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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한우의 『논어』 강의
이한우의 『논어』 강의
  • 최승우
  • 승인 2024.02.19 17:25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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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한우 지음 | 천년의상상 | 1,344쪽

‘말을 논해[論語] 
말을 잘 알아들어[知言] 
사람을 잘 알아보자[知人]’는 것, 
이것이『논어』다 

‘이한우의『논어』 강의’를 만나기 전까지는 나도 『논어』를 선비의 정신 수양서로 알았다. 그런데 아니었다. 『논어』는 보통사람들의 삶과는 거리가 먼 사대부의 교양서가 아니라 일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읽고 공부해야 할 ‘지금 여기’의 필독서이고 리더십의 보고다. 나는 일터에서 40년 가까운 세월을 보낸 터라 『논어』에 관한 한 이한우의 해석이야말로 진짜라는 촉이 온다. 특히, 『논어』는 나이 들거나 은퇴해서 여유가 생긴 다음이 아니라 한참 현역일 때, 사람 보는 눈이 절실한 리더일 때 읽으라는 이한우 선생의 말에서 그의 ‘논어 강의’의 진가를 확인한다. 지금 여기서 일하는 모든 분들께 감히 ‘진짜 논어’를 추천한다. 
- 최인아(최인아책방 대표, 전 제일기획 부사장) -

1. 가장 널리 그리고 오랫동안 오해받아왔던 『논어』의 재발견
 ― ‘꼰대들의 도덕 교과서’에서 ‘제왕학(리더십) 고전’으로의 환골탈태

『논어』를 모르는 사람은 없다. 어떤 고전 필독서 목록에도 『논어』는 빠지지 않고 가장 윗자리를 차지한다. 하지만 ‘공자 왈, 맹자 왈’이라는 관용구에서도 드러나듯, 『논어』는 젊은 세대에게 봉건적 예절을 설교할 때나 써먹는 ‘꼰대들의 도덕 교과서’ 같은 이미지로 소비되어왔다. 물론 이는 전혀 근거 없는 편견은 아니다. 오랜 세월 『논어』는 주자학의 그늘 아래 선비들의 정신 수양서 정도로 박제되어 왔기 때문이다. 

20여 년 동안 『논어』 『주역』 『한서』 『태종실록』 등 동양 고전 수십 권을 번역하고 강의해 온 이한우가 새롭게 해석한 『논어』는 일상의 예의범절을 가르치는 그런 책이 아니다. 공적 영역에서 일을 잘 해내기 위해서 어떤 사람과 함께 일할 것이며, 또 어떻게 리더십을 발휘하고 소통할 것인가, 그 구체적인 기준과 방법을 제시한 실천서다. 『논어』는 옛말로는 제왕학의 고전, 지금 말로는 리더십 훈련서다. 

그렇다면 적재적소에 사람을 써야 하는 리더에게 무엇보다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 사람을 알아보는 눈, 지인지감(知人之鑑)이다. 사람을 판단하는 실마리 중 하나는 말이다. 행동하는 바를 보고 그 사람의 인성과 능력을 가늠하려면 대개는 이미 늦다. 한마디로 ‘논어(論語)’란 논어지인(論語知人), 즉 “말을 논해 사람을 잘 알아보자”라는 뜻을 담고 있다. 『이한우의 ‘논어’ 강의』 는 그간 『논어』에 들러붙어 있던 온갖 편견과 오해를 걷어 내고, 『논어』의 진면목을 오늘날의 시각에서 재발견해냈다.
제왕학(리더십)의 고전으로 환골탈태한 『논어』의 시각으로 보면 핵심 개념들도 다르게 해석될 수밖에 없다. 대표적인 개념이 예(禮)이다. 

