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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는 사유는 아름다운 고통”...영원으로 도약하라
“걷는 사유는 아름다운 고통”...영원으로 도약하라
  • 김재호
  • 승인 2023.10.21 18:0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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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단 피악 인문학적 성찰시리즈 ‘햄릿, 걷는 인간’ 내일 22일 막 내려

“강렬하고 비통하며, 매혹적이다!” 극단 피악(P.I.A.C: Performing Image Art Center)의 열여섯 번째 인문학적 성찰시리즈 ‘햄릿, 걷는 인간’이 내일 22일 동국대학교서울캠퍼스이해랑예술극장에서 막을 내린다. 어떤 이는 모든 인문학이 셰익스피어의 『햄릿』(1599∼1601)으로 귀결된다고 한 바 있다. 그만큼 ‘죽느냐 사느냐’ 혹은 더 나아가 ‘어떻게 사느냐 어떤 삶을 사느냐’는 인간이 가진 가장 고통스러운 질문이다. 한마디로 이번 연극은 “걷는 사유는 영원한 도약으로 향하는 아름다운 고통”인 듯하다. 

오필리아의 임윤비 배우가 연습에서 열연을 펼치는 모습. 사진=극단 피악 인스타그램
영국의 화가 존 에버렛 밀레이이 그린 오필리아의 비극적인 모습이다. 사진=위키피디아  

자신의 아버지를 죽인 자가 숙부 ‘클로디어스’라는 사실, 그 숙부가 자신의 어머니인 ‘거투르트’마저 아내로 삼았다는 배신감, 사랑하는 자신의 어머니가 욕정과 권력을 못 이겨 숙부에게 안겼다는 치욕, ‘오필리아’가 자신 때문에 자살했다는 비극, 이 모든 걸 알고도 왕인 숙부의 지시에 따라 나라를 떠나야 한다는 무력감까지 햄릿의 인생은 고통의 연속이었다. 하지만 햄릿은 비통한 인생의 수레바퀴에 굴복하지 않았다. 계속 걸으려고 했다는 점을 이번 연극은 강조한다. 걷는다는 건 사유한다는 것이고, 사유한다는 건 행동하기 위한 토대가 된다. 거꾸로 걷는다는 건 행동한다는 것이고, 행동한다는 건 사유하기 위한 거름이 된다. 

3시간이 넘는 대작 연극 ‘햄릿, 걷는 인간’를 각색하고 연출한 나진환 성결대 교수(연기예술학과)는 이번 연극을 통해 “당신은 거대한 음모와 부조리가 만들어 내는 절망의 세상에서 어떤 삶의 방식을 취하는가?”라고 질문을 던진다. 특히 나 교수는 다음과 같이 강조한다. “인문학은 걸으면서 사유하는 것이다. 행동하면서 사유하는 것이다.”, “당신의 걸음은 어디를 향하고 있는가? 아니면, 걸을 생각조차 못 하는 인간인가?” 여기서 걸음은 삶의 부조리에 대한 저항이자 도전으로 읽힌다.   

햄릿을 연기한 한윤춘 배우와 임윤비 배우. 사진=극단 피악 인스타그램
걷는 인간 햄릿은 과연 복수에 성공할 수 있을까. 사진=극단 피악 인스타그램

 

21세기 과학과 마주한 햄릿의 운명
모래와 물, 사라짐과 흘러감 연상시켜

이번 연극 ‘햄릿, 걷는 인간’는 내용과 형식 면 모두에서 극찬을 받을 만하다. ‘햄릿, 걷는 인간’ 형식적인 면에서도 전복을 시도했다. 고전적 의미의 햄릿은 21세기로 소환돼 과학(독극물 등 생화학, 총과 서바이벌 게임, 백신을 연상시키는 주사와 하얀 가운 등)과 마주한다. 아울러, 크라이스트(하얀 십자가)와 안티크라이스트(붉은 십자가)는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중첩된다. 특히 모래와 물은 ‘사라짐’과 ‘흘러감’을 연상시키는 소재로 활용돼 눈길을 끌었다. 배우들은 모래 위를 뒹굴고, 물에 잠기는 모습까지 보여줬다. 

배우들의 연기도 압도적이었다. 햄릿을 연기한 한윤춘 배우는 그 긴 대사를 하나도 틀리지 않고 외쳤다. 특히 광대 연기부터 광기에 사로잡힌 고통의 모습까지 여실히 드러냈다. 선왕·클로디어스를 연기한 김 찬 배우는 선왕이 유령이 돼 햄릿 앞에 나타나는 모습을 비통하게 보여줬다. 전율이 느껴질 정도였다. 그의 깡마른 몸과 마치 지옥에 떨어진 영혼과 같은 몸짓은 그 자체만으로 이번 연극의 정수를 선사했다. 거투르드의 리다해 배우와 오필리아의 임윤비 배우는 아름다움에 깃든 서늘함과 고통을 빼어난 연기로 관객들에게 선물했다. 

한 관객은 관람평을 통해 “긴 말 필요 없이, 연극이 계속되어야만 하는 이유 그 자체”라고 극찬했다. 또 다른 관객은 다음과 같이 평을 남겼다. “이 공연은 불편하다. 불편한 연극은 진실을 토해내게 만든다 했던가. 공연을 본 직후 나는 두려움으로 가득 찬 ‘나’의 모습과 마주하게 되었다.”

선왕·클로디어스를 연기한 김 찬 배우. 사진=극단 피악 인스타그램

 

고정된 형성에 대한 ‘도피의 열정’

한편, 최근 읽은 이승우 조선대 교수(문예창작학과)의 『캉탕』(2019, 현대문학)의 첫 문장은 “걷고 보고 쓴다”이다. 이 소설에 따르면, 니체는 하루에 6시간씩 걸었다. 머릿속에서 소용돌이치는 생각들로 괴로웠기 때문이다. 하지만 니체는 걸으면서 그 생각들과 함께 살아갈 수 있었다. 

또한 서른일곱 살로 생을 마감한 시인 랭보는 죽기 하루 전날 병원에서 배를 타고 싶다고 읊조렸다. 이 교수는 “베를렌이 바람구두를 신은 사람이라고 표현했던 랭보의 일생은 끊임없는 걷기였다”라며 “그는 여기서 저기로 부단히 걸으며 세계를 떠돌았다”라고 적었다. 

그렇다면 왜 그토록 걸어야 했던 것일까? 이 교수는 철학자를 인용하며 ‘도피의 열정’이라고 표현했다. 그는 “그(랭보)에게 걷는다는 것은 있을 곳을 찾아가는 것이 아니라 있는 곳을 떠나는 것”이라며 “형성에 대한 두려움, 고정된 어떤 형태가 만들어지는 것에 대한 거부, 그는 그가 이루어져가는 것을 못 견뎌한 것이 아닐까”라고 밝혔다. 

김재호 기자 kimyital@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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