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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해문화 2024년 봄호 (통권 122호)
황해문화 2024년 봄호 (통권 122호)
  • 김재호
  • 승인 2024.03.12 16:3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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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얼문화재단 | 380쪽

소멸과 위기 앞에 떠도는 유령, 메가시티를 넘어서 

대한민국의 합계출산율이 0.7까지 곤두박질치며 인구 절벽과 국가 소멸이 운위되고, 수도권 일극사회가 완화되기는커녕 나날이 강화돼 지방의 소멸이 가시화되고 있는 대한민국에서, 갑자기 서울발 메가시티mega-city라는 유령이 출몰했다. 이 유령은 부동산 불로소득에 기댄 욕망의 사회학과 총선을 앞두고 정권 재창출을 위한 정치권의 포퓰리즘이 합작하여 불현듯 미래의 신실한 대안인 것처럼 호출되었다.

정치권 인사들에 이어 학계의 내로라하는 전문가들까지 나서 메가시티가 이미 선진국에서도 이루어지고 있는 세계적 추세인 것처럼 찬양하고 나섰다. 유령은 오늘도 사라지지 않고 대한민국의 하늘 위를 떠돌고 있다. 

총선을 불과 6개월 정도 앞둔 지난해 10월, 여당에서 김포시를 서울특별시에 편입하겠다는 돌출적 제안이 나오더니, 연이어 서울 인근의 원하는 도시가 있다면 모두 서울로 편입을 추진하겠다고 발표했다. 여당 내에 ‘국민의힘 뉴시티 프로젝트 특별위원회’까지 구성해 김포시의 서울 편입 방안을 담은 ‘경기도와 서울특별시 간 관할구역 변경에 관한 특별법’까지 발의했다. 이런 움직임이 여론에 회자되자 야당에서는 선거를 앞둔 포퓰리즘이라는 비판을 쏟아내면서도 여론의 동향에 촉각을 곤두세웠다.

그런 한편으로 야당은 다가올 총선의 최대 표밭인 수도권의 표심을 의식하며 여당과 합의, 이른바 ‘1기 신도시 특별법’을 통과시켰다. ‘노후계획도시 정비 및 지원에 관한 특별법’이라는 명칭의 이 특별법에 따라 노후 계획도시에서 재건축을 추진하는 아파트는 현행 200% 안팎인 용적률을 최대 750%까지 높일 수 있게 된다. 같은 면적의 토지에 재건축할 경우 20층이던 아파트를 헐고 최고 75층까지 지을 수 있는 것이다.

지지율이 계속 하락하는 정부에서도 가라앉는 부동산 경기를 회복하면서 수도권 민심을 자극하는 규제 완화 계획을 연이어 발표했다. 문재인 정부에서 지정한 3기 신도시로도 부족해 윤석열 정부에서도 수도권인 오산 세교, 용인 이동, 구리 토평 등 5곳에 8만 호에 이르는 신규 택지를 조성하겠다고 발표했다.

그리고 1월 10일 대통령 주재 ‘국민과 함께하는 민생 토론회’를 열어 30년이 넘은 아파트의 경우 안전진단 없이 재건축이 가능하도록 규제를 완화하고, 재개발의 경우도 노후도 등 요건의 문턱을 낮춰 사업 추진을 촉진한다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국민 주거 안정을 위한 주택공급 확대 및 건설경기 보완방안’을 발표했다. 이런 정책 모두 총선 판세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칠 수도권 표심을 얻기 위한 정책이라는 점을 눈치채기란 그리 어렵지 않다. 

여당발 김포시 서울 편입과 서울 메가시티 구상이 발표되자 수도권 집중과 지방 소멸을 재촉한다는 비판적 의견이 개진되는 한편으로 일부 전문가들은 서울을 메가시티로 바꾸는 것은 이미 세계적 추세인 만큼 적극 검토해야 한다는 긍정론이 그에 못지않게 나왔고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한 학술데이터베이스 사이트를 검색해본 결과 무려 500여 편을 상회하는 메가시티 관련 논문들이 검색되었다고 하니, 다양한 층위의 메가시티 담론들 중에서 거대도시를 지향하는 메가시티 성장 담론은 강력한 힘을 가진 유령으로 출몰하게 된 것이다.

