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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악의 가능성’이 뒤섞인 세계...사회관계적 정치신학의 분투
‘선악의 가능성’이 뒤섞인 세계...사회관계적 정치신학의 분투
  • 김흥현
  • 승인 2023.08.11 14:5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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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으로 책 너머를 읽다_『신·인간·정치: 자유와 연대를 위한 신학적 제언』 이용주 지음 | 동연 | 568쪽

삼위일체 창조자의 대리인으로서 인간은 선과 악의 능력(가능성)이라는 자유로
이 땅에서 자유와 연대라는 사랑의 정치적 행위, 교회적 삶을 실현해야 한다.

신학의 알파와 오메가는 자유이다

본서는 저자인 이용주 교수(숭실대학교 인문대학 기독교학과 조직신학)가 지난 2009년부터 2021년에 걸쳐 발표한 논문들을 취합하여 엮은 모음집이다. 저자는 독일 괴팅엔 대학에서 프리드리히 빌헤름 요세프 셸링(Friedrich Wilhelm Joseph Schelling, 1775-1854)의 자유론 등을 연구했다. 본서는 이 셀링의 철학과 저자의 신학을 융합학문적으로 검토하여 오늘날 사회에서 정치신학의 자리를 되새긴다. 

본서의 저자는 머리말에서 자신의 ‘신학함(Doing Theology)’의 궁극적 주제를 다음과 같은 명제로 명시한다. “신학의 알파와 오메가는 자유이다.”(5쪽). 이 명제는 셀링 철학에서 차용하여 저자가 재서술한 문장이다. 저자는 이 ‘자유’의 철학적 관점과 신학적 행동을 자신의 논지로 잘 엮어 때로는 명시적으로, 때로는 함의적으로 각 논문에 일관되게 적용한다.   

이 책의 핵심 논지는 다음 몇 개의 연속된 문장으로 정리할 수 있다: (1) 신학은 인간을 자유롭게 하는 신의 자유로운 은총이 삼위일체적 활동이라는 것을 합리적으로 진술하여야 한다. (2) 이런 사회적 삼위일체 신학에 근거해 교회는 이 세상에서 ‘인간’이 자유로운 삶을 실현하도록 돕는 것을 과제로 삼는다. (3) 그 과제는 피조물로서 사람들과 이 세계가 상호 자유로운 친교의 공동체로서 활동하는 것이다. (4) 그 활동은 자유의 종착점으로서 ’사랑과 연대’의 현실화이다. 이 ‘사랑과 연대’는 사회민주주의라는 정치적 공동 삶의 형태로 가시화된다.

이런 중심 논지를 논증하기 위해 저자는 기독교 성서에 견실하게 토대를 두고서 다음과 같은 선행 논의들을 근거로 제시한다. 첫째, 선과 악의 가능성으로서 자유론을 전개한 독일 관념론자 셀링, 둘째, 창조주의적 관점을 삼위일체론에 적용하여 신과 인간과 창조 세계를 탐색한 볼프하르트 판넨베르그(Wolfhart Pannenberg), 셋째, 사회주의적 사상을 신학과 목회에 접목한 아돌프 폰 하르낙(Adolf von Harnack)과 칼 바르트(Karl Barth), 마지막으로 종교개혁자 마틴 루터(Martin Luthe)의 성서 중심 신앙과 실천의 관계로부터 시작하여 칼 바르트에게 이어진 사회참여적 신학 등이다. 이를 통해 저자는 신학적 사고와 대안이 어우러진 결론을 제시한다. 그것은 신적 ‘자유’를 이 세계에 실현해야 할 ‘정치사회 구성체’다. 그것은 철학과 신학의 자유론에 근거한 사회민주주의 정치체제이며, 사회 관계적 교회이다. 

