들게 되나.

중국은 어쨌든 공산주의 사회다. 그런데 러시아는 자본주의 사회다. 인도도 마찬가지로 자본주의다. 글로벌 사우스 국가들도 사회주의가 있지만 대부분 자본주의 사회다. 중요한 건 그들이 ‘어떤’ 자본주의냐 하는 것이다. 다극체제는 더 이상 가능성이나 주장이 아니라 현실이다. 이들의 경제 정책은 케인즈주의다. 케인즈주의는 기본적으로 산업 자본 논리가 아닌가. 금융자본과는 친화력이 떨어지며 공공성 개념과 산업, 노사 관계가 합쳐 있다. 그러니 이 흐름대로면 금융 세계화 속에서 글로벌 사우스는 좀 더 편해질 것으로 보인다. 그렇지만 이것이 불평등과 양극화를 모두 없앨 수 있다는 의미는 아니다.

또한 많이 이야기되는 게 ‘국제관계의 민주화’다. 당연히 글로벌 사우스는 제국주의와 식민주의에 강한 반감이 있다. 민주적 국제관계는 서로가 침략 없이 협력하며 각자의 이익에 충실하자는 거다. 중요한 것은 군대를 동원해서라든지, 한국의 IMF 때처럼 자본의 권력을 통해서 타국에 특정한 경제 논리나 자본 논리를 강요하지 말고 그렇게 하자는 거다. 식민주의를 강하게 겪은 글로벌 사우스 국가에서는 꽤 진보적일 수 있겠다. 다만 이것은 또 새로운 문제를 낳을 것이다.

또는 미국에 이어 중국과 러시아, 이란이라고 하는 덩치 큰 나라가 등장하면서 정말 신냉전, 제2차 냉전이 고착화할 수 있겠다. 이렇게 새로운 형태의 체제 경쟁으로 갈 경우에는 그 리스크가 만만치 않을 것으로 보인다. 미국식 리버럴 질서가 갖는 어떤 고유한 공격성이 있다고 보는데 이것이 스스로 사라지지는 않을 것 같다. 어떤 형태로든 남게 될 거고 결국은 민족 국가 체제로 가지 않을까 싶다. 

미국 단극 체제에서는 정점에 미국이 있고 국제사회라고 부를 만한 국제기구와 단체가 쭉 배열돼 힘의 질서를 이뤘는데 향후 국제 체제는 국가 시스템에 기반할 것이기 때문에 IMF나 UN 같은 기구가 현재 상태로 존속하기 어려울 것이다.

△우크라이나전쟁을 보도하는 한국 언론의 태도는 어떻게 보는가.

이게 좀 심각한 상황이다. 견해가 다를 수는 있다. 그게 우리 사회가 갖는 장점인 다양성이다. 그런데 지금 언론의 치우친 보도가 이 다양성을 말살하고 있다. 이게 일종의 글로벌한 현상인데, 우리 같은 경우 일방적으로 미영에 편중되고 편향된 내러티브만 계속 재생산하며 앵무새처럼 되풀이한다. 

심지어 정말 심각한 건 그걸 그대로 베낀다는 거다. 그렇다고 이 상황을 검증할 수 있는 사회적 기구가 있는 것도 아니고. 언론의 자율적인 흐름, 판단에 맡겨야 하는데 그 기능이 지금 돌아가지 않는 것 같다. 자기 점검이라고 해야 할까. 그런 것들이 작동을 안 하는 것이다.

△책에서도 종군기자도 없이 해외 기사를 기계처럼 번역하는 한국 언론을 비판했다.

여러 방향에서 문제를 보는 게 아니라 하나의 입장만 정해놓고 베끼는 게 가장 문제다. 사실 길을 찾으면 이런 소위 MSM(Mainstream Media)이라고 불리는 주류 언론 말고도 여기 수많은 소스가 있다. 조금만 신경 써서 찾아보면 되는데 그런 건 전혀 볼 생각이 없다. 

한국에는 러시아 4대 언론이 모두 열려 있다. 유럽 측에는 다 막아놔서 못 본다. 우리는 양쪽을 다 볼 수 있는 거다. 양측의 이야기를 골고루 전해야 밸런스도 맞고 독자들도 스스로 판단할 수 있다. 일방적인 이야기만 그냥 베끼면...심지어 직접 취재한 것도 아니지 않나. 

나치 때 모든 언론, 시민사회가 딱 나치가 지시한 오직 그 방향으로만 모든 언론 논조를 일색화하고 통일하는 일이 있었다. 지금 한국 언론의 모습이 나치 때 한 방향만 보는 이것과 뭐가 다른가. 앞으로의 세계에서는 다양성이 생명인데, 그런 면에서 본다면 많이 안타깝다.

