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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 전문가를 활용한 ‘공동체 교육'
지역 전문가를 활용한 ‘공동체 교육'
  • 이정기
  • 승인 2023.08.02 08:3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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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의 지역 자원 활용법
이정기 교수는 부산시청자미디어센터, 부산국제영화제, 한국언론진흥재단, 해운대장애인자립생활센터, 홈앤쇼핑, 홈플러스, 금샘마을도서관, 금샘마을공동체, 레블스튜디오, 알티비피얼라이언스, 미디어지음, 마을미디어연구소, 사회자본연구소, 어반비랩 등에 소속된 다양한 전문가를 수업에 참여시켰다. 이들에게 한 차례의 강의만 맡긴 것이 아니라, 수업에 참여한 전문가들과 수업을 어떻게 진행해야 할지 함께 기획했다. 사진=이정기

솔직해지자. 대부분의 대학은 서울권 대학이나 지역거점 국립대로 편입학하려는 학생의 이탈을 막을 충분한 비전을 가지고 있지 않다. 대학 서열화가 분명한 사회에서 급(?)이 더 높은 학교로 옮겨 성공해보겠다는 수험생과 재학생에게 대학은 어떠한 비전을 제시해 설득해 낼 수 있을 것인가? 어려운 일이다.

필자는 교수가 혁신 의지를 갖고 교육 특성화를 위한 실험을 지속적으로 진행해야만, 비로소 학생 설득의 명분을 가지게 된다고 생각한다. 물론, 설득의 명분과 설득 과정의 효과는 별개의 문제다. 대학 서열주의와 수도권 중심주의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대학교수의 혁신 의지와 함께 문제 개선을 위한 정부의 정책적 노력이 전제돼야 한다.

교육적 측면에서 지역은 학습자가 활용할 수 있는 사회적 자본이 서울보다 부족하다. 이러한 문제는 지역의 학생들이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게 만드는 원인이다. 동명대 광고홍보학과는 부산이라는 지역사회에서 학생을 집단으로 지도하는 시스템을 구축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교과 영역 수업을 지역 각 기관 전문가와 함께 진행하는 관산학 협력수업 방식으로 운영해 학생들이 문제해결을 위한 다양한 관점을 가질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비교과 학생 상담 프로그램인 더블멘토링에 매년 5명 이상의 지역 전문가를 참여시켜 학과 학생들이 지역사회의 전문가와 네트워킹하는 기회도 제공하고 있다.

방학 때마다 학과와 결합할 지역 전문가 발굴 

지금까지 필자의 수업에는 부산시청자미디어센터, 부산국제영화제를 비롯해 수많은 전문가가 참여했다. 필자는 이들과 함께 수업을 공동으로 운영하거나 멘토링 프로그램을 꾸준히 진행해왔다. 특히 ‘미디어리터러시의 이해는 2019년부터 5년째 부산시청자미디어센터와 교과목 기획, 강의 계획서 작성, 강의, 학생 과제물(공익광고) 심사, 피드백에 이르는 수업의 전 과정을 함께하고 있는 밀도 높은 협력 수업이다. 수업을 통해 미디어리터러시의 다양한 관점을 학습한 학생들은 교내외 공모전 수상실적이 타 대학 동일 계열 학생들에 비해 월등하게 높았다.

학과의 교수진은 방학 때마다 학과와 결합할 지역 전문가를 발굴하고, 수업에 참여시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학생들은 지역사회에서 전문성을 발휘하는 전문가를 보며 자신감을 얻었고, 창의적 문제해결 역량을 길렀으며, 때로는 교수보다 더 밀접하게 전문가와 소통하며 자신의 꿈을 구체화하곤 했다. 지역사회와 함께 지역의 인재를 길러내는 공동체 교육은 다른 대학에서도 생각보다 어렵지 않게 적용해 볼 만한 대학교육 혁신 사례다. 

