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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강생 50~100명 내외 강의 효과 없다
수강생 50~100명 내외 강의 효과 없다
  • 교수신문
  • 승인 2008.04.21 10:32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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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벽의 ‘새롭게 만들어 가는 대학’ ]2. 대규모의 강의가 해결책이다

교수님들이 가장 힘겨워하고 싫어하는 것 중에 하나가 대규모 강의입니다. 수강생이 100명이나 되는 대규모 강의를 하자면 수업 준비야 별 차이 없지만 시험과 리포트 채점하는데 걸리는 시간은 학생 수와 비례하니 소규모 강의보다 몇 배가 됩니다. 더군다나 학생 관리도 잘 되지 않고 토론이나 실습 등 효과적인 교수법은 엄두도 내지 못합니다. 결과적으로 학습효과는 떨어지고 학기말 강의평가 역시 따라 떨어지기 일쑤입니다. 하지만 대규모 강의를 맡았다고 해서 책임시수가 달라지는 게 없습니다. 결국 더 열심히 해봤자 본전도 찾지 못하는 게 대규모 강의이다 보니 모두가 기피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대규모 수업에 대한 부정적 인식은 우리 머릿속 깊이 박혀있습니다. 우리 모두 대규모 교실의 대명사인 ‘콩나물 교실’을 기억합니다. 그땐 교육의 장이라 하기보다 마치 훈련소 같았습니다. 하지만 이젠 학생 대 교사 수를 OECD 선진국 수준으로 꾸준히 줄여 학생 개개인에게 신경을 쓸 수 있는 정도의 소규모 교실이 운영되고 있습니다. 이를 두고 ‘발전’이라하며 우리 모두 기뻐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대학에서도 마찬가지로 해외 명문대의 소규모 강의를 동경하고 벤치마킹하고자 합니다.

잠깐. 여기서 무엇이 사실이고 무엇이 편견인지 따져야 하겠습니다. 진실과 인지적 왜곡을 정확히 구분한 후에 강의실 운영에 대한 전략을 세워야 하겠습니다. 필자는 대규모 강의를 부정적으로 인식하는 그 자체가 대학 교육을 필요 이상으로 어렵게 만들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대규모 강의에 대한 몇가지 오해


첫째, 수강생 수가 적으면 적을수록 학습효과가 좋다? 사실은 다릅니다. 수강생 수가 학습효과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는 미국의 경우 이미 100년의 연구결과가 축적돼 있습니다. 결론은 “수강생 수가 학습 효과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입니다. 단 수강생 수가 20명 미만인 경우를 제외하고 말입니다.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결론입니다.

학생이 20명 미만이면 바로 앞에 같이 앉아서 학생의 눈동자가 보일 정도입니다. 그럴 때는 어떤 교수법을 동원하더라도 다 효과가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학생 수가 500명이나 되면 학생들의 눈은 더 이상 보이지 않고 학생들의 머리통만 보입니다. 개별적 접촉이 가능하지 않은 강의실에서 교수가 사용할 수 있는 교수법이란 그다지 많지 않습니다. 그러나 학생의 눈이 보이지 않기는 50명이 있는 수업도 어차피 마찬가지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학습 효과 면에서 따진다면 50명 수업이나 500명 수업이나 별 차이가 없다는 결론입니다.

둘째, 학생 수가 많으면 강의평가에 불리하다? 이 역시 사실이 아닙니다. 강의평가의 신뢰성과 타당성에 대한 연구는 이미 미국에서 70년대와 80년대에 무척 많이 이행되었으며 수강생 수는 강의평가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연구결과가 지배적입니다. 오히려 수 백 명이 수강하는 초대형 강의일 경우에는 학생 수가 많으면 많을수록 강의평가 점수가 높다고 합니다. 

셋째, 미국 명문 대학에는 소규모 강의가 많다? 사실입니다. 예를 들어, 미국 평균 수강생 수는 주립대의 32명에서 사립대의 24명 정도인 것에 비해 스탠포드 대학에서는 30%의 강의가 학생 수 10명 미만의 강의이며, 무려 70% 정도가 20명 미만입니다. 100명 이상 듣는 대규모 강의는 고작 5% 밖에 되지 않습니다.

하지만 통계는 겉만 보고 섣불리 판단해서는 안 됩니다. 각 강의에 등록한 학생 수를 계산을 해보면 좀 다른 내막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스탠포드대에서 20명 미만의 소규모 강의에 약 만 명의 학생이 등록한 반면 거의 두 배나 더 많은 학생들이 50명 이상의 대규모 강의에 등록돼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300~500명의 학생들이 모인 초대형 강의도 많습니다. 하버드대에서마저 1000명이 듣는 슈퍼 대규모 강의가 있습니다.

