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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랜스내셔널 코리아’ 통일 한반도…그 중심에 자본이 있다
‘트랜스내셔널 코리아’ 통일 한반도…그 중심에 자본이 있다
  • 김재호
  • 승인 2024.01.03 08:3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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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인터뷰_ 『자본의 무의식』 (김택균 옮김 | 천년의상상 | 632쪽) 쓴 박현옥 캐나다 요크대 교수

이 책에서 남북 민족통일을 종족·민족
주권과 국가영토의 통합의 문제가 아닌
근대 주권과 전 지구적 자본주의의
문제로 봐야한다는 논의를 펴고 있다.

“남북한은 이미 자본에 의해 트랜스내셔널 코리아 형태로 통일됐다.”, “탈냉전기는 초국적 민족 공동체를 형성하는 탈통일의 계기이다.” 박현옥 캐나다 요크대 교수(사회학)의 도발적인 주장이 화제다. 그는 지난해 출간된 『자본의 무의식』에서 남한·북한·중국 북동부 지역의 노동자에 대한 인터뷰와 미디어·문헌 역사 연구 등을 통해 이 같은 결론에 이르렀다. 이 책은 2023 세종도서(학술)에 선정됐다. 

박 교수가 강조한 ‘트랜스내셔널 코리아’는 남한-북한-중국의 한인 디아스포라 차원의 단순 통합이 아니라 “남북 통일의 담론과 정치학을 회피하는 집단 자본주의적 무의식”이다. 한 마디로 민족통일의 주체가 된 자본의 변화(불평등)를 비판하는 것이다. 현재 국내 조선족은 약 70만 명, 탈북자는 약 3만5천 명이다. 재외동포는 710만 명에 달한다. 한마디로 한인 디아스포라의 시대다. 북한에서 중국·남한으로, 중국에서 남한으로 돈을 벌기 위해 국경을 넘는 탈북자와 이주노동자들이 적지 않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무자비한 차별이 발생한다. 핵심은 국적과 노동권이다. 지난달 22일, 박 교수를 인터뷰했다. 

2024년을 맞이한 한반도에서 과연 통일은 어떤 모습이어야 할까, 가능하기는 할까. 박 교수는 “원래 민족통일이 무엇이었는지를 다시 생각해봐야 한다”라고 말했다. “이 책에서 남북 민족통일을 종족·민족 주권과 국가영토의 통합의 문제가 아닌 근대 주권과 전 지구적 자본주의의 문제로 봐야한다는 논의를 펴고 있다.” 박 교수는 “민족통일은 민중들의 노동과 토지 경작권·소유권 등을 둘러싼 사회적 관계에 대한 것이었다”라며 “20세기의 ‘자본주의’ 대 ‘사회주의’의 대립은 근대 민족국가 이데올로기이기 이전에 사회적 삶에 대한 서로 다른 구상으로 일제 강점기 때부터 진행됐다”라고 강조했다. 민족통일의 원래 역사와 정체성이 냉전을 거치며 국가·영토의 통합 차원으로 전이된 과정을 드러내며, 한민족통일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제공하려는 것이다. 

연세대 사회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하와이대에서 석사를 했다. 캘 리포니아 버클리대 사회학과에서 「민족과 젠더에 대한 유물론 (Materializing Nation and Gender)」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동 상이몽: 제국, 사회적 삶, 그리고 만주에서의 북한 혁명의 기원』(듀 크대 출판부, 2005)을 집필했다. 한국 비판사회학회지 『경제와사회』에서 재외편집인으로 20여 년간 있다.

 

근대 주권·전 지구적 자본주의의 문제

『자본의 무의식』이 집필된 계기는 다음과 같다. 1990년대 중후반에 시작된 중국 조선족들의 ‘한국 바람’과 북한 주민들의 중국으로 도강이 맞물리는 예고되지 않은 상황이 있었다. 그때 박 교수는 19세기 말부터 1945년까지 조선농민의 만주로의 이동과 이들의 노동·토지 소유·국적문제를 통해 만주에서의 민족주의와 사회주의 해방운동을 시공간으로 분석한 박사논문을 책으로 준비하고 있었다. 따라서 50년 후에 다시 시작된 조선인 한인들의 국경 사이 이동에 관심을 갖게 돼 한국에서 그리고 중국 연변지역에서 무국적 이주노동자와의 인터뷰 등 연구를 진행한 것이 이 책의 토대가 됐다. 

