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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받은 자유
상처받은 자유
  • 김재호
  • 승인 2024.02.07 1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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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_『상처받은 자유』 카롤린 암링거·올리버 나흐트바이 지음 | 이신철 옮김 | 에코리브르 | 496쪽

개인화하고 물화한 ‘자유’에 대한 성찰
“자유지상주의적 권위주의는 후기 근대 사회에 반기를 들지만, 그 핵심 가치인 자기 결정과 자기실현의 이름으로 반항한다.”

사회학적이고 시대 진단적인 이 책은 비판 이론에 기대어 개인의 자유와 주권에 대한 요구가 민주주의 사회에 위협이 되는 후기 근대의 항의 유형을 분석한다. 암링거와 나흐트바이는 1,150명의 수평적 사고자를 대상으로 온라인 설문조사를 실시하고 그중 45명과 심층 인터뷰를 진행했으며, 우익 포퓰리즘 정당 ‘독일을 위한 대안(AfD)’의 지지자 16명과도 대화를 나눴다. 저자들은 자료를 분석하는 가운데 막스 호르크하이머·테오도어 W. 아도르노의 《계몽의 변증법》, 테오도어 W. 아도르노·엘제 프렌켈브룬스비크·대니얼 J. 레빈슨·R. 네빗 스탠퍼드의 《권위주의적 성격 연구》, 헤르베르트 마르쿠제의 《일차원적 인간》, 에리히 프롬의 《자유로부터의 도피》 등을 참조하며, 그 과정에서 고전적 프랑크푸르트학파의 이론을 더욱 발전시킨다.

자유지상주의적 자유 이해

“나의 자유가 곧 너의 자유일 필요는 없다./나의 자유, 좋다! 너의 자유, 안 된다!/나의 자유는 헌법으로 보장된다./너의 자유는 지금까지 관심이 없었다.”(바르바라 페터스·게오르크 크라이슬러, 《나의 자유, 너의 자유》)

《상처받은 자유》는 위 인용문으로 논의를 시작한다. 암링거와 나흐트바이의 정의에 따르면 ‘자유지상주의적 자유 이해’란 사회적 관행을 자신의 자아실현에 대한 부당하고 외부적인 제약으로 인식하는 태도다. 이러한 태도를 지닌 자들은, 이를테면 마스크 착용이나 성인지 감수성적 언어 관습을 자기 계발을 방해하는 봉쇄로 인식한다. 여기서 더 나아가 공동의 자유를 가능하게 하는 전제를 반대하기도 한다.

이러한 자유지상주의적 자유 이해는 권위주의와 결합한다. 저자들은 자유지상주의적 권위주의를 20세기 비판 이론에서 제시하는 권위주의적 성격의 변형으로 간주한다. 구속력 있는 권위적 인물에 의존하는 고전적 권위주의 유형과 달리, 자유지상주의적 권위주의 유형의 사람들은 그 권위를 외부적 권위가 아니라 자신의 자아와 동일시한다. 그리하여 그들은 ‘자유지상주의적인 새로운 권위주의’에 대해 이야기하며, 사회적 관계가 제거된 개인적 자유로 실체화한 ‘권위주의적 자유’인 ‘물화한 자유’에 대해 말한다.

자유를 둘러싼 갈등의 전개는 최근 수십 년 사이에 정점에 도달했다. 그 갈등은 개인의 행동을 극도로 제한하는 개입주의적 국가의 복귀를 특징으로 한다. 오늘날 시위 현장에 나온 사람들은 전통적 우익과 달리 강한 국가가 아니라 약하고 거의 없는 듯한 국가를 원한다. “하지만 그들의 때때로 경박한 전복 행위와 다른 견해에 대한 광적인 거부는 동시에 권위주의적 태도를 증명한다. 그들은 취약한 집단과의 연대를 거부하며, 자신들의 자유를 제한하는 장본인으로 지목한 사람들에 대해 언어적으로 무례하고 매우 공격적이다. 그들은 우파적 음모론을 제기하지만, 우파라는 비난은 단호히 거부한다. 개인의 무조건적 자율을 고수하는 이러한 권위주의는 기존의 정치적 좌표가 혼란에 빠졌다는 것을 보여주는 징후다.”

저자들은 “이러한 자유지상주의적 권위주의를 사회적 의존성을 배제하는 개인주의적 자유 이념의 징후로 이해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자유는 공유된 사회 상태가 아니라 개인의 소유물이다. 자유지상주의적 권위주의는 후기 근대 사회에 반기를 들지만, 그 핵심 가치인 자결과 주권의 이름으로 반항한다”.

