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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너지 보존법칙부터 진화론까지…과학 원리 통찰
에너지 보존법칙부터 진화론까지…과학 원리 통찰
  • 고중숙
  • 승인 2023.06.09 10:2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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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가 말하다_『교양인을 위한 자연과학 10대 원리』 고중숙 지음 | 현승북스 | 640쪽

수식 최대한 배제하고 직관에서 논리로
낱낱의 지식 엮어 일관된 체계로 구조화

과학과 교양

‘인문과학’은 어떤 학문일까? 이 책은 서두에서 ‘인문과학’의 옳은 발음이 ‘인문꽈학’임을 밝힌다. ‘인문과학’의 본래 구조는 ‘인문+과학’이 아니라 ‘인문과+학’이기 때문이다. 이는 일본에서 유래한 과학의 어원 및 국문학꽈・수학꽈・화학꽈・내꽈・소아꽈 등의 발음 배경을 생각해보면 쉽게 알 수 있다. 나아가 ‘인문과학’이란 단어 자체가 모순어(oxymoron)라고 한다. 오늘날 ‘과학’은 ‘인문 분야 학문’이 아니기 때문이다. 곧 ‘인문학’이란 학문은 있어도 ‘인문과학’이란 학문은 없다고 봐야 한다. 그럼 ‘자연과학’은 어떨까? 우선 ‘자연과학’의 옳은 발음도 ‘자연꽈학’이다. 하지만 ‘인문꽈학’이나 ‘자연꽈학’이나 우리의 언어 감각에 거슬린다. 따라서 ‘인문학’과 ‘자연학’으로 부름이 타당하다. 이 책은 다른 논점들도 추가하여 ‘과학’의 의의부터 상술하고 나아간다. 다만 아직은 ‘자연학’이란 이름을 전면적으로 쓰기는 곤란하다. 따라서 ‘과학’ ‘자연학’ ‘자연과학’ 중에서 상황에 따라 적절히 골라 쓰기로 했다.

또한 머리말에서 ‘교양인’의 의의도 간략히 살펴본다. 저자는 젊은 시절 어느 철학도가 상대성이론에 대해 물어왔을 때 “철학에서도 이런 지식이 필요한가 보다”라고 생각했던 기억을 상기한다. 그런데 이후 살아가면서 저자도 철학에 끌려 독학하며 양쪽의 관계를 숙고하곤 했다. 나아가 이런 양상을 다른 많은 사람들에서도 발견했다. 그리하여 인문학과 자연학을 아우루려는 ‘교양인의 품성’은 인간의 한 본성이라고 결론짓는다.

>>> 『교양인을 위한 자연과학 10대 원리』 보러 가기

세 가지 유의점

위와 같은 두 바탕 위에 자연과학 10대 원리를 서술하면서 특히 세 측면을 유의했다.

첫째로 누구나 경험상 수긍하듯 이과에서 문과를 탐색하기보다 문과에서 이과를 탐색하기가 더 버겁다. ‘수학’이라는 ‘만인 공통의 골칫거리’ 때문이다. 그래서 가능한 한 수식을 배제했다. 물론 수학을 많이 알수록 과학 원리의 이해에 유리하다. 따라서 필수적인 수식은 포함했다. 그러나 어떤 수식이든 건너뛰고 읽어도 전체 맥락을 이해하는 데에는 아무 지장이 없도록 구성했다.

둘째로 직관적 이해를 중요시하고, 이와 관련하여 인간의 이해를 직관적 이해와 논리적 이해의 두 단계로 파악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직관이 주춧돌이란 점이다. 흔히 직관은 오류 가능성이 많다고 한다. 하지만 이는 직관이 잘못된 때의 이야기일 뿐이다. 올바른 직관은 참으로 강력한 지적 본능으로서 논리적 이해의 핵심이며, 따라서 직관적 이해 없는 논리적 이해는 뜬구름이고 허당이다. 그래서 가능한 한 언제나 “직관에서 논리로” 나아간다.

셋째로 체계적 이해를 중요시하고, 이와 관련하여 인간의 뇌가 약 천억의 뉴런 그물 덩어리, 곧 신경망(neural network)임을 상기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이 ‘물질 구조’가 ‘정신 구조’와 직결된다는 점이다. 나아가 구조는 기능을 결정한다. 따라서 개별 뉴런이나 작은 부분을 뇌라고 할 수 없듯 파편 지식은 참된 지식이 아니다. 곧 인간 지식은 낱낱이 엮여 파편, 파편이 엮여 ‘일관 체계’가 되어야 비로소 ‘참된 지식’이 된다.

