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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 선, 펜: 전쟁과 헌법, 그리고 근대 세계의 형성
총, 선, 펜: 전쟁과 헌법, 그리고 근대 세계의 형성
  • 김재호
  • 승인 2023.08.10 14: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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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_『총, 선, 펜』 린다 콜리 지음 | 김홍옥 옮김 | 에코리브르 | 616쪽

성문 헌법의 출현과 확산을 통해 근대 세계의 부상을 새롭게 논하는 생생하고도 권위 있는 책!

•〈파이낸셜 타임스〉와 〈이코노미스트〉가 뽑은 2021년 ‘올해 최고의 책’
• 헌법주의의 미래에 관한 국제 포럼(International Forum on the Future of Constitutionalism)이 선정한 2021년 ‘올해의 책’
• ‘컨딜 역사상(Cundill History Prize)’ 최종 후보작

대단히 광범위하고 탁월한 독창성을 갖춘 《총, 선, 펜》은 1750년대부터 20세기까지 세계 차원의 성문 헌법 역사를 추적함으로써 기존의 내러티브를 수정하고 헌법 제정과 전쟁 수행 간의 긴밀한 연관성을 파헤친다. 이 과정에서 유명 헌법들을 재평가하고, 그동안 하찮게 여겨졌지만 근대 세계의 부상에 핵심 역할을 담당한 헌법들을 근사하게 되살려낸다.

또한 1755년 선구적 헌법을 제정한 코르시카, 세계 최초로 여성 참정권을 영구히 부여한 태평양의 작은 섬 핏케언 등 그간 소홀히 다룬 지역들을 전면에 내세운다. 그런가 하면 미국 건국의 아버지들이 미국 헌법의 틀을 짜기 수십 년 전에, 계몽적 색채의 나카즈(Nakaz)로 헌법 기술을 실험한 러시아의 예카테리나 여제 같은 뜻하지 않은 인물들의 기여도 부각한다.

성문 헌법은 개별 국가들과 관련해 검토되는 게 일반적이지만, 저자는 헌법이 어떻게 국경을 넘어 1918년경 6개 대륙으로 퍼져나갔으며, 국가뿐 아니라 제국의 부상을 도왔는지에 초점을 맞춘다. 더불어 성문 헌법이 어떻게 법과 정치는 물론 그보다 더 넓은 문화사, 인쇄술과의 관련성, 문학적 창의성, 소설의 부상 등에서 나름의 소임을 다했는지 조망한다.

린다 콜리는 헌법이 어떻게 장대한 혁명을 촉진하고 백인 남성에게 참정권을 부여했을 뿐 아니라, 기나긴 19세기에 걸쳐 토착민을 주변화하고 여성과 유색 인종을 배제하며 토지를 몰수하는 데 사용되었는지 파헤친다. 하지만 그와 더불어 어떻게 유럽 및 미국의 권력에 저항하려는 서구 밖 인물과 활동가들이 헌법이라는 장치를 활용했는지 들여다본다. 저자는 어떻게 1861년 튀니지에서 최초의 근대적 이슬람 헌법이 제정되고 이내 억압당했지만 ‘아랍의 봄’에 영향을 미쳤는지, 어떻게 미국 남북전쟁에 영감을 받은 시에라리온의 아프리카누스 호턴이 서아프리카 자치 국가들을 위한 계획을 고안할 수 있었는지, 또 어떻게 일본의 1889년 메이지 헌법이 인도·중국·오스만의 민족주의자 및 개혁가들에게 서구 헌법주의와 어깨를 겨루는 모범으로 받아들여지게 되었는지 설명한다.

생생한 서술과 멋진 삽화가 돋보이는 《총, 선, 펜》은 세상을 뒤흔든 전쟁·강력한 지도자·선견지명을 지닌 입법가·헌신적인 반역자 들을 내세운 흥미진진한 역사를 통해, 입헌 정부에 대해, 그리고 근대성 개념이 어떻게 발전했는지에 대해 들려준다.

다음은 저자가 직접 밝힌 집필 방향이다.