예(禮)란 주희가 좁혀놓은 것처럼 가례(家禮)나 예법(禮法)에 한정되는 것이 아니라 사리(事理), 즉 ‘일의 이치’를 말한다. 먼저 공자가 생각했던 예(禮)를 알아보자. 『예기』 중니연거(仲尼燕居)편에서 공자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예(禮)란  무엇인가? 그것은  일에 임해서 그것을 다스리는 것이다. 군자는 자신의 일이 생기면 그것을 다스리게 되는데, 나라를 다스림에 있어 예가 없으면 비유컨대 장님에게 옆에서 돕는 자가 없는 것과 같다.” 예를 이처럼 공자 자신이 명확하게 ‘일을 다스리는 것’이라고 말하는데도 한사코 퇴행적으로 예절이나 가례에 국한시켜서 이해하려는 이유는 무엇일까? 하나는 무지 때문이고 또 하나는 주자학의 체계적인 왜곡 때문이다. - 본문 18쪽 

그간 예의범절 정도로 해석되어 온 예(禮)를 고전 문헌들과 『논어』의 문맥 속에서 ‘일의 이치’로 풀어낼 수 있는 것은 주자학의 그늘을 과감히 벗어나 『논어』를 공자가 본래 추구했던 바로 그 지향점 속에 놓았기에 가능했다. 이제 갓 쓴 선비들의 고상한 손에서 일하는 현장에서 고군분투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진짜『논어』’를 돌려줘야 할 때다. 

2. 불가능한 꿈을 꾸었던 탁월한 현실주의자, 공자의 부활
― ‘일의 형세(命)’ 와 ‘권도(權道)’ 사이에서 지켜낸 ‘마땅함[義]’

『논어』가 구닥다리 예의범절 관련서 취급을 받다 보니, 공자 또한 현실의 구체성과 복잡성을 무시하고 홀로 강직한 척하는 순진한 명분주의자 정도로 그려져 왔다. 이런 공자 모습은 사실 허상이다. 실제 공자는 고집불통[固]에 빠지는 것을 가장 경계했으며, 자신의 도덕적 우월성에만 집착하는 것을 알량한 인[小仁]이라고 여겼고, 널리 사람들을 은혜롭게 하는 큰 어짊[大仁]을 높이 평가했다. 이 책의 저자 이한우가 생생하게 되살려놓은 공자는 기어이 일이 되도록 만드는 ‘탁월한 현실주의자’였다. 공자는 ‘일의 이치[禮]’와 ‘일의 형세[命]’를 두루 헤아려, 때에 맞게 적절하게 그리고 기어이 일을 성사시키는 ‘권도(權道)와 시중(時中)’을 추구한 인물이다. 

이런 공자의 면모를 단번에 보여주는 것이 제자 자로와 염유가 “마땅함을 들으면 곧장 행해야 합니까?”라는 같은 질문을 던지자 각각 서로 다른 답변을 해주는 장면이다. 자로에게는 “부모형제가 계신데 어찌 들었다고 해서 이에 곧장 행하겠는가?”라고 답하고, 염유에게는 “들었으면 곧장 행해야 한다”라고 말한다. 이를 지켜보던 제자 공서화가 의아하게 여겨 묻자 이에 공자는 “자로는 뒤로 물러서려는 경향이 있으니 그래서 나아가게 한 것이다. 염유는 남보다 앞서려는 성향이 있으니 그래서 물러나게 한 것이다”라고 답한다. 사람에 따라, 때에 따라 그에 맞는 적절한 말과 행동이 있는 것이다. 

하지만 공자의 현실주의는 부와 권력을 위해서라면 무슨 짓이든 하는 냉혹한 정치꾼의 권모술수와는 거리가 멀다. 법과 형벌이라는 폭력의 힘이 아니라 어짊[人]과 다움[德]이라는 사람됨의 힘으로 좋은 정치를 세상에 펼치려 했던, 어쩌면 그 불가능한 꿈을 포기하지 않고 현실에 기어이 구현하고자 애태웠던 사람이었다. 현실과 이상 사이에서 균형을 찾고자 했던 공자를 잘 드러내는 모습 중 하나가 부귀빈천에 대한 시각이다.  

우리는 흔히 부귀빈천에 대한 유가(儒家)의 견해를 안빈낙도(安貧樂道)라는 말로 압축해 왔지만, 그것은 여기서 공자가 밝히는 바와는 차이가 있다. 공자는 빈천이란 사람이라면 누구나 싫어하는 것이라고 분명하게 밝히고 있다. 또한, 빈천을 어쩔 수 없이 받아들이는 것과 그것을 마음에서 우러나서 편안하게 여기는 것[安]과는 다르다.

