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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윤을 향한 질주
이윤을 향한 질주
  • 김재호
  • 승인 2024.03.26 10:1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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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_『이윤을 향한 질주』 키앙가야마타 테일러 지음 | 김홍옥 옮김 | 에코리브르 | 584쪽

주택 소유를 둘러싼 ‘포용’이라는 이름의
‘차별’과 ‘배제’의 고착화를 파헤치다

주택 소유에 대한 열망은 시대, 세대, 지역을 불문하는 듯하다. 주택은 자기과시이고 권력인가 하면, 자괴감과 박탈감이기도 하다. 이는 미국이라고 다르지 않다. 극심한 빈익빈 부익부의 나라 미국에서 주택 소유는 ‘아메리칸드림’의 주춧돌이자 실현이다. 

주택 문제는 사회 갈등과 사회 불평등의 키워드로 자리 잡아 분열의 온상이 되고 있다. 우리나라가 부자와 빈자, 도시와 농촌, 서울 및 수도권과 지방 사이에서 펼쳐지는 문제라면 미국의 경우에는 백인과 비백인(특히 아프리카계 미국인) 사이, 즉 인종 문제가 추가되면서 더욱 복잡하고 까다로워진다.

미국 사회에서 삶의 질은 개인적 부의 축적에 좌우되고, 주택 소유는 대다수 가정이 부를 축적하기 위해 가장 많이 투자하는 단일 항목이다(우리나라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주택 시장이 철저히 인종차별에 의해 형성되면 불평등은 고질적으로 고착화한다. 지난 100년 동안 주택 시장이 인종차별 없이 공정하게 운영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인종차별적 용도지역제에서부터 인종차별적인 제약 계약, 토지 할부 계약, 연방주택청이 보증하는 모기지, 서브프라임 모기지 대출에 이르기까지 미국 주택업계는 인종적 차이에 대한 대중의 인식을 악용하고 이를 통해 금전적 이득을 취하려고 안간힘을 써왔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명확하다. 설령 눈에 띄는 차별이 없더라도 흑인 공동체와 흑인 동네는 열등하게 인식되며, 그 때문에 아프리카계 미국인은 삶의 질을 유지하기 위해 본질적으로 평가 절하된 ‘자산’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는 영구적인 불이익을 초래했다.

 

저소득층 아프리카게 미국인의 주택 소유

이 책은 미국 주택 정책의 주요 전환점인 1970년대, 즉 주택도시개발부 산하 연방주택청이 유구한 레드라이닝 정책을 중단하고 저소득층 아프리카계 미국인이 주택을 소유할 수 있도록 장려하는 새로운 정책으로 방향을 튼 시점을 집중적으로 살펴본다. 수년 동안 주택 구입을 위한 전통적 자금 조달 수단에 접근하기 어려웠던 흑인은 1960년대에 사회적 격변과 도시 반란을 이끌었다. 어떻게든 이 문제를 해결해야 했던 연방 정부는 레드라이닝 정책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최초의 저소득층 주택 소유 프로그램은 연방 보조금·긴 상환 기간·모기지 보험 보증 등을 활용해 부동산업계의 참여를 유도하는 한편, 가난한 노동 계급 아프리카계 미국인의 주택 소유를 도왔다. 이러한 프로그램을 통해 미국 전역의 흑인 도시 공동체에서 전례 없는 부동산 거래가 이루어졌다. 그러나 이 새로운 전환, 즉 주택도시개발부-연방주택청의 배제 정책에서 도시 부동산 매매 세계로의 포용은 온갖 문제로 가득 차 있었다.

연방주택청의 배제 관행이 흑인 공동체의 열악한 상황을 설명해주는 핵심 요소로 꼽히면서, 그에 따른 논리적 해결책은 포용이었다. 이 논리는 시장이 백인 주택 소유자에게 중산층 지위를 부여한 방식에서 비롯되었다. 1960년대에 도시적 삶의 중심을 차지하던 소요를 감안할 때, 부동산 소유가 흑인 반란을 잠재울 수 있으리라는 희망이 고개를 들었다. 또한 아프리카계 미국인에게 도시에서 주택 소유 가능성을 열어주면, 백인 교외 지역 공동체로 진입하려는 그들의 요구가 줄어들 거라는 계산도 있었다. 

전후 인종자유주의(racial liberalism)의 고전적 공식에 따르면, 백인 미국인의 삶을 지배하는 정상화한 제도로부터의 배제가 아프리카계 미국인에게 핵심 문제로 떠올랐다. 인종자유주의는 배제가 낳은 위기에 대한 해독제로서 포용을 제시했다. 아프리카계 미국인을 포용하면 사회 안정과 중산층 지위를 창출하고 개인적 부의 축적을 촉진하는 진정한 시장 잠재력이 드러나리라 기대했다.

그러나 이러한 포용은 조건부적이고 일시적이며 단계적인 방식을 취할 예정이었다. 아프리카계 미국인에 대한 경제적 착취와 인종차별은 미국 주택 시장을 대동단결시키는 접착제였는데, 흑인 매수자를 부동산 시장에 완전히 포용하기 위해 반드시 넘어서야 할 문제이기도 했다. 그러나 포용은 약탈적 관행을 끝장내기는커녕 되레 강화했다.