2006년 10월 13일, 박 교수는 연길에서 탈북자 한 씨(가명)를 만났다. 한씨는 “자신의 나라는 중국, 조국은 조선”이라고 말했다. “중국에 거주하는 한 씨는 미등록 북한 주민이면서 남한으로 이주하는 것도, 즉시 북한으로 돌아가는 것도 거부하지만 민족을 숭고한 공동체로 간주한다.” 한 씨는 북한의 공민권이 나오기 1년 전인 16세에 북한을 떠났다. 그는 어느 나라의 국적도 보유한 적이 없고, 북한에서 태어난 기록만 있을 뿐이다. 돈을 벌기 위해 남한으로 가려 했지만, 여러 번 속은 후에 그마저도 포기했다. 여기서 박 교수는 모순된 감정에 주목한다. 

“한씨의 주체성은 현재의 자본주의적 질서 안에 놓인 자신의 욕망을 포기하지는 않지만 진정한 민족을 향한 염원을 표현하고 있다 … 그는 북한의 새로운 물질문화, 만연한 타락, 불평등을 혐오하지만, 그 자신을 1990년대 이래 남북한과 조선족 공동체를 통합하는 더 광대한 지구적 자본주의 체제의 일부다.” 북한이 싫어서 떠났지만, 새로운 민족공동체에 대한 꿈을 간직하고자 했다. 또한 생존이 가능하도록 돈을 벌고 싶지만, 동시에 자본이 삼킨 민족통일의 동력에 대해 저항하려고도 한다. 박 교수는 이에 대해 ‘자본주의 없는 자본주의’를 꿈꾸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자본의 무의식』이 전제하는 건 20세기 냉전시기의 남한-북한-중국 모두가 ‘국가 자본주의’ 체제라는 분석이다. 마르크스주의 연구를 토대로, “중국과 북한에서도 20세기 사회주의는 생산력 발전을 최우시하며 노동가치론 등 산업자본주의의 원리를 유지했고 이는 정치와 이데올로기에서 어떤 모순을 낳았는가를 이 책에서 설명했다.”, “특히 남한-북한-중국이 탈냉전 시기라 불리는 시점에서 각기 내재적 모순과 위기를 ‘동시적’으로 해결하려하고 신자유주의 자본주의적 개혁도 도입하는 과정에서 북한에서 중국으로, 중국에서 한국으로 오는 미등록 이주노동자들이 생겨났다고 분석한다.” 중국 정부는 2000년 중후반까지 북한 사람의 중국으로 탈북, 중국 조선족의 한국으로 불법노동 진출을 눈감아줬다. 이러한 자본주의의 새 국면에서 국경을 넘는 이들은 유토피아적 사회주의를 새롭게 표상했다. 

 

계급적인 트랜스내셔널 코리아

그런데 문제는 트랜스내셔널 코리아가 계급적이라는 점이다. 박 교수는 다음의 질문을 갖고, 오랫동안 연구해온 전 지구적 자본주의 체제를 들여다봤다. “왜 재일 조선인(자이니치)과 구 소비에트령 한인 다아스포라(까레이스키)의 참여가 배제된 불평등한 트랜스내셔널 코리아 형태인가?” 인권운동가들이 노력했음에도 여전히 일본·러시아의 한인 디아스포라들은 관심 밖에 있다. “과거 냉전 시기에 이 다이아스포라 사회들, 특히 재일 조선인의 시민권·영주권 등은 남북의 이데올로기 경쟁의 각축장이었던 것과 큰 대조를 이룬다.” 

꿈꿨지만 실현되지 못한 유토피아는 북한의 정치·경제위기, 조선족 소수민족에 대해 해결되지 않은 중국 내 국적 문제 등으로 파행됐다. 여기서 유토피아는 마르크스주의 관점에서 평등한 사회적 관계를 바라는 ‘민주주의’다. 박 교수는 북한·중국이 구 소련이 처했던 비슷한 모순과 위기가 식민주의·탈식민주의 하에 어떻게 나타났고, 어떻게 체재 내로 합리화하려 했는지, 그 가운데 얼마나 많은 정치·경제적 위기를 끊임없이 표출했는지를 책에서 설명했다. 