자유지상주의적인 권위주의적 태도의 배후에는 후기 근대 주체성의 두 가지 해결할 수 없는 모순이 놓여 있다. 한편으로 개인은 그 어느 때보다 자기 결정을 하는 주체로서 대우받는 동시에, 자기의 경쟁적 자율을 그에 기초해 펼쳐야 하는 사회적 조건에 대한 주권적 통제권이 없다. 다른 한편으로 후기 근대적 개인은 자기를 스스로 지식을 습득하고 타인의 지식의 배후를 캐묻고자 하는 비판적 주체로서 이해한다. 하지만 여기서도 그들은 외적 한계에 부딪힌다. 현실은 점점 더 복잡해지고 개인이 꿰뚫어 보기가 점점 더 어려워진다.

이 책의 공저자인 카롤린 암링거 문학사회학자이자 바젤대학교 독어독문학과 연구조교이다. 사진=위키피디아

자유지상주의적 권위주의자의 사회적 성격 유형

고전적 권위주의 연구에서 가장 자주 만날 수 있는 사회적 성격은, 외부로부터의 인정이 중요하고 일탈에 대한 두려움이 지배적으로 나타나는 ‘관습적’ 유형과, 복종과 공격성 사이에서 진동하고 약함에 대한 두려움을 지니는 ‘권위주의자’ 유형이었다. 이러한 성격 유형들이 사라진 것은 아니지만, 당시에는 주변적이고 특이해 보인 인물들, 즉 ‘반항자’라고도 불리고 자신의 이드 경향을 파괴적으로 외부로 돌리는 ‘무법자’와 현실을 상상의 대용물로 대체하는 ‘망상가’가 더 눈에 띄었다. 이러한 사회적 성격 유형은 자유지상주의적 권위주의의 선구적 유형을 이룬다.

저자들의 연구에 따르면 ‘반항자’는 대개 문명화한 형식으로 나타난다. 이를테면 그들은 공영방송 시청료 납부를 거부하고 독일제국 시민증(‘제국시민운동’의 증표. 제국시민운동은 현대 독일연방공화국과 그 기본법 체제를 부정하고 제2차 세계대전 이전 체제로의 회귀를 목표로 하는 반동적 보수주의 및 극우 성향의 사회운동)을 소지하거나 다가올 봉기에 대비해 식량을 비축한다. 그러나 저자들은 인터뷰 과정에서 단적으로 군사 훈련과 허무주의적 급진성에 매료되어 무장한 제국 시민들과 접촉을 유지하거나 일시적으로 독일민족민주당에 가입한 사람들도 만났다. 그들에게 군사 훈련과 허무주의적 급진주의는 큰 매혹으로 다가왔다.

저자들은 현재의 ‘음모론자’를 오래된 권위주의 연구의 ‘망상가’로 분별한다. 음모적 사고에 빠져 인식적 분리를 자기에게 권한을 부여하는 수단으로 사용하는 당시의 망상가는 사회적으로 통합되지 못한 채 경제적 생산 과정에서 배제되어 고립이 강화된 사람들이었다. 저자들은 수평적 사고자 및 퇴행적 반항자들과의 대화에서도 비슷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대체 대상을 향한 적대적 투사

암링거와 나흐트바이는 자유지상주의적 권위주의의 공격적 탈억제를, 파괴적이고 공격적이며 과도한 잠재력을 지닌 경쟁 사회의 규범과의 동일시를 통해 설명한다. 자유지상주의적 권위주의자들은 저자들에게 실로 다양한 상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러나 그들은 모두 국가의 개입, 엘리트 또는 문화적 소수자들이 자신의 자기 결정권과 주권을 손상했다고 본다는 점에서 하나가 된다. 그리하여 그들은 자신들의 개인적 삶의 과정을 막다른 골목으로 몰고 간 사회에 의문을 제기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굴욕을 대체 대상에 공격적으로 투사한다.” 이 과정에서 우파 포퓰리즘에서와 마찬가지로 고소득 일자리의 여성화와 점진적인 규범 변화에 직면해 불안정해진 ‘주변화한 남성성’이 스스로를 위한 공간을 창출한다. 그들은 이전의 대안과 자신의 정체성이 2015년의 난민 수용으로 위협받고 있다고 느낀다. 하강하는 지식인들은 ‘캔슬컬처’로 압박당하고 있다고 생각하며, 수평적 사고자들은 글로벌 엘리트들에 맞서 거리로 나선다. 그러한 가운데 오늘날에도 여전히 인종차별, 여성 혐오, 반유대주의적 고정관념이 적대적으로 투사되어 표현된다.

