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4-28 01:00 (일)
[신임교수 인터뷰]김용하 / 안동대·국문학과 외
[신임교수 인터뷰]김용하 / 안동대·국문학과 외
  • 김유정 기자
  • 승인 2008.04.14 15:1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궤멸에 이른 지방 학문후속세대 살폈으면”

김용하 / 안동대·국문학과

올해 안동대에 둥지를 튼 김용하 교수(40세·사진)는 1998년 박사학위를 받았다. 줄잡아 10년 동안 이 대학 저 대학을 전전하며 ‘시간강사’라는 이름의 삶을 살아온 김 교수의 소회는 남다르다. 임용 이후 가장 달라진 점을 물으니 “시간강사들의 소외된 삶이 확연하게 느껴진다”고 답한다.

교수가 된 기쁨보다 지난날에 대한 설움이 북받친다. 김 교수는 “임용이 되고 교수로서 받을 수 있는 혜택들을 맞닥뜨리니, 그동안 인간이길 포기한 삶을 살아왔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한다. 지난 10년 시간의 두꺼운 무게가 느껴진다.

시간강사로서 살아온 그의 삶에는 아무런 사회적 안전망이 없었다. 더군다나 지방사립대 출신으로 겪어야했던 설움도 포개졌다. “서울대에서 강사생활을 하시다가 자살한 분들이 계셨는데, 과한 말일 수 있지만 지방에 비하면 서울은 천국이다. 거점 국립대가 아닌 경우에는 연구비 지원도 거의 기대할 수 없고, 지방의 학문후속세대는 멸종됐다고 봐도 무방하다.” 그나마 있는 연구자들도 그런 현실에서 도전적으로 학문에 임하기 어렵다는 것이 그의 전언이다.

김 교수는 ‘일회용’이 아닌 엄연한 연구 인력으로 시간강사를 봐줬으면 하는 바람을 전한다. “수업평가에서 안 좋은 성적이 나오면 강의를 잘리기 일쑤다. 대학의 일원으로 시간강사를 생각한다면 재교육을 하거나 연수교육으로 모자란 부분을 채워줘야 하지 않을까.”

교수가 되기까지 험난한 길을 걸어온 그이기에 지방의 학문후속세대들에게 애틋하게 머무는 시선이다. 김 교수는 계명대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원에서 ‘한국어 격과 어순의 최소주의 문법’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1999년 학위논문을 책으로 출간(한국문화사)한 이래 20여 편이 넘는 논문을 발표하며 ‘한국어의 격’ 연구에 매진해왔으며, 2003년 국어학회에서 수여하는 일석국어학연구장려상을 받았다.

김혜진 기자 khj@kyosu.net

 


 

“하고 싶은 연구, 마음껏 할래요”


민달희 / 카이스트·화학과

카이스트는 올해 30대 초반 MIT 박사후연구과정 민달희 박사(33세·사진)를 화학과 조교수에 임용했다. 민 교수는 바이오칩과 나노바이오 기술을 전공, 카이스트에서 기초과학과 생물공학·나노기술공학 등 여러 학문분야에 걸친 지식과 기술을 추구할 생각이다.

민 교수는 박사과정·박사후과정 연구실을 선택하면서 연구방향 갈피를 잡았다. 선택 기준은 ‘하고 싶은 것.’ 카이스트를 선택한 이유도 “원하는 연구를 마음껏 할 수 있는 여건” 때문이다.
카이스트는 임용 면접 일정을 지원자에게 맞춰줬다. 민 교수는 그 배려가 대학에 대한 인상을 훨씬 좋게 만들었다고 했다. 총장 면접에서는 오히려 “총장의 열정을 봤다”고 말했다. 카이스트는 요즘 개혁 드라이브를 걸고 있다. 업적·강의평가가 부담되지 않을까. 민 교수는 “즐겁고 재미있는 일을 열심히 하다 보면 업적이나 평가는 자연히 좋게 나오지 않을까요”라고 되물었다.

민 교수는 젊은데다 ‘동안’이다. 구급약이 필요해 교내 약방을 찾았더니 “학번을 적고 가라”는 말을 들었다. 그 후 미용실에 가서 “나이 들어 보이게 해달라”고 주문했다. 이제는 평소에 즐겨 입지 않던 정장도 자주 입으려고 노력한다.

그래도 마인드는 가리기 어렵다. 민 교수는 연구실 홈페이지 대신 인터넷 상용카페를 쓴다. “좀 더 대중에게 친근한 과학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네티즌에 쉽게 접근하겠다 싶어 시작했는데, 이제는 과학을 전공하지 않는 일반인들도 가끔 질문을 해 와요.” 민 교수는 이번 학기 대학원 강의를 시작했다. 뛰어난 학생들이 많아 “청출어람청어람이란 말을 자주 하게 될 것 같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민 교수는 “서정헌 선생님이 생각난다”고 했다. “항상 즐겁고 재미있게 화학을 하신다는 느낌이 들었다. 훌륭하게 지도해주셔서 여기까지 왔다. 감사 드린다”고 말했다. 