즉, 북한·중국의 사회주의가 냉전·탈냉전시기에 자본주의를 통해 어떻게 전이되고 표상되는지에 초점을 둔 것이다. 심지어 자본주의(시장 유토피아)는 ‘종족 민족’, ‘통일된 민족’, ‘국가 없는 민족’ 등 국경을 넘나드는 자본·노동을 매개로 민족통일에 대한 유토피아적 상상체계도 만들어낸다. “그 분석은 종족 민족주의나 민족국가 패러다임 안에서는 설명될 수 없고, 전 지구적 자본주의 역사와 변화의 분석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이에 따라 “트랜스내셔널 코리아 형태가 전 지구적 자본주의 체제의 변화로부터 형성됐다”라는 결론을 내리게 됐다. 마찬가지로 『자본의 무의식』 서문에서 “이 책은 계속되는 냉전적 사고와 자본주의에 대한 모순적 경험과 감성에 눌려지고 부풀려진 통일과 민주주의 현실에 대한 고찰”이라고 적었다. 

남북 통일에 대한 박현옥 캐나다 요크대 교수의 도발적인 주장이 어떤 파장을 불러올지 귀추가 주목된다. 

 

시간의 정치학과 역사의 진보론

『자본의 무의식』이 출간되고 북미의 사회학·다분야 간 연구·지역학의 10여 개 저널의 리뷰에서 호평을 받았다. 또한 미국의 아시아학회와 콜롬비아대학교출판사와 인터뷰를 했다. 영국에서 중국 변방과 북한 연구자들이 이 책에 대해 라운드테이블 토론을 진행하기도 했다. “이 책은 ‘시간’의 개념에 비중을 두고 즉, 20·21세기에서 자본주의·사회주의 체제 구분과 시기 구분의 정치학, 역사의 진보론의 여러 형태와 그에 대한 비판, 역사의 반복 등 시간의 정치학을 통해 과거와 현재를 분석했다.” 

박 교수는 “국내 학계는 이 책을 탈북자연구·이주 노동자 연구·난민연구·사회사 연구 등으로 위치시킬지도 모르겠다”라며 “파편화된 주제영역으로 간주하지 말고 책의 전체적 맥락을 이해해 20세기부터 지금까지 자본주의와 종족·민족주의의 상호 관계에 대한 동아시아 역사와 일상의 연구로 읽히고 토론되기를 바란다”라고 당부했다. 

>>> 아래는 인터뷰 전문이다. 

Q. 남북한이 노동·자본의 이동에 의해 ‘트랜스내셔널 코리아’로 통일됐다는 주장은 굉장히 신선하면서도 낯섭니다. 학계나 주위의 반응은 어떠한가요?

책이 출판되고 북미지역의 사회학, 다분야 간 연구(Interdisciplinary Studies), 지역학의 10여 개 저널의 리뷰에서 호평을 받았습니다. 또한, 미국의 아시아 학회 (Association for Asian Studies)와 콜롬비아 대학 출판사와 인터뷰를 하였고, 영국에서 중국 변방과 북한 연구자들이 이 책에 대해 라운드테이블 토론을 하였습니다. 

이들 서평과 토론은 대체적으로 두 가지에 초점을 두고 있는데, 한 가지는 이 책이 주는 남북 통일에 대한 새로운 시각이고, 또 하나는 ‘자본의 무의식’에 대한 개념화와 분석에 대한 것입니다. 여러 서평자의 평가에 의하면 이 책은 남북 민족통일에 대해 근본적으로 새로운 시각을 제공하고 있어서 이 책을 읽고 나면 기존 방식으로 사고하기는 불가능하다고 공통적으로 말합니다. 북한의 미사일 테스트와 핵 개발이 계속되는 정세 속에서 남북한의 민족통일과 평화를 경제협력과 북한의 민주화라는 이분법으로 접근하고 있는 상황에서 남북이 자본에 의해 ‘이미’ 통일되었다는 제 주장을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것 같습니다.