단지 부귀를 얻는 도리가 잘못되었다면 그런 부귀에 처해서는 안 된다고 했고, 빈천하게 된 과정이 설사 도리에 맞는 것이 아니더라도 그릇된 방법으로 벗어나려 해서는 안 된다고 말할 뿐이다. … 그런데 주희는 이에 대해 “가난과 천함을 편안히 여김[安貧賤]”이라고 주석을 달아 오늘날 말하는 안빈낙도(安貧樂道)의 안빈(安貧)을 만들어냈다. 공자와는 거리가 먼 생각일 뿐만 아니라 위선의 뿌리가 이렇게 만들어졌다는 점을 지적해둔다. - 본문 215~217쪽

또한 선공후사(先公後私)의 마음을 가질 것을 촉구했을 뿐 공(公)을 위해 사(私)를 버리라는 멸사봉공(滅私奉公)을 공자는 위선이라고 생각했다. 이익을 보게 되면 이익을 버리는 게 아니라, 그 이익이 마땅한지를 살펴서[見利思義], 마땅하다면 이익을 취하라고도 했다. 공자의 사상은 이토록 현실적이다.   

3. 국내 『논어』 그 오역의 역사를 마감한 정확한 우리말 번역 
― ‘읽으면 이해되는 『논어』’, 20여 년 동양 고전 번역의 결실

그동안 『논어』를 절개 있는 선비들의 도덕 수양서로, 공자를 명분에 살고 죽는 도덕주의자로 봐왔던 역사만큼이나 국내 『논어』 번역도 오랜 세월 오역과 오독의 역사를 답습해왔다. 『이한우의 ‘논어’ 강의』는 논어에 대한 해석뿐만 아니라, 원문 번역 자체도 새롭게 혁신하였다. 
무엇보다 이 책의 저자 이한우가 『인물지』, 『설원(상·하)』, 『심경부주』, 『대학연의』(상·하), 『주역』(상·하), 『태종실록』(전 19권), 『완역 한서』(전 10권), 『이한우의 군주열전』(전 6권) 등 지난 20여 년간 경전(經典)과 사서(史書)를 해설하고 번역해오면서 고전을 연구해 왔고, 2016년부터는 논어등반학교를 만들어 매주 학생들과 『논어』를 읽어왔던, 바로 그 결실이 이 책의 『논어』 번역에 그대로 영글어 맺혔기 때문이다. 

그간 『논어』 번역서들의 오역 사례들을 전부 나열하자면 작은 책 한 권도 모자랄 지경이지만, 그중 핵심적인 몇 가지를 예로 들어 들자. 기존 번역들은 하나같이 ‘교언영색 선의인(巧言令色 鮮矣仁)’을 “교언영색하는 자는 어질지 않다”라고 해 왔다. 이한우는 이를 달리 번역한다. “정교한 말과 아름다운 얼굴빛을 가진 사람들 중에 드물구나! 어진 사람이여.” 교언영색을 직역하면 ‘정교한 말과 아름다운 얼굴빛을 가진 사람’인데 어찌 그 자체로 나쁜 의미겠는가. 결국 교언영색은 그가 어떤 사람인지에 따라 다르게 평가된다. 교언영색하는 이들 중 사이비(似而非)를 가려내는 문제로 바뀌는 것이다. 어떤가? 『논어』 전체 문맥뿐만 아니라, 이게 상식적으로 맞지 않는가? 또 가장 유명한『논어』 첫 번째 장 ‘학이 1’을 예로 들어 그간 어떻게 논어 번역이 엉뚱하게 되어 왔는지 보자.  

