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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고차를 고쳐서 반려차로 
중고차를 고쳐서 반려차로 
  • 김소영
  • 승인 2023.11.13 08:3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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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깍발이_ 김소영 편집기획위원 / 카이스트 과학기술정책대학원 교수

 

김소영 편집기획위원

예전부터 옷이든 그릇이든 중고를 즐겨 썼는데 작년 말 처음으로 중고로 차를 샀다. 2007년 귀국할 때 마련해 13만 마일을 달린 모닝을 막내아들한테 물려주고 크리스마스 이브에 1천300만원 짜리 벤츠를 샀다. 모닝을 끝까지 안 놓으려고 했는데, 아들이 왼쪽 다리를 다치는 바람에 당분간 자동차가 필요한 상황이기도 하고, 오랫동안 남편이 기획해온 일이기도 했다. 

한국의 부동산 시스템 적응에 실패해 아직도 무주택자면서 아파트를 무덤에 지고 갈 거냐고 대꾸하는 것처럼, 새 차를 살 여력이 되어도 안 사는 것 역시 자동차를 무덤에 들고 갈 거냐는 지조로, 평생 모닝을 데리고 살려 했다.

아들이 안전하게 운전해야 하기 때문에 남편은 겨울방학 동안 모닝을 대대적으로 고쳤다. 팔면 100만 원도 안 나오는 차를 그보다 더 돈을 들여 환골탈태를 시켰다. 사실 오래된 차라 집 근처만 다녀서 은근 불안했는데, 막상 서울에 가져 간다고 고속도로를 타니 새 차처럼 시원시원하게 잘 나갔다. 

고속도로에서 새로 변신한 모닝에 놀라면서 작별 인사를 했다. 이제까지 같이 살아주고 같이 다녀줘서 고맙다 인사하고 앞으로 새 주인이 될 아들한테도 좋은 벗이 되어달라고 부탁했다. 돌이켜보니 반려견, 반려묘 못지 않은 반려차였다.

상서로운 크리스마스 이브에 새 식구로 들어온 벤츠는 일단 규모나 무게가 너무 차이가 나서 한참을 초보처럼 엉거주춤 운전했다. 남편이 몇 달 동안 하나하나 고쳐가는 사이 이미 두 번 심각하게 자기주도적으로 긁어서 정비소에도 다녀왔다. 흰색인데 진주빛이어서 역시 벤츠는 색깔이 우아하군 했더니, 정비소 아저씨가 오래된 차라 흰색이 변색된 거라 했다. 아하, 벤츠라고 원래부터 우아한 건 아니었구나. 

다행히 정비소 역시 중고 전문이어서 수리비가 적게 나왔다. 그럼에도 몇 달 수리하는 사이 꽤 돈이 든 듯한데, 남편 말로는 중고차 가격만큼 수리하는 데 돈 쓸 걸 예상하고 산 거라 했다. 그래도 새 차에 비하면 한참 저렴해서 나같은 짠순이한테는 적격이다.

사실 벤츠 수리가 진짜 고장을 고치는 게 아니고 10년이 넘는 차라 한번 대대적으로 예방 정비를 하는 것이라 한다. 이번에 이렇게 고치고 나면 모닝처럼 환골탈태를 한다고. 결국 애들이 모두 집을 떠난 후 자동차 정비를 공부하려는 남편의 야심찬 계획의 일부였지만, 새 식구로 들어온 벤츠는 앞으로 긴 시간을 나와 같이 할 반려차로 거듭나는 중이다.

중고차 거래는 경제학 교과서에 소위 레몬마켓이라는 정보비대칭의 대명사로 나온다. 썩은 사과와 달리 불량 중고차는 그 상태를 제대로 알 수 없기 때문에 소비자 입장에서 맘 편하게 사기 어려운 것이다. 중고차는 고쳐 쓰는 것이 답인데, 고쳐 쓰는 것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 정당들도 고쳐 쓸 수 있을까? 오래되어 진주빛을 띠는 우아함이 가능할까? 제대로 고쳐서 환골탈태해 오래 같이 할 수 있는 반려정당을 하나 만들 수 없을까? 

김소영 편집기획위원
카이스트 과학기술정책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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