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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관으로 가는 길에서 시를 읽다
문학관으로 가는 길에서 시를 읽다
  • 최승우
  • 승인 2024.02.28 12:1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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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상일 지음 | 새움 | 424쪽

아름다운 시를 읽으며 떠나는 ‘시문학관 기행’

좋아하는 사람들과 아름다운 시를 읽으며 떠나는 ‘시문학관 여행’, 생각만 해도 즐겁다.
이 책은 지은이가 전국의 시문학관 16곳을 찾아, 시인의 삶과 역사를 ‘조금 진지하게’  
들여다본 답사기이다. 경상권, 전라권, 충청권, 서울・경기권으로 크게 나누어 각 지역의
문학관을 집중적으로 살폈다.

시인의 고향에 주로 세워진 문학관에 가면, 시인을 키워낸 자연과 그곳 사람들의 성정을 온몸으로 느낄 수 있다. 또한 시인이 밤을 새워 잉태한 육필 원고와 자료들을 읽다 보면 그의 마음의 결들, 고통, 환희가 절로 가슴에 스민다.

나아가 이 책은 시인이 활동하던 당시의 역사와 문화, 사회적 분위기는 물론 문학사적인 면에서 시인과 그의 작품이 갖는 위상까지 짚었다. 그래서 책장을 넘기다 보면 한국문학에 대한 이해의 폭이 절로 넓어질 것이다.

문학을 전공하지 않았지만 늘 문학에 목마른, 혹은 아름다운 시어를 오랜만에 소리내어 읽고 싶은 모든 분들에게 이 책은 좋은 길잡이가 되어 줄 것이다. 

한국 현대시를 독자에게 보다 쉽게 전달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하상일 교수가 
4년여 간 문학관을 직접 답사하여 썼다. 

뚜벅뚜벅 걷자, 문학 속으로 역사 속으로

이육사라는 시인을 생각할 때마다 언제나 떠오르는 시가 바로 「광야」이다. 
이 시는 그가 마지막으로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북경으로 압송되는 도중에 
차 안에서 썼던 작품이다.

그의 생애에서 마지막으로 전하고 싶었던 유언을 담은 시가 아니었을까 생각하면 
더욱 가슴이 저려온다. 죽음의 순간을 직감한 시인이 진정으로 외치고 싶었던 
마지막 절규가, 이 시 속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_ 이육사 편

시인이 태어나고 자란 고향은 시가 형성되고 성장하는 원체험적 장소로, 시인들의 초기 시는 대부분 이러한 고향을 내면화하고 있다. 유년과 청년 시절을 보낸 고향에서의 경험과 그 시절을 함께한 여러 문인들과의 교류는, 한 사람의 시인에게 시란 무엇이고 시인은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에 대한 근본적인 성찰의 시간을 갖게 한다.

이런 점에서 한국문학사의 주요 시인들을 기리는 문학관이 그들의 고향에 자리를 잡은 것은 너무도 당연하다. 문학관은 주요 시인들의 역사와 자료를 일목요연하게 정리하고 있는 우수한 문화콘텐츠이다. 문학관 내부의 전시물들은 시인의 인생과 교우관계, 가족사 등 시와 삶의 연관 속에서 그들의 시 세계를 새롭게 읽어 낼 수 있는 중요한 자료가 된다.

이 책에는 총 16명의 시인과 그들의 문학관이 망라되어 있다. 안동의 이육사에서부터 광명의 기형도에 이르기까지 문학관과 시 혹은 시인을 연결 짓고, 태어나고 자란 장소와 시를 묶어 보고, 시인들의 삶과 가치를 일상과 역사에 빗대어 살폈다. 그리하여 시인과 그의 시를 조금 깊게 음미해보고 싶은 사람들, 시는 어렵다고 생각하는 분들과 조금이라도 소통하고 시인의 마음을 나누고자 하였다.

문학관을 나온 지 얼마 지나지 않아 기향도(기형도의 누이)에게서 한 통의 문자가 왔다.
 “오랜만에 죽은 동생을 만나 함께 얘기를 나눈 듯해서 참 좋았습니다. 고맙습니다.”
불현듯, 문학적 소통은 바로 이런 순간을 결코 놓쳐서는 안 되지 않을까 싶었다.

