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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우 작가의 ‘모르는 사람들’…주눅든 진실을 향하다
이승우 작가의 ‘모르는 사람들’…주눅든 진실을 향하다
  • 김재호
  • 승인 2024.02.13 11:53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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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이 읽기_『모르는 사람들』 이승우 지음 | 문학동네 | 248쪽

“잘 드러나지 않는, 삶의 이면을 비추다.” 바로 이승우 조선대 교수(문예창작학과)의 단편소설집 『모르는 사람들』을 읽으면서 느낀 감상이다. 이 책의 맨 끝에 실린 작가의 말에는 다음이 나온다.  

“작가의 서툰 손놀림을 따라 구석진 세상 이치나 주눅든 진실 같은 것의 흔적을 같이 더듬어 헤아려보(려)는 이가 독자다. 아무도 강요하지 않은 그런 의무를 스스로 짊어지는 이들, 여전히 소설을 쓰는 사람의 여전한 희망을 공유한 이들에게 혈육과도 같은 친밀감을 느낀다. 독자를 향해 쓰는 것이 아니라 그들과 같이 쓰는 것이 소설이라는 생각을 하기에 이르렀다.-『모르는 사람들』 작가의 말 중에서” 

그렇다. 이승우 작가는 사람들이 주목하지 않는 삶의 모순을 낱낱이 드러내고자 한다. ‘구석진 세상 이치’나 ‘주눅든 진실 같은 것’은 다른 말로 표현하자면 세상의 소외된 것들이다. ‘소설’이 작은 말이나 이야기를 뜻하는 것과 일맥상통한다. 웅크리고 있는 작은 진실은 때로 큰 파장을 일으키기도 한다. 그래서 인생은 반전과 모순 그리고 이율배반의 롤러코스터다.

 

우리는 아버지를 제대로 알고 있는가

함께 지내지만 잘 ‘모르는 사람들’은 이 단편소설집의 제목이다. 각각의 단편소설들에는 아는 것 같지만 제대로 모르고 있던 사람들이 등장한다. 특히 아버지에 대한 미스터리한 부분이 많이 등장한다. 여기서 아버지는 기독교적 의미의 신이 아닐까 추측해 본다. 이승우 작가가 천착해온 소설의 길을 떠올려 봤을 때 말이다. 『모르는 사람들』 전반부에 등장하는 네 편의 단편소설은 모두 아버지가 문제(?)다.  

「모르는 사람」에선 “이 세상은 견디는 것”이라고 말한 아버지가 등장한다. 아버지는 신학을 공부하고 신의 뜻을 펼치고 싶었으나 좌절된다. 「복숭아 향기」에서 역시 자신의 뿌리인 아버지에 대한 추적 과정이 묘사된다. 그리고 결국 아버지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깨닫는다. “폭력이 사랑의 증거는 아니지만 사랑이 폭력의 구실 노릇을 하고 있는 것은 틀리지 않은 것처럼 보였다.”

「윔블던, 김태호」에서도 노망이 든 것처럼 보이는 아버지가 등장한다. 이회장이라는 사람은 유학하던 젊은 시절 김태호의 돈을 훔친 것을 죄스러워 한다. 그래서 갚고자 한다. 하지만 이회장의 아들은 노망든 것이라고 간주한다. 김태호가 살았던 집은 마치 자신을 찾지 말아 달라는 것처럼 묘사된다. “세상에 대한 오불관언의 태도는 세상을 향한 오불관언의 요청이기도 했다. 나를 내버려두라. 내가 그대들을 내버려둔 것처럼.”

「강의」에서는 빚의 수렁에 빠진 아버지가 등장한다. 그 빚을 떠안게 된 아들의 이야기는 비참하다. 그런데 이에 대해 설명해 주는 금융 백화점의 얘기는 묘한 설득력이 있다. “사는 게 원래 그래요. 누군가에게 빚을 떠안기거나 누군가의 빛을 떠안거나.”