자본에 의해 남북이 이미 트랜스코리아라는 형태로 통일이 되었다는 것은 한국(남한)이 경제적 우위로 민족 정통성을 얻어 북한과 한인 디아스포라를 통합했다는 뜻이 아닙니다. 제가 『자본의 무의식』 한국어판 서문에서 제가 밝혔듯이, “트랜스내셔널 코리아는 우리에 익숙한 남북한의 경제적 교류와 간헐적인 화해 무드, 그리고 중국 조선족이나 미주 동포들의 촉매제 역할을 지칭하지 않는다. 우리의 의식 저변에 웅크려져 있는 냉전에 대한 자본주의의 승리감과 북한에 대한 한국의 우월감을 의미하지도 않는다. 우리는 남북 민족통일에 대해 생각할 때 영토적 통합을 당연시하는데, 필자는 이러한 무의식의 흐름을 냉전의 산물로 이해한다. 이 책은 민족통일이 무엇인가에 대해 근본적 의문을 제기하고 해방적인 사회적 삶에 대한 정치로서의 민족통일의 ‘원 역사’(ur-history)를 소환한다. 그리고 민족통일에 대한 과거와 현재의 정치를 세계 자본주의 변천의 역사와 그 과정에 위치시킨다.”(한국어판 서론에서)라는 점을 강조합니다.

저는 이 책에서 남북 민족통일을 종족민족주권(ethnic national sovereignty)과 국가영토의 통합의 문제가 아닌 근대주권과 전 지구 자본주의의 문제로 봐야한다는 논의를 펴고 있습니다. 이는 원래 민족통일이 무엇이었나를 다시 생각해야 한다는 것이지요. 원초 민족통일은 민중들의 노동과 토지 경작권과 소유권등을 둘러싼 사회적 관계에 대한 것으로 20세기의 ‘자본주의’와 ‘사회주의’의 대립은 근대 민족국가 이데올로기이기 이전에 사회적 삶에 대한 서로 다른 구상으로 일제 강점기 때부터 진행되었습니다. 이러한 민족통일의 원제가 냉전 하에서 국가와 영토의 통합의 차원으로 전이된 과정을 살펴보며, 이 책에서 저는 냉전과 냉전체제의 위기에 대한 역사 사회적 분석을 통해 한민족통일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제공하려 했습니다.

또한, ‘트랜스내셔널 코리아’는 한민족의 종족민족적 통합이 아니라 전 지구적 자본주의에 의해서 남북과 중국 조선족 사회가 이들 국경을 넘어선 연쇄적인 노동의 이동으로 얽혀진 형태를 말합니다. 대체로 많은 트랜스내셔널리즘 연구들은 민족국가와 디아스포라의 관계에 초점을 두고 정통성을 가진 민족국가가 디아스포라들을 어떻게 차별 내지 우대하는지를 통해 트랜스내셔널리즘이 민족국가를 어떻게 초월거나 여전히 그 체제 안에 있는지를 분석합니다. 

저도 그러한 접근으로 1990년도 중반에 처음으로 이 연구를 시작할 때에 중국 조선족이 미등록 이주노동자로 한국에 ‘돈 벌러’ 오고 한국에서 인권옹호자들이 조선족에 대한 차별을 한국정부의 재미동포에 대한 우대정책과 대비시켜 비판하는 것에 주목했었습니다. 하지만, 제게 풀리지 않는 의문점은 트랜스내셔널 코리아의 불평등한 형태였습니다. 왜냐하면 일본이나 구소비에트령에 거주한 한인 디아스포라들은 소수 인권운동가들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거의 관심을 못 받았고 제가 분석한 트랜스내셔널 코리아’에서 제외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는 과거 냉전시기에 이 디아스포라 사회들 특히 재일조선인의 시민권 영주권 등이 남북의 이데올로기 경쟁의 각축장이었던 것과 큰 대조를 이룹니다. 

왜 재일 조선인들과 구소비에트령의 한인 다아스포라들의 참여가 배제된 불평등한 트랜스내셔널 코리아 형태(A hierarchical community)인가, 하는 질문을 가지고 제가 오랫동안 연구해 오던 전 지구적 자본주의 체제를 들여다보니 이 트랜스내셔널 코리아 형태가 전 지구적 자본주의 체제의 변화로부터 형성되었다는 결론을 내리게 되었습니다. 다음 질문에 대한 제 답에서 좀 더 설명을 하지만 저는 구 소련 사회주의를 넓은 의미의 ‘국가 자본주의’라 해석한 맑시즘 연구를 기초로 중국과 북한도 20세기 생산력 발전을 최우시하며 노동가치론 등 (산업)자본주의의 원리를 유지했고, 이는 정치와 이데올로기에서 어떤 모순을 낳았는가를 이 책에서 설명했습니다. 

