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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길 찾기…놀이 문화를 혁신하다
잃어버린 길 찾기…놀이 문화를 혁신하다
  • 백운용
  • 승인 2024.03.29 10:2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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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자가 말하다_『기락편방』 박성철 지음 | 백운용 옮김 | 지만지한국문학 | 335쪽

낙동강 선유와 현풍 풍영대의 바람 쐼 기록
내 삶의 길을 찾아내는 지남철로서 인물들

『용화산하동범록』은 경남 함안의 용화산 아래 낙동강에서 정구를 중심으로 함께 배를 타고 정담을 나누었던 34명의 행적을 기록한 것이다. 조임도가 그 명단을 갈무리하였는데, 우연히 이것을 본 박상절이 선유에 참여한 34명의 행적을 찾아 기록하고 여기에 당시 선유의 모습을 여덟 장의 그림으로 새겨 넣어 더욱 실감 나게 했다. 

한편, 대구 달성군 현풍 풍영대에는 현풍현감 김세렴을 중심으로 바람을 쐬며 심성을 닦았던 13명의 이름을 새긴 바위가 있다. 이를 발견한 박상절은 마찬가지로 13명의 행적을 찾아 기록하고 『풍영제현행략』이라 했다. 또한 「풍영대제명석각도」를 그려서 붙이고, 「풍영대술고시」를 서문과 함께 수록했다. 

『기락편방』은 이 두 기록, 즉 용화산 아래 낙동강에서의 선유와 현풍 풍영대에서의 바람 쐼에 관한 기록을 엮은 책이다. 박상절이 이 책을 편찬한 이유는 무엇보다도 낙동강 선유에 증조부 박진영이 참여했고, 풍영대 각석에 조부 박현룡의 이름이 새겨져 있기 때문이다. 지역에서 회자되는 명망 있는 자리에 한 집안에서 대를 이어 참여했다는 것이 대단히 자랑스러운 일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기락편방』은 한 집안의 기이하고 성대한 일에 그치지 않는다.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다양한 가치를 제공하는 원천이기도 하다. 『기락편방』에 실린 여러 인물의 기록을 통해 우리는 한 시대를 슬기롭게 살아간 인물의 행적을 만날 수 있다. 이 책에는 전란 속에서도 용기를 잃지 않고 환란에 맞서는 삶, 수많은 고초 속에서도 자신의 길을 묵묵히 그리고 처절하게 지켜가는 눈물겨운 모습이 곳곳에 드러난다.

죽음도 사양하지 않는 그들의 삶은 어떤 면에서 답답해 보이고 어리석어 보인다. 하지만 어찌 보면 오늘 우리는 그런 삶을 잊어버렸기 때문에 방황하고 혼란스러워하는지도 모른다. 관계 속에서 양보하고 배려하는 것은 지극히 손해라는 인식, 이성과 합리를 기반으로 털끝만큼의 오차도 서로 용납하지 않으려는 처절한 경쟁, 가장 소중한 것은 나를 중심으로 한 핵심적 관계라는 이기심 등이 우리 삶을 위태롭게 하고 있다. 이 때문에 모두가 불안해하지만, 정작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지 못하고 각자의 길이 최선이라는 모호함 속에 우리 삶은 내동댕이쳐져 있다. 『기락편방』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삶은 내 삶의 길을 찾아내는 지남철일 수 있다. 

아울러, 용화산수도와 서발문의 여러 기록을 통해 유서 깊은 장소를 상상해 볼 수 있고 직접 찾아가 그때 그 자리를 눈에 담아 볼 수도 있다. 이를 통해 선현이 추구했던 놀이의 의미[풍류]와 삶의 의미[수신(修身)]를 되새길 수 있으며, 여기서 얻은 깨달음을 우리 삶에 적용하고 또 지금보다 나은 삶을 고민하고 실천할 수도 있다.

우리는 가진 에너지를 모두 쏟아부어 한 움큼의 힘도 남기지 않고 발산해야 ‘잘 놀았다’라고 한다. 즐거움의 절정을 맛보기를 원하는 이들이 약물에 손을 대 사회적 문제가 되기도 한다. 놀이는 과연 이렇게 에너지를 남김없이 소진하는 일일까.

선인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들에게 놀이는 에너지를 충전하는 일이었다. 마음의 긴장을 다소 해소함으로써 다시 마음을 다잡을 힘을 얻는 것이 놀이의 목적이었다. 산천의 유장하고 미려함을 바탕으로 삼아 마음을 다잡을 힘을 다시 충전하는 것이 놀이였다. ‘풍영’과 ‘선유’는 이러한 우리 놀이 문화의 본질을 잘 담고 있다. 『기락편방』을 읽으며 선인들의 놀이 문화를 다시 음미해 보자.

 

 

백운용 
경북대 국어국문학과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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