10대 원리의 선정과 분류

이 책의 10대 원리는 불가피하게 주관적으로 선정했다. 그래서 더 중요한 게 빠졌다고 보는 분들도 많을 것 같다. 사실 ‘과학 밑그림’을 대충이라도 제대로 그리려면, 100개는 너무 많겠지만 10개는 너무 적고, 수십 개는 되어야 할 것이다. 하지만 그러자면 보통의 책 한 권에 담기 어렵다. 따라서 머나먼 지적 여정의 ‘작은 밑그림’으로 보면 좋겠다. 그리고 이후 다른 원리들을 더해 문・이과의 지식이 더욱 풍성하고도 아름다운 조화를 이루는 교양인의 ‘큰 그림’으로 완성해가기 바란다. 또한, 불감청고소원, 장차 강호 제현의 도움으로 12대, 15대, 20대 … 원리를 담은 책으로 확장되었으면 싶다.

이 책의 10대 원리는 물리・화학의 운동법칙・에너지보존법칙・엔트로피증가법칙・맥스웰방정식・상대성이론・이중성원리・확률성원리・불확정성원리, 수학의 불완전성정리, 생물의 진화론으로 분류할 수 있다. 하지만 이는 인간적 분류일 뿐이다. 세상만사는 엮여 있으므로 모두 한데 아우르며 파악해야 할 것이다.

자연과학 원리와 관련, ‘중요성’은 에너지보존법칙, ‘근본성’은 이중성원리, ‘영향력’은 진화론이 가장 앞선다고 본다고 고중숙 교수는 강조했다. 사진=픽사베이

10대 원리의 요약

뉴턴의 ‘①운동법칙’은 알고 보면 여러 천재의 합작이다. 이전의 천재인 갈릴레오와 데카르트에 이어 이후의 천재인 오일러의 기여가 어우러졌기 때문이다. 특히 F=ma라는 유명한 식은 사실 ‘오일러의 법칙’으로 불러도 좋을 수 있다. 하지만 공평히 말하자면 운동법칙과 F=ma의 발견 영예는 뉴턴과 오일러에게 적절히 안배함이 좋을 것이다.

‘②에너지보존법칙’은 오래도록 자연의 근본 가정으로 여겨져 왔다. 그러나 20세기에 들어 더 근본 개념으로부터 유도되는 정리임이 밝혀졌다. 과학의 내용은 대개 원리로부터 수많은 귀결들이 유도됨으로써 풍성해지지만 반대로 더욱 근본적인 원리가 밝혀지기도 한다는 점은 과학의 심오한 묘미라고 하겠다.

‘③엔트로피증가법칙’은 우주의 엔트로피가 계속 증가한다고 말한다. 이 때문에 흔히 엔트로피는 무질서와 혼란의 상징이라는 오명을 쓰기도 한다. 이제는 이러한 엔트로피의 억울함을 풀어주자. 엔트로피는 우주와 우리의 심장이기 때문이다. 몸에 피가 있고 우주에 에너지가 있어도 흐르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 심장이 피를 흐르게 하듯 엔트로피는 에너지를 흐르게 한다. 엔트로피는 기피의 대상이 아니라 잘 알고 소중히 활용해야 할 대상이다.

‘④맥스웰방정식’은 미국 독립전쟁과 비슷한 시기에 발표되었다. 당시에는 세계사적으로 큰 영향을 끼친 미국 독립전쟁에 비하면 아주 적은 주목을 받았을 뿐이었다. 하지만 미국의 저명한 물리학자 리처드 파인만은 다음과 같이 명쾌하게 맥스웰의 손을 들어주었다: “인류 역사를 이후 만 년쯤의 긴 안목에서 볼 때 맥스웰방정식이 19세기의 가장 중요한 사건으로 꼽힐 것이란 점에는 거의 의문의 여지가 없다. 같은 시기의 남북전쟁은 이 위대한 과학적 성과에 비하면 세월이 흐를수록 지엽적 사건으로 퇴색될 것이다.”

‘⑤상대성이론’은 사실 절대성이론이다. 이름 때문에 흔히 ‘상대성’을 밝힌 이론으로 여기지만 실제로는 ‘진정한 절대성’을 밝힌 이론이란 점을 깊이 인식해야 한다. 구체적으로 상대성이론은 뉴턴이 세운 ‘절대시간과 절대공간이라는 헛된 절대성’을 허물고 ‘물리법칙과 광속의 불변이라는 참된 절대성’을 확립하여 펼친 이론이다.

‘⑥이중성원리’는 참으로 난해하다. 세상 만물의 근본 모습은 우리가 보기에 극단적으로 대조되는 입자와 파동의 이중성을 띤다고 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입자를 말 그대로 매우 작게 밀집된 알갱이로 여긴다. 반면 파동은 드넓은 호수나 바다에 널리 퍼진 물결의 모습으로 상상한다. 이처럼 본질적으로 대립하는 ‘국지성’과 ‘광역성’이 어떻게 만물의 근본에 ‘함께’ 있을 수 있단 말일까? 하지만 수많은 관찰과 실험으로 확증된 사실이다. 따라서 언젠가는 우리의 인식 체계를 혁신하여 온전한 이해에 이르도록 해야 할 뿐이다.