사회적 자유: 자유의 실현이 성찰해야 할 방향

문헌사회학자이자 사회학자로서 저자들은 ‘자유지상주의적 권위주의’ 문제에 대한 특별한 해결책을 갖고 있지 않다. 그들은 이 책을 우리가 처한 불만족스러운 상태에 대한 사회적 논의에 이바지하는 것으로 이해한다. 그럼에도 여기서 기본적인 것은 저자들이 《상처받은 자유》를 후기 근대 사회의 역설적 변형에 대한 분석 맥락에서 얻었다는 점이다.

저자들은 개인의 자유와 개인의 자기실현 및 특이화를 부정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러한 개인의 자유와 자기실현 및 특이화가 그 사회적 전제를 의식하는 가운데 전개되어야 하며 공동체로부터의 분리를 목표로 해서는 안 된다고 지적한다.

그리하여 저자들은 악셀 호네트의 ‘사회적 자유’를 후기 근대 사회에서 자유의 실현이 성찰해야 할 방향으로 제시한다. 악셀 호네트의 규정에 따르면 “개인에게 자기의 자유주의적 자유권을 좀더 효과적으로 인지할 수 있는 물질적 전제들을 보장”해야 할 사회적 자유는 개인이 서로의 의존성 속에서 상호 인정하는 자유다. 이러한 사회적 자유가 추구되어야 하는 까닭은 “주체가 제도적 관행의 틀 안에서 바로 상대방의 목표들에서 그 자신의 목표가 실현될 수 있는 조건을 간취할 수 있는 까닭에 상호 인정 관계를 맺게 되는 그러한 상대방과 마주칠 때” 비로소 인간은 현실적으로 자유롭기 때문이다. 이제 그러한 자유의 조건은 자유의 제도와 규범적 토대를 확장하는 것, 예를 들어 삶의 위험을 완화하는 사회 국가, 다가오는 팬데믹에 대비하는 의료 시스템, 극단적 기후 사건에 대응할 수 있는 재해 예방 등이다.

올리버 나흐트바이 바젤대 사회학과 사회구조분석학 교수이다. 사진=위키피디아

책의 구성

1장 “계몽의 아포리아”에서 자유 이념의 비판적 잠재력을 이중적 측면에서 살펴본다. 자유 이념에는 한편으로는 자유의 이름으로 동원되는 사회운동이 연결된다. 다른 한편으로 자유의 규범은 항상 그 모순과 자기 위험에 대해 성찰하고 사회 현실에서 자유가 어느 정도까지 실현될 수 있는지 비판적으로 검토할 것을 요구한다.

2장 “의존성 속의 자유”는 근대적 자유의 아포리아를 추적하며, 근대적 개인의 역사적 원천으로 되돌아간다. 1970년대 이후 후기 근대적 개인, 즉 자유 갈등을 포함하는 창조적 자기실현자의 성립을 재구성하며 그의 엮임과 얽힘, 그의 요구와 사회적 전제를 분석한다. 그리고 자유의 의미 및 그 반대 방향의 부작용을 논의한다. 해방과 자유의 역사는 현대 사회의 병리학을 파악하고, 후기 근대 개인도 오직 사회 속에서만 자유로울 수 있다는 것, 아니 오직 사회와 더불어서만 개인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이해하는 데 결정적인 의미를 지닌다. 아울러 사회학자 울리히 벡과 함께 저자들은 여태까지 증대해온 행동 공간을 제한하는 부정적 개인화를 분석한다.

3장 “무질서의 질서”에서는 저자들이 퇴행적 근대화가 작동한다고 보는 후기 근대 사회의 사회적·정치적 동역학 속에 개인성의 곤경을 자리매김한다. 더불어 퇴행적 근대화를 근대화와 반근대화의 모순적 동시성을 특징으로 하는 발전으로 이해한다. 규범 변화와 차별에 대한 감수성 증대는 정치적 공간을 열어주지만, 또한 폐쇄성과 새로운 갈등을 낳기도 한다. 이러한 조건에서 지식을 둘러싼 싸움이 벌어진다. 실로 개인은 더 많은 교육과 지식을 전유하는 기술을 소유하지만, 역설적으로 그들은 점점 더 현실을 알지 못한다. 전 지구적 위험이 증가함에 따라 제3자의 지식, 특히 과학적 전문성에 대한 의존이 발생한다.