일부 전문가들은 서울을 메가시티로 만들 것이 아니라 지방에 메가시티를 먼저 추진해야 한다는 주장을 제기했고, 또 서울과 동시에 만들어야 한다는 의견도 개진되었다. 

지난해 11월을 뜨겁게 달구었던 메가시티 논란은 그러나 논란의 도화선이 됐던 김포시의 서울특별시 편입을 위해 추진해야 할 주민투표가 행정안전부의 판단과 관련법에 따라 총선 이후로 무기한 연기되면서 사그라지는 듯했다. 여당 의원들이 김포시의 서울 편입 방안을 담아 발의한 ‘경기도와 서울특별시 간 관할구역 변경에 관한 특별법’은 21대 국회에서 자동 폐기될 것으로 보였다.

그러나 총선을 두 달여 앞두고 여당의 한동훈 비상대책위원장은 서울 인근의 구리시를 방문하면서 김포, 하남과 함께 주민들이 원하면 서울 편입을 적극적으로 신속하게 진행하겠다고 밝혔다. 한 위원장은 이른바 서울을 ‘메가시티’로 만드는 구상도 적극 추진할 의사를 밝히며 수도권 표심에 서울의 확충을 통한 메가시티 논란을 재점화하고 나섰다. 지방에서는 지방발 메가시티 구상이 여야를 가리지 않고 지방을 살리는 유일한 공약으로 부상하고 있다. 바야흐로 메가시티라는 유령은 국회의원 총선거를 앞두고 강력한 현실적 물신으로 군림하려 하고 있다. 

메가시티 담론에 내재한 성장지상주의 
보다 긴 안목으로 대안을 모색하다 

『황해문화』는 2024년 봄호 특집에서 메가시티라는 유령의 실체를 인구 절벽과 지방 소멸의 위기뿐만 아니라 그 어느 때보다 절박하게 박두한 기후위기 앞에 놓인 대한민국의 현실 속에서 냉정하게 분석하고 긴 안목으로 대안을 모색하는 것이 절실하다고 판단했다. 인구 천만 명 이상이 사는 도시라고 일반적으로 규정하는 메가시티는 신자유주의 시대의 새로운 성장도시 담론이자 도시경쟁 담론에 다름 아니다.

따라서 이 문제를 기왕의 서울 해체 담론이나 수도권-지방의 이분법적 시각을 벗어나서 새롭게 부상한 메가시티 담론에 내재한 성장지상주의에 특히 주목하면서 현재 선거라는 숙주에 기생해 커가는 메가시티 담론의 실상을 다각도로 분석하고 나아가 바람직한 미래 대한민국의 상과 삶의 방식을 근본적으로 궁구해본다. 

도시사회학자로 북한과 동아시아의 도시를 연구하고 있는 동국대학교 북한학과 황진태 교수의 「정의롭고 지속가능한 ‘메가시티 한국’은 가능한가?」는 특집의 서론격에 해당하는 글이다. 이 글은 선거를 앞두고 촉발된 메가시티 서울 논란이 수도권 집중화와 지방 소멸, 저출산·고령화 등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우리 사회의 현안들과 긴밀히 얽혀 있다는 점에서 이번 논란을 다면적으로 진단하고, 앞으로 어떠한 가치와 전망을 갖추어야 할지에 대한 사회적 공론장을 열어나가야 한다고 강조한다.

선거를 앞두고 돌출한 메가시티 서울 담론에 앞서 한국 사회의 구성원들이 자칫 잊고 있던 사실이나 중요하지만 중요하지 않게 생각해왔던 가치들을 강하게 환기시켜준다. 무엇보다 오늘날 서울의 형성 과정에서 서울과 지방, 대도시와 소도시, 도시와 비도시(촌락, 자연, 교외 등) 간의 관계적 이해의 중요성과 이를 바탕으로 앞으로 한국의 도시사회가 어떤 가치들을 고려해야 보다 정의롭고 지속가능할 수 있을지를 논의할 토대를 제공해준다. 보다 정의롭게 지속가능한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해 메가시티 논의를 협소하게 서울에 한정하지 말 것을 환기해준다. 

