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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이로움’이 의문 제기하고 탐구 이끈다
‘경이로움’이 의문 제기하고 탐구 이끈다
  • 이한구
  • 승인 2023.10.26 08:0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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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간 인문·철학 잡지 『타우마제인』 창간호를 내며

진리·즐거움을 위한 ‘경이로움’에 대한
우주에서부터 인류세까지 24편의 글

이번에 재단법인 ‘타우마제인’에서 계간 『타우마제인』이라는 대중 인문·철학 잡지를 발간했다. 삶의 의미와 현대문명에 대한 성찰을 추구한다고 취지문에서 밝힌 잡지다.

타우마제인은 인문정신과 철학문화의 창달을 위해 설립된 비영리 재단이다. 오늘의 인류 사회는 문명의 대전환으로 전혀 새로운 시대를 맞이하고 있으며, 현대 문명이 초래한 문제점과 위험도 극대화되고 있다.

인공지능의 발달로 인간과 기계의 경계선이 허물어지고 있고, 모든 영역에서 상호 의존하는 지구촌이 됐다. 이런 상황에서 타우마제인은 인간의 조건과 존재 의미는 무엇이고, 바람직한 인간상과 우리가 추구하는 미래의 문명은 어떤 것인지를 논의하는 집단 지성의 광장이 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타우마제인(Thaumazein)’은 경이로움을 뜻하는 고대 그리스 말로 일상의 세계와는 다른 비범하거나 상상하기 힘든 어떤 것에 직면했을 때 경험하는 신비한 느낌을 뜻한다. 비범하거나 훌륭한 대상을 접할 때 우리는 큰 감동을 받는다. 또한 우리는 이해되지 않는 사태에 부딪쳤을 때 어떻게 해서든 그 사태를 이해해 보려고 노력하게 된다.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가 “철학은 경이로움에서 시작된다”라고 주장한 것도 바로 이런 상황을 가리킨 것이다. 독일의 계몽주의 철학자 임마누엘 칸트가 가장 놀랍고 신비로운 것은 ‘별이 빛나는 밤하늘과 내 가슴 속 양심’이라고 말한 바로 그 경이로움이다. 그러므로 경이로움은 감탄이면서 동시에 의문이다. 감탄부호이면서 물음표이다.

이번에 출간된 『타우마제인』 창간호에는 자연 세계와 문명 세계의 경이로운 존재들을 주제로 24 편의 글이 실렸다. 무엇보다 자연세계는 경이 그 자체이다. 이 책에서 소개하는 우주에 존재하는 아름답고 신비한 천체의 다양한 모습은 놀라움을 넘어 황홀하기도 하다. 우주 속의 오아시스인 지구 역시 평범하지 않다. 물은 태양계의 다른 행성에도 존재하지만, 물이 표면을 덮고 있는 행성은 지구뿐이다. 이 물로부터 생명이 탄생하여 수천만 종의 생물이 지구에 살고 있다. 단순하면서도 아름다운 생명의 설계도인 유전자, 태양 에너지를 실용 에너지로 만드는 식물의 광합성 작용, 눈의 진화, 호모사피엔스의 출현 등 신비롭지 않은 것이 없다.

문명 세계는 인류가 만든 세계다. 자연 세계의 일부에 불과하지만 경이로운 현상이기는 마찬가지이다. 농업혁명이 왜 ‘문명을 향한 위대한 도박’이라 평가되는지에 대한 성찰을 시작으로, 현실을 넘어 추상의 영역을 연 ‘0’의 발명·산업혁명·과학혁명·정치혁명·정보혁명 등 역사를 전진시킨 여러 혁명들의 성공에 대한 성찰을 통해 인류의 경이로운 노력을 살펴볼 수 있다. 그리고 세계사의 변방에서 힘들게 생존해온 한민족의 한글 창제와 대한민국의 근대화 성공은 최고로 경이로운 사건이라 할 수 있다. 

모든 대상이 똑같은 경이로움을 야기하지는 않는다. 같은 대상이라도 상황에 따라 경이로움은 달라질 수 있다. 시대와 장소에 따라 경이로움의 대상이 달라지는 것은 그런 이유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공을 넘어 경이롭다고 할 만한 현상들은 많다. 이 책에 실린 24편이 바로 그러한 경이로움이라 할 수 있다. 

어떤 충격을 받았을 때 우리는 세상을 다시 보게 된다. 가까운 사람과 사별하게 되었을 때, 고치기 어려운 병을 진단받았을 때, 믿었던 사람으로부터 배신당했을 때, 우리는 큰 충격을 받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그 충격으로 인해 세상을 다르게 보게 된다. 어떤 종교나 사상에 접했을 때나, 어떤 작품을 읽고 깊은 감동을 받았을 때도, 우리는 가끔 감겨 있던 눈을 뜨게 된다.

알면 알수록 세상은 경이로움으로 가득 차 있다. 단지 우리가 알아차리지 못할 뿐이다. 경이로움이 상실되면 탐구는 더 이상 진전되지 못한다. 의문이나 문제가 제기되지 않기 때문이다. 또한 경이로움이 사라지면 진정한 즐거움도 함께 소멸한다. 우리가 경이로움에 눈떠야 하는 것은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다. 

의미 있는 삶은 경이로움과 함께, 경이로움에 의해, 경이로움을 바탕으로 사는 삶임을 『타우마제인』은 밝히고 있다.

 

 

이한구
경희대 석좌교수·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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