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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쪽’ 과학이 옳은지 모르겠다는 낯 뜨거운 고백
‘어느 쪽’ 과학이 옳은지 모르겠다는 낯 뜨거운 고백
  • 이덕환
  • 승인 2023.06.12 08:4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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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정론_ 이덕환 편집인(서강대 명예교수 / 화학·과학커뮤니케이션)

 

이덕환 편집인

애써 분노를 참아왔던 어민들이 폭발해버렸다. 10년 전의 발언을 정반대로 뒤집은 엉터리 억지·괴담·횡설수설로 자신들의 생업에 심각한 피해를 발생시킨 서균렬 서울대 명예교수를 경찰에 고발해버렸다. 실제로 어민들이 힘들게 잡아 올린 생선의 가격이 절반 이하로 떨어져 버렸다고 한다. 수산시장과 횟집도 문 닫을 걱정에 전전긍긍하고 있다. 오염수 방류가 시작되면 상황은 더욱 심각해질 것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21세기의 과학과 상식은 서 교수의 일방적인 주장과 정반대다. 137만 톤에 이르는 오염수를 한꺼번에 방류하더라도 우리에게 미치는 영향은 측정도 할 수 없을 것이라고 한다. 후쿠시마 앞바다에 버린 1억5,000만 개의 페트병 중에 우리나라로 흘러오는 페트병은 1개도 되지 않을 정도라는 것이다. 후쿠시마에서 버린 페트병은 해류를 따라 우리나라로 흘러오지 않는다는 분석이 더 적절하다는 뜻이다.

원자력연구원과 해양연구원의 분석이 그렇고, 중국의 과학적 결론도 마찬가지다. 과학잡지 <네이처>와 <뉴사이언티스트>에 실린 과학 논문도 다르지 않다. 해류가 오염물질을 고스란히 운반해주는 대신 사방으로 흩어지게 만든다는 우리 상식과도 일치하는 결과다.

방사성 핵종의 독성에 대한 억지도 과학이나 상식과 맞지 않는다. 세상에 ‘독’(毒)과 ‘약’(藥)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아무리 강한 독이라도 노출·피폭량이 충분히 적으면 걱정할 이유가 없고, 아무리 좋은 약이라도 노출·피폭량이 너무 많으면 독이 되기 마련이다. 중세의 명의 파라셀수스가 남긴 ‘용량(用量)이 독을 만든다’는 명언이 바로 그런 뜻이다. 

삼중수소·스트론튬·세슘·플루토늄도 예외일 수가 없다. 오염수를 알프스(다행종제거설비)로 처리한 후 방사성 핵종의 농도가 방류기준 이하가 되도록 400배로 묽히면 방사선 피폭에 의한 부작용을 걱정할 이유가 사라져버린다. ‘폐기물 투기에 의한 해양오염 방지’를 위한 런던협약에서도 그런 처리·방류수의 해양 방류를 무제한으로 허용한다. 우리도 하수·오수(汚水)·폐수(廢水)를 똑같은 방법으로 처리·희석해서 바다로 방류하고 있다.

방사선 피폭의 부작용이 ‘발암성’으로 한정되는 것도 분명한 상식이고 과학이다. 암은 대표적인 만성질환이다. 방사성 핵종으로 오염된 수산물을 한 번 먹거나, 만지거나, 본다고 암에 걸리는 것이 절대 아니라는 뜻이다. 물론 오염 사실이 확인된 수산물을 굳이 먹을 이유는 없다. 그렇다고 오염 가능성이 매우 낮은 수산물은 ‘한 마리도 먹으면 안 된다’는 억지에 겁을 낼 이유는 없다.

‘과학’이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에 대한 국민 불안을 잠재워줄 것이라는 정부의 주장은 설득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사고 직후 2년 동안 속수무책으로 누출된 원전 파편으로 심하게 오염됐던 후쿠시마 근해의 수산물에 대한 정부의 어정쩡한 입장도 국민 불안을 부추긴다.

그런데 어느 원로 역사학자가 일간지 칼럼을 통해 ‘어느 쪽 과학이 옳은지는 모르겠다’는 낯 뜨거운 고백을 내놓았다. 고고한 역사학자가 스스로 중학교 수준의 과학·상식과 어민들도 거부하는 억지·괴담을 구분할 능력을 갖추지 못했다고 솔직하게 털어놓은 것이다. ‘과학’과 ‘상식’까지 이념의 틀에 가둬놓고, 국민 불안을 부추기는 것이 교수 사회의 안타까운 현주소다.

이덕환 편집인
서강대 명예교수 / 화학·과학커뮤니케이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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