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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학술동향] 세계 경기침체가 불러낸 유령 또는 전망들
[해외학술동향] 세계 경기침체가 불러낸 유령 또는 전망들
  • 임경화 성균관대 연구교수·일본학
  • 승인 2008.12.31 1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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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  국

시절이 시절이니만큼 마르크스 읽기가 다시 붐을 일으키고 있다. 세계적인 경기침체 상황이 마르크스의 유령을 다시 불러내고 있는 것이다. 마르크스야말로 자본주의 사회에서 우리가 넘어갈 수 없는 사유의 절대지평이라는 말이 실감나는 대목이다. 마르크스 읽기의 붐은 기왕에 존재했지만 이제는 좀 더 구체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것 같다. ‘마르크스로 돌아가자’는 구호가 등장한 것은 새천년을 맞이하던 지난 2000년. 하지만 이제는 이런 구호가 작은 마르크스 읽기 모임들로 구체화해서 나타나고 있다.

<역사적 유물론>이라는 정통 마르크스주의 저널에서 주최하는 마르크스의 『자본』읽기 강좌가 지난 12월 18일에 진행됐는데, 암스테르담 교수 피터 토머스가 『자본』 1권을 꼼꼼히 읽었다. 이보다 앞서 데이빗 하비가 『자본』 강좌를 실시했는데, 유투브에 관련 동영상이 올라 있어서 많은 이들의 인기를 끌었다. 이런 강좌의 특징은 대중을 마르크스에 친숙하게 만들기 위해 기획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영국의 학계 동향이 마르크스로 점점 기울어지는 것은 일련의 포스트모던 정치학에 대한 회의와 무관하지 않다. 경험주의적이고 실천주의적 전통에 깊이 뿌리박은 영국의 마르크스주의는 여전히 검질긴 생명력을 과시한다. E.P.톰슨이 『영국 노동계급의 형성』에서 묘파한 거대한 노동운동의 흐름은 마르크스주의가 영국인의 내면과 의식을 지배하는 하나의 세계관이라는 사실을 여실히 보여주는데, 학계 또한 이와 무관하지 않다. 무엇을 하든 영국의 학계는 계급과 자본을 이야기하지 않으면 발을 붙이기 곤란한 것이다.

그래서 페미니스트도, 정신분석학자도, 포스트구조주의적 이론가들도 마르크스주의를 벗어난다면 ‘대중성’을 확보하기 어렵다. 신자유주의 자본축적을 설명하기 위해 고전적인 로자 룩셈부르크의 『자본 축적론』을 다시 읽는 것이 바로 영국 학계의 특징이다. 모든 자본주의가 축적을 중요한 내적 동인으로 포함한다는 고전적인 명제는 『자본』을 다시 읽는 영국 학계의 분위기를 가능하게 만드는 정언명령이다.

착취 없는 자본주의가 불가능하다면, 이런 생각은 단순한 고리타분한 한계에 갇혀 있는 것만은 아닐 것이다. 게다가 요즘 영국을 비롯한 유럽에서 목격할 수 있는 마르크스 읽기는 학문적인 탐구심을 넘어서는 측면이 있다. 말하자면 마르크스가 이제는 하나의 유행처럼 대중들에게 다가오고 있는 것이다. 자본주의의 부침을 마르크스보다 더 적절하게 설명할 수 있는 이론가가 없다는 확신은 영국의 대중들을 지배하는 오래된 믿음인 셈이다.

흥미롭게도 이런 반응은 마르크스주의 관련 서적의 판매량으로 등장한다. 한자리 수에 근근이 머물던 마르크스의 『자본』 판매량은 2005년 이래로 꾸준히 성장해서 이제는 두 자리수를 맴돌게 됐다. 역설적으로 자본주의의 위기가 마르크스 책을 출판하는 출판사에게 대박을 선사하고 있는 것이다. 한쪽에서 돈을 잃으면 한쪽이 돈을 버는 아이러니는 여기에서도 재연되고 있다. 그러나 이런 현실은 농담 이상의 의미를 부여한다.