필자는 연간 7~8개 학부 과목을 담당한다. 담당 과목 내용에는 차이가 있으나 대부분의 수업에는 네 가지 일관된 원칙을 적용하기 위해 노력한다. 이는 수업을 특성화하기 위한 과정인 동시에 필자가 재직하고 있는 학과만이 해낼 수 있는 차별적인 교육 커리큘럼을 만들기 위한 과정이다. 네 가지 원칙은 다음과 같다.

첫째, 연구와 교육의 선순환이 이루어지는 수업이어야 한다. 연구의 성과가 강의로 이어지고, 강의가 다시 연구성과로 이어질 수 있는 구조를 만드는 것은 트렌디한 수업을 만들어내는 손쉬운 방법이다.

예컨대 필자는 방학 중 관심을 가지고 진행한 연구주제로 수업을 설계한다. 지난 방학에 배리어프리 관련 논문을 작성했다면 해당 주제로 다음 학기 이론, 기획, 연구방법론 수업을 설계해 진행하는 방식이다. 이 경우 학생들은 관련 분야의 최신 트랜드를 학습할 수 있게 되고, 교수는 관련 주제를 학생들과 논의하는 과정에서 새로운 논문 작성을 위한 아이디어를 얻을 수 있게 된다. 그렇게 만들어진 연구 성과는 또 다른 수업으로 이어진다. 이 과정에서 학생들은 매년 새로운 사회적 트랜드를 학습할 수 있게 된다.

둘째, 인권 감수성을 길러주는 수업이어야 한다. 필자는 담당하고 있는 대부분의 수업을 인권이라는 주제와 연결해서 운영한다. 예컨대 1학년 수업에서는 학생들에게 인권 관련 공익광고를 제작하게 하고, 2학년 수업에서는 인권 증진을 위한 기획서를 제작하게 하며 3학년 수업에서는 인권 관련 데이터를 분석하거나 소논문을 작성하게 한다. 이러한 과정은 커뮤니케이션 관련 일을 하게 될 학생들이 글로벌 시민 역량과 소통 역량을 갖추는 데 도움을 준다. 졸업까지 3과목 이상의 인권 관련 과목을 수 강하는 커뮤니케이션학도는 거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지역문제 해결하는 ‘러닝 바이 두잉’

셋째, 학생들의 문제해결 능력을 길러주는 수업이어야 한다. 강의 위주의 수업을 지양하고, 학생들이 지역사회의 전문가와 주민들과 함께 지역의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을 중시하는 이른바 ‘러닝 바이 두잉(learning by doing)’의 방식으로 수업을 설계한다면 자연스럽게 학생들의 문제해결 역량을 높일 수 있다. 학생들이 현장에 나가 많은 시민을 만나고, 전문가와 소통하는 과정에서 문제해결을 위한 다양한 방법론을 자연스럽게 학습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편, 학생들이 지역사회의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을 중시하는 수업은 지역사회가 학과와 학생들에 대한 긍정적 이미지를 형성하게 만드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다만, 이러한 형태의 수업을 위해 교수는 수업이 본격적으로 진행되기 전에 학생들의 문제해결에 도움을 줄 수 있는 기관이나 전문가를 만나 MOU를 체결하는 등의 활동을 진행해야 하고, 수업이 진행되는 중 학생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전문가의 적극적인 협력을 끌어내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넷째, 학생들의 수업 중 활동의 성과가 포트폴리오로 구성될 수 있어야 한다. 필자는 학생들이 기획하고 제작하는 성과의 심층성을 높이기 위해 학생들이 교수뿐만이 아닌 다양한 전문가들의 피드백을 받을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그리고 1학년 학생들의 수업 성과는 지역 공공기관의 공모전과 연계해 시상하고, 홈페이지를 통해 공유하고 있고, 2학년 학생들의 수업 성과는 지역 실무자에게 제공하여 현장에서 활용 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그리고 3학년 학생들의 수업 성과는 국가기술자격 사회조사분석사 2급 취득, 구글애널리틱스 자격증 취득, 한국연구재단 등재학술지 게재 활동과 연계하고 있다. 아울러 필자는 학생들의 활동이 각종 언론을 통해 보도되거나 학회발표 때 공유될 수 있도록 노력한다. 수업 중 활동이 단순히 학점을 취득하기 위한 활동이 아니라 지역사회를 위한 활동으로서 자신의 포트폴리오를 만들어 가는 과정으로 인식되도록 하고 있다.

