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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고 넘치는 인터넷 ‘포르노’…피해는 회복 불가능
차고 넘치는 인터넷 ‘포르노’…피해는 회복 불가능
  • 홍남희
  • 승인 2023.06.26 08:1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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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가 말하다_『편향된 기술 문화는 어떻게 작동해 왔는가』 홍남희 지음 | 컬처룩 | 320쪽

기술 발전과 더불어 심화하는 젠더 폭력

독성의 기술문화는 여전히 미해결로 남아

>>> 이 책 보러가기 『편향된 기술 문화는 어떻게 작동해 왔는가』

인터넷은 시공간을 초월해 정보를 접할 수 있는 ‘연결’의 경험을 대중에게 선사했다. 정보화·세계화에 발맞추기 위한 정보통신 인프라가 국가 주도로 마련되면서 한국의 인터넷 이용자 수는 1994년 약 13만 명에서 1999년 1천만 명을 돌파했다. 

1990년대 정치적·성적 자유의 물결과 기술 중심의 상업 자본주의의 확장에 따라 인터넷은 포르노그래피가 만연한 공간이 됐다. 정치권력으로부터의 자유와 표현의 자유 지상주의는 새로운 기술 공간에서 발생하는 젠더 폭력을 외면해 왔다. 이 책은 인터넷 이후 역사를 기술 발전의 궤적으로만 그려내는 서사에 도전한다. 기술 환경을 다양한 인간-비인간 행위자의 상호구성적인 ‘생태계’로 보면서 기술 진보가 어떻게 젠더 폭력을 양산해 왔고, 담론과 제도는 이러한 구조와 역사를 어떻게 비가시화해 왔는지 질문한다. 

이를 통해 오늘날 기술문화연구에서 중요한 키워드로 부상한 ‘편향(bias)’의 문제를 짚어내고자 했다. 편향은 매체가 유발하는 행위 및 문화의 특성이자 기술과 문화, 규제의 작동 방식이 사회구조적인 차별을 전제하고 있음을 뜻한다. 보는 남성과 보이는 대상으로서 여성이라는 관습적인 시선의 권력 문제는 기술을 통해 반복돼 왔으며, 인터넷 이후 포르노그래피 규제 담론에도 전제돼 왔다. 법 담론의 보호법익은 청소년이나 사회의 성(性) 도덕을 ‘음란물’로부터 보호하는데 머물렀으며, 여성의 일상이 포르노화되면서 발생하는 인권 침해 문제에는 관심을 갖지 않았다. 꽤 오랫동안 불법촬영과 비동의 유포는 ‘포르노’나 ‘야동’으로 불렸으며, ‘음란물’인지에 따라 규제가 결정돼 왔다. 

이러한 편향이 한국만의 문제는 아니었다. 인터넷의 ‘전 지구적인’ 속성은 전 세계 미디어 전경을 유사하게 만들고 있다. 빈곤 국가 소녀들에 대한 백인 남성의 성착취가 실시간 스트리밍으로 발생하고, 딥페이크봇은 여성 연예인뿐 아니라 보통 여성들의 얼굴로 포르노물을 만든다. 포르노그래피가 유통되는 ‘폰허브’ 사이트에서는 아동 성폭력, 불법촬영 및 비동의 유포 사례가 만연한 것으로 나타났으며, 한국의 ‘소라넷’ 또한 매우 비슷한 사례를 확산시켜 왔다. AI 개발 과정에서 활용되는 <플레이보이> 모델 레나의 이미지, 여성을 모욕하면서 후원과 명성을 얻게 하는 플랫폼의 작동 방식, 젊은 여성으로 가정된 챗봇 등은 디지털 기술문화의 편향성이 성차별과 여성혐오라는 역사적이고 구조적인 차별의 성격을 갖고 있음을 드러낸다.

미투 운동과 혜화역 시위 등을 통해 주체화된 여성 청년의 기술문화 액티비즘을 의미화하지만 독성의 기술문화는 여전히 해결되지 않고 있다. 텔레그램 성 착취 사건이 세상을 떠들썩하게 하고 이에 대한 대응으로 2021년 8월 법무부 산하 디지털성범죄 대응 TF가 출범했다. 그러나 TF의 권고안 중 국회에서 처리된 안건은 하나도 없이 TF가 해산됐다. 가해·피해의 성별화가 뚜렷한 젠더 폭력의 양상은 매체의 자동성·즉흥성과 청소년기 특유의 충동성이 함께 만나면서 점점 극단화되고 회복 불가능한 피해로 나타나고 있다.

따라서 이러한 기술환경에서 ‘디지털 네이티브’ 세대들이 어떠한 시민으로 자라고 있는가에 에 대한 관심이 필요하다. 디지털 시민성 논의는 기술환경의 속성과 젠더 폭력의 양상을 통합적으로 사유하는 관점에서 재구성될 필요가 있다. 누가 어떻게 취약해지고 있는가. 누가 기술문화에서 배제되고 있는가. 기술은 어떠한 행위를 유도하고 있는가. 책임 주체는 누구인가. 

이러한 질문을 통해 미디어 연구가 개입할 수 있는 지점을 찾아가야 한다. 모두가 평등하게 참여할 수 있는 기술문화를 만들어 가는 과정에 많은 이들이 함께 동참하기를 바라면서, 이 책이 그러한 여정에 손을 내미는 초대장이 되기를 기대한다.

 

 

 

홍남희 
서울시립대 도시인문학연구소 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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