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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시대를 넘어 지역시대로
지방시대를 넘어 지역시대로
  • 김경화
  • 승인 2023.09.18 08:2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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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깍발이_ 김경화 편집기획위원 / 동의과학대 경찰경호행정과 교수·기획처장

 

김경화 편집기획위원

요즘 관념이나 용어의 잘못된 사용을 알고 적잖이 당황하거나 참으로 신중해야 하겠다고 느끼는 경우가 종종 있다. 특히 강의 중 학생들에게 효과적인 학습을 위해 전제가 되는 용어, 개념 등에 대해 질문을 던지고 토의를 할 때 이런 일이 제법 발생한다. 질문은 누구나 알고 있을 듯 하지만 모호함이 있는 내용을 선택한다. 

예를 들면, 대한민국의 수도는 어디인가? 라고 물으면 대부분의 학생들이 당연히 ‘서울’이라고 답한다. 그러면 다시 그 근거는 무엇인가라고 물으면 대개는 우물쭈물하는 경우가 많다. 사실 ‘대한민국의 수도는 서울’이라는 것을 명문으로 규정한 것은 쉽게 찾을 수가 없는데, 이 점을 이해하고자 한다면 20여 년 전의 역사적 사실을 상기하는 것이 도움이 된다.

그것은 2004년 헌법재판소가 내린 ‘신행정수도법 위헌 확인 결정’이다. 헌재는 당시 수도이전을 위한 ‘신행정수도의건설을위한특별조치법’이 헌법에 위반된다고 판시하면서 ‘법실증주의’에 기초한 ‘성문헌법주의’를 고수하지 않고, 수도 서울의 ‘관습헌법론’을 제시했다. 

사실 1982년 제정된 ‘수도권정비계획법’에서 ‘수도권’을 ‘서울특별시와 대통령령이 정하는 그 주변 지역’으로 정의하고 있어 서울특별시를 수도라 보는 근거로 볼 수 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헌법재판소는 “대한민국의 ‘수도(首都)’는 서울특별시”라는 것이 관습 헌법상 명백하다고 판결했다. 

지난 7월 정부는 기존의 국가균형발전위원회와 지방자치분권위원회를 ‘지방시대위원회’로 통합·개편했다. 지방시대 종합계획을 수립하고 각종 균형발전 시책 및 지방분권 과제를 추진하는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다. 그래서 “대한민국 어디서나 살기 좋은 지방시대”를 슬로건으로 내걸었다. 아마도 급격한 인구 유출과 출산율 저하 등에 따른 지역소멸의 위기에 처한 ‘지방’을 위기에서 구하고, 국가균형발전을 추구하겠다는 취지일 것이다.

그런데 ‘지방(地方)’이란 용어는 ‘중앙(中央)’에 대비되는 개념이다. 중앙과 지방! 이 말의 함의를 살펴보면 흥미로운 점이 많다. 중앙은 대표적인 국가행정기관인 행정부·국회·대법원 등을 말한다. 반면에 지방은 지방자치단체를 뜻한다. 그렇다면 ‘수도권’은 ‘중앙’이고, ‘비수도권’은 지방인가? 

또 개념의 혼란이 나타난다. 예를 들면, ‘서울중앙지방법원’, ‘서울중앙지방검찰청’, ‘서울지방변호사회’ 등으로 기관 명칭을 사용하는 것이라든지 ‘서울대학교’가 ‘지방거점국립대’의 하나인 점에서 보면 “서울도 지방이다”라는 사실은 ‘참’이다. 그런데 일반적 통념으로 지방은 흔히 ‘서울’ 내지는 ‘수도권’ 이외 지역을 지칭하는 것처럼 많이 사용된다. 예를 들면 ‘지방도시’는 수도권 이외의 지역의 도시이고, 전국 제2의 도시라는 부산도 ‘지방도시’가 된다. 

대학 교육과 관련해서도 교육부가 시행하는 ‘전문대학 혁신지원사업 Ⅱ유형’은 ‘지방(전문)대학 활성화 사업’이라고 하는데, 여기서 사업 참여 대상 대학은 ‘비수도권’ 대학으로 한정돼 있다. 그래서 ‘비수도권=지방’이라는 등식이 성립되는 것처럼 보인다.