 

경도된 ‘자유론’의 극복과 ‘신-인간-정치’의 정치 사회적 교회론

저자는 책 전반에 걸쳐 철학과 신학의 상호 관계를 깊이 탐색한다. 특히 독일이라는 특수한 국가 상황에서 발생한 신학자들의 분투를 깊이 탐구한다. 이런 저자의  수고로 본서는 특히 오늘날 한국교회가 가진 교회론에 대한 기본 의식을 전환시킨다. 무엇보다 저자는 그동안 한국교회 신앙이 이 세계의 다양한 현실에 대해 스스로 부정하거나 왜곡된 의식으로 일관함으로써 ‘부정과 두려움’을 자초했다는 사실을 신학적 관점에서 적확하게 짚는다. 이를 토대로 저자는 교회(와 신앙인)가 세계 밖이 아니라 세계 안으로 직접 들어와 인간과 함께 활동하는 기독교-하나님의 자유를 생동감있게 체감하도록 추동한다. 그리하여 교회(와 신앙인)를 그 ‘막연한 두려움’으로부터 벗어나게한다. 그리고 마침내 자유로운 신앙인(인간)으로써 이 세상과 기꺼이 대화하고 섬기는 본연의 모습을 되찾도록 안내한다. 저자의 이런 주장은 일련의 교회 정치의식에 성숙한 신학적 토대를 제공하고 싶다는 동기로부터 시작한다. 이런 맥락에서 저자는 철학과 신학의 ‘자유론’에 근거한 정치 사회적 교회론을 제안한 것이다. 그리스도인 개인에게, 또는 목회 현장에서 이 세계에 실현 가능한 실제적 행동을 모색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인식했기 때문이다.  

이런 동기가 적극 반영된 본서는 4부 15개 장으로 구성되었다. 각 장은 ‘저자의 관점이 드러날 수 있는 방식으로’(6쪽) 재수집, 배열했다. 여기서 저자가 말하는 자신의 ‘관점’이란 ‘자유가 신학의 출발점이자 목표’라는 것이다. 실제로 독자는 1장부터 15장까지 ‘자유’로부터 시작하여 ‘자유’로 마무리된다는 것을 읽을 수 있다. 앞서 말한 대로, 저자가 천착하는 ‘자유’ 개념은 셀링의 ‘자유론’에서 출발한다. 그리고 그 마지막 주제는 삼위일체적 창조자와 유비되는 신-인간-세계의 ‘연대’로서 사회적 삼위일체를 반영한 사회적 민주주의다. 독자들은 이 15개의 장을 하나씩 읽어나가는 것이 좋다. 앞의 주장을 디딤돌 삼아 다음 주장을 축적해 나가면 현실 교회의 정치 신학적 최종지향점에 다다를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은 ‘자유의 실현’이다.

독일의 철학자인 프리드리히 빌헬름 요제프 폰 셸링(Friedrich Wilhelm Joseph Schelling, 1775-1854)은 독일 관념론의 완성자로 불린다. 사진=위키피디아

 

‘자유’에 대한 철학과 신학의 조화로운 글쓰기와 글읽기

본서의 서술 특징은 저자의 글쓰기 전략에서 찾을 수 있다. 저자는 자신의 각 소논문을 일정한 서술 형식을 따라 일관되게 구성한다. 일단 각 논문에서 해당 주제에 대한 자기 논지를 먼저 명확하게 밝힌다. 이어서 그 논지를 입증하기 위한 논거들을 변증법적으로 제시한다. 즉 해당 주제를 요약하고 그에 반대되는 주장, 그리고 그 주장들에 대한 비판적 평가를 제안한다. 마지막으로 해당 주제를 요약하며 결론짓는다. 이와 함께 그 주제가 가진 함의와 한계를 제시한다. 본서의 주제가 생소한 독자라도 저자가 제시하는 다양한 자료들과 주장들을 느슨하게라도 천천히 따라가다 보면 그 핵심 논지를 이해하는 데 큰 어려움은 없을 것이다. 

본서를 효율적으로 이해하기 위한 독서방식도 가능하다. 만약 저자가 주장하는 자유에 근거한 사회적 교회라는 주제를 집중적으로 이해하고 싶다면 이 책의 서론격인 “1부(1-4장) 셀링과 신학”부터 세밀하게 읽는 것이 유익하다. 다만 1부의 제목이 “셀링‘과’ 신학”이라는 것을 유의해야 한다. ‘셀링의 신학’이 아니다. 셀링은 신학으로 출발했다. 하지만 그의 학문적 경향은 점차로 독일 관념론 철학으로 기울어졌다. 셀링은 결과적으로 철학의 틀 안에서 지엽적으로 신학을 이해하려했던 것이다. 따라서 본서에서 천착한 셀링의 ‘자유론’ 역시 철학이라는 큰 틀에서 신학적 개념을 포괄한다. 셀링과 달리 저자의 관심은 철학의 자유가 아니라 신학의 자유로 그 중심이 옮겨진다. 이 점이 독자들에게, 특히 한국교회 목회자들에게는 낯설다. 셸링이라는 학자도 그렇지만 저자가 시도한 철학적 신학이라는 서술 방식도 쉽지 않다. 하지만 저자의 조직신학적 탁견과 치밀한 서술 덕분에 이런 낯섦은 단숨에 불식된다. 

