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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란봉투법과 노동개혁
노란봉투법과 노동개혁
  • 노중기
  • 승인 2023.06.12 1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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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논평_ 노중기 한신대 교수·사회학 

윤석열 정부의 노동 정책이 이제 궤도에 오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주 69시간으로 노동시간을 연장하려던 시도가 사회적 저항에 부딪혀 어려워지자 노조에 대한 노골적인 억압으로 전환한 것이다. 예컨대 최근 건설노조의 노숙농성투쟁, 금속노조의 합법적 집회에 대해 경찰이 특진을 내걸고 진행하는 수사는 그 자체가 반(反)헌법적 작태이다. 용산 대통령실, 그리고 정권 수뇌부의 노동 공격 지시에 맞춘 이런 국가폭력은 군사정권 시절, 아니면 노태우 정부 시절에나 볼 수 있었던 일이었다.

한편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은 이에 맞대응하는 정쟁 차원에서 ‘노란봉투법’을 들고 나왔다. 노란봉투법은 노동법 일부를 개정하여 노동쟁의에 대한 자본의 ‘손해배상청구소송’과 ‘가처분’을 규제하자는 법안이다. 내용적으로 부족하나마 노동계의 오랜 숙원이었으므로 언뜻 보아 바람직한 진전이었다. 다만 국회 본회의 통과만 남겨둔 상황에서 윤석열 대통령과 대통령실이 거부권 행사 방침을 분명히 밝혀둔 상태이다. 

작년 거제도에서 비정규노동자들은 원청 사용자인 대우조선과 교섭하고 싶다며 도크를 점거하는 농성을 벌였다. 쇠창살 농성투쟁(아래 사진)이 바로 그것이었다. 그런데 그 임금교섭의 합법적 타결 이후 대우자본은 불법 쟁의를 했다고 농성노동자 1인당 90억 원이 넘는 손해배상을 법원에 청구하였다. 한 달에 300만 원도 벌지 못하는 비정규노동자들에게 100억 원 가까운 돈을 물어내라는 것은 손해배상 요구가 아니다. ‘파업하면 죽이겠다’라는 폭력이자 살인 협박일 뿐이다.

작년 거제도에서 비정규노동자들은 원청 사용자인 대우조선과 교섭하고 싶다며 도크를 점거하는 농성을 벌였다.

동전의 양면 노란봉투법

윤석열 정부의 노동탄압과 더불어민주당의 노란봉투법의 정치적 의미는 정반대인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진실은 크게 다르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두 가지 노동정치의 거리가 그다지 멀지 않으며 어쩌면 매우 가깝거나 심지어 같은 동전의 양면일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노란봉투법은 이명박 정부의 대표적 노동탄압, 2009년 쌍용자동차 정리해고 파업 진압과 노동자 탄압에서 기원하였다. 국가와 자본이 결탁하여 쌍용자동차를 외국자본에 팔아넘기려는 음모에 대해 77일 한여름 옥쇄파업으로 쌍용노동자들은 저항하였다. 공권력 투입과 무자비한 경찰 폭력 사태 끝에 파업은 종료하였으나 사태가 끝나는 데는 무려 10년 이상의 시간이 필요했다.

수많은 사람이 해고되고 수감되었다. 특히 수십억 원 손해배상청구로 쌍용차 정리해고 노동자 30여 명이 목숨을 잃는 엄청난 비극이 벌어졌다. 이 손해배상금을 십시일반 공동체적 연대로 해결하자고 시민사회가 내민 손이 바로 ‘노란봉투’였다. 또 손해배상청구소송을 막기 위해서 ‘노란봉투법’이 만들어졌으나 수구 정부 10년 동안 법 개정은 불가능했다. 

문제는 문재인 정부였다. 쌍용차 정리해고 노동자들의 처절한 10년 투쟁과 민주노조의 투쟁, 그리고 시민사회의 촛불항쟁으로 손쉽게 집권한 정부였다. 집권 전 선거 과정에서 노동존중정부를 자처하며 노란봉투법 입법을 수없이 약속하였다.

그러나 촛불정부는 집권 이후 단 한 번도 손해배상소송 문제나 노란봉투법 논의를 꺼내지 않았다. 노동자들의 요구가 빗발쳐도 노동존중은 말잔치로 끝났고 전혀 실행되지 않았다. 당시 집권 더불어민주당은 마음만 먹으면 법 개정을 할 수 있는 상황이었음에도 노동자들의 요구를 철저히 거부한 것이었다.

‘적대적 상호의존’…윤석열 정부만이 문제가 아니다

결국 윤석열 정부만이 문제인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하지 않아도 더불어민주당이 노란봉투법을 국회에서 통과시킬까? 필자의 경험과 판단으로 보면 이 두 보수정당은 노란봉투법을 갖고 ‘짜고 치는 화투놀이’를 하고 있을 뿐이다. 두 정당은 손해배상청구소송을 제한할 의사가 전혀 없다. 여당이 거부권을 행사할 것을 너무나도 잘 아는 야당은 연극을 하고 있다. ‘적대적 상호의존’이 아닐 수 없다. 그러면서도 노동자 편인 척 연기하는 야당이 더욱더 모진 반(反)노동세력, 친(親)재벌세력 아닐까?

노란봉투법, 손해배상청구소송의 뿌리는 깊다. 1990년 공안정국에서 노동자 투쟁에 대해 손해배상청구를 하라고 자본에 지시한 것은 노태우 민자당 정권이었다. 그러나 이를 제도화하고 본격적으로 실행한 것은 외환위기 이후 김대중 정부였다. 재벌과 국가가 만든 외환위기로 엄청난 고통을 받던 노동자에게 국민의 정부는 손해배상청구로 답했다. 또 ‘노동자의 눈물을 닦아주겠다’면서 대통령이 된 노동인권변호사 노무현은 손해배상청구소송 철폐를 핵심 공약으로 약속했다.

그러나 배달호, 김주익 등 손해배상으로 연이어 많은 노동자들이 죽어간 2003년 ‘열사정국’에서 그는 노동자들을 ‘귀족’이라고 비난하면서 비극적 죽음을 방치했다. 그는 노태우 정부 이래 가장 많은 노동자를 구속한 대통령이었다. 특히 노동자들의 강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쌍용자동차를 중국 상하이자동차에 팔아 치운 당사자도 그였다.

두 보수 정당, 국민의 힘과 더불어민주당이 연기하는 ‘노동개혁’ 사기극을 바라보는 심정이 무겁기만 하다. 거의 모든 시민과 노동자를 기만하는 이 저질 사기극에 많은 교수들이 동원되어 날뛰는 현실도 가관이다. 그래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노동자들은 한 걸음씩 역사를 만들어나가고 있음을 우리는 알고 있다. 지금 지식인은 무엇을 해야 할까?

노중기 한신대 교수·사회학 
전국교수노동조합 위원장을 지냈다. 민주노총 정책자문위원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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