그리고 남북·중국이 특히 탈냉전시기라 불리는 시점에서 각기 내재적 모순과 위기를 ‘동시적’으로 해결하려 하고 신자유주의 자본주의적 개혁도 도입하는 과정에서 북한에서 중국으로, 중국에서 한국으로 오는 미등록 이주노동자들이 생겨났다고 분석합니다. 예를 들면, 2000년 중후반까지의 북한주민의 중국으로의 탈북과 중국 조선족의 한국으로 노동력의 이동은 중국정부가 국경통제에서 한 눈을 감아서 가능했지요. 소위 ‘탈북자’와 ‘식민지 시대에 떠나 귀환한 조선족 동포’들은 자유나 부에 대한 열망으로 국경을 넘는 것은 각 체제 내의 모순과 위기를 극복하려는 체재적 변화에서 기인합니다. 『자본의 무의식』은 이 세 국가들이 20세기 제국주의 지배 하에서, 또 냉전 하에서 발생한 체재 내의 해결되지 못한 모순과 계속됐던 위기를 분석합니다.

‘자본의 무의식’에 대해서 다음 질문에 대한 답에서 좀 더 부연하겠습니다.

Q. 66쪽의 지구적 한국 자본주의와 그 위계질서에 대한 분석에서, “자본과 노동의 교환을 통해 (남북한과 중국에서의 산업적 축적의 ‘동시적’) 위기를 해결하고 이 교환 과정을 민주화의 과정으로 상상하려 하는 이 나라들”이라고 적었습니다. 여기서 민주화라는 건 우리가 통상적으로 알고 있는 ‘대의민주주의’의 의미가 아닌 것 같습니다. 어떤 의미인가요?

저는 맑시즘의 관점에서 ‘민주화’라는 의미를 법과 정치체제의 형식이 아닌 평등한 ‘사회적 관계’로 해석했습니다. 1970년대부터 현재까지 맑시주의자들은 20세기의 사회주의 국가들이 진정한 사회주의 체제인가 ‘국가 자본주의’ 체제인가라는 문제제기를 끊임없이 해왔는데요. 즉, 토니 클리프 등은 소련과 중국이 기술혁신을 통해서뿐 아니라 노동에 의한 차별분배를 통해 생산력의 급속하게 발전시켜 자본축적을 도모하는 등 자본주의 원리를 적용해왔고, 이를 평등한 분배 등 원래 유토피아적 사회주의와 상치되었는지를 분석해왔습니다. 또한 2000년대에 들어와서는 정치 문화 연구자들은 서구의 케인주의적 국가 자본주의와 구 소련 하 ‘사회주의’ 국가가 ‘국가 자본주의의’ 다른 형태이며 이들이 동시에 ‘대중 민주주의’라는 쌍둥이를 낳았다고 분석하였습니다. 

저는 이러한 연구들을 토대로 북한의 사회주의 혁명과 중국 조선족 소수민족의 역사를 통해서 중국의 사회주의 혁명을 분석하는 데 있어서, 이 두 국가가 소련이 처했던 비슷한 모순과 위기가 식민주의·탈식민주의 하에서 어떻게 나타났으며, 어떻게 체재 내로 합리화하려 하였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러 정치 경제적 위기를 지속적으로 표출해냈는가를 설명합니다. 즉, 북한에서는 이 모순과 위기가 만주항일무장투쟁의 역사와 제3세계 탈/식민지하에서의 계속된 북한의 경제 정치 위기 등으로, 중국에서는 조선족 소수민족에 대한 해결되지 않은 국적 문제 등으로 경험되었는지를 분석했습니다. 또한 이 모순들이 계속되고 이를 위한 극복의 노력이 어떤 위기를 생산했는가. 이 위기 극복의 또 다른 면에서 탈냉전이란 현상과, 사유재산권, 자유주의적 트랜스내셔널 노동의 이동 등이 어떻게 시작되었고 어떤 의미를 가지는가. 이러한 역사의 반복을 어떻게 개념화할 것인가 등등을 문서와 인터뷰를 통해 분석하였습니다. 

이와 같이 이 책에서 저는 20세기 사회주의 혁명의 실패를 부각하기보다는 이 역사가 내포한 ‘민주주의’ 내지 유토피아적 해방을 해석하고 이 역사가 냉전 시기와 탈냉전 시기에서 어떻게 전이되고 표상되는지에 관심을 두었습니다. 이는 종족민족주의나 민족국가 패러다임 안에서는 설명될 수 없고, 전 지구적 자본주의 역사와 변화의 분석을 통해서만 가능합니다. 

