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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를 외치는 대통령, 멀어지는 자유민주주의
자유를 외치는 대통령, 멀어지는 자유민주주의
  • 안상준
  • 승인 2024.03.25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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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정론_ 안상준 논설위원 / 국립안동대 사학과 교수

 

안상준 논설위원

‘서울학생인권조례의 폐지를 막아달라’(조희연 서울시교육감), ‘학부모단체, 공공도서관에 젠더·인권 다룬 도서 120권 퇴출 요구’, 제24회 전국 학생만화공모전 수상작 전시회 돌연 취소, 공직자 의혹을 다룬 기자나 언론사에 대한 고소·고발 남발, 입이 틀어 막힌 채 쫓겨나는 카이스트 졸업생, “내가 (군) 정보사 나왔는데, 1988년 경제신문 기자가 압구정 현대아파트에서 허벅지에 칼 두 방이 찔렸다.”(황상무 대통령실 시민사회수석)…. 

섬뜩하기 짝이 없다. 민주화의 금자탑이 일상에서 금이 가고 있었다. 우리가 일상적으로 체감하는 민주주의의 퇴행을 스웨덴 ‘민주주의다양성연구소’(일명 V-Dem)는 연례 보고서에서 다음과 같이 표현했다. “한국은 민주화에서 독재화로 전환하는 국가다.” 

최근 5년간 ‘민주주의 리포트’가 산출한 한국의 자유민주주의 지수는 흥미로운 결과를 보여준다. 2019년 0.78점(18위), 2020년과 2021년 0.79점(17위), 2022년 0.73점(28위) 그리고 2023년 0.60점(47위). 문재인 정부 시기(2019~2021)에는 비교적 상위권을 차지했으나, 윤석열 정부 들어 급격히 추락하고 있다는 사실이 확연히 드러난다. 

보고서는 “대규모 탄핵 시위 이후 인권운동가 출신 대통령에 의해서 회복되었던 민주주의가 보수 우익 성향의 현 대통령 집권 이후 악화했다”고 설명했다. 전 정부 인사들을 처벌하려는 강압적인 조치와 성평등을 공격하고 여성가족부를 폐지하려는 시도가 크게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또한, 한국을 언론의 자유가 눈에 띄게 위축되고 있는 20개국 중 하나라고 분류하면서 “언론과 표현의 자유 침해는 가혹한 독재 국가들에서만 벌어지는 일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준다”라고 지적했다. 특히 자유민주주의 최상위 그룹인 32개국 중 독재화 국가로 분류된 나라는 한국이 유일하다. 경제성장, 민주화, 한류, 안전한 국가 이미지를 통해 세계인의 주목을 받은 한국의 국격이 졸지에 무너지는 날이었다고 평할 수 있다.

이런 평가는 이미 예고되어 있었다. 2023년 제5차 유엔 ‘자유권 규약 심의’(10월 19~20일, 스위스 제네바)를 상기해보자. 결사의 자유 탄압(노조 혐오 선동, 노조 운영에 대한 행정 개입과 노조 활동에 대한 사법 탄압), 언론의 자유 침해(공직자 의혹을 다룬 기자나 언론사에 대한 고소·고발 남발) 및 시민단체 활동 제약(‘시민사회 선진화’라는 이름으로 시민단체를 악의적으로 공격하고, 정부 비판을 위축시킴)은 국제기구의 권고에도 한국 정부가 이행하지 않는 사안들이다. 실제로 심의과정에서 정부 대표단은 소극적이고 성의 없는 답변으로 심의위원을 설득하지 못했다.

법원에서 제동이 걸렸지만 ‘바이든, 날리면’ 논란에 대한 방송심의위원회의 MBC 과징금 제재는 민주국가에서 상상할 수 없는 조치다. 나아가, 인권위·권익위·방통위·감사원 등 인권과 자유를 신장하고 직접적으로 관여하는 기관들의 자의적·파행적인 운영이 민주주의의 근간을 위협하고 파괴한다.

입만 열면 ‘자유’를 외치는 대통령, ‘자유민주주의’를 신봉하는 집권 여당 아래서 벌어지는 모순과 억지의 증거들이다. “언론의 자유와 언론기관의 책임을 철저하게 존중하는 것이 우리 정부의 국정철학이다.” 이 당연한 명제가 왜 이렇게도 이상하고 억지스럽게 들리는지 통탄할 일이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이러한 퇴행이 지속되고 어쩌면 더욱 빠르게 진행될 수도 있다는 전망에 있다. 내년도 ‘민주주의 리포트 2025’에서 ‘한국은 독재국가로 전락했다’는 내용을 확인하는 건 아닌지. 왜 항상 부끄러움은 국민의 몫인가?

안상준 논설위원 
국립안동대 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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