학이편 두 번째 구절, ‘유붕자원방래(有朋自遠方來) 불역낙호(不亦樂乎).’ 앞의 구절만큼이나 엉뚱하게 오역되고 있는 것이 이 말이다. 대개는 이렇게 번역한다. ‘벗이 있어 먼 곳에서 찾아오니 즐겁지 아니한가?’ 이 오역에서 방점은 ‘먼 곳’에 찍어야 한다. 물론 먼 곳에서 벗이 찾아오면 반갑다. 그러나 이런 정도 내용이 『논어』 첫머리 세 문장 중 두 번째를 차지할 수는 없다. 만일 이런 번역이 맞다고 한다면 반문을 해보겠다. 가까이 있는 친구가 찾아오면 즐겁지 않다는 말인가? … 이런 오역에서 벗어나는 첫 번째 실마리는 붕(朋)에 있다. 붕은 사적인 친구[友]가 아니다. 공적으로 뜻을 같이하는 친구[同志之友)]가 붕이다. 주희는 이를 같은 무리[同類]라고 했다. 비슷한 뜻이다. 두 번째 실마리는 원(遠)이다. ‘멀다’라는 뜻밖에 모르면 우리는 한 걸음도 나아갈 수 없다. 여기서 원(遠)은 멀다가 아니라 ‘공명정대하다’라는 뜻이다. 『논어』 ‘안연 6’에 나오는 다음 구절에서 원(遠)이 무슨 뜻인지 짐작 가능하다. - 본문 36~37쪽

‘읽으면 이해되는 『논어』’, 이 당연하지만 쉽지 않은 오래된 숙제를 『이한우의 ‘논어’ 강의』가 달성해냈다. 이것은 이 책의 저자 이한우가 『논어』와 공자를 재발견해 낼 수 있었던 가장 근본적인 힘이기도 하다. 

4. 『논어』의 맥을 공자의 지평에서 찾아 나가는 해석학적 시각
― ‘형이상·중·하(形而上·中·下)’, 『논어』 풀이를 위한 삼각편대 

이 책의 저자 이한우가 2016년부터 논어등반학교에서 『논어』를 강의하면서 해석의 핵심 도구로 활용하고 있는 것이 ‘형이상·중·하(形而上·中·下)’이다. 형이상(形而上), 형이하(形而下)라는 말은 『주역』을 총론적으로 풀이한 계사전(繫辭傳)에 나오는 공자 말로서 지금도 철학에서 널리 쓰인다. 쉽게 말해 형이상은 추상적인 것, 형이하는 구체적인 것을 말하는데, 형이중(形而中)은 저자 이한우가 직접 창안한 해석 도구이다. 오늘날 용어로 치자면 정의(定義)라 하겠다. 형이상학과 형이하 사이에 형이상을 살짝 풀어주는 형이중(形而中)을 만들어 넣은 이유는 그래야만 『논어』에서 사용하는 공자 언어가 생생하게 입체적 생명력을 얻기 때문이다. 

또한 『논어』는 탁월한 미지의 편집자에 의해 체계적으로 구조화되어 있는 텍스트라서, 『논어』해석의 ‘첫 번째 실마리’는 바로 『논어』 자체의 문맥 속에 있다고 보았다. 『논어』의 ‘형이상적인 개념’은 『논어』 문장들의 ‘형이중(정의)’, ‘형이하(사례)’ 차원에서 구체성을 얻게 되고, 또한 형이하 사례들은 ‘형이상’과 ‘형이중’의 차원에서 그 핵심 의미를 파악 가능하다. 

‘형이상·중·하’라는 해석 방법은 그간 저자가 사서삼경을 중심으로 한 경서(經書) 번역과 연구뿐만 아니라 『태종실록』(전 19권), 『완역 한서』(전 10권), 『사기』(근간) 와 같은 사서(史書) 번역을 놓지 않은 이유와도 맞물려 있다. 경서(經書)가 형이상(개념)과 형이중(정의)이라면, 형이하(사례)가 곧 사서(史書)이기 때문이다. 또한 본격적으로 동양 고전을 연구하기 전에 하이데거를 비롯한 서양 철학의 해석학 훈련을 20여 년간 해오면서 얻은 통찰의 결과이기도 하다.  

『논어』에 자주 등장하는 호학(好學)이라는 말을 예로 들어보자. 흔히들 호학을 ‘학문이나 책 읽기를 좋아한다’로 풀이하고는 한다. ‘형이상·중·하(形而上·中·下)’라는 해석 도구로 『논어』를 해석학적 지평에서 풀어가 보면, 그간 ‘호학’이라는 말이 얼마나 왜곡되어왔는지 절감하게 된다. 우선 ‘학이 14’에서 공자는 “일은 주도면밀하게 하고 말은 신중하게 하면서 도리를 갖춘 이에게 나아가 (아직도 잘못된 것을) 바로잡는다면 실로 (문을) ‘배우기를 좋아한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라고 말한다. 형이중으로 형이상에 해당하는 호학(好學)을 풀어냈다고 할 수 있다. 일단 어디에도 책 읽기를 좋아한다는 말은 없다.