실제로 셸링은 한국의 신학 영역에는 잘 언급되지 않았다. 국내 철학 분야에서야 어느 정도 그 입지가 명확하게 보이지만, 신학 영역에서는 셀링의 철학이 여전히 탐구불모지이다. 셸링을 신학 주제로 다루는 신학계의 연구는 거의 찾아볼 수 없다. 그런 점에서 본서의 의의가 있다. 기독교 신학에 근거한 셀링의 철학을 신학과 연계시키는 첫걸음이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후 저자는 지속적으로 셸링의 철학으로부터 신학으로 이행되는 주제를 천착했다. 예를 들어 이 책에 앞서 저자는 셸링과 관련하여 『셸링 Schelling-절대자와 자유를 향한 철학』이라는 책을 출간했다(원제 Friedrich Wilhelm Joseph Schelling, 1996). 또한지난 15년간 저자가 셀링과 관련되어 국내에서 발표한 소논문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선과 악’의 문제를 창조신학적 관점에서 서술함으로써, 악을 가볍게 여기는 교회의 기존 관점을 각성했다. 이것은 적지 않은 학문적 기여라고 할 수 있다. 

이 점을 반영하듯 본서 1부에는 셸링의 철학에서 주장하는 ’자유론‘과 ’악‘의 개념을 신학적으로 적용한 심도 있는 연구들이 다뤄졌다. 이어지는 2부, 3부의 내용과 함께 본서의 제목, 그 구체적인 내용 전개를 반영하면 본서는 다음과 같은 구성틀을 유지한다.  

  1부 자유의 근거로서 신(神)
  2부의 삼위일체 신의 대리자로서 인간(人間)들
  3부, 4부 자유론과 자유주의 신학의 결실로서 사회민주주의라는 정치체제(政治體制)
  
이처럼 본서는 신과 인간, 그리고 이 두 대상의 관계를 반영한 사회적 정치제체를 잘 보여준다. 다시 말해 ‘선과 악의 능력’으로서 자유를 가진 인간은 삼위일체 창조의 신의 대리자로 이 세계에서 사랑과 연대를 토대로 자신과 타인의 삶을 자유하게 하는 교회의 삶을 실현해야 한다는 주제가 심도있게 논의된다. 

이용주 숭실대 교수(기독교학과)는 교회(와 신앙인)가 세계 밖이 아니라 세계 안으로 직접 들어와 인간과 함께 활동하는 기독교-하나님의 자유를 생동감있게 체감하도록 추동한다. 사진=픽사베이

 

신, 인간, 정치라는 세 요소가 유기적 연결

본서는 신과 인간, 정치라는 세 요소를 유기적으로 다룬다. 저자가 책 제목에서 밝힌 것처럼 『신·인간·정치-자유와 연대를 위한 신학적 제언』은 이 세 요소가 유기적으로 연계되어 있다는 것을 시사한다. 다시 말해 이 제목은 인간과 이 세계 안에서 실현되어야 할 궁극적인 ‘신앙-삶’(신앙과 삶의 일치)인 ‘자유’와 ‘연대’의 실체가 ‘정치’라는 항목에서 명확하게 드러난다는 것을 예시한다.

우선 큰 틀에서 본서는 셸링의 『자유론』과 ‘악’의 개념을 창조신학과 연계하여 ‘신(神)’을 논하는 것으로 시작한다(1부 1장). 이어 논의를 심화 확대하여 그리스도인으로서 당연히 지향해야 할 삶의 문제를 ‘정치’와 연계한 삼위일체 신론을 다루면서 그 정치 영역의 한 대안으로 사회민주주의라는 정치체제를 제시하는 것으로 마무리된다(4부 15장). 즉 본서는 전반적으로 창조신학적 관점에서 발원한 신(神)  이해가 사회민주주의라는 구체적인 정치체제로 가시화되는 것으로 집약된다. 이 처음과 마무리 주장 사이를 연결하는 주제가 있다. 바로 창조신학적 관점에서 이해한 ‘인간’에 대한 논의다(2부 창조와 인간 특히 6, 7, 8장). 주목할 것은 이 단락에서 저자는 창조신학의 인간 이해만 아니라 현대 사회의 관점에서 새롭게 제시되는 ‘트랜스/포스트 휴머니즘’에 근거한 인간 이해를 비판적으로 성찰한다는 점이다. 하지만 한국 교회 상황에서는 쉽게 동의하지 않을 주제도 있다. “3부 자유주의 신학”이다.