아프리카계 미국인에게 주택 소유는 과연 어떤 의미였을까. 사진=픽사베이

 

불평등한 조건의 약탈적 포용

저자는 이를 ‘약탈적 포용(predatory inclusion)’이라 일컫는다. 약탈적 포용이란 아프리카계 미국인 주택 매수자가 기존의 부동산 관행과 모기지 금융에 대한 접근 기회를 더 비싸고 상대적으로 불평등한 조건으로 부여받았음을 의미한다. 이러한 조건은 수년에 걸친 공공 기관 및 민간 기관의 방치로 상처 입은 도시가 드러낸 극심한 빈곤과 쇠락 탓에 정당화되었다. 레드라이닝 종료 시점에 이러한 빈곤과 곤궁 상태는 교외 지역 거주자에게 제공하는 조건보다 더 비싸고 불리한 조건으로 기존 시장에 진입하도록 내모는 구실이 되었다. 

게다가 흑인 주택의 물리적 조건, 지리 및 위치의 차이는 인종의 대리물로 떠올랐다. 공정주택법 도입과 함께 인종을 노골적으로 들먹일 수 없게 되었기 때문이다. 도시 시장에 오랫동안 존재해온 이러한 차이는 흑인 주택 소유자에 대한 차별 대우를 정당화함과 동시에 그들이 약탈적 부동산 관행에 취약해지도록 내몰았다.

약탈적 포용 개념은 인종자유주의가 실패했다는 것, 그리고 민권·법률·자유시장자본주의라는 매개를 통해 흑인 시민을 미국 민주주의로 끌어안으면 그들이 마침내 공정과 평등을 누릴 수 있다는 전제 역시 잘못이라는 것을 말해준다. 아프리카계 미국인은 공식적으로는 그러한 미국의 민주주의 도구에 접근할 수 있었지만, 실상은 그렇지 못했다.

이 책은 인종차별, 착취적 부동산 관행, ‘인종차별적 배제’에서 ‘약탈적 포용’으로의 전환이라는 골치 아픈 역사를 생생하게 보여준다. 또한 1968년 공정주택법 사례에서 보듯 인종차별에 대해 단순히 포장만 달리하는 데 그치는 조치는, 당시 흑인 매수자와 임차인을 다르게 대우하기 위한 새로운 근거로 쓰인 법적 차별이 수십 년간 어떤 결과를 낳았는지 간과하도록 이끈다고 꼬집는다. 새로운 공정주택법은 그것이 거둔 숱한 성과에도 불구하고, 동네·주택의 유형 또는 질, 위치, 소득, 직업, 혹은 부동산업자들이 다른 명목으로 차별을 조장하고자 동원할 수 있는 여러 인종적 기표에 기반을 둔 차별을 금지시키지는 못했다.

아프리카계 미국인이 주택을 매수하려고 했을 땐, 약탈적 포용이 적용됐다. 사진=픽사베이

 

공공 부문과 민간 부문의 결탁 관계

1970년대는 연방 정부가 빈곤층과 저소득층에 주택을 공급하는 방식에서 커다란 변화를 겪었다. 저소득층의 공공 주택에서 주택 소유로의 전환은, 정부 또는 자유 시장 중 어느 쪽이 적정가 주택과 관련해 미국에서 계속되는 위기에 대응하는 데 더 적합한지 고심한 결과가 아니었다. 1970년대의 주택 정책은 그보다 공공 부문과 민간 부문의 결탁 관계에 좌우되었다. 저자는 이러한 관계로 인해 인종차별을 사업 원칙으로 삼으면서 만족을 모르고 탐욕스럽게 이윤을 추구하는 부동산업계를 확실히 규제해야 하는 연방 정부의 능력이 약화했다고 주장한다. 주택도시개발부-연방주택청의 주택 위기를 연구한 사회학자 크리스토퍼 보나스티아는 주택도시개발부의 ‘다루기 벅찬’ 관료적 비효율성과 그 책임자들 간의 상충하는 정치 어젠다에 주목했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부동산업계가 공공이 아니라 제 업계에 유리하게끔 정책을 형성 및 실행하도록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관행을 온전히 설명할 수 없다. 도시 부동산 시장에서의 착취 지속 현상이 차라리 과거의 배제가 더 낫다는 걸 말해주지는 않는다. 그보다 포용을 비롯해 부동산 시장의 여러 관행을 더욱 면밀하게 살펴보도록 등떠민다. 

부동산 시장에서의 흑인 평등은 주택 차별을 공식적으로 종식시킴으로써 달성할 수 있다는 주장도 제기되었으나, 이는 미국의 부동산 매매 시스템에 인종 불평등이 구조화·내재화하는 방식을 고려하지 못한 설명이다. 따라서 심지어 인종차별 정책의 공식 폐지 뒤에도, 인종차별이 배타적인 교외 지역에 내내 가치를 더해주는 방식에 힘입어 경제적 착취와 주거 분리에 대한 충동은 변함없이 계속되었다. 미국의 주택 시장은 그것이 작동하는 더 큰 사회에 만연한 인종차별 의식을 되비추는 거울이었다. 사회과학자 돌턴 콘리는 “백인 주택이 더 가치 있는 이유는 다름 아니라 흑인 주택이 아니기 때문이다”라고 설파했다.

