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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아탑에 갇힌 인문학…시대적 위기에 당당히 맞서라
상아탑에 갇힌 인문학…시대적 위기에 당당히 맞서라
  • 서영식
  • 승인 2023.11.22 08:3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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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의 위기 담론과 리더십
순수학문 이상과 사회적 활용

최근 100세를 맞은 헨리 키신저(1923~)는 『리더십』(민음사, 2023)에서 지도자에게는 무엇보다 ‘역사의식과 비극에 대응하는 능력’이 필요한데, 이와 관련해 특히 인문학은 “타인과 자신의 심리와 세계를 폭넓게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준다”라고 강조했다.

전설적인 미국의 국무장관 헨리 앨프리드 키신저(1923~)는 인문학이 “타인과 자신의 심리와 세계를 폭넓게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준다”라고 강조했다.

사실 한 사회나 조직에서 리더가 지닌 가치와 역할은 평상시에는 거의 드러나지 않는다. 평소에는 현상을 유지할 정도의 관리자만으로도 충분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위기의 순간이 닥치면 리더와 리더십의 중요성이 분명히 드러난다. 마치 사바나 초원에서 살아가며 흔히 ‘프라이드’로 불리는 사자 무리의 수사자처럼. 평소 사냥과 양육은 암사자들이 도맡아 하고 수사자는 빈둥거리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무리를 위협하는 적이 침입하거나 기린이나 코끼리처럼 암사자만으로는 사냥이 어려운 먹잇감이 포착되면 수사자는 주저 없이 능력을 발휘해서 위기를 극복하거나 목적을 달성한다.

그렇다면 인간 세계에서 리더에게 요구되는 역할과 능력은 무엇일까? 그것은 아마도 초원보다 훨씬 더 불확실한 상황이 쉴새 없이 발생하는 가운데서도 조직을 생존과 발전의 방향으로 동시에 이끌 수 있는 능력일 것이다. 달리 말하면 일차적으로는 조직의 위기 상황 발생 시 신속하게 대처해 피해를 최소화하고 조직의 생존을 보장할 수 있는 기술인 위기 대응능력일 것이다. 

시대정신 파악하고 변화에 적응하기

나아가 항상 같은 방식으로 생존해도 만족하는 동물의 세계와 달리 늘 변화를 추구하는 인간 공동체의 성격을 이해하고 구성원들이 지금 여기서 가장 필요로 하는 바, 즉 시대정신을 정확히 파악하고 이를 새로운 공유 비전으로 개념화한 후 다시 구성원과 더불어 성취할 수 있는 자세와 역량이 필요하다. 그것이 바로 나폴레옹이 ‘리더란 희망을 파는 상인’이라고 단언한 이유이기도 하다.

그런데 여기서 리더가 구성원과 공유할 수 있는 희망(비전)을 제시하고 구현하기 위해 반드시 갖추어야 하는 능력은 아마도 역사의식에 기반한 인문학적 상상력일 것이다.

주지하듯이 인문학이란 인류가 자신과 세상을 마주하며 경험하고 느끼고 생각한 내용, 즉 우리의 체험과 감정과 사유를 이른바 ‘문·사·철’의 형식으로 표현한 것이다. 우리 인류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항상 가장 근원적인 물음 ‘우리는 누구이고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에 관심을 표시해 왔으며, 때로는 인지의 발달이나 지식의 진보에 따라 때로는 시대의 흐름이나 상황의 변화에 따라 전혀 새로운 해답을 제시하곤 했다. 

그리고 인문학은 항상 그 질문과 대답의 중심에 서 있었다. 그런데 인문학의 본성과 연관해서 특별히 주목할 점은, 각각의 개별 대상을 인식하거나 전달하는 주체가 대상을 단지 객체로만 간주하고 거리를 둔 채 다루는 것이 아니라, 대상에 대한 주체의 이해와 관심이 좀 더 깊이 개입돼 있다는 사실일 것이다. 

자연과학의 경우 대상에 대한 인식주체의 개인적인 입장은 최대한 배제하고자 노력하며 동시에 객관성을 학문성의 기준으로 삼고 있다. 반면에 인문학은 일차적으로 대상 세계를 온전히 파악하고자 시도할 뿐만 아니라, 나아가 그 대상과 마주한 인간 자신의 태도에 관해 지속해서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다.

리더십에 대한 사유의 지평이 점차 확장

인문학이 경영학이나 행정학 같은 여타 응용학문 분야의 리더십 담론과 차별화될 수 있는 것은 아마도 이 지점에서 일 것이다. 여타의 학문에서 리더십은 조직의 원만한 관리나 경영 혹은 생산 지표의 향상을 궁극의 지향점으로 삼고 있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나머지는 사실상 부차적인 문제에 지나지 않는다. 

이에 반해 인문학자는 한편으로 리더십의 개별 연구 주제와 대상을 온전히 파악하고 의미 있게 전달하고자 노력하면서도, 동시에 그 과정에서 이러한 노력을 기울이는 자신의 인식 태도나 학문적 입장을 곱씹어 보고 반추할 것이다.

이에 더해 아마도 인문학자는 리더십에 관한 사유의 지평이 점차 확장되고 있으며, 나아가 현실을 살아가는 지식인의 실천적 역할에 대해 고민하는 자아의 모습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근원적인 수준에서 리더의 역할을 음미하고 시대정신에 따라 리더십의 방향을 조망하는 문·사·철의 담론을 풍부하게 경험한 학생이나 독자도 여타 학문영역에서 제시하는 조직관리 기술이나 생산성 향상에 대해 고민하는 수준을 넘어서 사회 전체를 생각하고 실천하는 리더로 성장하기 위해 나름의 노력을 전개할 것이다.

이미 지난 20세기 후반부터 한국 인문학계에 떠돌아다녔고 현재도 자주 논의되고 있는 이른바 ‘인문학의 위기’ 담론을 떠올려 보자. 인문학의 무수한 연구 성과들이 현실사회의 다양한 영역이나 층위에서 효과적으로 활용되도록 전공자들이 적절한 노력을 기울이지 않고 여전히 순수학문의 이상만을 추구하는 작금의 상황은 인문학 외부에서 볼 때 좀처럼 이해하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사실상 인문학의 위기를 악화시키는 원인 중의 하나라고 말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것이 바로 리더십에 관한 인문학 차원의 접근과 활용이 필요한 현실적인 이유이기도 하다.

 

서영식 충남대 교수·리더십철학 리더스피릿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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