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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네, 길을 잘 아는가? 길이란 물과 언덕 사이에 있지”
“자네, 길을 잘 아는가? 길이란 물과 언덕 사이에 있지”
  • 교수신문
  • 승인 2008.04.21 1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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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암 박지원의 길을 따라가다] 조선 지식인의 연경기행 복원

『열하일기』는 연암 박지원이 북경에서 돌아온 뒤 서울 살던 처남 이재정의 집과 황해도 연암골을 오가면서 쓰기 시작했다. 1780년 가을부터 1783년까지 쓴 것으로 추정되는데, 책을 완성하기도 전에 선비들이 베껴 읽기에 바빴다. 18세기 조선 지식인이 중국을 경험하고 기록한 이 방대한 여행기는 단순한 여행기가 아니다. 오른쪽 연구 논저 도표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열하일기』는 세월을 건너 뛰어 오늘날 학계의 학제간 연구 테마를 제공하면서 폭넓게 사유의 폭을 확장하고 있다는 점은 주목할 만한 대목이다.
박지원의 『열하일기』 판본(필사본과 활자본)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필사본에는 연암 박지원의 手澤本으로 불리는 충남대본, 규장각본, 전남대본, 대만본 등이 있다.
활자본에는 六堂 최남선이 편집해 간행한 조선광문회본(1911), 朴榮喆이 편집해 간행한 박영철본이 있다.
고미숙·길진숙·김풍기 등이 엮고 옮긴『열하일기 상·하』(그린비, 2008)는 박영철본을 저본으로 삼았다.
 2001년 한글본 『열하일기』 일부가 출현해 학계의 이목을 집중시킨 적도 있었다(김태준, 「『열하일기』 한글본 출현의 뜻」, 《민족문학사연구》, 2001. 김태준 교수, 「열하긔 권지 이」로 소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열하일기』번역본으로는  고미숙 등의 『열하일기』 외에 북의 리상호가 번역한 『열하일기 전3권』(보리, 2004)이 있다. 물론 이 책 외에도 고서점가를 돌면 만날 수 있는 번역본들도 있다.
윤재영 역인 『열하일기』(박영사, 1983), 이가원 역의 『열하일기』(대양서적, 1973), 1968년 민족문화추진위에서 국역한 2책완질의 『열하일기』,  김성필 역주의 『열하일기』(정음사, 1948) 등이 있다. 심경호 고려대 교수(한문학)는 『열하일기』를 가리켜 “자신의 실패담까지도 적을 만큼 자기 비판적이고 사실적”이며,
“교조주의적인 사상에 대해 회의하고 정신과 민족의 역사에 대해 우려하는 감정을 솔직, 은밀하게 드러냈다”고 평가한 바 있다. 
  김명호 성균관대 교수(한문학) 역시 “풍부한 견문과 진보적인 사상, 참신하고 사실적인 표현기법”을 높게 평가하고 있다.
교수신문은 올 여름 18세기 조선 지식인 박지원이 걸었던 문명의 접점과 지도를 복원하면서 중국을 비롯 세계를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를 놓고 고민하는 여행프로그램을 준비 중에 있다.
이 기획을 위해 연암이 『열하일기』에 그려낸 세계와의 충격적인 만남을 먼저 문자로 복기해본다.
여정표와  일기 내용은고미숙·길진숙·김풍기의 『열하일기』(그린비)에서 가져왔다.  
김풍기 강원대 교수(국어교육과)는 여정과 글의 일치를 확인해주었다.

<사진제공: 그린비>

(1) 도강록 序, 6.24


“자네 길을 잘 아는가” 수역 홍명복에게 물었다.
“네? 무슨 말씀이시온지?”
“길이란 알기 어려운 것이 아니야. 바로 저편 언덕에 있거든.”
“ ‘먼저 저 언덕에 오른다’는 말씀을 이르시는 겁니까?”
“그런 말이 아니야. 이 강은 바로 저들과 우리 사이에 경계를 만드는 곳일세. 언덕이 아니면 곧 물이란 말이지. 사람의 윤리와 만물의 법칙 또한 저 물가 언덕과 같다네. 길이란 다른 데서 찾을 게 아니라 바로 이 사이에 있는 것이지.”
“무슨 뜻인지요?”
“인심은 위태롭고 도심은 은미한 법이지. 서양 사람들은 기하학의 한 획을 변증하면서 선 하나를 가지고 가르쳤다네. 그런데도 그 미세한 부분을 다 변증하지 못해 ‘빛이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한 경계’라고 말했어. 이건 바로, 부처가 말한 ‘닿지도 떨어져 있지도 않는다’는 그 경지일세. 그러므로 이것과 저것, 그 ‘사이’에 존재하는 것은 오직 길을 아는 이라야만 볼 수 있는 법, 옛날 정자산[전국때의 公孫僑의 자] 같은 사람이라야 될 걸.”