한글판 서문에서 밝혔듯이 “자본주의에 대한 마르크스주의와 비판이론은 민족통일의 과거와 현재에 새로운 분석 틀을 제공한다. 자본주의는 사회관계를 끊임없이 상업화하고 불평등과 위기를 자초하지만 동시에 미래에 대한 유토피아적 상상을 만들어낸다. 자본주의 체제가 자체의 위기를 극복하고 초월하려는 동력이 민족 공동체 구성이라는 정치와 맞물려 있다. 자본주의가 사회적 삶을 추상화하는 과정은 정치문화적으로 매개되는데, 민족통일이라는 또 하나의 이상과 이를 현실화하려는 노력들이 그 하나이다. 이에 따라 민족통일에 대한 유토피아적 상상체계도 자본주의적 삶과 욕망, 그리고 그 안에 내재되어 있는 위기를 극복하려는 개인과 국가들의 초국경적 일상의 정치에 의해 재구성되어 왔다. 이 책은 계속되는 냉전적 사고와 자본주의에 대한 모순적 경험과 감성에 눌려지고 부풀려진 통일과 민주주의 현실에 대한 고찰”입니다.

이러한 시각으로 보면 “각각 1980년대와 1990년대 중국과 북한에서 시작된 사유재산과 시장의 확대 등의 개방정책은 역사적 ‘단절(rupture)’이나 ‘이행(transition)’이 아닌 연속선상에 있다. 이 책은 이 20세기 사회주의 체제의 주요 모순과 이의 극복하려는 노력이 여러 역사적 시점에서 어떻게 다르게 반복되었는지를 설명하고, 이 역사 안에서 중국과 북한의 체제 변화를 고찰한다. 따라서 나는 ‘(선형적) 역사적 이행론(historical transition paradigm)’을 비판하며 20세기와 21세기 역사의 동력과 변혁을 ‘반복(repetition)’이라는 비판이론 개념으로 재해석”합니다. 

‘자본의 무의식’은 프레드릭 제임슨의 ‘정치의 무의식’(political unconscious)의 개념을 기반으로 자본축적의 사회관계가 사회문화적으로 상징화되는지를 설명하고, 이에 더하여 역사와 시간에 대한 표상 및 경험을 설명하는 개념입니다. 한국 정치는 북한 주민과 중국 조선족, 또 다른 개발도상국에서 이주노동자들이 미등록 이주노동자로 오게 되는 과정을 북한 주민의 민주화에 대한 열망, 중국 조선족의 고국으로의 귀환, 이주노동자의 ‘세계 시민권’(cosmopolitanism)으로 보아, 이들의 권리를 보장하는 것을 각기 ‘인권’과 ‘평화’의 문제로, 식민지 시대의 유산의 청산 내지 ‘배상’의 문제, ‘세계 시민주의’로 각기 서로 다른 정치체계로 편입하였습니다. 

이로 인해 이 그룹들의 자본주의적 사회관계는 우리의 시야에서 가려져 있을 뿐 아니라 이들이 이주노동자라는 점도 또 이들이 맺는 한국 국내 노동자와 관계도 그 많은 트랜스내셔널 연구와 디아스포라 연구 그리고 국내 노동자 연구에서 보이지 않습니다. 서로 다르게 호명된 이들의 중첩된 이주노동자 성격을 분석한다는 점에서 이 책은 탈노동시대의 노동자 연구입니다. ‘난민’, ‘이주노동자,’ ‘탈북자’ 등 국경을 넘는 이들이 남북한에 있는 한인들과 맺는 자본주의적 사회적 관계에서 파악하며, 이들이 말하는 종족·민족·국가 등의 개념이 자본주의 사회관계 속에서 어떤 정치와 일상의 언어로 표현되는지를 이 책은 이들의 담론과 행위를 분석하여 그 안에 담긴 의미를 살피고, 억압되어 있지만 무의식적으로 삐져나오는 자본주의의 욕망을 포착하는데 목적이 있습니다. 