‘옹야 2’에서는 (노나라 임금) 애공이 공자에게 “제자 중에서 누가 배우기를 좋아하는가?”라고 묻자 공자는 “안회라는 자가 있어 ‘배우기를 좋아해’ 분노를 다른 데로 옮기지 않고, 잘못을 두  번  다시  반복하지  않았는데,” 일찍 죽어 지금은 “그가 가고 없으니 아직 ‘배우기를 좋아하는’ 자를 들어보지 못했습니다”라고 답한다. 이것은 호학을 형이중 혹은 형이하로 풀어낸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렇게 해서는 우리는 공자의 본뜻에 한 걸음 가까이 다가갈 수 있게 된다. 배우기를 좋아하는 것, 즉 호학(好學)이란 사실상 ‘겸손하게 부지런히 스스로를 바꿔 나가라’는 뜻이라고 봐야 하는 것이다. 

『이한우의 ‘논어’ 강의』는 『논어』해석의 실마리를 우선 『논어』 자체의 맥락 속에서 찾아내고, 그것을 방대한 경서(經書)와 사서(史書)를 씨줄과 날줄로 삼아 풀어냄으로써, 『논어』해석의 새로운 지평을 열어낼 수 있었다.  

지은이 이한우

1961년 부산에서 태어나 고려대학교 영문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 철학과 석사 및 한국외국어대학교 철학과 박사 과정을 수료했다. 〈뉴스위크 한국판〉과 〈문화일보〉를 거쳐 1994년부터 〈조선일보〉 기자로 일했고 2002~2003년에는 논설위원, 2014~2015년에는 문화부장을 지냈다.

2001년까지는 주로 영어권과 독일어권 철학책을 번역했고, 이후 『조선왕조실록』을 탐색하며 『이한우의 군주열전』(전 6권)을 비롯해 조선사를 조명한 책들을 쓰는 한편, 2012년부터는 『논어로 논어를 풀다』 등 동양 사상의 고전을 규명하고 번역하는 일을 동시에 진행해오고 있다.

2016년부터는 논어등반학교를 만들어 현대인의 눈높이에 맞추어 고전을 강의하고 있다. 서울숲양현재 CEO논어학교에서도 리더들과 함께 공부하고 있다. 2017년부터 2021년까지 약 5년에 걸쳐 『태종실록』을 완역해 『이한우의 태종실록』(전 19권)으로 냈다. 그 외 대표 저서 및 역서로는 『이한우의 사서삼경』(전 4권), 『대학연의』(상·하), 『완역 한서』(전 10권), 『이한우의 주역』(전 3권), 『이한우의 태종 이방원』(전 2권), 『이한우의 설원』(전 2권), 『이한우의 인물지』 등이 있다.

책 속에서

논어(論語)라는 명칭과 관련해 반고보다 한 걸음 나아간 견해가 “논(論)과 말[語]을 모은 것”이라서 논어(論語)라고 했다는 주장이다. 아무 뜻도 없는 동어 반복일 뿐이다. 심지어 “공자 말을 논하여 정리한 것”이라는 견해도 있다. 그럼 제자들 말은 왜 실려 있는가? 이런 주장들은 일고의 가치도 없다. ‘논어’에 담긴 뜻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논어』 전체를 유기적으로 해석한 다음이라야 가능하지만 일단 실마리만 던져본다.

요왈(堯曰)편, 맨 마지막 구절을 보자. “말을 알지 못하면 사람을 알아볼 수가 없다.” 말을 안다는 것은 어떤 사람이 일을 행하기 전에 말만 듣고서도 그 사람을 알아보아야 한다는 뜻이다. 말을 알려면 말이 무엇인지 잘 알아야 한다. 그래서 “말을 논해[論語] 말을 잘 알아들어[知言] 사람을 잘 알아보자[知人]”는 것이 『논어』라는 책의 결론이자 목적이다. 한마디로, ‘논어(論語)’라는 말은 논어지인(論語知人), 즉 “말을 논해 사람을 잘 알아보자”라는 뜻이다. - 본문 15쪽

학이편 첫 세 구절은 바둑 9단 고수가 대국(對局)에서 둔 첫 세 수와 같다. 그것을 통해 전체 대국을 어떻게 끌고 갈 것인지가 사실상 정해지기 때문이다. 이 대국 이름은 공덕(公德) 함양이다. 『논어』는 처음부터 끝까지 제왕학(帝王學) 혹은 리더십 기르기다. 물론 곧은 신하의 도리를 가르친다는 점에서는 팔로워십 기르기도 겸하고 있다.