(2) 성경잡지, 7월 13일


신민둔의 시가와 점포는 요동만큼이나 번화하다. 전당포 한 곳에 들어가니 뜰 가득히 포도 넝쿨의 녹음이 영롱하게 우거져 있다.… 시를 쓰니 모두들 일제히 나의 필법이 아름답다고 탄성을 지른다.
주인은 잠깐 기다리라며, 다시 좋은 종이를 가져오겠다면서 일어난다. 잠시 뒤 왼손엔 종이를, 오른손엔 진한 먹 한 종이를 들고 온다. 곧 칼로 백로지 한 장을 끊어서 석 자 길이로 만들더니 문위에 붙일 만한 좋은 액자를 써 줄 것을 청한다. 길을 오면서 보니, 점포 문설주에 ‘희기가 서리를 능가하여, 백설을 걸고 내기할 수 있다’는 뜻의 ‘欺霜賽雪’ 네 글자가 붙어 있는 것이 가끔 눈에 띄었던 것이 생각났다. 나는 그때 ‘장사치들이 자신들의 심지가 깨끗하기는 가을 서릿발 같고, 밝기로는 저 희디흰 눈보다도 더하다는 것을 자랑하기 위함이 아닐까’하고 추측했었다. …
나는 나머지 부분의 ‘상’과 ‘기’ 두 글자를 일필휘지로 쓰고 붓을 던지면서 한번 주욱 읽어 보았다. ‘기상새설’ 큼지막한 네 글자가 분명하다. 그런데 주인은 머리를 절레절레 흔들면서, “이 글귀는 저희랑 아무 상관이 없는 건뎁쇼” 하는 것이다.
나는 결국 “또 봅시다” 하고 인사를 한 뒤 몸을 일으켜 나오면서 속으로 욕을 퍼부었다.
‘하긴, 이런 작은 촌동네에서 장사나 하는 녀석이 심양 사람들 안목을 어찌 따라가겠냐? 무식하고 멍청한 놈이 글자가 좋은지 나쁜지 어떻게 알겠어?’

(3)일신수필, 7.15


아아, 슬프다. 황제가 처음 수레를 만들어 헌원씨라고 불린 이후, 오랜 세월 동안 성인들이 힘써 생각하고 관찰하고 손수 만들어 다듬었고, 또 황제 때의 유명한 공장인 수와 같은 장인이 몇 차례나 출현했으며, 상앙·이사 같은 이들에 의해 그 제도가 통일되었다. 실로 학술에 뛰어난 관리들이 열심히 연구하고 긴요하게 실행한 것이 어찌 우연한 일이겠는가. 이는 진실로 백성들의 일상생활을 이롭게 하고, 나라 경영에 크게 보탬이 되는 도구이다. 내가 날마다 수레들을 살펴보면서 감탄해 마지않았던 이유는 이 수레제도로 인하여 많은 사실들을 알게 되었고, 또 그 제도를 갈고 닦기 위하여 몇 천 년 동안 여러 성인들이 얼마나 고심했을 지를 조금이나마 짐작했기 때문이다.

(4)관내정사,8.1.


애석하구나! 옛 역사에 이르기를 “문자가 생기기 전엔 연대와 도읍지는 상고할 길이 없다”고 하였다. 그러나 문자가 생긴 이후 21대 3천여 년 동안, 천하를 다스리는 데는 과연 어떤 방법으로 하였던가. 이른바 惟精·惟一이란 심법으로 했으리라. 하여, 나는 천하를 다스림에는 요·순씨가 알고 있음을 알고, 홍수를 다스림에는 하우씨가, 정전 제도를 마련함엔 주공씨가, 학문의 선전엔 공자씨가, 재정과 세금을 고루 분배함엔 관중씨가 있음을 알 따름이다.
하지만, 알지 못하겠구나! 그밖에 또 얼마나 많은 성인이 머리를 굴렸으며, 또 심력을 기울이며 그 총기를 펼쳤을 것인가. 어디 그뿐이랴! 또 얼마나 많은 성인이 저 21대 3천여 년 동안 문자가 만들어지기 전에 이를 기초하고, 빛내고 다듬었을 것인가. 생각컨대, 여러 성인이 그 두뇌와 심력과 총기를 다 기울여 기초하고 빛내고 다듬은 것은, 자신의 사사로운 이익을 취하기 위함이었을까, 아니면 길이길이 만세토록 함께 백성들과 그 복락을 누리고자 하였음일까.