국토의 동남권에 위치한 경남대학교 사회학과에 재직하고 있는 양승훈 교수의 「두 번의 메가시티 프로젝트: 한 번은 비극으로, 다음번은 소극으로?」는 보다 실증적으로 제3공화국 이후 전개된 국토의 공간분업 전개 과정이 수도권 쏠림 현상으로 치달은 과정과 지역균형발전론의 바탕 위에서 동남권에서 추진됐던 메가시티 정책이 불과 2~3년 만에 비극으로 끝나고 메가 토건 프로젝트로서의 수도권 메가시티만 남게 된 과정을 성찰적으로 복기해준다.

담대한 국토계획의 재구성을 목표로 추진됐던 동남권 메가시티 프로젝트의 실패를 성찰하면서 정점에 올라 이제 내려갈 일만 남았다는 말로 회자된 ‘피크 코리아’가 새로운 전환을 맞기 위해서는 수도권만이 아니라 지역 간 불균형을 풀어내는 진일보한 국토계획과 이를 실현시킬 정치적 기획이 필요하다고 제안한다. 

대구에서 경제와 금융을 연구하는 경제학자 대구대학교 경제금융학부 김재훈 교수는 「메가시티와 메가리전, 해외 담론의 시사점」에서 메가시티가 아닌 메가리전mega-region으로의 패러다임 전환을 강조한다. 해외 도시 담론을 집중적으로 검토한 결과, 과거 1980년대 세계화의 확대와 신자유주의가 위세를 떨칠 때 국가의 경쟁력 대신 도시 경쟁력이 강조되고 거대도시가 각광받았지만, 최근에는 거대도시의 여러 부정적 측면이 두드러지면서 중소도시가 부상하고 있다는 것이다.

유럽뿐만 아니라 미국에서도 거대도시 시대의 종언이 선언될 정도로 메가시티에 대한 관점이 변하고 있고, OECD에서도 도시city에 대한 개념 규정을 도시화된 지역urbanized region으로 바꿔 이해하는 상황에서 여전히 거대도시를 지향하는 메가시티보다는 중심-주변 관계에서 다중심의 공존 협력으로 나아가는 더 큰 규모의 메가리전을 시야에 두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김재훈 교수는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해서라도 메가리전으로의 시야 확대와 더불어 구체적인 실행 과제들을 제시하는데, 실행력 있는 정책이 될 수 있도록 토론이 이어지길 바란다. 

참여연대를 비롯해 여러 시민단체에서 활동하면서 공공영역에 대한 감시와 지역 자치운동을 다양하게 전개하고 있는 하승수 공익법률센터 농본 대표의 글 「메가시티가 아니라 ‘자치의 강화’가 필요하다」는 대한민국의 극단적인 수도권 일극집중체제가 기후위기 시대에는 더 이상 지속가능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대한민국 초저출산율의 중요한 원인이라고 거듭 강조하면서, 지역자치 특히 ‘면·읍 자치’가 대안이라고 강력하게 역설한다.

현재 제주, 강원, 전북까지 지정받은 ‘특별자치도’는 지방분권과 지역자치권 확대라는 명분으로 실행되고 있지만 여전히 중앙정부가 모든 권한을 독점하고 일부 권한만 이양받아 추진되고 있어 지역 난개발로 흐르고 있다고 비판했다. 보다 근본적으로는 헌법을 개정해 미국이나 독일처럼 연방제 국가로 전환하는 획기적인 방안이 절실한데, 당장 어렵다면 헌법을 고치지 않고도 실행할 수 있는 ‘면·읍 자치’라도 추진하자는 것이다. ‘면·읍 자치’야말로 수도권 일극집중체제를 해소할 수 있는 유력한 대안이라고 강조한 하승수 대표의 제안은 매우 울림이 크다. 22대 국회가 구성되면 깊이 검토해야 할 대안이 아닐 수 없다.

이외에도 하 대표는 지역정당을 비롯해 지역 자치를 강화하기 위한 다양한 실천 활동을 소개하고 있는데, 지역에 활로를 열어줄 수 있는 자치의 강화가 절실하고 정치의 역할이 참으로 크다. 

