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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의 얼굴은 여럿...어떤 모습 신뢰할까
과학의 얼굴은 여럿...어떤 모습 신뢰할까
  • 정우현
  • 승인 2024.03.08 10:3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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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서평_『재난에 맞서는 과학』 박진영 지음 | 민음사 | 216쪽

확실한 증거·방법론은 과연 있는가
무의식적 실수·억울한 오판도 과학

영화 「인터스텔라」는 점점 황폐해져가는 지구를 대체할 인류의 터전을 찾기 위해 까마득한 웜홀을 지나 항성 간(interstellar) 우주여행을 떠나는 모험을 그렸다. 무엇이 이런 불가능한 일을 시도하게 만들었을까. 바로 과학의 힘이다. 영화의 캐치프레이즈로 사용된 문구 “우린 답을 찾을 것이다. 늘 그랬듯이”라는 위기의 순간 인류를 구해낼 유일한 수단은 바로 ‘과학의 힘’임을 강조한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답을 찾기 위해 과학의 힘이 절실히 필요했던 이유는 바로 ‘또 다른 과학의 힘’ 때문이었다. 무분별한 개발과 착취에 그 힘을 제공한 현대의 과학이 지구의 환경을 돌이킬 수 없이 망쳐놓은 탓이다.

『재난에 맞서는 과학』은 가습기살균제 참사를 다룬 책이다. ‘안방의 세월호 참사’라고도 불리는 이 사고는 누적 사망자 수가 2천 명 가까이 달해 단일 재난으로서는 가장 많은 희생자를 낸 사건으로 꼽힌다. 이 사건은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 세계 최초로 우리나라에서 가습기살균제를 출시한 1994년부터 시작돼 30년이 흐른 지금까지도 사고의 진상규명, 피해자의 구제, 가해자의 진정한 사죄와 처벌이 충분히 이루어지지 못했다. 환경재난의 사회학을 연구하는 저자는 이 사건의 전말을 파헤쳐 정리했다. 

과학 때문에 발생하는, 혹은 과학의 힘으로 해결해야 하는 사회 문제들에서 똑 부러지는 정답이 있는 경우는 드물다. 오늘날 과학에서 거의 공통적으로 인지되는 현상은 불확실성을 제거할 수 없다는 점이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에서 발생한 오염수를 어떻게 처리하는 것이 마땅할지,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인한 사회적 손실을 누가 책임져야 옳을지, 우리는 전대미문의 재난 앞에서 자주 길을 잃어왔다. 

가습기살균제 참사처럼 가해자가 명확한 상황에서도 책임을 묻는 일은 간단하지 않다. 이것이 환경의 문제냐 제품 안전의 문제냐를 따지며 법적 소관을 회피하려는 경우도 흔하지만, 사고의 원인이 유해성 평가의 방법론적 미흡 때문인지 고의적 조작에 의한 것인지 가려내기도 쉽지 않기 때문이다. 어떤 과학은 특정 물질이 유해함을 입증하는 데 쓰이며, 또 다른 과학은 그것이 결코 유해하지 않다고 주장하는 데 쓰인다. 어떤 과학이 맞는 걸까? 과학에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확실한 증거, 확실한 방법론이라는 게 과연 있을까?

가습기살균제에 들어있는 유해성 화학물질은 입이나 피부를 통한 독성에는 전혀 문제가 없었으나 공기 상태로 흡입할 경우 문제가 있었다는 것이 뒤늦게 드러났다. 축구경기에서는 ‘오심도 경기의 일부’라고 해 심판의 부당한 판정으로 승패가 뒤바뀌는 일을 받아들여야 하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과학도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인다. 무의식적인 ‘실수’와 억울한 ‘오판’도 과학에서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다. 기업 자본과 결탁한 비열한 청부과학자의 고의적인 왜곡이나 누락만이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니다. 

울리히 벡은 『위험사회』에서 재난의 위험은 사라질 수 없으며, 근대사회가 가지는 근본 요소이기 때문에 계속해서 재생산된다고 주장했다. 과학은 문명의 진보에 앞장서는 선발대일 뿐 아니라 사회의 위험 요소를 만들어내는 일등공신이기도 하다. 역사적으로 과학의 적이라 여겨져 온 것을 꼽자면 종교와 정치의 권력, 그리고 유사과학 따위를 떠올릴 수 있다. 그러나 현대의 사회적 재난을 통해 배울 수 있는 또 한 가지는 과학 그 자체도 얼마든지 과학의 적이 될 수 있다는 점이다. 

실험실을 벗어난 과학의 불확실성에 맞설 수 있으려면 과학적 판단을 과학자와 전문가에게만 맡겨서는 안 된다. 시민들도 과학의 힘을 충분히 알고 그 가능성과 위험성을 모두 인지하며 자유롭고 민주적인 토론에 참여할 수 있어야 한다. 불확실성이 큰 사안일수록 시민들의 참견과 잔소리는 더 중요해진다. 

객관적이고 가치중립적인 사실을 말하는 단 하나의 과학은 존재하지 않는다. 과학의 얼굴은 여러 개이며, 서로 다른 표정을 하고 있다. 우리는 그중 어느 것이 정의로운 사회를 위해 가장 필요한지 스스로 늘 고민하고 감시해야 한다.

 

정우현 
덕성여대 약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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