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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 유행의 유혹에 빠진 교육
기술 유행의 유혹에 빠진 교육
  • 손화철
  • 승인 2023.06.19 15:1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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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정론_ 손화철 논설위원 / 한동대 교양학부 교수·기술철학

 

손화철 논설위원

“그 많던 메타버스는 누가 다 먹었을까?” 성결대 교양학부의 이민형 교수가 한 기독교 잡지에 기고한 글의 제목이다. 한국 교회의 신기술 도입을 비판적으로 검토하면서 코로나19 기간 중 잠시 지나간 메타버스 유행 사례를 분석한 글이다.

어디 교회뿐이었겠는가? 완성되지도 않은 기술이 앞날을 주도할 것이란 기사가 쏟아졌고, 내노라하는 사람과 기관 중 한 마디 걸치지 않은 경우가 드물었다. 급기야는 교육에 메타버스를 활용하겠다는 프로젝트가 여기저기 등장해서 메타버스용 고글과 고사양 컴퓨터를 파는 장사가 나랏돈 맛을 보았다. 그런데 정작 이름까지 ‘메타’로 바꾸며 물건을 팔아먹던 회사는 메타버스 사업을 접으려는 눈치다.

메타버스뿐이 아니다. 이제는 맨날 말썽이나 부리는 연예인 대신 가상인간이 활약할 것이라 했는데, 불과 1년이 지나서 몇 편의 광고가 나오고 가상인간이 늘어나니 그만 시들해졌다. 챗GPT가 모두의 삶을 바꾸리라 기대했지만 6개월 만에 진정 국면으로 진입 중이다. 모두 대단한 기술인 것은 부인할 수 없지만 그 가능성에 대한 기대는 과장되었다.

이것이야말로 현대 기술의 부정적인 자가발전식 개발의 전형이다. 인간의 삶을 더 풍요롭게 하려면 무엇이 필요한지 생각하기보다 그럴싸해 보이는 무엇인가를 개발한 다음 그 기술에 맞는 필요와 유용성을 만들어낸다. 필요를 생산하는 데 성공하면 대박이고, 실패하면 망하거나 망하기 전에 재빨리 다음 기술로 넘어간다.

스티브 잡스가 “대개 소비자는 당신이 뭔가를 보여주기 전까진 자기들이 정말 원하는 게 뭔지 모른다”고 한 말은 오늘날 기술 개발의 숨은 원리를 우회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결국 이들의 진짜 제품은 기술이 아니라 먼 미래에 대한 이야기다. 당장 메타버스 고글은 무겁고 비싸지만 앞으로 가볍고 싸질 것이고, 그날이 오면 우리는 현실과 가상을 마구 오갈 것이다.

몇 년 전 상상도 못했던 일이 가능해진 것처럼 그 미래는 무조건 온다. 그때 남에게 뒤쳐지지 않으려면 지금  먼저 이 벽돌 같은 기기를 사고, 3차원이 버겁다면 졸업식과 입학식, 교회 주일학교 정도는 2차원 메타버스로라도 한 번 구현해 봐야 한다는 식이다.

문제는 언론과 전문가, 특히 교육자와 정책결정자가 이런 미성숙 기술과 미래 이야기 프레임에 부화뇌동하는 것이다. 기술 발전의 속도에 적응하기도 힘들고 그 함의가 무엇인지 숙고할 시간도 부족한데 그렇게 먼 미래 이야기에 혹하는 것은 무지가 아닌 무책임이다.

기업이야 미래 이야기 마케팅으로 이것저것 시도하다 보면 뭔가 건질지도 모른다. 그런데 거기 끼어 판돈이나 대면서 정작 검증도 되지 않은 기술에 학생을 기니피그로 제공하는 행태는 도대체 누구와 무엇을 위한 것인가?

지금까지보다 더 빠르고 혹독한 기술사회를 살아가야 할 미래 세대에게 얼리어댑터(Early Adopter) 정신은 의미가 없다. 오히려 이민형 교수처럼 도무지 이런 열풍 속에서 누가 이익을 보고 누가 손해를 보았는지, 이런 열풍의 원인과 결과가 무엇인지, 남이 좋다고 하는 그 기술이 나와 내 공동체에 어떤 유익을 주는지 묻는 능력을 키워야 한다. 엉터리 미래 이야기를 의심할 줄 알고 자기가 생각하는 좋은 미래의 모습을 그릴 줄 아는 인재를 기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메타버스와 챗GPT를 사용해서 될 일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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