Q. 북한의 자본주의 도입 과정 분석을 보면, ‘내재적 접근’(송두율)을 시도하는 듯합니다. 이런 해석이 맞는지요? 혹은 필요하다고 보시는 것인가요? 

저는 내재적 외재적 접근의 틀보다는 맑시즘의 시각에서 남과 북의 분단과 통일을 분석합니다. 일제 강점시기의 민족해방운동도 독립된 민족국가의 건설과 주권의 문제가 아닌 조선에서 소작권과 토지를 잃고 만주로 떠나 정착한 농민들의 시각에서 접근합니다. 남북의 분단과 통일의 의미가 이들과 이들 후손에게 어떤 의미 있는지를 분석하지요. 북한도 레닌과 트로스키의 논쟁으로 붉어진 사회주의 혁명에서 우선적 생산력 발전과 노동가치설 등의 자본주의 원리의 계속된 적용 내지 잔여의 문제를 직면하면서 항일투쟁의 역사가 어떻게 정치 이데올로기화되었는지 설명합니다. 북한이 소련·중국의 사회주의 건설 과정에서 나타난 모순과 위기와 어떤 유사점과 상이한 점이 있는지, 또 20세기 사회주의에 대해 어떤 함의를 갖고 있는지를 분석하고 있습니다. 

Q. ‘외노협’(외국인이주노동운동협의회)의 전략적인 인권과 노동권 분리를 비판하고, 신자유주의 자본주의(국가를 넘어선)를 넘어서는 인간의 본질적 권리로서 시민권을 강조했습니다. 역사적으로 그러한 노동권 혹은 노동의 이주가 가능했던 적이 있을까요?

초국경적 노동의 자유와 이주의 자유는 여전히 근대 해방의 역사와 유토피아 정치의 핵심에 있습니다. 예를 들어, 1871년 파리코뮌은 외국인에게도 똑같은 권리를 부여하며 사회적 관계를 국가와 자본의 통제로부터 해방시키려 했던 운동입니다. 이러한 맑시즘 연구와 접근방법은 하나 아렌트처럼 인간의 본질적 권리를 시민권으로 상정하고 국민국가에서 시민권을 박탈당하고 추방당한 이를 ‘국가가 없는 주체’(stateless subject)로 근대 국민국가의 폭력을 개념화하는 접근 방법과 다릅니다. 

외노협과 외국인 이주노동자 운동하는 이들은 외국인 노동자와 조선족 이주노동자를 동등하게 대해야 하는지, 아니면 조선족 이주노동자를 우대해야 하는지 논쟁을 벌였는데요. 이는 세계시민권(cosmopolitan rights)과 종족민족주의에서의 국적권 여부의 갈등이었습니다. 이는 조선족 이주노동자들이 중국정부가 이중국적을 허용 안 하는 상황에서 한국에서 시민권이 아니라 노동권을 원했던 현실을 무시한 것이었습니다. 

또한, 한나 아렌트의 ‘국가가 없는 주체’의 개념으로 보면 설명이 안되는 ‘탈북자’ 아닌 ‘탈북자’들이 있습니다. 1960년대에 중국으로 탈북해서 문화혁명 중에 억압을 받은 후, 계속 북한 재외공민증을 가지고 살아오다 1990년대 후반이나 2000년대에 한국에 온 이들입니다. 한국정부는 이들을 북한공민으로 간주하여 ‘탈북자’로 인정을 받지 못해서 국민국가의 사각지대에 있는 ‘국가가 없는 주체’라고 개념화될 수 있겠지만, 이를 좀 더 심도 있게 이해하려면 이들의 국가관, 시민권의 개념 이상으로 이들의 사회적 삶을 들여다봐야 합니다. 이들이 여러 번 국경을 넘은 것은 한 국가를 떠나거나 타국으로 이주하는 것을 의도한 것이 아니라 그냥 강을 건너 옆 동네를 가거나 좀 더 나은 삶을 위해 거주를 옮긴 것이지요. 