여기서 우리가 던져야 할 질문은 “도대체 『논어』를 체계적으로 정리한 미지의 편찬자는 왜 이 세 구절을 맨 앞에 두었는가?” 하는 것이다. 기존 풀이처럼 ‘배우고 때때로 익히면 이 또한 기쁘지 아니한가?’ 식으로 듬성듬성 오역투성이 번역을 따라가서는 결코 이 질문을 돌파할 수 없다. - 본문 31쪽

공자는 ‘학이 3’에서 인무야(仁無也) 혹은 불인야(不仁也)라고 하지 않았다. 즉 정교한 말과 아름다운 얼굴빛을 가진 사람들 중에 ‘어진 사람은 없다’거나 그런 사람들은 ‘어질지 않다’라고 말하지 않았다. 비인야(非仁也), 즉 ‘어진 사람이 아니다’라고도 하지 않았다. 말 그대로 ‘드물다’라고 했을 뿐이다. 이 점을 놓친 기존 번역들은 하나같이 “교언영색하는 자는 어질지 않다”라고 풀어놓고 있다. 초점을 빗나간 풀이다. 물론 그 책임은 기본적으로 주희에게 있다. 

그는 이 구절을 풀이하며 “공자가 말씀이 박절하지 않아 오로지 드물다고만 말했을 뿐 (실제로는) 절대 없음을 알 수 있다”라고 말했다. 즉 주희는 선(鮮)의 의미를 무시하고 ‘절대’라고 말하고 있다. 그 잘못은 너무도 크다. 지금도 우리는 흔히 ‘교언영색(巧言令色)’을 아부나 아첨하는 사람의 모습으로 알고 있는데, 이 맥락에서는 그런 뜻이 아니다. ‘교언’은 말을 정교하게 잘한다는 중립적인 뜻일 뿐, 말을 교묘하게 한다는 게 아니다. ‘영색’ 또한 아름답고 좋은 얼굴빛이라는 뜻이다. 교언영색을 직역하면 ‘정교한 말과 아름다운 얼굴빛을 가진 사람’인데 어찌 그 자체로 나쁜 의미겠는가. 결국 교언영색은 그가 어떤 사람인지에 따라 다르게 평가된다. 간략한 표를 통해 이를 살펴보자. - 본문 47~48쪽

이제 벗을 넘어선 사람들과의 관계를 이야기하는데 여기서 공자는 두 가지 단계를 나눠서 말한다. ‘애중(愛衆)’과 ‘친인(親仁)’이다. 먼저 주목해야 할 것은 애(愛)와 친(親)의 뉘앙스다. 애(愛)는 사람을 사랑한다고 할 수도 있지만 주로 동물이나 물건을 ‘아낀다’ ‘아껴주다’는 의미에서 애물(愛物)로 자주 쓰인다. 여기서도 사람을 대상으로 하지만 불특정 다수에 대해 아끼는 마음을 가지라는 정도다. 반면에 친(親)은 강도가 훨씬 세다. 흔히 ‘친하다’라고 옮기는데 그래서는 뜻을 정확히 새길 수 없다.

