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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의 나라
야구의 나라
  • 김재호
  • 승인 2024.03.05 21:5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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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성 지음 | 틈새책방 | 328쪽

·일제 강점기 ‘귀족 스포츠’였던 야구는 어떻게 전 국민이 열광하는 스포츠가 됐을까?
·한국 스포츠사의 가장 흥미로운 미스터리를 문화사로 풀어낸 역작
·야구 명문교의 ‘학연’과 정치·경제·미디어·문화 엘리트의 결합이 건설한 야구의 나라

야구 애호가들이라면 꼭 읽어야 할 책이 출간됐다. 『야구의 나라』는 우리나라의 스포츠 역사에서 가장 흥미로운 미스터리인 “왜 야구는 축구를 제치고 최고의 인기 스포츠가 되었을까?”에 대한 해답이다. 한양대학교에서 스포츠문화사학을 연구하는 이종성 교수는 일제 강점기부터 2000년대까지 야구가 국민 스포츠가 된 과정을 추적했다.

야구가 국민 스포츠가 된 데에는 엘리트들의 학연이 절대적이었다. 일제 강점기 시절 명문교의 교기(校技)였던 야구는 질시의 대상이었다. 공 하나만 있으면 되는 축구와는 달리 비싼 장비가 필요한 야구는 귀족 스포츠였다. 게다가 일제는 야구를 통해 내선융화를 노리기도 했다. 조선에서도 고시엔 대회 예선을 열었고, 조선인 팀이 선전하면 내선융화의 증거로 치켜세우기도 했다. 그러나 그만큼 야구는 선망의 대상이기도 했다.

엘리트와 귀족을 상징하는 야구는 해방 이후에도 지역 명문교를 상징하는 스포츠가 됐다. 경기고, 경복고, 휘문고, 배재고, 경남고, 경북고, 광주일고, 전주고 같은 지역 명문들과 선린상고, 군산상고, 마산상고 같은 상업고등학교, 신일고와 충암고 같은 신흥 명문들까지 지역 명문교들은 야구를 교기로 삼아 경쟁했다. 학창 시절 야구에 열광했던 엘리트들은 모교의 야구를 지원했고, 역시 엘리트들이 장악한 언론계는 야구 대회를 열어 신문 판촉에 열을 올렸다. 1970년대 고교 야구의 흥행은 결코 우연이 아니었다.

프로 야구가 출범하는 데에도 엘리트들의 힘은 절대적이었다. 미국 유학을 경험한 야구 명문교 출신 엘리트들은 정계와 재계를 장악하고 있었다. 유럽에 뿌리를 둔 축구보다 야구가 한 발 앞서 간 이유였다. 여기에 고교 야구를 통해 발산된 지역주의가 프로 야구에 그대로 이식되면서 야구는 한국 최고의 인기 스포츠가 됐다.

이렇게 탄생한 프로 야구는 1980년대 문화의 아이콘이 되었고, 이는 다시 문화 자본이 되어 문화 엘리트들의 DNA에 새겨졌다. 이렇게 야구는 학연에서 시작해 정치, 경제, 미디어와 문화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한 영향력을 행사했고 이는 다시 확대 재생산되면서 한국을 야구의 나라로 만들었던 것이다.

이종성 교수의 『야구의 나라』는 스포츠가 단순히 자본이나 엔터테인먼트적인 요소만으로는 평가할 수 없는, 사회적 상호 작용의 결과물이라는 것을 보여 준다. 인도네시아의 배드민턴이나 인도의 크리켓처럼 한국이 야구의 나라가 된 데에는 역사적·문화적 배경이 녹아 있다. 다른 모든 사회 분야처럼, 스포츠 역시 여러 관점에서 바라보고 해석해야만 실체를 명확히 알 수 있다. 이런 측면에서 『야구의 나라』는 스포츠 분야를 조망하는 새로운 방법론을 제시하는 책이다.

김재호 기자 kimyital@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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