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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秘法’에는 책임이 없다
‘秘法’에는 책임이 없다
  • 손화철
  • 승인 2023.08.16 08:0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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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정론_ 손화철 논설위원 / 한동대 교양학부 교수·기술철학

 

손화철 논설위원

몇 년 전 「SKY 캐슬」이라는 드라마가 인기를 끌었다. 사교육 문제를 짚는가 했더니 호러물로 바뀌었다가 마지막에는 공익광고 형태로 훈훈하게 끝났는데, 교육을 둘러싼 우리 사회 부유층의 비뚤어진 욕망을 나름 잘 표현했다.(드라마의 인기가 사교육에 대한 문제의식 때문이었는지 부러움 때문이었는지는 아직도 판단이 서지 않는다.)

드라마에 나오는 ‘입시 코디’는 자신감이 넘친다. “저를 믿으셔야 합니다”라는 대사가 유행어가 되기도 했다. 부모는 아이의 건강이나 챙기면 되고, 성적이나 입시와 관련해서는 모든 것을 믿고 맡겨야 한다. 학생도 자기가 선택하고, 비용도 엄청난데 자세한 걸 알려고 하면 안 된다. 고객이 고개를 숙이고 서비스 제공자에게 복종해야 하는 묘한 상황이다.

이런 상황이 가히 낯설지 않다. 학교 교사는 학부모 민원에 시달리는데 사교육 시장의 강자들은 오히려 큰소리를 친다. 문제는 드라마처럼 진짜 무슨 능력이 있는 사람만 큰소리를 치는 게 아니라는 것이다. 동네 보습 학원에만 가도 내 자식과 상황을 단정하는 누군가가 있고, 그런 단호함이 이상한 신뢰를 형성한다.

가장 기본은 부모가 꼭 듣고 싶어 하는 이야기, 욕망의 뿌리를 건드리는 것이다. 지금은 성적이 조금 낮지만 좋은 대학에 갈 가능성이 있으며, 자신에게는 그것을 성취할 비법이 있다. 그럴듯한 방법론도 소개하지만 자세한 내용은 당연히 비밀이다. 저를 믿으셔야 합니다.

부모는 지갑을 열 준비가 되어 있다. 내 아이는 공부에 흥미가 없고 진학의 중요성을 모르지만, 이 학원 선생은 내가 생각하는 아이의 필요를 정확히 안다. 나는 아이를 설득할 능력도, 데리고 앉아 가르칠 용의도 없지만, 그 일을 마술처럼 해결해 준다면 비용이 문제가 아니다.

만약 학원 선생이 “예습과 복습을 중심으로 규칙적으로 공부를 하면 성적이 오를 겁니다. 대학은 성적과 적성에 맞춰 가면 되고요”라고 말하면 어떻게 될까? 공자님에게 자식 과외를 맡길 부모는 없다. 차라리 표창장을 만들거나 짜깁기 논문을 대신 써 주는 능력자를 찾을 일이다. 결과만 그럴듯하면 되지 과정이 무슨 문제란 말인가?

다소 답답한 이야기를 길게 하는 이유는, 자식 교육만이 아니라 국가 정책도 개인의 주식 투자도 대학 교육도 왠지 족집게 선생 찾는 식으로 돌아가는 듯해서다. 모든 단위에서 원칙과 규칙을 지키고 차근차근 실력을 쌓기보다 뭔가 한 방에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비법을 거론하는 일이 너무 많다.

점진적인 개선이 아닌 혁신을 바라지만 직접 나서 위험을 감수하고 싶지는 않을 때가 있다. 바로 SKY 캐슬의 입시 코디가 등장하기 딱 좋은 조건이다. 내가 해 봤다고, 성과가 엄청났다고 말하면서 가려운 곳만 탁탁 긁어주는 사람, 구체적이거나 명확하지는 않은 자신만의 비법을 너무나 당당하게 자랑하는 사람을 찾아야 한다.

해외 석학이 던지는 키워드 한 마디, 어디선가 성공했다는 우수 사례 한 가지가 맥락도 없이 날아와 국가사업이 되고, 성공했다는 유튜브 ‘선생님’을 따라 묻지마 투자가 횡횡하며, 외국 대학 흉내 내기가 혁신으로 둔갑한다. 그러나 비법을 말하는 자의 특징을 기억해야 한다. 그들은 나의 실패, 혹은 내 결정에 매달린 이들의 손해를 책임지지 않는다. 사실 그게 그들의 진짜 비법이다.

손화철 논설위원 
한동대 교양학부 교수·기술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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