‘제 몸과 같이 여기다’라고 해야 친(親)에 담긴 본래 의미가 살아난다. 친인(親仁)이라고 했을 때 인(仁)은 ‘어짊’이라는 추상명사가 아니라 인자(仁者), 즉 어진 이를 말한다. 어진 이란 공자식으로 말하면 진정으로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愛人] 사람이다. 그래서 이 구절을 그 속뜻까지 완전히 풀어보면 ‘두루두루 많은 이들을 아껴주되 그중에서도 다른 사람을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을 제 몸과 같이 여겨야 한다’라는 뜻이다. - 본문 61~62쪽

앞으로도 우리는 상당히 많은 수의 ‘군자 대 소인’ 짝 개념을 만나게 될 것이다. 우선 두 가지를 염두에 두어야 한다. 첫째, 군자와 소인을 나누는 잣대는 다름 아닌 다움[德]이라는 것이다. 주이불비(周而不比), 비이부주(比而不周)가 바로 다움이 드러나는 바를 가리킨다. ‘주이불비’하면 도리를 같이하는 사람이 모이고, ‘비이부주’하면 패거리를 만든다. 둘째, 거꾸로 읽어야 한다. 무슨 말인가 하면 “군자는 (공적으로) 두루 어울리되 (사사로이) 친밀하게 하지는 않고”라고 하면 군자라면 이렇게 해야 한다는 일종의 도덕 명제 같은 느낌을 주지만, 역으로 군자를 뒤쪽에 놓고, “(공적으로) 두루 어울리되 (사사로이) 친밀하게 하지는 않는 사람이 있다면 대체로 군자에 가깝다” 식으로 읽으면 우리에게 군자와 소인을 성기사(省其私)하여 둘을 잘 분별하는 잣대를 제공한다. 사람 보는 법을 배울 수 있는 것이다. - 본문 126~127쪽

‘자한 13’에서의 공자 말을 그동안 이렇게 번역해왔다. “군자가 거주한다면 무슨 누추함이 있겠는가?” 이렇게 옮긴 이유는 이 구절에 대해 주희가 “군자가 거처하는 곳은 교화되니 무슨 누추함이 있겠는가?”라고 주석을 단 때문이다. 그러나 이는 앞뒤가 맞지 않다. 공자가 구이(九夷-예전에 중국 사람이 부르던 동쪽의 아홉 오랑캐 씨족, ‘동이’라고도 불렸다.)에 가서 살고자 하는 이유는 실은 당시 중국이 교화가 이루어지지 않아 임금이 임금답지 못하고 신하가 신하답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주희 말대로라면 공자가 중국에 그냥 남아 있으면 교화가 되어 임금이 임금답고 신하가 신하다워지지 않겠는가? 따라서 거지(居之)는 그냥 ‘거주한다면’으로 옮기기보다는 “거처할 곳을 정함에 있어”라고 옮겨야 한다. 공자는 오히려 동이 사람들의 풍속이 순후(淳厚)하다고 보았고, 그곳이라면 군자가 머물기에 더 적합하다고 생각했다. … 즉 하누지유(何陋之有)는 군자가 머물 곳을 정하는 데 있어 그곳이 누추하냐 그렇지 않냐는 잣대가 되지 않는다는 뜻으로 봐야 한다. 즉 군자를 알아볼 수 있느냐 없느냐가 잣대가 되어야 한다는 말이며, 또한 인후한[仁] 풍속이 있느냐 없느냐가 중요하다는 말이다. - 본문 575~576쪽

그간 ‘자로 18’의 공자 말을 대부분 이렇게 번역해왔다. 나도 예전 책에서는 그렇게 옮기기도 했다. ‘아버지는 자식을 위해 숨겨주고, 자식은 아버지를 위해 숨겨주니 곧음이란 바로 이 가운데 있는 것입니다.’ 위(爲)란 영어로 for이니 ‘위해서’로 옮길 수도 있고 ‘때문에’로 옮길 수도 있다. 문제는 은지(隱之)가 아니라 그냥 은(隱)이라는 사실이다. 즉 ‘숨겨주다’가 아니라 자기가 ‘숨는다’는 말이다. 사량좌는 순임금은 아버지 고수(瞽瞍)가 사람을 죽이면 고수를 업고서 도망쳐 바닷가에 가서 살았을 것이라 말한다. 이는 아버지를 숨겨준 것이기도 하지만 자신이 왕위를 버리고 숨는다는 뜻도 포함돼 있다. - 본문 848~849쪽

