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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오길의 생물읽기 세상읽기 322] 연어의 먹이에서 립스틱까지, 헤마토코커스
[권오길의 생물읽기 세상읽기 322] 연어의 먹이에서 립스틱까지, 헤마토코커스
  • 권오길
  • 승인 2023.05.16 10:4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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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마토코커스
헤마토코커스 플루비아리스는 다른 조류와 달리 수소이온농도의 영향을 크게 받지 않고, 논 등의 고인 물에서 쉽게 번식한다. 사진=위키미디어

저녁밥 뒤에 나오는 후식(後食)이 오늘따라 난생처음 보는 괴상 야릇한, 색다른 것이었다!? 아내가 ‘눈에 좋은 것’이니 무조건 ‘아~~~’ 입을 벌리란다. 내가 녹내장이 있어서 안압 내리는 물약을 눈에 넣고 있는데, 아내가 눈치채고 말은 안 해도 신경을 많이 쓰는 모양이다. TV에서 ‘눈에 좋은 약’이라 하여, 약 이름을 적어뒀다가, 며느리한테 부탁하여 인터넷으로 샀단다. 입에 넣어준 가루약은 새빨갛고, 약병을 보니 ‘헤마토코커스’라고 쓰여있다. 한마디로 처음 보는 약이다!? 그럼 그게 어디서 뽑은 가루약인지 그 정체(正體)를 같이 알아보도록 하자.

헤마토코커스(Haematococcus)는 북극지방의 강이나 호수 등지에 서식하는 민물 미세조류(微細藻類, micro algae)의 일종인데, ‘헤마토코커스’는 알고 보니 미세조류인 헤마토코커스 플루비아리스(Haematococcus pluvialis)의 학명(속명, generic name)이다. 또 그것은 녹조류(綠藻類, green algae, chlorophyta)의 일종으로 크산토필(xanthophyll)과 카로틴(carotene) 색소도 많이 갖고 있다. 북극지방의 담수(민물)에서 나타나는 미세조류인 해마토코커스 플루바이러스가 영양결핍이나 염도 상승, 과도한 뙤약볕으로 스트레스를 받으면 붉은 색소인 아스타잔틴(astaxanthin)을 많이 생성한다고 한다.

다시 말해서 왕성히 번식할 때보다 환경조건이 좋지 않은 상태에 더 많은 아스타잔틴이 생성, 축적되는데, 휴지기의 피낭(resting cysts, 被囊)은 마른 땅을 피처럼 붉게 물들이는 원인이 된다. 먹이사슬(food chain)에 따라 이런 미세조류를 먹은 연어(salmon), 붉은 송어(red trout), 도미류(sea bream), 플라밍고(flamingos), 새우나 크릴, 가재, 게 등은 색이 붉다. 북극 새우(arctic shrimp)나 크릴에서 주로 아스타잔틴 색소를 얻으며, 또 북극지방의 지의류(lichen)에서도 얻을 수 있다. 한마디로 앞에서 후식으로 먹은 빨간 가루약은 미세조류인 헤마토코커스 플루비아리스에서 뽑은, 눈에 좋다는 아스타잔틴이렷다.

헤마토코커스 플루비아리스는 다른 조류와 달리 수소이온농도의 영향을 크게 받지 않고, 논 등의 고인 물에서 쉽게 번식한다. 그래서 클로렐라(chlorella)나 지구에서 가장 오래된 조류(藻類, algae)인 스피룰리나(spirulina)처럼 대량 양식이 가능하여 분말이나 알약을 얻을 수 있다. 헤마토코커스 플루비아리스는 아스타잔틴을 가장 많이 만들어서 그 농도가 1~5%나 된다. 그리고 추출한 가루(extract powder)는 매우 붉으며, 그 가루를 미국 제약사가 주로 만들었으며, 한국·일본·타이완·싱가포르가 주 고객국가라 한다. 아스타잔틴은 영양보충제 말고도 아이크림에 넣고, 연어 등의 먹이로, 립스틱 등의 화장품에도 쓰인다.

헤마토코커스 플루비아리스 조류에는 갑각류나 다른 수생동물보다 아스타잔틴이 더 풍부하다. 특히, 헤마토코커스 속(屬, genus) 미세조류가 만드는 아스타잔틴은 눈의 피로를 풀어주고, 눈 혈색을 맑게 해주며 망막의 혈류량을 증가시켜 눈을 많이 사용하는 수험생, 직장인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다. 또, 카로티노이드(crotenoid) 색소의 항산화(antioxidant) 작용으로 노안을 늦추는 데에도 도움을 줄 수 있다. 노안은 눈 근육이 약해지는 것에서 시작되는데, 아스타잔틴은 늘어진 눈 근육의 이완 속도를 높여준다. 이 밖에도 아스타잔틴은 뇌혈관 속 염증 물질과 활성산소를 제거해 치매, 중풍 예방에도 효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리고 노화로 감소 될 수 있는 황반 색소 밀도를 유지하여 눈 건강에 도움을 줄 수 있고, 눈의 피로도 개선에 도움을 줄 수 있다. 

헤마토코커스 추출물은 분말, 알약 등의 형태가 있는데, 분말은 바다 향이 강하기 때문에 요구르트에 섞어 먹거나 차에 타서 마시는 것이 좋으며, 과다 섭취하면 피부색이 황색으로 변화하는 등의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다. 특히 임산부, 수유기 여성은 섭취하지 않는 것이 좋다. 그리고 아스타잔틴은 카로티노이드계 색소로 피토케미컬(식물성 화학물질, phytochemical)의 한 분류에 속하고, 새우나 가재, 게 등의 갑각류를 비롯하여 수생동물에 널리 분포한다. 헤마토코커스 속의 아스타잔틴은 빨간색을 띠는 지용성 색소인데, 생체 내에서 유리(遊離) 상태로서 존재하고 있는 것 말고도, 단백질과 결합하여 여러 가지 색의 색소 단백질 상태로 존재한다.

일례로 게를 삶으면 빨갛게 되는 까닭은 색소 단백질이 분해되어 아스타잔틴의 붉은색이 나타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갑각류가 자외선의 악영향으로부터 몸을 지키기 위한 것이 아스타잔틴 색소인데, 살았을 적엔 이 색소는 단백질과 결합해 있어 청록색을 띠지만 열을 받아 분리되면 붉은색으로 변한다. 즉, 갑각류를 삶거나 구우면 단백질과 아스타잔틴 색소의 결합이 끊어져, 붉은 색소 아스타잔틴이 따로 드러난다. 

그리고 눈약으로 많이 쓰는 루테인(lutein) 지아잔틴(zeaxanthin), 아스타잔틴(astazanthin)은 모두 카로티노이드 계열의 식물성 화학물질(phytochemical)인데, 이것은 식물이 외부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내는 화학물질로 항산화, 염증 개선, 세포 손상 방지, 황반변성이나 시력 개선 등에 효능이 있다. 그래서 사람들이 루테인, 지아잔틴, 아스타잔틴을 눈 영양보충제로 먹는다.

권오길 강원대 생물학과 명예교수
권오길 강원대 생물학과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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