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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톤의 저주를 넘어서야
플라톤의 저주를 넘어서야
  • 양준모
  • 승인 2023.08.22 08:5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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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정론_ 양준모 논설위원 / 연세대 미래캠퍼스 경제학과 교수

 

양준모 논설위원

플라톤과 같은 지식인은 자신만이 썩어가는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들은 자신에게 통제권만 맡겨주면 마치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을 것으로 믿는다. 이러한 사고방식이 인류의 역사에 수많은 비극을 남겼다. 마르크스와 같은 공산주의자들은 지식인 내면에 있는 통제 의식을 현실적으로 구현해 냈다. 이들의 통제는 나라가 망할 때까지도 변하지 않았다. 

어렸을 때부터 육아 발달 단계에 따라 국가가 교육을 통제하고 일사불란하게 공교육을 받아야 한다는 생각도 플라톤이 원조다. 공산주의 국가와 나치가 교육의 국가 통제를 강화한 것도 이러한 사고방식에 나온다. 유럽 대학의 몰락과 미국 대학의 부상은 우연히 일어난 일이 아니었다.

가재, 붕어, 개구리라는 신분적 차별을 정당화하고 이에 따라 교육받아야 한다는 생각도 플라톤에서 유래했다. 이러한 주장은 과대망상의 발로이며 사람들이 자신의 앞가림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을 간과한 사고방식이다.

대학 교육의 문제도 자아도취적 지식인들의 통제로 시작됐다. 1895년 시작된 한반도의 근대교육도 규제 속에서 길들어져 왔고, 대한민국 건국 이후에 출범한 대학도 철저하게 관리됐다. 자유롭게 설립되고 발전했던 서구의 대학이 다양한 사고의 개발과 과학적 발명을 제공할 때, 우리 대학은 통제의 그늘 속에 안주했다. 대학의 발전을 원한다면 우리 스스로 플라톤의 저주에서 벗어나야 한다.

교육 제도를 선도하는 학자와 지식인은 자신이 생각한 제도를 플라톤의 이데아와 같이 절대적인 것으로 믿고 모든 대학에 적용하려 했다. 대학 개혁이라는 이름으로 벌어졌던 그동안의 정책이 실패한 가장 중요한 이유이기도 하다. 대학도 이에 적응하여 대학의 발전보다는 정부의 정책에 호응하여 재정지원을 받는 데에 익숙해져 있다. 결과적으로 진정한 교육 발전은 무시됐고, 재정만 낭비됐다.

대학의 균형발전을 주장하는 사람들도 플라톤의 저주에 빠져 있긴 마찬가지다. 이들은 국립대학의 위상이 계속 떨어지고, 수도권과 비수도권 대학과의 격차가 계속된다고 주장한다. 이들의 해결책은 정부의 적극적인 개입이다. 

지금까지 만들어진 지역 대학 특성화 사업만도 부지기수다. 대학을 모르는 정부가 대학 정책을 좌지우지해서 대학을 발전시킬 수 없다는 것은 자명하지만 지식인의 초현실적 지배 의식은 사라지지 않는다. 이들에게 수도권 대학들이 어떤 노력을 했는지는 의미가 없다. 이들은 정부가 지원하지 않으면 움직이지 않는다.

정부의 일관된 규제로 학과와 정원, 등록금이 통제되고 대학의 특성이 없어지면 어떤 정책을 쓰더라도 대학은 서열화된다. 천편일률적인 교과과정으로 특성이 생겨날 수 없다. 공교육을 강화할수록 교육의 질은 떨어지고, 실질적으로 사람들의 사교육 수요는 증가하기 마련이다. 대학 입학을 위한 입시학원만이 문제가 아니라 다른 나라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수많은 취업준비학원이 존재한다는 점도 문제다.

훌륭한 대학은 학생들이 가진 잠재력을 최대한 높일 수 있는 대학이다. 유명한 대학은 대학의 연구진이 세계적인 연구 성과를 내는 대학이다. 두 가지 모두 정부의 통제와는 관련이 없는 우리 대학 구성원의 몫이다. 대학 발전의 본질은 자유고, 발전의 원동력은 책임감이다. 플라톤의 사고를 극복하고 대학 스스로 발전할 수 있는 환경이 절실하다.

양준모 논설위원
연세대 미래캠퍼스 경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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