수도권 중심주의에 균열내기

학령인구의 감소 속 지역 대학의 위기가 심화되고 있다. 지역에는 폐교 대학이 속속 등장하고 있고, 신입생을 모집하지 못해 전전긍긍하는 대학의 수는 해마다 늘어나고 있다. 지역 대학의 위기는 일차적으로 대학 교직원들과 학생들의 위기다. 지역 대학이 폐교되면 교직원은 직장을 잃고, 학생들은 학습권을 침해받게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역 대학 폐교는 지역 상권과 대학이 위치한 도시의 위기로도 이어진다. 지역 대학의 위기를 공적인 문제로 다뤄야 할 이유다. 정부는 지역 대학의 문제해결을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적극적인 정책을 서둘러 마련해야 한다. 일부 대학에 돈을 지원하는 미시적 정책의 집행도 중요하겠지만, 그보다는 대학의 서열화, 수도권 집중이라는 구조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구조적 정책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

물론 개별 대학의 명운을 정부의 정책에만 의지할 수는 없다. 대학 경영진은 거시적인 안목으로 대학을 학습자 중심의 교육 기관으로 탈바꿈하기 위한 비전을 제시해야 한다. 수험생들이 선호하는 학과, 취업이 잘 되는 학과를 유치하는 등의 형식적인 측면의 특성화도 중요하겠지만, 타 대학, 타 학과와 차별화되는 교육 환경을 만들어내는 질적 측면의 특성화가 더욱 중요할 수 있다. 혁신적이고 차별화된 교육 환경과 커리큘럼을 개발하고, 실행하여 유일한 대학, 유일한 학과로 시민들에게 인식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대학 서열주의, 수도권 중심주의를 극복하기 위한 대학 차원의 과제라고 생각한다. 그러기 위해 대학은 (어려울수록) 젊고, 우수한 교수를 확보하고(혹은 우수한 교수가 대학에서 이직하지 않도록 하고), 그들이 선배 교수, 교내외 교육 전문가들과 함께 학교와 학과의 미래를 설계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지원할 필요가 있다. 

대학교수들의 노력도 필수적이다. 교수는 특정 대학이 아니라 특정 학과이기에 가능한 교육 콘텐츠, 변화된 사회와 산업계 트랜드를 반영한 강의를 개발하고 지역사회와 협력하여 실행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교수들이 꾸준히 전공을 연구하고, 트랜드에 맞게 교육과정과 교과목을 개발하고, 재교육을 받는 등의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학생들의 역량을 개발하기 위한 활동이 다른 모든 활동보다 우선해야 한다. 인풋(입학 성적)보다 아웃풋(학업 성취도)이 우수한 학과, 교육과정에 대한 학습자 만족도가 높은 학과를 만들기 위해 우직하게 노력하다보면, 언젠가는 대학 서열주의, 수도권 중심주의에 서서히 균열이 날 것이라고 믿으며 말이다. 한 사람의 힘은 미약하다. 그러나 공동체의 힘은 미약하지 않다. 필자는 대학의 모든 교수가 대학교육 혁신을 위해 노력한다면, 대학 서열주의, 수도권 중심주의에 충분히 균열을 낼 수 있다고 믿는다. 

 

 

이정기 동명대 미디어대학 광고홍보학과 교수

2014년부터 4년간 한양대 교수학습지원센터 책임연구원(연구교수)으로 교수법, 교육커뮤니케이션을 연구했고, 2018년부터 동명대 광고홍보학과에서 미디어 관련 교과목을 강의하고 있다. 2021년과 2022년 연속으로 수업평가 우수교수상을 받았고, 2019년부터 2021년까지 4번의 강의개선 노트 우수교수상을 받았다. 128편의 논문과 『온라인 대학 교육』, 『대학교육 혁신과 교육 커뮤니케이션』 3부작을 비롯한 26권의 학술저서를 집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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