아울러, 이러한 1960년대 ‘탈북자 아닌 ‘탈북자’ 또는 ‘난민’을 트랜스내셔널 주체로 개념화하는 것도 어렵습니다. 학계에서는 보통 트랜스내셔널 주체는 두 국가 (시민권을 가진 나라와 모국) 사이에 존재하여 양쪽 국가에서 경제적으로 정치적으로 영주권, 투자권 등 여러 혜택을 누리는 자들로 연구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1960년대에 중국으로 떠나 몇 십 년 뒤 한국에 온 이들은 여전히 중국에서도, 남, 북에서도 다 외부적 존재로 있습니다. 이 책에서 일제 강점기에 조선에서 만주로 이주해 해방 후 사회주의 혁명 후에도 중국에 정착하게 된 조선인들처럼 어떻게 국적의 정치(단일국적, 이중국적, 다국적)의 폭력성을 경험하였는지, 또 이들의 반복된 이주의 경험이 이런 왜 국민국가 틀로서는 설명이 안되는지를 분석하였습니다.

Q. 1990년대와 2000년대 초 조선족들의 처우는 책 속 인터뷰에도 나와 있듯이 매우 열악했습니다. 현재는 어떤 상황인가요? 

이 책은 1990년대 중후반부터 2008년경까지 트랜스내셔널 코리아(A hierarchical community) 형태를 이들의 국경을 넘어 노동하는 경험과 역사에 대한 상징화를 ‘자본의 무의식’으로 개념화에 초점을 두었습니다.

Q. 많은 분석이 1990년대나 2000~2010년의 자료나 이론 등에 기대고 있습니다. 2024년을 바라보는 현재의 입장에서 그런 분석이 어떤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시는지요?

2010년대부터 중국과 북한의 국경 통제가 심화되고 북한의 경제가 호전되어 한국으로 오는 탈북자들이 급격히 감소했습니다. 중국 조선족과 이주노동자들의 처우도 많이 달라지고 증가하며 더 제도화되었습니다. 하지만 이들을 수용하는 한국의 경제와 민주화와 남북의 민족통일에 대한 역사적 사회적 인식을 어떻게 새롭게 인식할 수 있는지, 이를 위해서는 20세기 자본주의와 사회주의 역사를 재고찰하고 자본축적의 위기와 모순을 이해하는 것이 왜 중요한지, 또 이러한 역사적 구조적 변화와 모순, 폭력 등이 어떻게 일상에서 경험되고 표징화되며, 그 한계점 또한 어떻게 포착할 수 있는지를 이 책은 분석하고 개념화하는데, 이는 여전히 현재를 이해하는 데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Q. 한인 디아스포라의 남한-북한-중국의 이주 노동이 ‘트랜스내셔널 코리아’인 것 같습니니다. 그런데 좀 더 확장하면, 재외동포가 약 720만 명이 되는 상황에서 ‘트랜스내셔널 코리안 월드(혹은 그냥 월드)’도 가능할 것 같습니다. 이런 생각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이 책에서 ‘트랜스내셔널 코리아’는 한국과 북한, 한인 디아스포라의 통합이 아닙니다. 첫 번째 질문에 대해 답을 했듯이, 제가 개념화한 ‘트랜스내셔널 코리아’는 왜 일본과 구 소련 지역에 거주하는 한인 디아스포라가 정치 경제적으로 제외되는 계급적(hierarchical) 형태를 띠고 있는가에 초점을 두고 있습니다.

Q. 『자본의 무의식』과 향후 연구 관련, 한국 대학/교수사회에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세계적으로 또한 국내에서도 포스트 식민주의 등의 시각으로 민족, 민족국가 등 현상에 관심이 많았고 이를 ‘공간’(space)의 개념으로 이해하여 어떻게 국가를 담론이나 행위를 통해 상상하고 구성되는지에 대한 연구가 많았습니다. 역사도 기억의 정치로 최근에 많이 연구가 되어왔습니다. 제 책은 ‘시간’(time, temporality)의 개념에 비중을 두고 즉, 20세기·21세기에서 자본주의와 사회주의 체제 구분과 시기 구분의 정치학, 역사의 진보론의 여러 형태와 그에 대한 비판, 역사의 반복 등 시간의 정치학을 통해 과거와 현재를 분석했습니다. 이 시간의 개념에 대한 토론이 활성화되었스면 좋겠습니다. 
이 책을 국내 학계는 탈북자 연구, 이주 노동자 연구, 난민 연구, 사회사 연구 등으로 위치시킬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렇게 파편화된 주제 영역으로 간주하지 말고 책의 전체적 맥락을 이해하여, 20세기부터 지금까지 자본주의와 종족민족주의의 상호 관계에 대한 동아시아 역사와 일상의 연구로 읽히고 토론되기를 바랍니다. 

김재호 기자 kimyital@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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