“그 어떤 단일 서적도, 그리고 분명 그 어떤 단일 저자도 18세기부터 제1차 세계대전 시기까지 해상 및 육상의 국경 지역을 넘나들면서 발생하고 오늘날까지 내내 경계와 정치와 사상의 패턴을 주조하고 있는 엄청난 규모의 헌법적 창의성과 논쟁 그리고 결과물을 본격적으로 다뤄보겠다는 야심을 품기 어려울 것이다. 이와 관련한 전개 과정에는 문서화할 수 있고 문서화해야 하는 수많은 상이한 역사가 존재한다. 나 자신의 전략은 새로운 헌법과 다양한 전쟁 및 폭력 간의 거듭되는 맞물림에 영향을 주고, 그로부터 출현한 일련의 주요 주제와 위기에 초점을 맞추겠다는 것이었다. 개략적인 연대순에 따라 정리되어 있는 본문의 각 장은 이들 주요 주제 및 발화점 가운데 하나를 중심으로 펼쳐진다. 각 장은 특정 장소와 특수한 헌법 제정의 에피소드를 소환하는 방식으로 시작된다. 그리고 문제된 그 주제가 세계의 다른 지역들에 널리 영향을 끼치는 현상을 탐구하는 방향으로 나아간다.”

성문 헌법의 제정 역사를 밝히는 과정은 문명과 전쟁, 민주주의 등 인류의 진화 과정이 담겨 있다. 이미지=픽사베이

모든 나라에 헌법이 있다

청나라 말기의 사상가 캉유웨이(康有爲)가 변화의 기운을 감지한 것은 이스탄불에서였다. 예순 살의 철학자이자 개혁가로 고국 중국에서 추방당해 방랑자 신세이던 그는 1908년 여름 오스만 제국의 심장부에서 혼란의 한복판에 놓였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러시아와 영국이 술탄 압둘하미드 2세의 영토에 속한 마케도니아를 장악했다는 소문이 돌았다. 정부의 무능을 드러내는 징표로 받아들인 일부 오스만 제국 군대가 반란을 일으켰고, 그들은 1876년에 발효했지만 곧바로 철회된 그 제국의 최초 성문 헌법이 복원되길 바랐다. 캉유웨이는 오스만 제국의 반군이 그 헌법의 공식 복원에 성공한 7월 27일 이스탄불에 도착했다. 그는 반군 지도자들이 술탄에게 보낸 최후통첩의 골자에 대해 이렇게 적었다. “그들은 저마다 무릎을 꿇고 고했다. ‘모든 나라에 헌법이 있습니다. 오직 튀르키예만이 그것을 선언해놓고 폐지하는 바람에 국민이 만족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군인들의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오스만 제국의 술탄을 제압하기 위해 반란군이 제기한 주장에 대한 설명이다. 캉유웨이에 따르면, 그들은 그 제국의 일반 병사들 사이에서조차 ‘생각’이 ‘바뀌었다’고 강변했다. 게다가 그들은 훨씬 더 외면하기 힘든 주장을 펼쳤다. 지금, 그러니까 1908년에 “모든 나라에 헌법이 있다”고 역설한 것이다. 18세기 중반 이후 새로운 성문 헌법이 여러 국가와 대륙에 걸쳐 점점 더 빠른 속도로 퍼져나갔고, 이는 다양한 정치적·법적 제도를 형성하고 재편하는 데 영향을 끼쳤다. 아울러 사고, 문화적 관행 그리고 대중의 기대 유형에 혼란을 안겨주고 또한 그것들을 변화시켰다.

