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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마트폰 속 이미지, 실재 마주하는 또 다른 창구
스마트폰 속 이미지, 실재 마주하는 또 다른 창구
  • 이솔
  • 승인 2023.12.29 10:0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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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가 말하다_『이미지란 무엇인가』 이솔 지음 | 민음사 | 244쪽

이미지는 가상 아닌 실재가 드러나는 한 방식
잠들기 전 스마트폰 안 세상은 또 다른 현실

이미지가 범람하는 시대다. 현대인은 리얼 타임이 아니라 스크린 타임(screen time) 속에서 산다. 컴퓨터와 태블릿, 스마트폰을 응시하는 시간이 스크린 바깥의 실재를 바라보는 시간을 넘어서고 있다. 그리고 이처럼 우리의 삶이 이미지와 가까워질수록 ‘이미지에 현혹되지 말라’는 경고의 목소리 역시 커지고 있다. 우리가 스마트폰을 내려놓지 못하는 것은 ‘도파민 중독’에 빠져 있기 때문이다. 이를 돌이켜 반성하고 경계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사실 “이미지에 현혹되지 말고 실재로 되돌아오라”라는 경고는 아주 오랜 역사를 가진다. 우리를 거짓과 오류로 이끄는 ‘불온한 이미지’라는 이 오래된 관념은 데카르트에게서는 ‘전날 밤의 꿈과 뒤섞인 현실’로, 그보다 더 멀리 플라톤에게서는 ‘동굴 벽에 어른거리는 그림자’로 나타났던 것이다. 이미지는 가상이며 우리의 눈을 가리는 이미지에 현혹된다면 실재에 대한 참된 인식을 얻을 수 없다는 오래된 생각이, 오늘날에는 숏폼 영상과 같은 자극적 이미지가 우리를 도파민 중독에 빠지게 한다는 논리로 반복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미지는 정말 유해한 가상에 불과한 것일까? 현대의 매체적 현실에서 이 보수적 사고는 한계를 드러내는 듯하다. 이미지가 이미 실재보다 더 실제적으로 우리의 삶에 영향을 미치고 있기 때문이다. 더 이상 이미지는 한낱 가상에 불과한 무엇이 아니다. 실재는 이미지 너머에 있지 않다. 오히려 이미지는 실재가 드러나는 하나의 방식이다. 

이 책 『이미지란 무엇인가』를 이끄는 것은 두 가지의 물음이다. 첫째는 지금껏 부정적으로 이해해 온 ‘이미지’의 본래적인 의미가 무엇인가 하는 물음이며, 둘째는 이미지가 범람하는 시대로 규정되는 오늘날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 것인가 하는 물음이다.

이 물음에 답하기 위해 이 책은 사르트르(1905∼1980)와 들뢰즈(1925∼1995)라는 특별한 대화자를 초대한다. 후설에 바탕을 둔 사르트르의 현상학적 이미지 이론과 베르그손에 바탕을 둔 들뢰즈의 이미지 이론은 서로 전혀 상이한 이론적 바탕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공통적으로 플라톤 이래 전통 철학이 무비판적으로 답습해 온 가상으로서의 이미지라는 관념에 문제를 제기한다. 이들에게서 이미지란 더 이상 실재에 대한 인식을 가로막는 불온한 표상이 아니다. 사르트르와 들뢰즈는 이미지로부터 기존 철학이 미처 발견하지 못했던 숨겨진 역동성을 발견한다. 사르트르에게서 그것은 의식의 자발적 활동성이며, 들뢰즈에게서 그것은 실재의 본래적인 모습으로서의 끊임없는 운동·변화이다. 

그리고 이처럼 이미지가 더 이상 거짓과 오류의 원천이 아닌 실재의 또 다른 모습으로 거듭날 때, 이미지가 범람하는 오늘날의 현실은 이전과 전혀 다른 얼굴을 보여준다. 우리가 세계를 마주하는 하나의 방식이 이미지라면, 이미지에 빠져드는 것은 현실을 외면하거나 현실로부터 도피하는 태도가 아니다. 

물론 오늘날 온라인 세계를 특징짓는 것은 몰입이 아닌 ‘산만함’이다. 수천·수만의 관점과 목소리가 난립하는 이 세계에 영구적인 가치나 진리는 존재하지 않는다. 반응은 즉각적이며 휘발적이다. 일찍이 벤야민이 ‘정신 산만한 시험관’이라 말했던 관객의 모습은 오늘날 스마트폰을 붙잡고 이 콘텐츠에서 저 콘텐츠를 넘나드는 지금 우리의 모습과 일치한다.

그러나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잠들지 못하고 스마트폰을 들어 올린 늦은 밤, 우리가 마주하는 것이 가상이 아닌 또 다른 현실이라는 사실이다. 이미지는 가상이 아니라 우리가 실재와 마주하는 또 다른 창구이다. 나의 어제와 오늘, 전 세계에서 일어나는 사건들과 내일의 날씨, 가깝고 먼 이웃의 일상……. 그 모든 것이 작은 스크린 속에 현전해 있다. 그렇기에 『이미지란 무엇인가』는 지금 여기 우리의 삶이 어떠한 것인가를 해명하려는 시도다. 오프라인의 현실보다 온라인 세계에서 더 오랜 시간을 보내는 우리의 삶을 과연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도대체 오늘날 우리의 삶에서 이미지란 무엇인가?

 

 

 

 

 

 

이솔
이화인문과학원 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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