여기서 강의실 운영에 소규모 강의의 효과성과 대규모 강의의 효율성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다 잡는 미국 명문대의 멋진 행정의 예를 찾아볼 수 있습니다. 만약 어느 과목에 총 500명의 수강생이 등록했다고 칩시다. 5명의 교수가 사이좋게 100명씩 나눠 가르칠 수도 있고, 교수 한 명이 500명을 다 맡고 남은 4명의 교수는 토론이나 실습이 필요한 다른 수업에 학생 10명씩 맡아 가르칠 수도 있습니다. 결론은 대규모 강의를 하기 때문에 많은 소규모 강의를 많이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미국 명문대는 후자를 선택하였습니다.

한국에서 흔히 있는 수강생 50명부터 100명 사이의 강의는 효과성도 없고 효율성도 없는 매우 어정쩡한 규모의 강의인 셈입니다. 대규모 강의실이 없어서 슈퍼 대규모 강의를 운영하지 못하는 것도 아닙니다. 미국의 대규모 강의실은 아침부터 저녁까지 빈틈없이 운영되는 반면 한국에서는 특별 행사 이외에는 잠겨있는 경우가 흔합니다. 즉, 미국과 한국 대학의 강의실 운영 차이는 강의 사이즈에 대한 인식의 차이가 아닐까 싶습니다.

 

강의도 업적… 현실적 이득 줘야


무턱대고 대규모 강의를 추진할 수 없습니다. 최소한 두 가지 조건이 갖추어져야 합니다. 첫째, 교수의 강의 업적을 강의 수나 시수가 아니라 과목 학점 수 곱하기 수강생 수(SCH, Student Credit Hour)로 계산해서 대규모 강의를 맡을수록 업적이 올라가는 이득을 주어야 합니다. 따라서 슈퍼 대규모 수업을 맡으면 한 학기에 그 강좌 하나로 책임시수를 다 충족한 것 같이 계산되어야 합니다(강의 책임시수에 대한 정부 규제가 사라져야 합니다).

이럴 경우, 일부 교수는 강의하는 시간을 줄이기 위해 슈퍼 대규모 강의를 자원하기도 할 것입니다. 하지만 슈퍼 대규모 강의는 아무나 맡아서는 안 됩니다. 소규모 수업을 효과적으로 운영하는 교수라고해서 대규모 수업도 잘 할 것이라는 보장은 없습니다. 하지만 소규모 수업에서 좋지 않은 평가를 받은 교수는 거의 예외 없이 대규모 수업을 성공적으로 이끌지 못할 것입니다. 따라서 두 번째 조건은 대규모 강의는 최고의 명강사만 맡을 수 있도록 못 박는 것입니다. 

필자는 대규모 강의가 한국 대학이 안고 있는 문제를 풀어나가는 한 해결책이라고 봅니다. 물론 현재의 열악한 교수 대 학생 수를 가지고는 한계가 있기 때문에 계속해서 교원 충원율을 높여나가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충원율이 100%에 도달한들 교수 능력과 무관하게 모든 교수가 똑 같은 강의시수를 맡고 계속해서 어정쩡한 규모의 강의를 맡는다면 교육의 효과성과 효율성을 기대할 수 없을 것입니다.

현재 한국 대학은 어떻게 하면 연구 못하는 교수에게 보다 많은 강의를 떠맡게끔 할까 고심하고 있습니다. 심지어 교수를 연구 트랙과 강의 트랙으로 나누는 전략을 고려하기도 합니다. 합리적이라 생각될지는 몰라도 매우 근시적인 생각이라고 판단됩니다. 교수가 강의를 많이 한다는 것이 곧바로 연구를 못한다는 뜻으로 풀이 될 때는 진정 강의하기를 좋아할뿐더러 많이 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닌 교수들마저 강의를 기피할 것입니다. 그 결과, 강의 못하는 교수도 강의를 많이 해야 하고, 연구 못하는 교수도 연구하는 척해야 하는 상황이 지속될 것입니다. 교수, 대학, 학생, 사회 모두가 피해보는 상황입니다.

연구 영역에서는 연구력 높은 교수가 더 많은 연구를 할 수 있는 시스템이 갖춰져 있기에 연구를 많이 하는 교수가 유능한 연구자로써 인정받고 대우 받습니다. 이렇듯, 강의 잘하는 교수를 명강사로 인정하고 강의를 맡는 것을 명예롭게 해줄 때 더 많은 학생들이 우수한 교육을 받게 됩니다. 이때 교수, 대학, 학생, 사회 모두가 득을 보게 됩니다.

우리가 대규모 연구를 존중하듯이 대규모 강의 또한 존중돼야 하며, 대규모 연구는 우수한 연구자가 맡아야 하듯이 대규모 강의 또한 우수한 강사가 맡아야 합니다. 대규모 강의에 대한 인식전환이 필요합니다. 교육에 대한 인식전환이 시급합니다.       

/동국대·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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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의평가연구자 2008-05-09 18:13:45
수강생 50~100명 내외 강의 효과 없다 ... 학교의 특성에 따라 40-60명이 될 수도... 40-80명이 될 수도 있습니다.
인문사회계열강좌는 인원수 증가에 따라 u자 곡선을 그리며,
이공계열강좌는 인원수가 증가하면 강의만족도가 전체적으로 낮아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