(5)막북행정록, 8.7


다시 또 한 고개에 올랐다. 초승달은 이미 졌는데, 시냇물 소리는 더욱 요란히 들려온다. 어지러운 봉우리는 음침하기 그지없어, 언덕마다 범이 튀어나올 듯 구석마다 도덕이 숨어 있는 듯하다. 때로 긴 바람이 우수수 불어와 머리카락을 시원하게 쓸어 준다. 솟구치는 감회를 누를 길 없어, 따로 ‘夜出古北口記’를 썼다. …
문무를 막론하고 벼슬이 높으면 반드시 왼쪽으로 견마를 잡히게 한다. 이건 또 무슨 경우인지. 오른쪽 견마도 좋지 않거늘, 심지어 왼쪽에 견마를 잡히다니. 또 짧은 고삐도 불가한데 긴 고삐는 말해 뭐하겠는가. 사사로운 집안을 출입할 때는 혹 위의를 갖출 법도 하나, 심지어 임금의 수레를 모시는 신하로서 다섯 길이나 되는 긴 고삐로써 위엄을 보이려 하는 건 옳지 않다. 이는 문관도 불가한데 진영으로 나아가는 무장이야 더 말해 뭣하겠는가. 이것이야말로 스스로 얽매일 줄을 차는 격이니, 이것이 곧 여덟 번째 위태로움이다. … 그런 난리를 겪고도 이 황당한 습속을 고치지 못하다니, 심하구나! 습속의 고치기 어려움이여!

(6)태학유관록, 8.11


회회인은 대체로 붉은 옷을 입었으나, 검은 옷을 입은 이도 많았다. 붉은 모직으로 고깔을 만들어 썼는데, 모자가 너무 길어 앞뒤로만 테를 둘렀다. 모양은 마치 돌돌 말린 연잎이 물속에서 막 솟아 오른 것 같다. 또 약을 가는 쇠방망이처럼 두 끝이 뾰족하여 다소 경망스러워 보였다.
내가 쓴 갓은 전립, 즉 벙거지 비슷하여 은을 새겨 장식하고 꼭지에는 공작 깃을 꽂았으며 턱은 수정 끈으로 매는 것이었다. 그러니, 저들 오랑캐 눈에는 내가 과연 어떻게 보일지.

_심세편


아! 주희의 도는 마치 해가 중천에 떠오른 것과 같이 세계 만방이 모두 우러러 보는 바이다. 황제가 개인적으로 존숭했다 한들 주희에게 무슨 누가 되겠는가. 그런데도 중국의 선비들이 그것을 부끄러워하는 것은 대개 그들이 겉으로는 존숭하는 척하면서 세상을 억누르는 밑천으로 삼는 것에 격분해서이다. 그러므로 가끔 하두 가지 集注의 그릇된 곳을 핑계로 백 년 동안의 번뇌와 원한의 기운을 씻으려는 것인즉, 오늘날 주자를 반박하는 사람은 옛날 육구연의 학문을 따르던 이들과는 명백히 다르다는 점을 알 수 있다.
그렇지만 우리나라 사람들은 이런 속내를 알지 못한 채 잠깐 중국 선비를 접촉할 때 대수롭지 않은 말이라도 일단 주희와 어긋나는 바가 있을라치면 눈이 휘둥그래지며 깜짝 놀라 그들을 육구연의 무리라고 배척하곤 한다. 또 귀국해서는 이렇게 말한다.
“중국에는 육구연의 학문이 크게 번성하여 유학의 도가 땅에 떨어졌구만. 쯧쯧.”
그러면 듣는 사람 역시 그 본말은 따져 보지도 않은 채 마음속에서 먼저 분노를 일으킨다. 아! 유학을 어지럽히는 사문난적의 성토가 비록 멀리 중국까진 미치지는 못할지라도, 이단을 용납한 잘못은 진실로 용서받지 못하리라.

(7)환연도중록, 8,20.