성문 헌법에 대한 일반적 이해 또는 오해

성문 헌법은 특정한 법적 제도라는 렌즈를 통해, 그리고 애국심에 비추어 바라보는 게 일반적이다. 따라서 보통 개별 국가와 관련해서만 분석된다. 그것은 육지와 바다의 경계를 점진적으로 넘나드는 전염성 짙은 정치 장르로 간주되어온 기간 동안에는, 대개 전쟁이 아니라 혁명에 따른 결과로 여겨졌다. 특히 성문 헌법의 부상은 미국 독립 혁명을 비롯해 프랑스 혁명, 아이티 혁명, 중앙아메리카와 남아메리카에서 불거진 여러 봉기 등 대규모 혁명이 영향을 미친 결과로 받아들여졌다. 때문에 이 같은 새로운 헌법의 주요 원동력에 대해서는 흔히 선택적 방식의 설명이 이루어지곤 한다. 성문 헌법의 출범과 그에 대한 인기가 증가한 것은 공화주의의 부상 및 군주제의 쇠퇴와 궤를 나란히 하는 현상으로 간주되며, 세계 전역에 걸친 기세등등한 민족 국가의 성장 및 거침없는 민주주의의 진보와 관련된 것으로 여겨지는 것이다.

그러나 주요 혁명, 공화주의, 국가 형성 및 민주주의와 연관된 현상으로 접근하면 논의가 지나치게 협소해지고 잘못된 길로 접어들 수 있다. 1914년 이미 성문 헌법은 전 대륙 차원에서 규범으로 자리 잡았다. 하지만 남북 아메리카 바깥에서는 당시 대다수 국가가 여전히 군주제를 실시했다. 1914년에 남북 아메리카를 비롯한 그 어느 대륙에서도 완전한 형태의 민주주의 국가는 없다시피 했다.

많은 사회와 민족이 성문 헌법에 투자해온 이유

수 세기에 걸친 그토록 많은 성문 헌법이 수명도 제한적이고, 많은 경우 책임 있는 통치 및 내구적 권리를 보장해주는 장치로서 효과 역시 신통치 않은데, 대체 왜 많은 사회와 민족이 그토록 집요하게 시간·창의성·사고·희망을 종이 및 양피지에 적은 이런 유의 정치적·법적 장치에 투자해온 것일까?

이 책은 대략 수 세기에 걸쳐 일어난 이례적인 변화, 즉 세계 전역의 국가·정치 행위자·평범한 남녀가 반응하고 생각하고 행동하고, 그리고 그들의 신뢰를 표명하는 방식의 이례적 변화를 도해화하는 데 관심이 있다. 저자는 여러 지리적 공간에 걸쳐 단일 문서인 성문 헌법이 눈부시게 발전한 현상을 설명할 때 순차적으로 휩쓸고 간 대규모 전쟁과 침략이 맡은 역할을 강조한다. 이런 유의 텍스트가 급증한 현상은 흔히 민주주의의 부상과 특정한(주로 서구적인) 입헌주의 개념의 매력에 비추어서만 설명되어왔다. 그러나 거듭된 무력적 폭력 사건들의 기여에 초점을 맞추면 좀더 광범위하고 다채로운 견해를 제공하고, 훨씬 폭넓은 지형과 목소리를 담아낼 수 있다. 헌법은 늘 서로 다른 형태를 띠었고, 다양한 목적에 기여했으며, 이게 바로 그것들이 성공하고 지속될 수 있던 중요한 이유이기도 했다.

오늘날에도 헌법은 여전히 영토 확장을 지원하는 장치로서 기여할 수 있다. 따라서 성문 헌법은 국가와 통치자들에게 귀중한 보여주기식이자 발표하기식 기회를 제공해주었다.

헌법을 통한 참정권의 부여와 소외 및 배제

대량으로 만들어지는 새로운 헌법은 사실상 그리고 부분적으로 문서상의 거래로 기능했다. 한 국가의 남성 거주민은 높은 세금 그리고/또는 징병을 수락한 대가로 선거권 부여 같은 특정 권리를 제공받았다. 이런 상황은 점점 더 만연해졌다. 남성은 기꺼이 총을 쏘고 선박에서 복무하는 대가로 투표권을 비롯한 여러 권리를 보장받았다. 그리고 이러한 거래는 성문 헌법과 인쇄된 헌법에 의해 약술되고 법제화하고 공포되었다.