 

주택 압류당한 가능성 높은 흑인 여성

저소득층 주택 소유 프로그램에 가난한 흑인 여성이 포함되면서 인종적·성별 규범이 무너졌다. 그러나 부동산 및 모기지 은행가는 이러한 여성들이 납부금을 제때 내지 못해 주택을 압류당할 가능성이 있으므로 그들을 더욱 중요하게 여겼다. 흑인 여성은 가난하고 절망적이며 납부금을 연체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바람직한 고객인 셈이다. 과거의 프로그램과 달리 압류된 주택의 모기지에 대해 대출 기관에 전액 지불을 보장해주는 주택도시개발부-연방주택청의 보증은 위험을 배제의 사유에서 포용의 인센티브로 뒤집어놓았다. 가난한 흑인 여성의 투쟁은 중첩된 인종차별 및 성차별 패턴이 새로운 포용적 주택 시장을 형성하는 방식에 특별한 통찰을 제공한다.

한편 아프리카계 미국인을 낙후된 도시 지역으로 분리시킨 뒤 해당 지역 사회에 자원 및 기타 투자 제공을 차단하자, 그들은 급여가 더 나은 일자리와 자원이 넉넉한 공립학교에 접근하기 어려워졌으며 기준 미달 주택으로 밀려났다. 빈곤과 분리는 흑인 주택의 과밀화로 이어졌고, 이는 주택의 악화를 부채질했다. 이러한 상황은 아프리카계 미국인이 잠재적 주택 소유자로서 부적합하고, 주택 시장에서 부동산 가치에 해악을 끼치는 존재임을 말해주는 증거로 받아들여졌다. 또한 더 큰 주택 시장을 ‘감염’시켜서는 안 되므로 아프리카계 미국인의 거주를 흑인 전용 동네로 제한하자는 주장을 정당화하는 근거로 활용되었다.

부동산 시장에 스며든 이 같은 인종차별적 논리는 연방주택청이 생각해낸 게 아니었다. 연방주택청 설립 훨씬 이전부터 부동산 중개업자들은 이미 아프리카계 미국인을 백인이 거주하는 동네로부터 물리적으로 격리하도록 장려하는 규칙을 제정해놓았다.

저자는 1960년대 말 미국의 정책과 정치사를 들여다봄으로써 법적 변화만으로는 뿌리 깊은 문화적·사회적·경제적·정치적 가정을 바로잡기가 거의 불가능하다고 지적한다. 인종화한 정치경제 현실은 오랫동안 아프리카계 미국인을 배제해온 금융 제도와 공공 서비스로 새롭게 그들을 포용한다면 흑인 도시 공동체의 물리적·경제적 황폐화를 얼마든지 극복할 수 있다는 생각에 도전장을 던진다. 실제로 주거 분리가 낳은 더 큰 동학을 무시한 채 그러한 과정을 포용하는 조치는 도시 주택 시장 거래에서 훨씬 더 착취적이고 약탈적인 관행, 즉 약탈적 포용의 토대를 마련했다고 주장한다. 모기지 담보 증권의 사용과 연방국가모기지협회의 민영화는 새로운 것이었지만, 주택의 가치는 여전히 몹시 오래된 셈법에 기반을 두고 있다. 미국에서 주택의 가치는 변함없이 아프리카계 미국인과의 인접성 여부에 좌우된다. 포용으로의 전환은 다른 배제 형태들을 유지해야만 가능하다.

 

주택 정책과 관련한 인종차별의 역사

미국 주택 시장에는 부동산업계, 주택업계, 은행업계의 역사적이고 지속적인 관행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인 차별이 내재해 있다. 이는 연방 정부가 모든 역사적 시기에 걸쳐 민권법을 엄격하게 준수하는 데 실패했기 때문이다. 주택이 상품화하고, 게다가 인종차별적 의식에 의해 형성된 대중의 사회적 욕구와 기대에 좌우되는 상황에서, 시장의 명령을 뛰어넘기란 불가능하다. 이러한 현실은 여러 주택 관련 업계가 지속적으로 인종을 시장의 필수 요소로 삼아오면서 한층 두드러졌다. 인종적 차이와 반감은 시장이 의도치 않은 결과가 아니라 외려 시장을 구성하는 데 기여하는 요소다.

이 책은 주택 정책과 관련한 인종차별 역사를 다룬다. 시기적으로는 194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를 아우른다. 그 후부터 지금에 이르는 수십 년에 대한 언급은 빠져 있다. 상황은 나아지고 있을까, 나빠지고 있을까? 어떤 정책 변화가 있었고, 어떤 정책 변화가 필요할까? 하지만 이 책을 통해 문제의 근원과 배경을 이해함으로써 지금을 헤아려볼 수 있다. 어쩌면 우리는 이미 그 문제들이 고질적이고 지속적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

김재호 기자 kimyital@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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