제주대학교 사회학과 서영표 교수의 글 「이기적 주체들의 경쟁 게임과 저항의 감정적 체험 사이」는 매우 침중하고 성찰적인 목소리를 담았다. 메가시티를 넘어서는 대안과 실천을 궁구해보자는 제안이 그만큼 쉽지 않다는 반증이기도 하며, 보다 근본적으로 인간과 실천적 지식에 대한 모색을 함께 궁구해나가야 한다는 답변이리라. 팬데믹으로 고통받았던 3년이라는 시간이 깨닫게 해준 취약한 존재, 누군가에게 의존해야만 하는 인간들은 승자의 잔인함과 패자의 무력감만을 선사하는 사회에 내던져져 있다.

민주주의는 고장 났으며 불만이 누적되어가는 사회에 살고 있는데, 불만을 해소할 정치적 통로마저 닫혀 있다. 수도권 집중과 부동산 불패의 신화가 만들어낸 유령이 바로 메가시티인데도 불구하고, 엄청난 지식과 정보를 갖고 있는 ‘똑똑한’ 대중조차 유령이 지피는 신화에 매달린다. 자본의 논리와 시장 만능주의가 인간 실존의 조건과 충돌할 때, 비로소 저항 또는 대안의 틈새가 열릴 수 있으며, 그 틈새로부터 생산된 다수의 비판이 연대를 찾아 정치적 행동으로 공진화해서 나아가야 한다고 강조한다.

서영표 교수의 저서 『불만의 도시와 쾌락하는 몸』에서부터 지속적으로 탐색하고 있는, 인간에 대한 성찰과 더불어 필요 충족, 만족의 경제, 국가와 시장 사이의 커먼즈, 성장 이후, 탈-성장의 삶을 우리 모두 함께 고민하고 연대하며 기획해나가면서 대안을 모색해야 한다는 곡진한 제안이다. 기득권 유지를 위한 정치의 성과주의와 자본의 무한 이윤 추구가 낳은 유령, 메가시티의 유혹이 간단치 않다. 

재난의 기록과 삶의 기억 

이번 호 ‘비평’에는 지난 계절의 꼭 되짚어봐야 할 네 가지 주제를 깊이 있게 살핀 글들이 수록되었다. 2024년 4월 16일은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지 꼭 10주기가 되는 날이다. 이날을 앞두고 세월호 10년 동안 우리 사회와 국가는 이 참혹한 재난에 대해 어떤 성찰과 반성을 하고, 다시는 이런 사건이 일어나지 않도록 어떤 노력을 했는지 묻고 답할 수 있어야 한다.

세월호 특조위 조사관으로 참여하고 『세월호, 우리가 묻지 못한 것』이란 책을 낸 플랫폼C 박상은 활동가는 세월호 참사 재난 조사 이후의 과정을 되짚어보면서 그 답을 들려주는데, 재난에 일차적 책임을 져야 할 국가가 나선 공적 조사는 원인 규명, 책임 배분, 재발 방지 대책 마련, 공동의 기억 구성에서 모두 실패했다는 것이다.

불행히도 세월호 재난 조사의 실패는 이태원 참사 조사의 실패로 이어졌다. 하지만 우리는 공적 조사가 불가능할 때조차 진상규명이 포기되지 않았다는 점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다시는 사회적 재난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라도 실패한 세월호 참사 조사부터 제대로 다시 시작해야 할 것이다. 

2023년 12월 7일, 김용균 사망 사고에 대한 대법원 판결이 내려졌다. 대법원 2부가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업무상과실치사 등 혐의로 기소된 김병숙 전 한국서부발전 대표에게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확정한 것이다. 2018년 12월 11일, 한국서부발전 태안화력발전소 하청노동자 김용균이 점검 중이던 컨베이어벨트에 신체가 빨려 들어가 사망한 사건이 일어나고 5년 동안 진행된 재판 결과 실형을 받은 사람은 아무도 없게 되었다.