1850년 이후 유럽과 아메리카 대륙뿐 아니라 아시아와 아프리카 대륙의 일부 지역에서 정치 체제가 병역을 의무화함과 동시에 그들의 성인 남성 인구 전원(혹은 그 일부)에게, 하지만 오직 남성에게만 선거권을 부여하는 헌법을 발표한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전쟁 수준의 가속화, 또 헌법 확산 간의 긴밀한 연결성이 빚어낸 추가적 결과물이었기 때문이다. 여성이 ‘군사 훈련’을 받을 수 없다는 인식은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했을 때 이 문서들 절대 다수가 적극적 시민권을 부여하는 데에서 여성을 명시적으로 배제하도록 내모는 데 기여했다.

헌법은 민주주의의 열망이나 혁명의 산물이 아니라 전쟁의 잿더미나 침략의 위협에서 생겨났다

혁명이 전쟁보다 더 매력적이고 건설적인 현상이라고 느낄지 모른다. 하지만 이 대대적인 인간 폭력의 두 가지 표현 양식, 즉 혁명과 전쟁 간 이분법은 본디 불안정하며, 1750년 이후에는 더욱 그러했다. 미국 독립 혁명과 프랑스 혁명도, 그에 뒤이은 아이티와 남아메리카에서의 혁명도 하나같이 대륙 간 전쟁이 전개되면서 촉발하고 부채질한 결과였다. 또한 그것들은 훨씬 더 많은 전쟁의 발발에 힘입어 아이디어, 규모, 결과와 관련해 더욱더 큰 변혁을 이루었다. 전쟁은 그 자체로 혁명이 되었을 뿐만 아니라 1776년의 미국 독립선언서 이전에조차 전쟁과 헌법의 창조는 더욱 생생하고도 가시적으로 얽히게 되었다. 그 까닭은 무엇이었을까?

일차적이며 지속적인 원인은 국경을 넘나드는 폭력과 전쟁의 수요 및 강도, 지리적 범위, 빈도가 증가한 데 있다. 1700년 이후 전 세계적으로 대규모 전쟁의 발발과 관련해서 규칙성이 현저히 증가했는데, 이러한 패턴은 20세기 중반까지도 줄곧 이어졌다.

이 같은 전쟁 패턴의 변화가 헌법 제정에 미친 영향은 구조적이었다. 더욱 방대한 규모와 여러 대륙에 걸쳐 확산하는 경향이 있으며, 육군과 해군을 포괄하는 하이브리드 전쟁은 비주류이자 내켜하지 않는 참가자조차 인명과 비용 면에서 커다란 대가를 치르게 하고 국가에 심각한 부담을 안겨주었다. 그 결과 일부 정권은 심각하게 약화하고 불안정해졌으며, 또 다른 정권은 분열하면서 내전과 혁명으로 치달았다. 전쟁이 촉발한 위기로부터 등장한 새로운 정권들은 성문 헌법을 정부 질서를 재정비하고, 논쟁의 여지가 있는 경계를 표시하고 주장하며, 국내 및 국제 무대에서 그들의 위상을 선전하고 피력하기 위한 수단으로 삼았다.

헌법은 수많은 서로 다른 행위 주체가 함께 빚어낸 합작품이다

분쟁과 공격 수위의 확대로 야기된 위험과 파괴 그리고 그에 상당하는 부담은 정치 엘리트들이 점점 더 새로운 헌법으로 마음이 기울도록 만들었으며, 지위가 낮은 사람들을 동요하게끔 이끌고, 때로 그들을 적극적으로 떨쳐 일어서도록 내몰았다. 권력과 권위의 구조에 대해 좀더 비판적으로 논의하고 그것을 감시하려는 분위기가 조성되었다. 이것은 다시 새로운, 혹은 바뀐 헌법에 강화된 권리를 반영하라는 아래로부터의 요구를 촉발했고, 실제로 그렇게 되었다.

