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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탈하는 인간’ 차별·구분에 예술적으로 저항하라
‘강탈하는 인간’ 차별·구분에 예술적으로 저항하라
  • 박설호
  • 승인 2023.09.12 09:2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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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가 말하다_『서양 유토피아의 흐름 5: 보위에로부터 피어시까지: 20세기 중엽 - 현재』 박설호 지음 | 울력 | 356쪽

‘환경·평화·여성’ 운동의 공동체 유토피아
노조 운동의 정착과 생태 공동체 활성화

인간의 크고 작은 갈망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은 바람직한 사회를 만들려는 꿈이다. 이러한 갈망은 고대에서 현대까지 연속적으로 이어졌다. 흔히 토머스 모어의 『유토피아』를 유토피아 연구의 효시라고 하지만, 이전에도 사회 유토피아의 갈망은 엄연히 존재했다. 2019년부터 4년 동안 간행된 『서양 유토피아의 흐름』(5권)은 고대에서 현대에 이르는 사회 유토피아의 사고를 추적한 학제적 연구 결과물이다.

지면 관계상 『서양 유토피아의 흐름』 제5권만을 언급하려고 한다. 이 책에서 논의되는 작품은 다음과 같다. 스키너의 『월든 투』, 망드라의 『시골 유토피아의 나라로의 여행』, 르 귄의 『빼앗긴 자들. 어떤 모호한 유토피아』, 피어시의 페미니즘 유토피아 그리고 칼렌바크의 『에코토피아』 등. 그런데 어떻게 하면 훼손된 지구를 되살리고 “물구나무선 먹이 피라미드”를 복원할 수 있을까? 이러한 물음은 생태주의 유토피아를 태동하게 하는 결정적 계기로 작용한다. 

필자는 20세기 중엽부터 출현한 세 가지 운동을 다음과 같이 요약했다. 첫째, 국가 이기주의를 파기하면서, 자치‧자활‧자생을 추구하는 공동체 운동. 둘째, 전투적·수직적·남성적 폭력을 거부하면서, 평화 공존과 나눔을 실천하는 페미니즘 운동. 셋째, 상부인 하늘로 향하는 종래의 신학적 권위를 의심하면서, 땅의 순환과 토양의 보존을 강조하는 환경 운동. 이러한 세 가지 운동은 결국 생태 공동체 운동으로 집약되고 있다.

현대인은 합리성을 바탕으로 자연과학 기술을 발전시켜 왔는데, 전쟁, 사회 경제적 불평등 그리고 기후 위기와 직면하게 됐다. 이러한 제반 문제는 무엇보다도 (독점) 자본주의, 남성적 국가적 폭력, 그리고 계층 사이에 뿌리내린 이기주의에서 파생된 것이다. 이러한 문제점은 무엇보다도 자본주의의 병리 현상으로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이것은 최소한 두 가지 운동을 통해서 어느 정도의 범위 내에서 치료될 수 있다. 그 하나는 전 지구적으로 노조 운동이 지속적으로 정착되는 일이며, 다른 하나는 생태 공동체를 활성화하는 과업일 것이다. 노동조합 운동이 궁극적으로 자본주의의 취약점인 빈부 차이를 약간 줄여나가게 하는 마이신(항생제)으로 작용한다면, 생태 공동체 운동은 기후 변화와 환경 문제에 대한 작은 규모지만, 유효한 대안이 될 수 있다.

생태 공동체 운동이 추구하는 방향은 두 가지 사항으로 요약될 수 있다. 첫째, 자연과학의 실증주의라는 단선적 사고는 수미일관 비판돼야 한다. 경쟁, 무한대의 이익추구, 엘리트주의, 자연파괴 그리고 기술만능주의 등은 실증주의라는 가시적 사고에서 태동해 자라난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협동, 절제, 평등 그리고 상생 등은 전 지구적으로 생태적 사고의 토대로 정립돼야 한다. 둘째, 자본주의 구조 속에서 “강탈하는 인간(Homo rapiens)”은 생태 공동체 운동을 통해서 달리 거듭나야 한다. 지금까지 국가는 “나누어라 그리고 지배하라“라는 정치적 강령으로 각 개인을 다스려 왔다. 그래서 권력은 개인을 계급, 종교, 정당, 국적, 인종, 성, 나이 등으로 구분하고 차별화할 수 있었다. 이와 관련하여 페미니즘 운동은 인간에 이러한 일곱 가지 차별과 구분에 저항하면서, 인간과 비인간이 상생하는 방향으로 나아갈 필요가 있다. 인류세의 인간은 이윤이 아닌, 필요에 의한 생산과 절제된 소비를 실천하고, 바람직한 생태 친화적인 삶을 예술적으로 선취해나가야 한다.

이 책은 21세기에 출현한 문학 유토피아를 의도적으로 배제했다. 왜냐하면 생태주의 유토피아의 전 지구적 실천은 현재 진행 중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연구 방향은 차제에 신유물론의 이론적 접근과 함께 연속적으로 이어지게 될 것이다. 

『서양 유토피아의 흐름』은 동양을 일차적으로 소홀히 한 연구서다. 후학들이 동양 사상과 한국 철학과 결부된 유토피아의 특징을 이론적으로 정립함으로써 이 책의 결함을 보충해 주기를 바란다.

 

 

 

박설호 
한신대 명예교수·독일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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