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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위험에 처한 것은 인간인가, 세계인가
오늘날 위험에 처한 것은 인간인가, 세계인가
  • 공병혜
  • 승인 2023.12.14 09:2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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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_『난간 없이 사유하기』 한나 아렌트 지음 | 신충식 옮김 | 문예출판사 | 824쪽

새로운 정치적 사유의 가능성에 대한 빛
자유롭기 위한 자유가 정치 혁명의 목적

이 책은 신충식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서양철학)가 번역했다. 1953년부터 서거하기 직전인 1975년까지 한나 아렌트의 논문·강연·서평·대담·편지 등을 총망라해 824쪽이나 된다. 아렌트의 역서 중 가장 방대한 저작이다. 이 시기에 아렌트는 『인간의 조건』, 『과거와 미래 사이』, 『어두운 시대의 사람들』, 『혁명론』, 『예루살렘의 아이히만』, 『공화국의 위기』, 『폭력론』과 마지막 저작인 『정신의 삶』을 저술했다. 그래서 이 책은 시기별로 다양한 층위를 지닌 그녀의 주요 저작을 이해하기 위한 그 시대의 중요한 사건과 아렌트의 정치적 사유의 경험에 대한 공적 세계와의 열린 소통의 과정을 보여준다. 

아렌트의 사상은 마치 “과거가 미래에 빛을 던지는 것을 멈추었을 때”와 같이 전통이 붕괴된 오늘날의 불확실하고 불안정한 세계에서 실천적 의미를 준다. 이 저작의 제목인 ‘난간 없이 사유하기’는 「한나 아렌트에 대한 아렌트」에서 언급된 자기 사유 체험에 대한 묘사다. 히틀러와 스탈린의 전체주의 체계가 보인 세계의 황폐화로부터 물러나 사유 중인 아렌트는 어떤 전통적인 종교·도덕·역사의 지지도 용납하지 않은 시대가 자신에게 지운 짐을 가장 무겁게 느꼈다. 그래서 그녀에게 사유 활동은 “어느 한쪽 난간에 의지하지 않고 자신이 떠안은 엄청난 부담을 보살피며 계단을 오르내리는 일과 유사한 것”이다. 

이 저작은 미국 공화정의 쇠퇴 원인, 혁명과 평의회, 전체주의의 출현과 다시 논의되는 아돌프 아이히만에 대한 대담 내용을 통해 새로운 정치적 사유의 가능성에 대한 빛을 던진다. 특히 이 저작을 관통하는 적어도 6개 논문의 특정 주제는 프랑스와 미국에서 18세기 말 성행한 새로운 시작으로서의 행위의 자발성을 태동시킨 혁명의 정신이다. 아렌트는 동시대 세계 표면에서 일어나는 정치적 사건에 놀라서 사유로 진입하면서 이들 현상에 매여 계속 선회하지만 일정한 거리를 두고 이 현상 속으로 깊이 파고 들어간다. 

‘자유롭기 위한 자유’가 정치 ‘혁명’의 목적이다. 이러한 정치적 자유의 필수조건으로 시민이 말하고 행위 하는 능력은 공개적으로 다른 사람들과 논쟁하며 사건에 대해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있는 마치 거친 바다 위에 ‘자유의 섬’이라고 부르는 공적 공간에서 발휘된다. 아렌트가 깊이 파고든 ‘상상력에 의해 확장된 사유방식’으로서 정치적 판단력은 특히 동시대의 작가인 나탈리 사로트가 『황금열매』에서 풍자한 마치 ‘저자와 독자’가 ‘그들’과 ‘나’에서 벗어나 ‘우리’로 돌아오는 공통감으로 표현된다. 

1955년 독일에서 강의하고 있는 아렌트. 사진=위키피디아

아렌트는 세계의 기술화와 과학 활동이 지구 행성에서의 모든 생명체를 파괴할 인류 종말의 장치를 고안할 수 있다는 사실에서 인간의 한계가 드러나고 있음을 지적한다. 이 저서는 “이 지구상 인간 조건에서 가장 불만족스러운 모든 것에 맞서 자신을 던지고 상처에서 그 자체의 힘을 빨아들이는 찬미”를 한 당대의 위대한 시인 오든에 대한 아렌트의 추도사로 끝을 맺는다. 신 교수는 옮긴이 해제에서 이 저술을 관통하는 아렌트의 정치적 판단이 일어나는 ‘세계’의 개념과 세계 소외를 초래하게 하는 ‘판단력’의 마비에 대해 심도 있는 분석을 한다. 

그는 실존의 위협에 당면한 21세기 모든 인류에게 아렌트의 다음 질문은 뼈아프다고 말한다. “오늘의 위기 중 위험에 처한 것은 인간인가, 세계인가?” 인류가 우려하는 실존적 위협은 바로 인류가 자초한 기후 재앙, 잠재적인 미래 기술, 기술 혁명의 부정적 여파에 의한 모래폭풍이 이는 세계의 사막화에 대한 위험인 것이다. 이는 제롬 콘이 서문에서 아렌트가 오늘날 살아 있다면 자연의 위기, 정치의 위기에 대한 감성을 공유할 수 있으리라는 생각과 일치한다! 

이 역서는 시기별로 전개된 아렌트의 사유의 경험과 소통 과정을 아렌트 본래의 목소리가 담긴 언어로 되돌려놓은 듯한 번역의 생동감을 경험하게 한다. 오랜 세월 동안 아렌트와 함께 치열하게 사유하며 참된 언어로 해석해 내고자 한 번역자의 노고와 인내가 단어와 문장마다 꼼꼼히 맺혀 있는 듯하다. 

 

 

 

공병혜 
조선대 명예교수·간호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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