같은 이유로 서방 제국의 힘에 노출되어 위태로워진 서방 이외 국가들은 그 자체의 방어적이면서도 독특한 헌법을 실험하기에 이르렀다. 이러한 경향성이 1810년대에 세계 일부 지역에서는 이미 분명해졌다. 그리고 그것은 서방의 정치적·법적 사상이나 대책을 고스란히 본뜬 형태도 아니었다. 서방 강대국의 부상에 압박받는 서방 세계 밖의 몇몇 정치 체제와 토착 민족은 성문 헌법을 채택해 현실에 맞게 수정함으로써 그네들의 정부 체제와 국방 체제가 강화되길 희망했다. 그것은 그들이 얼마든지 생존 가능하며 근대화했다는 것, 따라서 제국의 정복 대상에 적합하지 않다는 것을 널리 알리고 문서상으로 천명할 수 있는 기회를 부여했다.

그러므로 1750년 이후 성문 헌법의 유포 확대를 비단 대서양 지역 세계에서 그 밖의 세계로 거침없이 퍼져나간 자유주의적·민족주의적 사상과 방법론의 단순한 예로 이해해선 곤란하다. 계몽주의에 대한 제바스티안 콘라트(Sebastian Conrad)의 해석에 비추어보면, 이와 같은 상이한 변화(즉 헌법의 전 지구적 확산)는 외려 “수많은 서로 다른 행위 주체가 함께 빚어낸 합작품”이었다. 이 행위 주체들은 대체로 “지정학과 불균등한 권력 분배에 영향을 받는” 이들이었다. 또한 그들의 사상과 행동에 자양분이 되어준 것은 “원대한 희망과 유토피아적 약속”이었다. 하지만 헌법의 옹호자와 저술가들은 거의 언제나 “위협과 폭력”에 의해서도 영향을 받았다.

상이한 장소와 시간에 걸쳐 초안이 작성된 다양한 헌법의 조항과 자구 선택에 세심한 주의를 기울이는 게 중요한데, 이것은 오직 그렇게 해야만 그 헌법들에 내포된 수많은 각양각색의 비전과 사상을 알아내고 밝히고 풀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책은 시종일관 본래 여러 상이한 언어로 작성되었으며 6개 대륙의 서로 다른 장소에서 유래한 다채로운 헌법 문서에 크게 의존한다.

인쇄술의 발전이 끼친 영향

미국의 독립 전쟁과 그로부터 출현한 성문 헌법은 많은 사상을 변화시키고 형성하는 데, 그리고 1776년 이전에 일부 유럽 지역에서 부상하던 새로운 정치 기술이 진전을 보이는 데 중요하고도 지속적인 역할을 담당했다. 미국 헌법은 내용과 상황뿐 아니라 인쇄라는 수단을 통한 전파 덕택에 특히 19세기 내내 미국의 독립선언서보다 훨씬 더 광범위한 영향력을 행사했다.

1787년 필라델피아에서 초안을 작성한 헌법은 폭넓은 관심에도, 결코 그에 상당하는 저만의 문서를 창안하려는 해외 활동가나 열혈 지지자들에게 영향을 미친 유일한 요소가 아니었다. 더 많은 나라가 성문 헌법을 채택함에 따라, 그리고 이들 텍스트 가운데 점점 더 많은 것이 인쇄되고 국경을 넘어 널리 출간됨에 따라, 이 같은 정치 기술 형태에 관심을 품은 남성과 여성에게는 더욱더 많은 선택권이 주어졌다. 그들은 널리 복제·번역되는 미국의 텍스트를 연구하고 표절할 수 있었을 뿐 아니라, 점차 기타 여러 곳에서 등장하는 헌법에 대한 정보를 확보하고 그것들을 읽고 슬쩍할 수 있는 위치에 있었다.

세상 물정에 밝은 출판업자들은 1790년대에 이미 이런 추세를 알아차리고는 한 국가의 헌법을 개별적으로 출판하는 대신, 서로 다른 여러 국가에서 생산된 헌법을 한데 묶어 발행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호기심 많은 독자와 장차 헌법을 제정하려는 사람들은 문서상으로 국가를 조직하는 방법에 대해 경쟁적 모델들을 비교·대조할 수 있을 뿐 아니라, 권리와 규칙을 공식화하는 방법에 대한 아이디어도 얻을 수 있었다. 20세기 초에는 실제로 일부 신생 국가 및 정권이 자진해서 이런 유의 각국 헌법 모음집을 출간하는 데 자금을 대주기도 했다.