4장 “사회적 상처”에서는 후기 근대의 딜레마들로 인해 개인의 내면에서 초래된 정서적 긴장과 마찰을 다룬다. 여기서는 본질적으로 세 가지 딜레마, 즉 우선 관철됨으로써 부정의에 대한 감수성을 증가시키는 평등주의 규범들의 역설, 그리고 법적으로 명문화한 바람직한 상태와 그 상태의 불충분한 실현 사이의 격차에서 출현하는 열망 결핍, 마지막으로 일반적으로 인정되는 목표가 일정한 사회 규칙을 위반하는 행동 방식을 조장하는 사회적 아노미 상태를 본다. 여기서는 규범에 대한 과도한 동일시가, 그러나 또한 파괴적일 정도로 반항적인 실천이, 즉 지나친 성공 추구와 경쟁 사고 또는 우월감이 문제가 될 수 있다. 그러한 반응은 1970년대 이래로 나르시시스트의 형상과 결부되며, 이제는 자유지상주의적 권위주의자들에게서 다시 만난다. 여기서 저자들은 오늘날까지 그 시대 진단으로서의 인기가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는 나르시시즘을 명백한 문명의 병이라기보다는 후기 근대 사회의 상상력 살림살이가 심하게 불안정하다는 신호로 읽고자 한다.

5장 “자유지상주의적 권위주의”에서는 자유의 이상이 지극히 비자유주의적인 견해 및 실천과 결합하는 규범적 무질서를 어떻게 설명할 수 있는가 하는 물음을 다룬다. 자유지상주의적 권위주의의 성격 구조는 어떠한가? 자유지상주의적 권위주의는 어떤 인물로 나타나고 어떤 행동 방식으로 표현되는가? 여기서 저자들은 자유지상주의적 권위주의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물화한 자유의 징후라는 생각에 의지한다.

6장 “진리 추구자의 몰락”에서는 자유, 평등, 정의의 이름으로 공론을 발하는 보편적 지식인 유형이 어떤 방식으로 퇴행적 경로로 빠져들 수 있는지 살펴본다. 여기서 만나는 지식인들은 표현의 자유나 다수의 이해관계를 집요하게 끌어대지만, 그렇게 하는 것은 특수한 입장을 옹호하기 위해서다. 그들은 서로 다른 정치 진영 간의 이데올로기적 간섭으로 발생하는, 사회에 대한 무뎌진 비판을 예시한다. 연구 대상 지식인들을 하나로 묶는 것은 공통의 적대자, 즉 이전에 배제된 집단과 문화적 소수자의 정체성 정치에 대항한, 그리고 과학적 전문성이나 국가 및 미디어의 이른바 관변화한 엘리트들에 대항한 투쟁이다. 저자들은 이러한 당황스러운 연합을 진보적 변화에 맞선 수동적 자기경직화로 해석한다.

7장 “세계의 재주술화”에서는 ‘수평적 사고자’들의 항의를 살펴본다. 코로나 조치는 사람들이 일상적으로 영위하는 삶의 방식에 강하게 개입했다. 정부는 감염 위험과 질병의 경과에 대한 과학적 증거를 제시하며 전면적인 제한 조치를 정당화했다. 그런데 수평적 사고자들은 이러한 조치 자체를 날카롭게 비판했을 뿐더러 계속해서 그것이 지닌 지식의 근거도 비판했다. 그들은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의 위험을 부인했을 뿐 아니라 그 조치 배후에서 부분적으로 거대한 음모를 보았다.

8장 “파괴적 원리로서 전복”은 2017년의 경험적 연구를 기반으로 한다. 2017년 독일을 위한 대안(AfD)이 제3당으로 연방 의회에 입성하기 전 몇몇 사회운동은 위협적인 선거 결과를 저지하려고 했다. 비정부기구인 캄팍트는 2016년 이 우파 포퓰리즘 정당에 반대하는 온라인 캠페인을 시작했다. 그런데 이전에 이 NGO의 관심사를 지지해온 캄팍트 메일링 리스트의 사람들 일부가 이 행동에 항의했다. 그들은 AfD에 공감을 표명했고, 심지어 그에 투표할 의향이 있다고 밝히는 사람도 적지 않았다. 당황한 활동가들은 학자들과 접촉했고, 저자들은 정치 참여의 신권위주의적 형식들의 실상을 규명하기 위한 연구를 함께 수행하기로 결정했다. 민영화 비판과 같은 진보적 대의를 위해 캄팍트에 참여하는 사람들이 AfD에 대한 친화성을 나타내는 일이 어떻게 가능할까?

김재호 기자 kimyital@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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