일단 빈이무원(貧而無怨), ‘가난하지만 원망하지 않는다’는 대목은 바로 앞서 나온 백씨(伯氏)를 염두에 둔 발언이다. “백씨는 거친 밥을 먹어야 했으나 죽을 때까지 원망하는 말이 없었다.” 반면 관중의 경우 엄청난 부를 이루었으나 다소 교만했다. 그 점을 지적한 것이 ‘팔일 22’에서 공자가 말한 “관중은 그릇이 작았도다”이다. 그렇다면 공자는 이 둘 중에서 백씨를 더 높이 평가한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도 주희를 비롯한 기존 해석들은 이런 연속성을 무시한 채 ‘헌문 10’에서는 관중에 초점을 맞추고 백씨에 대해서는 일언반구도 말하지 않았다. 여기서는 ‘누가 보아도 그 어려운 빈이무원(貧而無怨) 경지에 이른 백씨야말로 군자(君子)가 아니겠는가’라고 높이 평가하는 내용일 수밖에 없 
다. - 본문 920쪽

‘위령공 3’은 지덕(知德)을 어떻게 풀이하느냐에 따라 내용이 크게 달라진다. 그냥 ‘덕을 아는 사람’이라고 하면 모호해진다. 덕(德)은 위덕(爲德), 수덕(修德), 숭덕(崇德)하는 것이지 앎의 대상이 될 수가 없다. 이런 점에서 예(禮)와 다르다. 지례(知禮)라는 말은 성립하기 때문이다. 예는 앎의 대상이다. 인(仁) 또한 덕과 가까워 앎의 대상이 될 수 없다.

따라서 어짊을 안다는 뜻의 지인(知仁)이라는 말은 성립할 수 없다. 유감스럽게도 국내 대표적인 『논어』 번역서들은 모두 ‘덕을 아는 자’라고 옮기고 있다. 일본 학자 진흙 진 사이의 풀이도 마찬가지다. “이 장도 또한 공자가 자로의 이름을 불러 덕을 이해하는 일의 어려움을 말하고서 배우는 이들이 스스로 노력하지 않음을 탄식하고 있다.” 지덕(知德)은 ‘다움이 있는 자를 알아보는 것’을 말한다. 그래서 이 장은 “유(由-자로)야, 다움이 있는 자를 알아보는 이가 드물다”라고 풀어야 한다. - 본문 1016쪽

그렇다면 공자는 ‘공야장 11’과는 달리 자공에게 왜 이렇게 정반대 답을 준 것일까? 그 사이에 시간이 흘렀고 공자가 볼 때 자공에게 진덕수업(進德修業) 하는 성과가 있었다. 지자(知者)에 머물던 자공이 이제 막 인자(仁者)에 들어가려 하자 이 말을 해준 것이다. 이는 『논어』라는 책이 덕(德)의 성숙 단계를 기록한 책임과 동시에 시간의 흐름 또한 고려한 책임을 보여준다. 이 둘을 가장 잘 체화한 인물은 『논어』에서 자공뿐이다. 인자(仁者) 안회는 일찍 죽었고, 용자(勇者) 자로 또한 배움을 게을리하다가 비명횡사했다. 증자의 경우 책 후반으로 갈수록 비중이 줄어든다.

‘공야장 11’과 이 장에서의 공자 대답이 차이 나는 것은 자공의 질문 방식에서 비롯된 것이기도 하다. ‘공야장 11’에서는 자공이 먼저 “저는 남이 나에게 가하기를 바라지 않는 일을 저 또한 남에게 가하지 않겠습니다”라고 했다. 그러나 이 장에서 자공은 아주 신중하고 조심스럽게 “한마디 말로 종신토록 행할 수 있는 것이 있습니까?”라고 묻자, 공자는 비로소 일이관지(一以貫之)의 일(一)인 서(恕)를 말하면서 이쪽에 힘을 써야 할 것이라고 격려했다. 이런 신중함과 조심스러움은 다름 아닌 진덕수업의 성과였던 것이다. - 본문 1055~1056쪽

최승우 기자 kantmania@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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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진한 2024-02-19 19:27:47
기존에 정형화 된 先儒들의 해석에 대해, 새로 독창적인 도전을 하겠다면, 몇백년의 시간이 흐를지 모릅니다. 이렇게 새로운 도전을 하다가, 이단아나 풍운아로 몰리는 사람도 있습니다. 누가 이 책을 규범으로 삼아, 가르치기 전에는, 새로운 시각의 이의제기 정도에 해당될지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