그러나 오히려 이 책의 특장(特長)은 바로 이 ‘3부 자유주의 신학’이다. 저자는  ‘자유주의 신학’이 오히려 ‘자유의 확장이라는 근대적인 사회 변화를 거부하지 않으면서도 복음의 정신에 기초하여 추동하고자’(8쪽)했던 결실이라고 주장한다. 이 ‘자유주의 신학’은 ‘하나님의 자유에 기초해서 인간의 자유를 근거 짓는 것이 신학의 결정적인 과제라는 사실’을 인식하는 신학의 태도이다. 이런 관점은 한국 교회가 무비판적으로 배척하고 거부한 ‘이른 바 자유주의 신학’에 대한 오해를 극복한다. 동시에 ‘자유주의 신학에 대한 긍정적 관점’을 제고하도록 돕는다. 이처럼 ‘자유주의 신학’을 천착한 3부의 세 개의 논문은 ‘자유’에 대한 철학적 신학적 담론(1-2부)이 실제 사회민주주의 정치 체제라는 인간의 삶의 자리(4부)로 이행하는 연결고리 역할을 효과적으로 수행한다. 특히 독자들은 ‘3부의 11장 바르트 신학에 대한 자유주의신학적 해석-렌토르프를 중심으로’를 탐독한다면 저자의 주된 관점을 충분히 수긍할 수 있을 것이다. 

한편 본서의 의의는 학문 융합적 서술에서 찾을 수 있다. 첫째, 철학적 관점에 근거하여 신학적 주제를 논증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면서 동시에 신학적 관점이 철학적 주제를 상기시켜준다. 둘째, 조직신학적 관점과 성서신학적 주제가 연동되고, 성서신학적 관점이 조직신학적 주제와 호응한다는 것을 잘 보여준다. 셋째, 조직신학과 성서신학, 더 나아가 철학적 주제로서 자유가 교회를 위한 신학의 주제로 조화롭게 기여한다. 넷째, 악의 문제를 신의 관점과 연계하여 정치사회 관점으로 해석한다.(이 내용을 읽는 것만으로도 이 책의 가치를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특히 “4장 악의 문제와 신-셸링의 『자유론』을 중심으로”). 다섯째, 철학과 신학이 융합된 현실참여적 논의는 교회의 정치신학적 태도를 긍정적으로 향도한다는 점이다. 정리하면, 본서는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무비판적 보수화로만 경도된 사회와 교회를 경각한다. 무엇보다 ‘사회민주주의’와 같은 정치 사회적 체제의 모색이나 창조 세계에서 선과 악의 공존 문제 등에 대한 진일보한 탐구를 통해 현실 정치와 교회가 ‘자유’의 주제를 결코 경시해서는 안된다는 것을 일깨운다.   

다만, 본서가 다룬 주제들이 대체로 독일을 중심으로 수집된 자료라는 점은 아쉽다. 개인적으로 미국의 자유 논의에 대한 서술이 빠져있고 후기식민주의해석학에 근거한 제3세계의 철학과 신학의 ‘자유론’을 다뤘으면 좋았게다는 생각이 든다. 이런 아쉬움에도 불구하고, 본서는 향후 신학과 인문학의 조화로운 관점을 토대로 ‘사회민주주의’와 같은 정치 사회 체제를 모색하도록 학문적으로 자극한다. 또한 히브리 성경에서 주목한 창조 세계에서 선과 악의 공존 문제 등에 대한 진일보한 탐구를 선도하여 사회 관계적 교회론과 관련한 후속연구들을 기대하게 만든다. 무엇보다 한국 교회 상황에서 바르트 신학을 추앙하는 목회자들이라면 오랫동안 경시되어온 그의 자유주의 신학을 재검토하고 그 목회적 장점을 새롭게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문득, 책의 표제에 『신, 인간, 정 치』라고 ‘정 치’가 띄어쓰기 된 것에 어떤 의도가 있는지 궁금해진다.    

 

 

 김흥현
한국성서학연구소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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