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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고스’가 지배하는 사회를 꿈꾸며
‘로고스’가 지배하는 사회를 꿈꾸며
  • 김창래
  • 승인 2023.12.01 10:1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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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가 말하다_『철학에로의 초대』 김창래 지음 | 456쪽 | 세창출판사

넘쳐나는 억지 주장에 로고스 학대당하는 환경
대중 철학교육은 철학자의 사회적 책무

나에게는 작은 소망이 하나 있다. 그 소망을 이루고 싶어 철학을 교육해 왔고 이 책도 썼다. 그것은 사람들을 철학으로 이끌고, 철학적 사유를 배우게 하여, 철학이 의미를 갖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다.

흔히들 철학은 천재의 학문이라 말한다. 물론 잊히지 않을 철학적 성과를 낼 수 있는 사람은 천재뿐이기에 그릇된 말은 아니다. 그러나 나는 철학이 천재만을 위한 학문이 아니라 모든 사람이 배워야 하는 학문이라고 생각한다. 모두가 철학을 배우고, 모두가 철학적으로 사유하고 말하고 들을 수 있게 된다면, 그리고 그런 이들이 모여 사회를 이룬다면, 그 사회는 어떤 곳일까? 내가 소망하는 사회, 로고스가 지배하는 사회다.

철학을 배운다는 것은 자신의 로고스를 사용하며, 로고스의 인도 아래 사유하는 방법을 배운다는 것이다. 이른바 ‘로고스적 사유’다. 이것은 소수의 천재들만 구사하는 특별한 기술이 아니라, 인간이라면 누구나―인간은 본디 ‘로고스를 소유한 동물(zoon logon echon)’이다!―배우고 익혀 실천할 수 있는 사유다. 이 사유는 로고스를 사용하고 로고스에 부합하게 사유하는 것 이상을 요구하지 않는다. 즉 말이 되게, 논리와 이치에 맞게 사유하고 말하고, 말이 안 되는 것, 논리와 이치에 어긋나는 것을 억지로 우기지 않고, 또 그런 말을 들으면 가차 없이 논박하되 이치에 맞는 말을 들으면 기꺼이 승복하는 태도를 배우는 것이다. 한마디로 ‘로고스에 대한 존중’을 배우는 것이다. 

언젠가 소크라테스는 “참이 아닌 어떤 것을 주장하는 사람”은 단호히 “논박하되” 자신이 “참이 아닌 어떤 것을 말한다면 기꺼이 논박당하겠다”라고 말한 적이 있다. 그렇다면 소크라테스를 논박하는 자는 누구인가? 말만 잘하는 대화 상대자? 아니다. 그를 논박하는 것은 다른 사람이 아니라, 참, 참을 말하는 말, 참을 입증하는 논리, 바로 로고스다. 누구나 로고스의 권위를 존중하고, 로고스에 귀를 기울이고, 로고스의 참에 승복하고, 스스로를 기꺼이 로고스의 지배에 내맡길 수 있는 개방성, 로고스를 존중하는 바로 이 태도가 인류의 스승 소크라테스가 가르쳤던 것이고, 철학적 훈련이 줄 수 있는 최대한의 선물이다. 우리가 철학을 공부하는 것도 바로 이 태도를 배우기 위해서다.

소크라테스는 “참이 아닌 어떤 것을 말한다면 기꺼이 논박당하겠다”라고 말한 적이 있다. 이미지=픽사베이

그렇다면, 철학의 역사 2천500년을 뒤로한 지금 우리 사회는 어떠한가? 누구나 로고스를 존중하고, 참을 말하는 로고스에 기꺼이 논박당하는가? 아니다. 도처에서 우기고, 말도 안 되는 소리하고, 한 말도 뒤집기 일쑤고, 말 바꾸고도 바꾼 적 없다고 오리발을 내민다. 로고스로 잘못을 지적하고 설명하면, 얻다 대고 말대꾸냐고 언성을 높이고 험상궂은 표정에 욕질이나 주먹질도 주저하지 않는다. 철학하는 나는 외로워진다. 분명 우리는 로고스가 지배하는 사회가 아니라 로고스가 학대당하는 사회에 살고 있다.

평생을 철학 공부, 철학 교육만 하며 살았다. 그 중간 결실의 하나가 이 책이다. 이 책은 대중 철학 교육은 철학자의 방기할 수 없는 사회적 의무라는 나의 평소 생각의 산물이다. 나는 누구인지도 모르는 나의 독자들에게 철학 교육의 기회를 제공하고 싶었다. 그래서 그들이 모두 철학적으로 훈련받고 로고스적으로 사유할 수 있기를, 그리고 이를 통해 로고스의 힘을 존중하고 거기에 승복할 줄 아는 사회가 실현되기를 기대하며 이 책을 썼다. 

죽기 전에 한 번은 ‘로고스가 지배하는 사회’에 살아 보는 것이 이 늙은 철학 교수의 작은 소망이기 때문이다. 물론 나는 이 꿈이 이루어지지 않을 것임을 잘 알고 있다. 같은 꿈을 역설하던 소크라테스는 말이 많다는 이유로 독미나리즙을 마셔야 했고, 생각할 수 있는 한 가장 강력한 방식으로 로고스의 지배를 주장하던 플라톤은 노예시장의 매물로 나와야 했던 현실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도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이런 책을 쓰는 것뿐이다.

 

 

 

김창래                                 
고려대 철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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