△우크라이나전쟁 속 한국, 어떻게 평가하는가.

글로벌 지각판이 이렇게 움직이고 있는데 그 속에서 우리는 무엇을 하고 있나. 책에서는 일단 과도기적 방편으로 ‘친미중립’을 제안했다. 한국은 아마 전 세계를 통틀어 여야를 막론하고 가장 친미적인 나라다. 그래서 미국 문제를 당장 우리 힘으로 풀기는 어렵다. 그게 명백한 현실이고 지금 주어진 객관적 현실로서의 친미에서 출발해 중립지대를 확장하자는 게 내 제안의 핵심 메시지다.한국은 실패하고 있는 미국 외교를 따라가고 있다. ‘가치 외교’를 한다고 하는데 외교에 가치가 어디 있는가. 외교는 이익의 장이지, 가치의 장이 아니다. 애초에 한국이 만들어낸 개념도 아니다. 바이든의 이야기를 따라 한, 그저 모방이다. 이럴 때 해야 하는 게 ‘이익 외교’이고 이를 앞서 친미중립으로 표현했다. 

한국은 스스로 개방형 통상국가부터 시작해 수출로 먹고 산다고 귀가 따갑게 이야기하지 않았나. 그런데 갑자기 가치를 이야기하면...이건 실패할 수밖에 없다. 외교는 가치로 하는 게 아니다. 외교는 이익이고 이익 추구를 실패할 때 벌이는 게 전쟁이다. 

우리 사회에 지금 합리적으로는 설명이 되지 않는 반중 정서, 소위 혐중, 헤이트 정서도 큰 문제다. 한국의 소위 지배 엘리트들도 여기에 동화돼버렸다고 본다. 한국은 스스로 통상국가이며, 수출로 먹고 산다고 10년 동안 외쳤으면서. 이건 전략이 아니다.

△거대한 지정학적 대전환 속에서 한국이 무엇을 해야 한다고 보는가.

한국은 무엇보다 뚜렷한 전략이 없다는 게 문제다. 한국의 ‘핵심 이익’은 무엇인가. 우리의 핵심 이익에 대해 사회적 합의를 이룰 수 있다면 최악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건국 이후 단 한 번도 우리는 핵심 이익에 대해 합의를 이뤄본 적도 없고, 이를 시도해 본 적도 없다. 중국도, 러시아도, 미국도 모두 빠트리지 않고 이 핵심 이익을 이야기한다. 앞서 말했듯 국제관계는 결국 이익이니까 그렇다. 이런 점에서 나도 리얼리스트 입장에 서 있다고 할 수 있다. 

한국은 반공, 조국 근대화, 민주화를 말하며 살아왔다. 그러면서 국제관계를 중심 사고에 놓은 적이 한 번도 없다. 국제관계에 대한 인식 수준을 높이고 우리의 핵심 이익이 무엇인지 찾아가는 것, 이것이 한국의 대전략이라고 본다. 

일단 핵심 이익이 아닌 것을 지워볼 수 있겠다. 다른 나라를 식민지로 만들어 초과 이윤을 추구하겠다 같은 목표를 세우지는 않을 테니 제국주의나 식민주의는 지워진다. 전쟁도 아닐 것이다. 전쟁을 핵심 이익으로 보는 미친 나라는 없다. 거기에 우리는 분단돼 있다. 그렇다면 우리의 핵심 이익은 우선 어쩔 수 없이 평화에서 찾아야 하지 않을까 싶다. 

평화는 한가롭게 들리지만 엄청나게 무거운 목표다. 아마 평화와 발전이 핵심 이익이 될 수 있지 않을까. 평화가 우선해야 발전을 할 수 있다. 전쟁을 하면서 어떻게 발전을 하겠는가. 군비 경쟁 격화되면 잘 살기 위해 복지할 돈을 빼 또 무기에다 박아 넣어야 하지 않겠나. 그러니 평화만 해도 어마어마하게 큰 주제다. 이 평화 속에 공존 개념이 포함되어 있다고 본다. 남북의 공존만 합의해도 지금의 지정학적 지각 변동에 덜 흔들리면서 갈 수 있지 않을까 싶다. 

통일 문제도 이제는 공존의 문제로 재정의할 때가 아닌가 싶다. 북도 자기 나름대로 발전 경로를 찾고 있다. 이제 남북한 사이에 공존 이외의 가치는 없다고 본다. 이것을 핵심으로 삼는다면 우리는 동맹 문제에 확실한 입장을 가져야만 한다. 추상적인 구호가 아니기 때문이다.

조준태 기자 aim@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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