서교인문사회연구실과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에서 연구 및 활동을 전개하고 있는 전주희 연구원은 김용균 사망 사고가 한국 사회에 끼친 영향이 넓고 깊음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재판 결과가 김용균 사망 이전의 행태를 반복한 사법적 행위라는 점에서 문제적이며, 재판이 진행되던 중에 제정된 중대재해처벌법의 제정 취지를 무색케 했다고 비판한다. 완고한 법원이 내린 반노동자적 판결을 우리는 어떻게 넘어서야 할지 함께 읽고 숙고해볼 일이다. 

지난 계절 내내 참혹하게 전해진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전쟁에 대해서는 구정은 국제 저널리스트가 전쟁 중에도 일어나서는 안 되는 반인도범죄라는 국제적 규범이 형성되어온 역사적 맥락 속에서 미국과 이스라엘이 저지르고 있는 전쟁범죄를 고발한다. 르완다 내전과 옛 유고연방 내전 뒤 국제사회에서는 반인도범죄를 심판해야 한다는 인식이 커졌고, 제각각인 재판들의 국제적인 공통 기준을 만들어 공통 기관을 설립하자는 문제의식에서 로마규약이 탄생했다.

이 규약에 따라 2002년 헤이그에 국제형사재판소ICC가 만들어져 본격적으로 활동을 시작했다. 2023년까지 이 규약에 한국을 포함해 123개국이 서명했다. 그런데 반인도범죄를 처벌하기 위한 국제 레짐의 형성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미국은 정작 가입을 거부하고 오히려 장애물이 되고 있는 상황이며, 미국이 ICC체제를 거부하는 중요한 이유 중 하나가 이스라엘이라는 것이다. 미국의 시각으로 전달되는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전쟁의 실상을 이해하기 위해서라도 일독을 권한다. 

‘비평’의 마지막 글은 인천여성가족재단에서 지난해 펴낸 여성노동자 구술 채록을 담은 책 『인천지역의 공단과 여성의 공장노동』의 의미를 여성 서사를 연구하는 인천대학교 국어국문학과 노지승 교수가 다섯 분의 여성 노동자들의 삶을 깊이 있게 이해해보고 주석을 통해 독자로서 말을 건네는 방식으로 기록했다.

2022년 인천에서 한국전쟁을 경험한 여성들의 이야기를 구술 채록해 『인천여성이 경험한 한국전쟁과 분단』이라는 제목으로 출간한 데 이어 인천지역 공단에서 공장노동자로서뿐만 아니라 여성으로서 살아내야 했던 다섯 분의 여성노동자들의 이야기를 기록하는 작업 자체가 소중하다. 노지승 교수의 글을 안내 삼아 이 책을 많은 시민이 읽는 계기로 삼았으면 좋겠다. 

오늘도 저기서 누군가 외치고 있다 

이번 호에는 지난 연말 갑작스러운 부고와 함께 우리 곁을 떠난 영원한 재일조선인 고 서경식 선생을 추모하는 글을 한 편 싣게 되었다. 고인과는 1980년대 중반에 처음 만나 오랫동안 인연이 끊어졌다가 1990년대부터 빈번하게 지적․인간적 교류를 이어온 『황해문화』의 전 편집위원인 성공회대학교 인문융합자율학부 권혁태 교수가 깊은 안타까움과 애도의 마음을 담아 추모의 글을 보내주었다.

주지하다시피 서경식 선생은 재일조선인 2세로서 고국의 민주화운동에 관여했을 뿐 아니라 변경인 또는 디아스포라로서 한일 양국이 국가주의·식민주의를 넘어서기를 촉구해온 지식인이다. 그가 대학에 다니던 1971년, 한국으로 건너와 서울대에서 유학 중이던 그의 두 형 서승, 서준식이 군사정권이 조작한 간첩 혐의(국가보안법 위반)로 구속되는 ‘재일교포 유학생 간첩단’ 사건이 벌어졌고, 선생은 일본에서 두 형의 석방을 요구하는 구명운동을 펼쳤다. 그의 발언은 필연적으로 고국의 민주화뿐 아니라 전후 일본의 책임 문제로 이어졌다. 권혁태 교수는 깊은 슬픔에도 불구하고 서경식 선생과의 깊은 교유를 통해 누구보다 그와 그의 활동이 갖는 의미를 곡절하게 전해준다. 