박상주 기자 sjpark@kyosu.net


 

“오랫동안 기억되는 교수이고 싶습니다”

민유기 / 광운대·교양학부

광운대에서 첫 학기를 맞은 민유기 교수(38세·사진)는 근황을 묻는 질문에 강의준비와 진행 중인 프로젝트, 행정 업무로 캠퍼스에 성큼 다가온 봄을 느낄 여유도 없다고 전한다. 빡빡한 일정이지만 그는 “전임 교수님들의 축하자리, 신임 동료교수님들과 대화를 통해 학문적 공동체 소속감과 행복감을 느끼고 있다”고.
시간강사와 연구교수 등을 두루 거친 민 교수는 “시간강사 시절에도 강의에 충실했고 학생들에 대한 관심이 남달랐다고 생각했는데 전임이 되니 시간강사 때와는 다른 소속감과 책임감이 마음 속 깊이 생겨나는 걸 느낀다”며 새삼 전임교수 확충 필요성을 체감하고 있다.

민교수가 ‘서양근현대사’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학부시절 부터, 민 교수는 그 호기심을 20여 년째 이어오고 있다. “한국사회 여러 현상들과 사회적 쟁점들에 대한 구체적이고 역사적인 가치가 녹아든 방향성을 제시하고 싶다”는 바람을 전한다.

그는 앞으로 강의를 통해 학생들에게 “서양 역사를 강의하면서 우리사회의 도시 문제, 과학기술 발달, 민주주의 확대 등에 대한 비판적 사유를 하도록 돕고 싶다”면서 “깊이 있는 지식과 지혜를 전달해주는, 오랫동안 기억되는 교수이고 싶다”고 교육자로서 의욕을 보였다. 아울러 “학자로서 학문발전과 사회발전에 기여하는 의미 있는 연구성과를 남기는 것에 머무르지 않고 사회가 필요로 하는 여러 공간에서 개인적 경험과 지식을 함께 나누면서 봉사하는 민주적 시민으로 살아가고자 한다”는 포부도 전했다.

민 교수는 고려대를 졸업하고 2003년 프랑스 EHESS(Ecole des Hautes Etudes en Sciences Sociales)에서 ‘파리 지역의 서민주택 개혁 1870~1914:사회주택의 역사인류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박수선 기자 susun@kyosu.net


 

“내년엔 신설과목으로 학생과 만나야죠”

조동훈 / 한림대·경제학과

올해 상반기 신임교수로 임용된 조동훈 한림대 경제학과 교수(38세·사진)는 강의를 맡기 전 “고등학교 때 상위권에 속해 있지 않은 학생들이 많아서 학습에 대한 동기부여가 활발히 이뤄지지 않을 수 있다”는 말을 들었다. 게다가 조 교수가 맡은 첫 강의는 1학년이 대상이다.

조 교수는 학생들이 수업에 흥미를 갖도록 ‘쉽게 설명’하는데 초점을 맞췄다. 그가 맡은 강의는 경제학원론과 경제수학이다. 강의를 준비하는 과정은 미국 캘리포니아주립대에서 강의조교로 일한 경험이 도움이 된다. 저학년을 대상으로 하는 대규모 강의에서 대학원생이 교수가 강의시간에 전달하지 못 한 내용을 대신 전달하거나 퀴즈를 내고 문제를 풀이하는 등 ‘보충수업’을 진행하는 식이다.

조 교수는 교수로 임용되기 전 한국노동연구원 부연구위원으로 근무하면서 다른 대학에 시간강사로 나가기도 했다. 조 교수는 “당시에는 강의가 처음이었고 내가 속한 학교가 아니기 때문에 많은 열정이 없었지만, 지금은 내가 속한 직장인만큼 학생을 가르칠 때 더 애착이 간다”고 전했다.

앞으로 노동경제학, 그 중에서도 임금격차 문제를 연구할 계획이다. 성별 임금격차를 비롯해 교육수준과 임금관계, 공식적인 부문과 비공식적인 부문 사이의 임금격차에 등에 대해서다. 이르면 내년부터 ‘인사관리경제학’ 수업을 학교에서 처음으로 개설한다. 조 교수는 “다른 대학에서 인사관리경제학을 강의하는 일이 별로 없다. 내가 먼저 나서서 기업의 임금 시스템이나 인사관리, 근로자와 기업의 효율적 운영 등에 대한 주제를 다뤄 나가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조 교수는 경희대를 졸업하고 캘리포니아대에서 ‘Three Essays in Empirical Labor Economics’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김유정 기자 jeong@kyosu.net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