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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 사립대에서 물리·화학 사라진다
지역 사립대에서 물리·화학 사라진다
  • 강일구
  • 승인 2023.06.19 1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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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수도권 사립대, 물리학과 3곳·화학과 8곳
지난 10년 동안 화학 계열 학과는 64곳, 물리 관련 학과는 13곳이 구조조정 됐다. 도종환 국회의원(더불어민주당)이 교육부로부터 제출받은 ‘2013~2022년 전국 일반대 학과 통폐합·신설 현황’에 따른 것이다. 학과·학부·전공을 교육통계서비스의 ‘2022년 학과(전공) 분류자료’에 나온 소계열 분류(화학과 물리·과학)에 따라 정리한 결과다. 사진=픽사베이

대학에서 국어국문학·철학뿐만 아니라 자연계열의 물리·화학도 사라지고 있다. 학령인구 감소와 취업률 하락과 함께 ‘융합교육’을 강조하는 분위기도 기초학문의 붕괴를 부추기고 있다.

2023년 현재, 대학알리미 기준으로 ‘물리학과’ 또는 ‘물리학전공’의 명칭을 유지하고 있는 대학은 37곳뿐이다. 수도권 대학이 24곳이다. 거점국립대 10곳을 빼고 나면 지역 사립대에서는 ‘물리학과’를 찾아볼 수 없다는 뜻이다. ‘화학과’를 운영하는 대학도 44곳이다. 21곳은 수도권에 있고 거점국립대도 7곳뿐이다.

지난 10년 동안 화학 계열 학과는 64곳, 물리 관련 학과는 13곳이 구조조정 됐다. 화학 계열의 경우 37곳에서 폐과(분리폐과·단순폐과·통합폐과·폐지·통합 포함)됐고, 27곳이 신설(분리신설·단순신설·통합신설·신설 포함)됐다. 물리학 계열은 9곳에서 폐과됐고, 3곳이 신설됐다. 

도종환 국회의원(더불어민주당)이 교육부로부터 제출받은 ‘2013~2022년 전국 일반대 학과 통폐합·신설 현황’에 따른 것이다. 학과·학부·전공을 교육통계서비스의 ‘2022년 학과(전공) 분류자료’에 나온 소계열 분류(화학과 물리·과학)에 따라 정리한 결과다. 

화학 계열 학과의 폐과는 대부분 지방 사립대를 중심으로 벌어졌다. 우석대 응용화학부와 건양대 나노바이오화학과는 신입생 모집 저조와 낮은 학과평가 때문에 폐지됐다. 학과 경쟁력 강화를 위해 신설된 경우는 목원대와 경성대의 화장품학과처럼 실용분야에 집중된 경우가 많았다. 또한, 학과·전공이 신설되었지만 존치 기간이 짧았던 경우도 있었다. 대구가톨릭대는 2020년에 학교 경쟁력 강화를 위해 바이오·화학융합학부 응용화학전공을 신설했지만 2년 만에 신입생 저조로 폐과했고 선문대도 2014년에 신설한 나노화학과를 이듬해에 폐지했다.

지역거점국립대나 수도권의 대학에서도 화학 관련 학과를 구조조정했다. 성신여대는 2021년 정원조정을 위해 화학과를 폐과하는 대신 교육부 지정 첨단분야인 화학·에너지융합학부를 신설했다. 서울여대도 2016년에 화학과를 폐지하고 화학·생명환경학부를 신설했다. 강원대는 2019년에 대학 특성화 계획에 따라 화학과와 생화학부를 통합폐과하고 화학·생화학부를 신설했다. 

지역의 기초과학 학과가 사라지는 상황에 대해 대한화학회 대전·충남·세종 지부장인 손영구 충남대 교수(화학과)는 “지역에서 기초학문이 사라지는 데는 학령인구감소·고령화·지방소멸 등의 배경이 있다”라며 “모든 산업, 돈 그리고 사람이 수도권으로 집중되는 현실에서 지역 대학은 사회의 요구에 억지로 학과명칭을 변경하고, 폐과라는 전략을 펴는 것이다. 살아남기 위한 절박한 몸부림이다”라고 말했다. 손 교수는 “지역의 기초학문 붕괴는 오래전 시작된 일이지만 정부는 대학만 개혁한다는 식으로 수수방관했다”라며 “외부 요인을 해결하지 않고 외국 성공사례를 가져와 대학에만 맡기고 해보라는 식의 해결책은 전혀 답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물리 계열에서도 전공이나 학과를 폐지하는 사례가 있었다. 조선대가 2020년에 물리학과를 폐과했고 동의대도 2015년 물리학과를 폐과했다. 숙명여대는 공과대학 이전을 이유로 나노물리학과를 통합폐과 했다. 강원대는 대학 구조혁신과 활성화에 따라 2018년 지구물리학전공과 지질학 전공을 지질·지구물리학부로 통합했다. 한림대는 2019년에 응용광물리학과를 폐과하고 나노융합스쿨을 신설했다. 부경대도 2022년에 과학시스템시뮬레시연학과를 신설했다. 

2016년 대구대의 물리학과 폐지로 에너지시스템공학과로 옮긴 김현정 교수는 “최근 정부에서는 AI, 양자컴퓨터 등의 분야를 집중 육성하겠다고 하는데, 수학과 물리학으로 훈련된 고급 인력이 없으면 아무리 많은 예산을 투입하더라도 응용 분야의 발전을 기대하기 어렵다”라며 “혹자는 지방 사립대에서는 기초보다는 응용에 중점을 두어야 한다고 하지만, 기초과학의 바탕 없이 응용 학문이 가능한지도 의문이다”라고 말했다.

강일구 기자 onenine@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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