이번 호 ‘창작’ 지면에는 이호석 시인과 장현 시인의 신작시 세 편씩을 실었다. 소설에는 박정윤 작가의 단편 「불탄 공장」과 공모제 당선작인 강경은 씨의 「신호」를 수록하였다. 비록 많은 작품을 수록하지는 못했지만,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감정과 서사가 살아 있는 작품들이 반갑다.

소중한 삶의 현장을 담아 『황해문화』의 포토에세이 지면을 여러 차례 빛낸 이상엽 사진가는 특집의 주제와 어울리게 소멸 위기에 처한 지방의 현실을 인적이 끊긴 읍내와 농촌의 스러져가는 풍광을 담은 흑백사진들로 보여준다. 서울과 수도권 도시 위에는 메가시티라는 탐욕스런 유령이 배회하고 있다면, 아이 울음소리가 오래전에 사라진 지방의 적막강산엔 삶의 잔해들만 쌓여간다.

『황해문화』가 우리 사회의 다양한 변화들을 읽어내기 위해 마련해놓은 ‘문화비평’에도 만화, 젠더, 지역, 영화, 문학, 미디어, 음악 분야에 걸쳐 주목할 만한 사회 동향과 문화 현상들을 그 분야의 전문가들이 담아주었다.

‘여성친화도시’를 명분으로 쫓겨나는 파주 용주골 성매매 집결지 여성들에 대한 파주시의 폭거를 다룬 나영 ‘성적권리와 재생산정의를 위한 센터 셰어SHARE’ 대표의 젠더 비평을 비롯해 국가와 지역의 미래를 망치는 ‘표퓰리즘’ 정치를 비판한 이희환 인천도시공공성네트워크 대표의 지역 비평, 유독 MBC만을 표적으로 삼은 ‘바이든-날리면’ 1심 판결이 남긴 의문을 다룬 김서중 성공회대학교 미디어콘텐츠융합학부 교수의 미디어 비평과 이 계절의 문학 작품으로 아다니아 쉬블리의 『사소한 일』과 다카야마 하네코의 『슈리의 말』을 다룬 오길영 문학평론가의 문학 비평, 김한조의 『일어나요 강귀찬』을 주목한 한상정 인천대학교 불어불문학과/문화대학원 교수의 만화 비평, 영화 <서울의 봄>, <메이 디셈버>, <괴물>을 주목한 김지미 영화평론가의 영화 비평, 또한 이주음악인과 세월호 10년의 이야기를 담아낸 나도원 대중음악평론가의 음악 비평을 좋은 문화의 길잡이로 삼아도 좋을 것이다. 

이번 호 문화비평 특집은 미술 비평이다. 1923년에 발생하여 1924년까지 진행된 암태도 소작쟁의 100년을 기념하여 서울시 문화비축기지의 기획전으로 진행되고 있는 <서용선 프로젝트: 암태도>에 대하여 김종길 경기북부어린이박물관 관장, 최윤정 서울시 문화비축기지 전시기획담당주무관, 이슬비 미술평론가가 비평을 통해 다양한 관점에서 서용선 작가의 작업과 기획전의 의미를 짚어준다.

이번 호의 ‘서평’ 또한 풍성하다. 지난 계절에 나온 주목할 만한 책으로 선정한 『캐노피에 매달린 말들』, 『차별하는 구조 차별받는 감정』, 『야코비와 독일 고전철학』에 대해 조지훈 서교인문사회연구실 회원, 김미정 문학평론가, 정대훈 부산대학교 철학과 교수가 정성스런 서평을 써주었다. 

약 한 달 후면 22대 총선 결과가 나온다. 오직 한 표에 불과한 투표를 통해서만 우리는 정치에 직접 참여할 수 있을 뿐, 모든 권한은 선출된 이들에 의해 좌우된다. 선거 결과가 어떻게 나오느냐에 따라 우리들의 삶도 지역의 현실도 대한민국의 미래도 달라질 것이다. 부디 특집의 필자인 하승수 대표의 말처럼, “정치의 영역에서 지역소멸론이 아니라 ‘방향전환론’이, 메가시티가 아니라 ‘자치의 강화’가 논의되”는 시간이 오기를 간절히 바란다. 

김재호 기자 kimyital@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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