누이는 동생이 살아 있을 때처럼 그와 날마다 대화를 하면서 살아간다고 했다.
아마도 먼 곳에서 기형도는 이렇게 매일 한 편의 시를 통해 
누이들과의 대화를 이어 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기형도 편

문학관 속으로, 역사 속으로 뚜벅뚜벅 걸어가 보자. 
시인을 만나 그와 우리가 살아온 날들에 대해, 아름다운, 고통스러운, 희망을 노래한 그의 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어 보자.

차 례 

저자 서문
뚜벅뚜벅 걷자, 문학 속으로 역사 속으로

<경상권>
백마 타고 오는 초인을 기다리는 절정의 시학 –안동 〈이육사문학관〉 / 남쪽 먼 포구의 생명의 시인을 찾아서 –통영·거제 〈청마문학관〉과 〈청마기념관〉 / 역사와 현실 앞에서 전통과 순수를 노래한 민족시인 _영양 〈지훈문학관〉 / 북에는 소월, 남에는 목월 –경주 〈동리목월문학관〉 / 천년의 바람 맞으며 고향 바다에서 시를 쓰다 –삼천포 〈박재삼문학관〉 

<전라권>
찬란한 슬픔의 봄을 기다리는 남도의 시인 –강진 〈시문학파기념관〉 / 자연과 인간과 역사의 유토피아를 노래한 목가 시인 –부안 〈석정문학관〉 / 역사와 생명의 길을 따라 걸어간 ‘국토’의 시인 –곡성〈조태일시문학기념관〉 

<충청권>
순수한 자연과 미적 언어의 세계를 탐구한 ‘향수’의 시인 –옥천 〈정지용문학관〉 / 식민지 근대를 넘어 사회주의 건설을 노래한 아방가르드 –보은 〈오장환문학관〉 / 식민지 모순에 맞서는 사회주의 독립운동과 문학적 실천 –당진 〈심훈기념관〉 / ‘대지’의 상상력과 ‘금강’의 정신을 노래한 아나키스트 –부여 〈신동엽문학관〉

<서울 경기권>
식민지시대 동아시아의 역사와 내면의 상처 –종로구 〈윤동주문학관〉 / 온몸으로 시를 써 내려간 자유의 초상 –도봉구 〈김수영문학관〉 / 자연과 인간과 신의 통합을 지향하는 시적 여정 –안성 〈박두진문학관> / 죽음과 더불어 살아온 시간 그리고 시 –광명 〈기형도문학관〉

책 속으로 

청마 유치환과 김춘수의 만남도 아주 각별하다. 두 사람의 첫 만남은 유치환의 결혼식 때 화동이 바로 김춘수였다는 뜻밖의 일로 시작되었다. 유치원 보모로 있었던 부인 권재순이 가르쳤던 7살의 
어린아이가 김춘수였고, 결혼 당시 유치환은 21살의 청년이었다. _유치환 편

조지훈의 생가는 한양 조씨들이 대를 이루어 살았던 ‘호은종택’인데, 그의 집안은 당시 영남 북부 유림 사회를 이끌었던 명문가였다. 그의 증조부는 구한말 의병대장으로 항일운동을 하다가 경술국치 소식에 스스로 목숨을 끊었던 강직한 선비였고, 조부 역시 학문과 덕망이 인근에 자자했던 지조 있는 선비로 한국전쟁으로 온 마을이 유린 되자 의리를 지켜 자결을 선택했을 정도로 현실과 타협하지 않는 기개 있는 유생의 집안이었다. _조지훈 편

정지용과 박목월의 인연은 분단의 역사 속에서 서로 다른 운명을 짊어지게 되었다. 스승에 대한 존경과 예의로 『청록집』 발간 당시 서문을 부탁했지만, 정지용은 단호하게 거절한다. 정지용은 뒷날 『청록집』을 받고서 곤혹스러운 표정으로 “내가 호랑이 새끼를 길렀어. 호랑이 새끼를 길렀단 말이야.”라고 탄식했다고 하니, 해방이 곧 혼란이 되어 버린 우리 역사의 상처와 모순이 정지용과 청록파 시인들의 안타까운 인연에 고스란히 묻어 있는 듯하다. _박목월 편 

<박재삼문학관>은 삼천포 팔포 앞바다가 내려다보이는 노산공원에 위치하고 있다. 아마 박재삼의 유년 시절에는 공원으로 불리지도 않았을 작은 언덕 정도가 아니었을까 싶다. 가족들 모두가 일터로 나가고 홀로 빈집을 지키며 하루를 보내기 일쑤였던 그에게 이곳은 가슴속 응어리진 슬픔과 외로움을 달래 주었던 친구와 같은 장소였을 것이다. _박재삼 편