‘⑦확률성원리’도 비슷하다. 겉보기의 극단적 이분법을 어떻게든 융화하도록 요구하기 때문이다. 뉴턴이 수립한 ‘고전역학’은 ‘필연성을 품고 있지만’ 고전역학 자체는 ‘우연적으로 성립’하는 근사 이론일 뿐이다. 반면 오늘날 인류가 지닌 최선의 과학인 ‘양자역학’은 확률성원리라는 본질적 ‘우연성을 품고 있지만’ ‘필연적으로 성립’하는 정확한 이론이다. 따라서 이 두 이론을 간추리면 “필연은 우연이고, 우연은 필연이다”라는 역설적 명제가 얻어진다. 하지만 우연과 필연의 말뜻이 같아진다는 뜻은 전혀 아니다. 따라서 우리는 우연과 필연의 겉보기 대립을 지양하고 내면에 담긴 오묘한 융화를 잘 헤아려야 한다.

‘⑧불확정성원리’는 이중성원리 확률성원리와 더불어 ‘파동성 트리오’를 이루며 끝판왕이라 할 수 있다. 이 세 원리는 파동성을 배경으로 긴밀히 엮여있다. 하지만 함께 다루면 혼란스럴 수 있으므로 최대한 ‘체계적으로 나누어’ 다루었다. 불확정성원리는 기본적으로 “입자의 위치와 속도를 동시에 정확히 결정할 수 없다”라고 한다. 그런데 그 의미를 깊이 파헤치면 “만유의 근본이 하염없이 요동한다”라는 귀결로 이어진다. 그리하여 결국 경이롭게도 우주 창생의 근본 원리로 작용할 가능성까지 품게 된다.

‘⑨불완전성정리’는 불확정성원리와 함께 20세기의 양대 불가지론으로 꼽혀왔다. 하지만 여기에는 심오한 반전이 숨겨져 있다. 불완전성정리는 사실은 완전성정리라는 게 그것이다. 불완전성정리는 모순 없는 공리계라도 불완전하다고 한다. 이는 증명된 정리이므로 수학적 진실이다. 그러나 철학적으로는 완전하다고 볼 수 있다. 곧 불완전성정리는 불완전을 품기에 완전성정리이며, 불완전을 배제한 완전이 오히려 불완전이다.

끝으로 ‘⑩진화론’은 영향력 측면에서는 가장 앞서는 이론일 것이다. 애초의 시작은 아득한 고대이지만 다윈이 혁명적인 근대 진화론을 수립하여 종교・철학・우생학・인종차별・제국주의・초기자본주의・나치즘 등등 인류 사회 전반에 막대한 영향을 끼쳤다. 이후 이러한 외면적 이슈들은 적잖이 해소되거나 가라앉기는 했다. 하지만 최근에 진화론의 내면적 함의는 반대로 가장 드넓은 우주론까지 확장되는 것 같다. 우리 우주 안의 생물은 물론 우리 우주를 비롯한 무한의 우주들도 진화론의 관점에서 이해할 수 있을 것 같기 때문이다.

과학 이론의 평가

과학 이론도 여느 것들처럼 여러 모로 평가할 수 있다. 저자는 그중 ‘중요성’은 에너지보존법칙, ‘근본성’은 이중성원리, ‘영향력’은 진화론이 가장 앞선다고 본다. 하지만 다른 원리들도 고유의 독특한 속성이 있을 것이다. 따라서 10대 원리를 살펴보며 이를 찾고 음미하는 것도 나름 의미있는 지적 여흥이라 하겠다. 그리하여 결국 개별 원리의 각개 격파와 전체 체계의 집약 통관에 이르기를 기원한다.

과학은 인류의 양심

이 책의 ‘마치면서’에서는 ‘의식’에 대해 이야기한다. ‘과학’의 원어 ‘science’는 ‘의식’의 원어 ‘conscious’와 어원이 같다. 곧 과학은 우리를 포함한 세상 모두를 의식하고, 이로부터 얻은 앎을 추구한다. 그런데 여기의 ‘앎’은 책의 서두에서 밝혔듯 ‘지식’과 ‘지혜’를 포괄한다. 라틴어로 지식은 스키엔티아(scientia)이고 지혜는 사피엔티아(sapientia)인데, 후자는 인간의 학명인 호모 사피엔스(Homo sapiens)에 반영되어 있다. 나아가 ‘science’는 ‘양심’의 원어 ‘conscience’와도 어원이 같다. 그리하여 지은이는 “과학은 인류의 양심(Science is the conscience of humanity)”이란 말로 마무리한다.

앞서 밝혔듯 교양은 인문과 자연을 포용한다. 이 책은 교양의 이러한 본질적 의미에 잘 부합한다. 그러면서 지성적인 교양인들을 깊은 사색으로 이끌 주제들을 많이 품고 있다. 따라서 참된 교양을 추구하는 분들의 애독서 리스트에 오르기를 기대한다.

 

 

고중숙
전 순천대 화학교육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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