이승우 조선대 교수(문예창작학과)는 주눅든 삶의 진실을 드러내고자 한다. 사진=조선대 문예창작학과 홈페이지

 

자기 자신이야말로 가장 모르는 존재

후반에 등장하는 네 편의 단편소설들은 바로 자기 자신이 모르는 사람들로 지목된다. 「찰스」는 말레이시아 노동자를 대하는 한 교수의 이야기다. 얽히지 말았어야 하지만 이상하게 끌렸던 동명의 찰스(한국이름 철수)는 떼어내고 싶은 존재다. “궁금한 것이 모두 물음이 되는 것은 아니다. 물음은, 때때로 그 물음에 대한 대답을 감당할 것을 요구한다... 궁금한 것은 왜 궁금하고, 궁금함에도 불구하고 어떤 것들은 왜 묻기가 어려운가. 궁금한 것은 닫혀 있는 상자이기 때문이고, 그런데도 묻기가 어려운 것은 그것을 열었을 때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무슨 일이 일어날지 어렴풋이, 어렴풋이만 예감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원리를 작동시키는 힘에 대해, 이기심이라고 비난하고 싶지 않은 나는 전적으로 자기 보존의 욕구, 즉 생존본능이라고 이름 붙인다.”  

「넘어가지 않습니다」는 폭력적인 남자친구를 피해 도망친 여인이 나온다. 여인은 공짜 와이파이를 쓰려는 외국인 노동자를 대하면서 자신의 처지를 깨닫는다. 정말 이상하고 이상한 삶의 역설이다. “피해자이기만 할 때 그녀는 마음의 부담을 느끼지 않았다. 피해자라는 신분을 가지고 있는 동안은 누군가의 도움을 조건 없이 무제한적으로 요청할 수 있었다. 피해자는 기본적으로 억울한 자이므로, 행한 자가 아니라 당한 자이므로, 비판이 아니라 동정을 받아야 하는 자이므로, 거리끼거나 머뭇거릴 필요가 없으며, 심지어 당당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그 외국인 노동자의 출현으로 야기된 내부의 혼란이, 책임질 것이 없고 어떤 선택도 요구받지 않으며 다만 요구할 권리만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가정된) 그 익숙한 자리가 흔들리는 데 대한 불안과 관련되어 있었다는 사실을 그녀는 비교적 선명하게 인식했다.”

「신의 말을 듣다」의 주인공은 국립대 십 년 차 교수 김승종이다. 그는 고교 시절 친구에게 자취방을 넘기며 범했던 작은 실수 때문에 죄의식에 휩싸인다. 그러면서 과연 신이란 무엇인지 처절히 고민한다. “오래전에 먹은 신 포도가 지금의 이를 시게 하지 않는다... 이것을 저것으로 대체할 수 없고 저것으로 이것을 덮을 수 없다.” 

「안정한 하루」는 그토록 바라던 삶의 평안한 반복이 무엇으로 지탱되고 있는지 처절히 보여준다. 장철수는 자신의 동생 장필수의 등장으로 잊고 있었던 혹은 억눌렸던 과거로 연행된다. “그는 외부에 간섭하지 않으려 했고 외부의 간섭을 받으려고도 하지 않았다. 외부에 간섭하지 않는 것이 곧 외부의 간섭을 받지 않을 권리를 확보하는 길이 되는 것은 아니지만, 그리고 또 그가 그것을 바라서 외부에 간섭하지 않으려 했다고 확신할 수는 없지만, 둘 사이에 아무 상관이 없다고 말하기도 어렵다.”  

『모르는 사람들』의 첫 페이지에는 김수영의 시 「어느 날 고궁을 나오면서(왜 나는 조그마한 일에만 분개하는가)」를 떠올리게 하는 대목이 있다. “하찮은 것에 간절해지지 말자는 말을 하찮은 것에 간절해지는 나를 향해 주문처럼 하곤 했다. (그것이 내가 세상을 견디고 혐오스러운 나를 견디는 방법이었다.)” 하찮은 것에 간절해지는 주눅든 진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진실에 기대어 살 수밖에 없는 현실이 인간의 굴레가 아니던가.

김재호 기자 kimyital@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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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광호 2024-04-19 20:56:50
잘 보고 갑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