해방 이후 김영랑이 서정주에게 한 말 가운데 가장 주목할 만한 것은 “왕관은 니가 써라, 내가 줄테니…….”라는 것이다. 당시 오장환과 정지용의 모더니티 지향성과 이를 추종하는 시단의 흐름에 대해 
내심 불만을 가졌던 김영랑의 속마음이 은연중에 노출된 것으로 이해된다. 설화적 세계의 전통성에 바탕을 두고 시를 쓰는 당시 서정주의 시에 대한 깊은 신뢰를 보냈던 것으로 볼 수 있다. _김영랑 편

여순항쟁의 격전지였던 태안사, 언제 죽을지 모를 살육의 현장을 피해 가족들과 광주로 이주했던 조태일의 아버지는 한국전쟁 직후 세상을 떠나셨다. 그는 어린 조태일의 손을 잡고 “고향 땅은 그곳을 떠난 지 30년이 지나서 밟아라.”고 유언했다. 이러한 아버지의 바람이 있어서인지, 아니면 고향에 대한 원초적 그리움 때문인지 조태일은 꼭 30년 만에 자신의 고향 태안사를 찾았다. _조태일 편

“팔월 십오일 밤에 나는 병원에서 울었다.”로 시작되는 시에서 알 수 있듯이 오장환은 병상에서 해방을 맞이하였다. 그리고 그는 “병든 서울”을 “새 나라”로 바꾸기 위한 혼란스러운 해방 공간을 바라보면서 “인민의 힘”을 무엇보다도 강조한다. _오장환 편

북간도에서 태어나 후쿠오카에서 죽기까지 어느 한 곳에도 오래 정착하지 못한 채 디아스포라적 삶을 살았던 윤동주가 비로소 자신의 집 한 채를 마련한 곳이 인왕산 중턱이라니. 생전에 그가 수성동 
계곡을 따라 인왕산을 오르면서 훗날 이곳에 자신의 영혼이 깃든 장소가 세워질 것을 어찌 알았겠는가. _윤동주 편

김수영은 1921년 서울 종로2가 관철동 158번지에 있었던 그의 할아버지 집에서 태어났다. 당시 관철동은 서울의 경제권을 쥔 중인들의 주거지였는데, 김수영의 할아버지는 구한말을 거치면서 상당한 재산을 모은 재력가여서 어린 김수영은 온 가족의 관심을 받으면서 풍족하게 성장했다. _김수영 편

“주머니에 두 손을 넣고 허리를 약간 굽힌 채, 눈을 감은 그는 시키면 주저없이 노래하고 노래하고 노래했다.”라고, 기형도를 추억하는 성석제의 떨리는 목소리에는 대학 시절 기형도를 떠올리는 동료
들 대부분의 한결같은 마음이 담겨 있음에 틀림없다. 아마도 그들 모두는 문학과 노래에 대한 기형도의 열정에 탄복하며 너무도 쉽게 그의 세계에 빠져들었으리라. _기형도 편

저자 소개

하상일 

비평사를 전공하여 비평의 대중화와 독자와의 소통 방향을 찾는 데 힘쓰고 있다. 1997년에 비평을 시작하여 『비평과 전망』, 『내일을 여는 작가』 등 여러 잡지의 편집인으로 일했고, 현재는 『오늘의 문예비평』, 『신생』에서 지역 문예지의 발전에 힘을 보태고 있다.  
이 책은 2014년에 발간한 인문 여행서 『상하이 노스탤지어』에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국 현대시를 독자에게 쉽게 전달하기 위한 비평적 글쓰기의 새로움을 담고자 한 책이다. 

지금까지 평론집으로 『타락한 중심을 향한 반역』, 『서정의 미래와 비평의 윤리』, 『생산과 소통의 시대를 위하여』, 『뒤를 돌아보는 시선』 등이 있고, 학술서로 『재일 디아스포라 시문학의 역사적 이해』, 『한국 근대문학과 동아시아적 시각』 등이 있다. 고석규비평문학상, 애지문학상, 심훈학술상 등을 수상했으며, 현재 동의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최승우 기자 kantmania@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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