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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 가족을 꿈꾸는 청소년…꿈꿀 능력도 제약된다
정상 가족을 꿈꾸는 청소년…꿈꿀 능력도 제약된다
  • 정인관
  • 승인 2024.03.21 08:4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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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평의 발견_『가난한 아이들은 어떻게 어른이 되는가: 빈곤과 청소년, 10년의 기록』 강지나 지음 | 돌베개 | 288쪽

돌봄의 주체가 숨 쉴 수 있는 틈 만들기
청소년들에 대한 사회적 지지의 중요성

빈곤은 오랫동안 사회학과 인류학의 주요 주제였다. 다양한 연구들이 빈곤이 어떻게 사람들의 삶의 조건을 규정하는지, 그리고 다음 세대에서 재생산되는지 살펴봤다. 

1950년대 멕시코 빈곤가정의 이야기를 담아낸 오스카 루이스의 『산체스네 아이들』이 해당 분야의 세계적 고전이라면 한국에도 1980년대 중반 사당동 무허가 판자촌에서 시작해 2010년대까지 빈곤한 한 가정의 4대에 걸친 궤적을 추적한 사회학자 조은의 『도시빈민의 삶과 공간』(서울대학교 출판문화원 | 조옥라와 공저 | 2013)과 『사당동 더하기 25』(또 하나의 문화 | 2012)가 있다. 사당동 일가족의 모습은 조은 자신이 감독이 되어 연출한 「사당동 더하기 22」(2009)와 「사당동 더하기 33」(2020)이라는 두 편의 다큐에서도 생생하게 드러난다. 이 책과 다큐를 보노라면 그 생생한 묘사와 등장인물들의 예측 가능한 삶의 궤적(계급 재생산)에 숨이 턱 막혀온다. 

강지나 저자의 『가난한 아이들은 어떻게 어른이 되는가』은 빈곤가정에서 자란 여덟 청소년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현직 교사로 박사학위를 취득한 저자는 학위논문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2009∼2013년 사이 지역아동센터에서 봉사활동을 하며 그곳을 찾는 아이들을 대상으로 심층 면접을 수행했다. 또한 책을 저술하는 과정에서 비교적 최근에 이들을 다시 만나 그동안 어떻게 살아왔는지, 또 살고 있는지 확인했다. 이 책에 실린 여섯 명에 대해서는 10∼15년 삶의 궤적을 추적한 것이다.

흔히 빈곤이 한 개인의 삶을 비극적인 상황으로만 이끌어가는 서사에 익숙한 독자라면 이 책을 읽고 조금은 당황할지도 모른다. 책에 등장하는 청소년들은 가난하고, 때로는 좌절하지만 결코 포기하지 않는다. 삶의 과정에서 그들의 선택과 노력은 겨우겨우 살아가는 것을 훌쩍 넘어선다. 그들은 ‘씩씩한 긍정’, ‘타고난 힘’, ‘내면의 (바른) 성품’, ‘사색하는 능력’을 갖추고 있으며 ‘자라온 환경’의 한계에 갇혀 있지 않다. 가끔 일탈이나 범죄 같은 안 좋은 길로 빠지기도 하지만 이내 바뀌어야 한다는 다짐을 하고 그것을 성공적으로 실천한다. 하루하루 먹고 살기 어려운 가운데 장기적인 삶을 고민하는 모습도 보인다. 그리고 그러한 목표를 향해 한 걸음 씩 나아간다. 

‘꿈의 사회학’이라는 연구분야가 있다. 연구자들은 꿈꿀 수 있는 능력이 사회적으로 구조화되는 지점에 주목한다. 이러한 관점에 따르면 가난한 사람들은 그들이 지닌 사회경제적인 조건의 제약으로 인해 ‘큰 꿈’을 꾸기 어렵다. 이 책에 등장하는 청소년들은 미래에 대한 구체적인 청사진(의지·바람·꿈)을 갖고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다. 그럼에도 그 꿈은 종종 지나치게 현실적이고 규범적이다. 유년기에 자신이 갖지 못한, 사회적으로 정상적인 것이라 여겨지는 것을 꼭 이루고 싶다는 바람이 이들이 꾸는 꿈의 동력이자 지향점이 된다. 이 꿈, 저 꿈을 다양하게 꾸며 조금은 (언젠간 극복될) 혼돈 속에서 자라나는 일반적인 청소년이 되기에 이들의 삶의 조건은 지나칠 만큼 가혹하다. 자신들이 온전히 누리지 못했던 정상적인 가족, 화목한 가족에 대한 열망과 책임감은 그들을 ‘바른길’로 이끌지만 너무 조숙한 그들의 모습은 보는 어른들의 가슴을 무겁게 한다. 

이런 모습을 어디에서 봤더라. 읽는 내내 조기현의 『아빠의 아빠가 됐다』(이매진 | 2019)와 그 자신이 다른 영케어러들을 만난 기록을 담은 인터뷰집 『새파란 돌봄』(이매진 | 2022)이 떠올랐다. 앞의 책은 어머니와 이혼한 육체 노동자 아버지와 살아가던 가난한 스무 살 청년이 어느 날 쓰러진 아버지의 보호자가 되어 살아간 시간의 기록을 담고 있다. 긴 시행착오 이후 어머니와 어느 정도의 거리를 두며 각자 자신의 삶을 (잘) 살아가는 ‘수정’의 이야기는 조기현의 이야기를 떠오르게 한다. 어려운 상황에서 가족 간의 관계가 장기적으로 잘 이뤄지기 위해서는 돌봄의 주체가 숨 쉴 수 있는 틈을 만들어줘야 한다. 이러한 틈은 개인의 노력만으로 이뤄지기 어렵다. 

다양한 청소년들의 경험을 소개하며 강지나가 지속적으로 강조하는 것은 빈곤 청소년들에 대한 사회적 지지의 중요성이다. 관계 맺기에 목마른 아이들에게 괜찮은 관계, 안정적이고 지속적인 관계를 제공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저자가 참여관찰을 수행한 복지관이 대표적이라고 할 수 있다. 책에서 소개된 가장 최근의 인터뷰에서 인터뷰 대상자들은 복지관이라는 공간이, 그곳에서 맺은 관계가 그들에게 갖는 소중한 의미에 대해 회고적으로 이야기한다. 저자는 사회자본 개념을 빌려 사회, 그리고 공동체의 역할이 좀 더 강화될 필요가 있음을 강조한다.

김태용 감독의 「거인」(2014)에 등장하는 영재(최우식)이다. 사진은 영화 스틸컷 중에서.

책을 읽으며 들었던 조금은 삐딱한 생각은 상술한 것처럼 이 책의 인터뷰 대상자들이 다소 예외적인 대상이 아닌가 하는 점이었다. 빈곤가정의 청소년으로 복지관을 적극적으로 이용하는 아이들은 선택적 편향을 그대로 반영하는 것이 아닌가? 김태용 감독의 「거인」(2014)에 등장하는 영재(최우식) 같은 아이들은 어디에 있는가? 게다가 이들은 하나같이 좋은 사람(귀인)들을 옆에 두고 있다. 물질적 가난이 삶의 극단적 피폐함으로 치닫지 않는 것은 이 때문이 아닐까 하는 질문들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그러나 이런 생각이 내 ‘편견’인지의 문제를 떠나, 오히려 성공적인, 그리고 조금은 예외적인 사례가 하나의 정책적 지향이 될 수 있는 부분도 분명히 존재할 것이다. 그렇기에 이 책의 가치는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하는가’를 생각하며 읽을 때 더욱 빛을 발한다.

 

정인관 
숭실대 정보사회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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