국제 차원의 독자층을 위해 세계 여러 지역에서 다양한 헌법을 끌어 모아 소개하는 이런 유의 국가 지원 출판물은 그 수효가 꾸준히 증가했다. 이 같은 새로운 형태의 지식 수합과 배포 형태는 1787년 이후 한층 빠르게 부상했다. 급속히 발달한 인쇄술 덕분에 새로운 헌법은 과거에는 상상할 수조차 없던 방식으로 널리 유포되기 시작했다. 이것은 다시 발췌·전용·비교·선택과 관련한 정책 변화를 낳았다. 새로운 헌법 초안의 작성에 참여한 정치인·법률가·지식인·병사들은, 새로운 헌법에 대해 상상하고 싶어 하는 사적 개인들과 더불어, 점점 더 선택하고 혼합할 수 있는 위치에 놓이게 되었다. 그들은 여러 나라가 채택한 헌법의 인쇄물 모음집에 담긴 사상·제도·법률을 연구하고 그 가운데에서 고를 수 있었다. 그리고 그들이 차용하기로 결정한 내용을 그들 자신의 사상, 염원 그리고 법적·정치적 관습과 결합할 수 있었다.

헌법 제정자들

헌법 저술가와 사상가는 우리가 흔히 기대할 법한 그런 존재가 아니다. 이 책에 군주, 정치인, 법조인, 정치 이론가가 자주 등장하는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육군 장교, 해군 장교, 제국 장교들도 과거의 노예, 은행업자, 성직자, 의사, 지식인, 언론인, 온갖 문화계 인사와 더불어 모습을 드러낸다. 저자의 관심은 시간이 가면서, 그리고 지리적 공간에 따라 태도와 전략이 어떻게 변화하는지 추적하고 분석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공식적·성공적 헌법 제정자뿐 아니라, 우려하는 마음에서, 또는 특정한 정치적·지적·사회적 의제를 제기하고자 하는 희망에서, 또는 그저 글쓰기와 문자 언어에 중독되어 이런 유의 문서를 작성하는 데 뛰어든 숱한 개별 행위자에 대해서도 살펴본다.

헌법은 엄밀하게 구획되어 있다. 다시 말해, 헌법은 다른 문학 양식이나 창의성의 산물과는 동떨어져 있고 서로 뚜렷하게 구별되는 범주로 여겨진다. 하지만 러시아의 예카테리나 2세에서 인도 캘커타의 람모한 로이를 거쳐 베네수엘라와 칠레의 안드레스 베요, 타히티의 포마레 2세와 시에라리온의 제임스 아프리카누스 빌 호턴 등 헌법의 초안 작성자, 사상가, 그리고 이 책에 등장하는 그 옹호자들은 다른 문학 및 문화 활동에도 일가견이 있는 인물들이다.

헌법은 오류를 면치 못하는 인간종이 창조한 취약하기 이를 데 없는 창조물이다. 헌법은 그것이 존재하는 모든 곳에서 그저 정치인, 법정 그리고 관련 인구가 그에 대해 생각하고 필요할 때면 개정하고, 그것이 효력을 발휘하도록 만드는 데 지속적인 노력을 기울이는 능력과 의향을 가지는 한도 내에서만 기능한다. 헌법은 천진난만한 장치가 아니며, 지금껏 그랬던 적도 없다. 성문 헌법은 처음 출현했을 때부터, 권력을 제한하는 것뿐 아니라 다양한 권력을 가능케 하는 것과 연관되어 있었다. 그럼에도 저자는 성문 헌법이 여러 가지 유익한 목적에 기여할 수 있다고 믿는다. 헌법은 소설처럼, 어느 장소 및 거기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창조하고 들려준다. 이 문서들은 과거와 마찬가지로 지금도 언제나 그 자체의 의미 이상을 지닐 뿐 아니라 법과 정치의 영역을 뛰어넘는다. 헌법은 재발견 및 재평가되어야 하며, 각각의 경계를 넘나들면서 읽힐 필요가 있다.

김재호 기자 kimyital@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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