이렇게 구분하는 근거는 ‘지방대학 및 지역균형인재 육성에 관한 법률’ 제2조 1호에 따른 것이다. 여기서 ‘지방대학’은 “「수도권정비계획법」 제2조 제1호에 따른 수도권이 아닌 지역에 소재하는 대학을 말한다.” 그렇다면 지방대학은 ‘비수도권 대학’을 지칭하는 것이고, 여기에 서울이나 인천·경기도 지역의 지방대학은 제외돼 있다. 

결국 엄밀하게 용어의 개념을 정리하면, ‘지방’은 ‘중앙’이라는 제도적 개념에 대비되는 용어인 것이지, ‘수도권’과 대립하는 개념은 아니다. 그런데 이러한 중앙이라는 ‘제도적 개념’을 많은 사람들이 일반적·사회적 통념에 따라 ‘공간적 개념’으로 사용하고 있어서 문제가 된다. 

이러한 오류의 전제는 서울을 지방으로 보지 않고, 중앙으로 혼동하는 ‘관념상의 오류’에 따른 것이다. 예를 들면 대부분의 서울지방 신문이 스스로 지역신문이 아닌 ‘중앙지’라고 지칭하는 것처럼 말이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이러한 ‘지방·지방도시·지방대학’이라는 용어의 혼동과 오·남용은 심각한 구분과 차별의 내재화라는 문제를 초래한다는 것이다.  

‘지방시대!’ 참으로 좋은 말이다. 그러나 그것이 만에 하나 구분과 차별의 함의를 가지고 있다면, 비수도권 또는 지방의 국민에게는 고립과 소외, 상대적 박탈감을 일깨워주는 용어가 아닐까? 한국 사회에서 ‘지방·지방도시·지방대학’이라는 용어가 구분과 차별의 언어라는 측면을 적지 않게 가지고 있고, 이러한 구분과 차별의 내재화가 심화되면 지방에 거주하는 국민은 모멸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 

그리고 개인이 느끼는 모멸감이 사회적으로 집적되면 광범위한 사회적 확산으로 진행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를 낳게 된다. 미셸 푸코는 감옥을 일반인과 달리 “감옥은 감옥 바깥에 있는 사람들로 하여금 자기들은 감옥에 갇혀 있지 않다는 착각을 주기 위한 정치적 공간”으로 정의했다. 마찬가지로 ‘지방’ 혹은 ‘비수도권’이 중앙이나 서울·수도권과 구분되고 차별되는 지역을 지칭하는 것이 되어서는 안된다. 

대한민국 헌법은 제10조에서 규정하고 있는 ‘인간의 존엄과 가치, 행복추구권’의 보장뿐만 아니라 제123조 제2항에서 “국가는 지역 간의 균형있는 발전을 위하여 지역경제를 육성할 의무를 진다”고 하여 균형발전에 대한 국가의 헌법상 책무를 명시하고 있다.

지금 수도권은 전체 국토 대비 11.8%의 면적에 인구와 지역 내 총생산의 절반 이상을 독점하고 있다. 양질의 일자리인 대기업이나 중견기업도 대부분 수도권에 소재하고 있다. 이는 국토의 균형발전에 심각한 상황이 이미 초래돼 있고, 그 비효율과 불평등에 따른 지방분권과 지방자치에 끼치는 폐해도 한계상황에 달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게다가 수도권과 비수도권, 대도시와 중소도시, 도시와 농촌 간 지역불균형과 인프라·서비스 격차는 날로 심화되고 있는 현실이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첫걸음으로 ‘지방’이란 용어를 법적·제도적으로 ‘지역’으로 고쳐서 사용할 것을 제안한다. ‘지역’이라는 용어를 사용함으로써 ‘서울’을 중앙으로 보고 지방은 ‘변두리나  나머지’로 보는 서울 중심, 극단적 일극주의의 시각이나 인식을 극복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앞으로 ‘균형발전’이 일정한 궤도에 오르게 되면 “살고 있는 지역이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기회와 생활의 격차가 생기는 불평등”이 해소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인간의 존엄과 가치, 행복추구권에 대한 국민의 충족감이 상향될 것이다. 그들은 주권자로서 민주공화국의 주인임을 자각하게 될 것이다. 신영복 선생의 저작 『담론』에 나오는 문구가 있다. “돕는다는 것은 비올 때 우산을 들어주는 것이 아니라 함께 비를 맞는 것이다.” 지방 아닌 지역은 이것을 원하고 있다. 

김경화 편집기획위원
동의과학대 경찰경호행정과 교수·기획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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