조명위는 20여 차례나 연행을 한 탓에 북경을 마치 자기 집처럼 여긴다. 또 중국어에 매우 익숙할 뿐 아니라 물건을 매매할 때에는 값의 고하를 그리 심하게 따지지도 않아서 단골 가게들이 많다. 그래서 으레 그가 거처하는 방에 물건을 진열하여 한 번씩 구경하도록 해준다. 지난해 창성위가 정사로 왔을 때였다. 건어호동에 있는 조선관에 화재가 나서 미리 들여 놓았던 장사치들의 물건이 모두 재가 되었는데, 조명 위의 방은 다른 방에 비해 피해가 흑심했다. 매매된 물건을 제외하고도 불에 탄 것들이 대부분 희귀한 골동과 서책이라, 값으로 따지면 무려 화은 3천 냥 어치나 되었다. 물건들은 모두 융복사와 유리창에서 온 것이었다. 단골 가게들이 모두 조명위의 방을 빌려서 진열해 놓았기 때문에 보상을 요구하지는 않았다. 그런데 그런 일을 겪었음에도 불구하고 전과 다름없이 올해 또 이 방에 물건을 진열하여 보는 사람들의 마음과 눈을 즐겁게 해준다. 확실히 대국의 풍속이 그다지 각박하지는 않은 듯하다.
구성·정리= 최익현 기자 bukhak64@kyosu.net

『열하일기』 관련 박사 논문
강동엽, 『열하일기』의 문학적 연구, 건국대 대학원(박사), 1983.
김명호, 『열하일기』 연구, 서울대 대학원(박사), 1990.
이지호, 연암 박지원의 글쓰기 방법연구: 『열하일기』의 상징해석을 중심으로, 서울대 대학원(박사), 1997.
김동석, 『수사록』연구: 『열하일기』와 비교연구의 관점에서, 성균관대 대학원(박사), 2003.

『열하일기』 관련 논문들
안세현. 문체반정을 둘러싼 글쓰기와 문체 논쟁 -정조의 문장의식을 통해 본 
             박지원과 이옥의 글쓰기 태도 및 문체-  <어문논집>, 민족문학회, 2007.
이원석, 박지원의 『열하일기』와 양명학적 사상세계, <중국사연구>, 중국사학회,
             2007.
심경호, 연암 박지원의 논리적 사유 방법과 闢異端論 비판, <대동한문학> 제23집,
             2005.
송재소, 연암,초정, 새로운 문명기획 : 18세기 동아시아 문명의 새로운 전환 ,
             <한국실학연구>, 한국실학학회, 2005.
손용택, 18세기 후반 청조(淸朝)의 의식주 생활문화와 제도에 대한 고찰 - 박지원의
            熱河日記를 중심으로 -, 대한지리학회 2004년 춘계학술대회논문집, 2004.
김상조. 박지원과 메카트니의 중국 인식 비교-『熱河日記』와 『中國訪問使節日記』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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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홍준, 박지원의 중국 세계 인식 -『열하일기』를 중심으로 - , <한국사상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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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미숙, ‘천의 고원’, 유쾌한 ‘노마드’의 지적 여정 : 연암 박지원의 『열하일기』,
             <문학과 경계>제1호. 2001년 여름호.
김동석, 『열하일기』에 형상화된 공안파의 영향 , <한문학보>, 우리한문학회, 2001.
김태준,  동아시아적 글쓰기의 전통론 시고 : 『열하일기』의 글쓰기론을 중심으로,
             <東岳 語文論集> 36, 동악어문학회, 2000.
최소자, 18세기말 동서양 지식인의 중국인식비교 - 박지원의 『열하일기』와
              G . Macartney 의 『 중국방문사절일기 』 를 중심으로,  <동양사학연구>,         
             1997.
김명호, 燕巖 박지원 선생 誕辰 250주년기념 학술회의 : 연행록의 (燕行錄) 전통과
             『열하일기』 , <한국한문학연구>, 한국한문학회, 1988.
임형택, 燕巖의 主體意識과 世界認識 :『熱河日記』分析의 視角, 東洋學國際學術會議
             論文集 3, 성균관대학교대동문화연구원, 1986
강동엽, 『열하일기』 의 표현기법에 대한 소고 , <한국학논집>, 계명대학교
             한국학연구소, 1983.
김태준, 18세기 연행사의 사고와 자각 : 『열하일기』를 중심한 여행자 문학론,
              <명대논문집> 11, 1978.
이가원, 燕巖 朴趾源의 熱河日記, <農園> 1 , 學園社, 1975.
민두기, 『열하일기』의 일연구 , <역사학보>, 역사학회, 1963.
김성칠, 연행소고, <역사학보>, 역사학회, 19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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