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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기 앙상블 돋보인 연극 ‘튜링머신’...열혈청년을 만나다
연기 앙상블 돋보인 연극 ‘튜링머신’...열혈청년을 만나다
  • 김재호
  • 승인 2023.11.06 17:4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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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는 25일(토)까지 3주간 LG아트센터 서울, U+ 스테이지 공연

연극 「튜링머신」이 닻을 올렸다. 천재 수학자이자 암호학자·컴퓨터 과학자이면서 동성애자로 낙인 찍혀 괴로워했던 청년 앨런 튜링(1912~1954). 그의 삶을 조명하는 연극이 프리뷰 공연에서 뜨거운 박수 갈채를 받았다. 특히 앨런 튜링을 맡은 고상호·미카엘 로스 형사 등 4가지 배역을 소화한 이승주 두 배우의 앙상블이 돋보였다. 두 배우는 원 캐스트로 열연을 펼친다.

고상호 배우는 삶을 사랑했던 열혈청년 튜링의 모습을 제대로 보여줬다. 자신만의 세계에 갇혀 사는 듯한 한 고독한 수학자의 독백을 과거와 현재를 넘나들며, 들끓는 내면을 차갑게 내뱉었다. 그의 몸은 4면 무대를 오고가며 관객을 응시하면서 속깊은 얘기를 들려줬다. 고독했지만 마치 이웃집 과학자 같은 따뜻한 면모도 함께 지닌 튜링을 그려낸 것이다. 4면 무대는 튜링이 설계했던 기계와 피보나치수열 등을 연상시킨다.

왼쪽부터 이승주 배우, 고상호 배우이다. 사진=크리에이티브테이블 석영

 

전쟁 종식에 기여했던 튜링의 업적

이야기가 전개되면서 드러나는 진실은 안타까웠다. 튜링은 청년 시절, 수학에 뛰어난 재능을 보인 크리스토퍼 모컴을 만나 사랑에 빠졌다. 하지만 모컴은 소결핵으로 일찍 사망했고, 튜링은 좌절했다. 정신적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더욱 공부에 매진했고, 나중에 ‘크리스토퍼’의 이름을 한 기계를 만들어냈다. 이 기계와 튜링의 집요함과 창의성 덕분에 독일의 암호기계 에니그마를 풀어 제2체 세계대전의 종식에 기여했다. 그러나 이마저도 소련군의 스파이일 수 있다는 의심을 받게 된다. 더욱이, 동성애자로 낙인 찍혀 화학적 거세형을 받고 칩거해야만 했다. 결국 튜링은 극단적인 선택을 하게 된다. 

이승주 배우는 수사관 로스, 라이벌이면서도 튜링을 도와 함께 암호를 해독하고 나중에 법원에서 증인으로까지 나선 알렉산더 휴, 튜링이 한 맥주 집에서 만났던 동성 애인이지만 결국 배신하고 마는 아놀드 머레이, 마지막에 스티브 잡스를 떠올리게 하는 모습까지 다양한 색깔을 제대로 보여줬다. 오버하지 않으면서 각 역할이 맡은 특징을 잘 살렸다.  

이번 연극에서 원 캐스트로 열연한 두 배우의 앙상블이 단연 돋보였다. 사진=크리에이티브테이블 석영

 

튜링 업적 기리기 위한 ‘튜링상’ 제정

튜링은 ‘기계가 생각할 수 있을까?’라고 질문을 던졌다. 그의 질문은 컴퓨터과학의 아버지라고 불릴 정도로 이후 수많 과학자에게 영향을 끼쳤다. 지금 우리가 쓰는 PC와 스마트폰 모두 튜링의 아이디어에 빚을 진 것이다. 그래서 튜링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컴퓨터과학계의 노벨상이라고 불리는 ‘튜링상’이 제정되기도 했다. 

“모든 영국인은 거짓말쟁이다.” 영국인인 튜링은 이 같은 대사를 연극에서 내뱉었다. 그 유명한 거짓말쟁이(러셀)의 역설이다. 수학이나 논리학 역시 불완전하고 모순적이라는 점을 드러낸 것이다. 튜링이 하고 싶었던 말은 결국 우리 삶도 모순 투성이라는 점을 드러내고 싶었던 것이 아니었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튜링은 버티고자 했고, 자신의 삶이 틀리지 않았음을 증명해내고자 했다. 이런 맥락에서 연극 「튜링머신」의 연출을 맡은 신유청 씨는 다음과 같이 전했다. “절망에 빠져 있을 때 지향점을 잃지 않고 저항했던 그의 삶에 대해서 생각했다. 어쩌면 우리는 그 한 사람 덕분에 어제보다 나은 오늘을 살아가고 있는 지도 모른다고 느꼈다. 살아있는 내내 고독하고 외로웠지만 다른 이들의 고통에 함께 아파하고 그 아픔을 자신의 것으로 삼을 줄 아는 사람을 생각할 수 있기를 바라며 작품을 만들었다. 부디 관객들의 마음에 이 의도가 진심으로 다가가기를 바란다.”

 이승주 배우는 다양한 배역을 소화했다. 사진=크리에이티브테이블 석영
고상호 배우는 튜링의 내면을 제대로 드러냈다. 사진=크리에이티브테이블 석영

연극 「튜링머신」은 LG아트센터 서울, U+ 스테이지에서 오는 25일(토)까지 단 3주간 펼쳐진다. 자세한 문의는 02-6954-0772로 하면 된다. 
예매 하러 가기: https://tickets.interpark.com/goods/L0000053

김재호 기자 kimyital@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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