데리다의 『마르크스의 유령들』이라는 책으로부터 촉발된 마르크스에 대한 재인식 바람은 곧 이어진 벤야민에 대한 재평가, 그리고 최근 네그리의 제국론과 아리기의 세계체제론에 대한 마르크스주의적 반격과 서로 관련을 맺고 있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은 단지 새로운 칼이 잘 들지 않으니 오래된 칼을 끄집어내는 것과 다른 차원이다. 네그리니 아리기가 근거를 삼고 있던 그 토대이기도 한 마르크스를 다시 읽음으로써, 이론의 재구성을 도모하고자 하는 구상이 영국 학계에 깊이 깔려 있는 것이다.
이택광 경희대·영문학


독  일
전 세계를 강타한 미국발 금융 위기의 원인이 신자유주의적 시장원리에 있다는 사실이 밝혀진 지금 그 이후 도래할 세계질서에 대한 다양한 진단과 전망이 독일 학계 내에서 뜨겁게 논의되고 있다.
위르겐 하버마스는 차이트(Zeit)지와의 인터뷰에서 현재의 경제 위기가 생활세계를 무절제하게 시장의 명령에 종속시키는 신자유주의 아젠다가 심판대에 오른 것으로 본다. 그는 1990년대 초 동구권의 몰락 이후 민주주의 정치가 자본주의 경제 원리에 일방적으로 복속되며 시장에 대한 통제력을 상실한데서 위기의 원인을 찾고 있다.

그에 따르면 2000년대 초 미국의 이라크 침공을 예비했던 부시 독트린(Bush Doktrin)은 시장 근본주의의 사회진화론적 잠재력을 사회 정책에서뿐만 아니라 외교 정책에서도 관철하게 된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그로 인해 서로 다른 원리에 기초한 자본주의와 민주주의 간의 균형이 깨져서, 결국에는 경제적 단위를 넘어선 세계적 규모의 금융 위기가 초래된 것이다.

하버마스는 그 대안으로 민족국가 단위로 이해된 '정치' 개념을 확장시켜 자본의 흐름을 통제할 수 있는 새로운 정치 질서를 모색할 것을 제안한다. 그는 초국가적 수준에서 기능적으로 개방적이고 사회통합적으로 폐쇄적이면서 자본주의적 역동성에 부합하는 정치 모델의 이론적 단초를 칸트의 코스모폴리탄주의(Kosmopolitismus)와 칼 프리드리히 폰 바이츠재커의 ‘세계 내 정치’(Weltinnenpolitik)에서 찾고 있다. 하지만 현실성이 결여돼 있다는 비판도 만만치 않게 제기되고 있다.
'위험사회론'으로 유명한 울리히 벡 역시 현재의 위기를 무절제한 시장원리의 실패로 파악한다. 그는 전 세계적 비극에 책임이 있는 신자유주의 신봉자였던 영국 총리 고든 브라운이나 독일 총리 앙겔라 메르켈이 시장에 적극 개입하는 정책을 펼치는 모습을 보고 '악당에서 영웅이 됐다'고 비꼬았다. 그는 이 현상을 시장 물신주의에서 국가 낙관주의로의 전환으로 파악한다.

그는 경제 체제의 실패로 인한 손실은 사회화하고 이윤은 사유화하는 대신 금융 관리의 실책으로 인한 손해에 대해서도 책임을 질 수 있는 사회적 안정망 구축을 요청한다. 또한 하버마스와 마찬가지로 금융 시장을 통제할 수 있는 새로운 초국가적 정책 기구를 역설한다.
프랑스의 철학자 알랭 바디유 역시 현재의 위기는 비합리적이고 허구적인 투기 자본의 문제가 아니라 약탈주의에 기초한 현재의 자본주의 질서 자체가 문제라고 보고 있다.

그는 민주주의라는 물신이 은행가들에 복무하고 있다는 점에서 현재의 정치를 '자본 의회주의'(Kapital-Parlamentarismus)라 부른다. 실제로 경제 위기 대책도 금융가와 자본가 중심으로 마련되고 있다는 사실은 이를 증명한다. 그 대안으로 그는 아프리카나 다른 지역 출신의 새로운 프롤레타리아 계급과 지난 시대의 정치적 투쟁의 유산을 물려받은 지식인 계층이 연대해 민중의 현실에 근접하게 고안된 새로운 정치체를 조직할 것을 요청한다.
이영범 독일 만하임대·독문학


일 본

격차사회·working poor·『게공선』. 이 타이틀은 일본의 모 출판사에서 매년 12월에 선정·발표하는 그 해에 화제를 부른 유행어 중 2006년·2007년·2008년의 예들을 나열한 것이다. 격차사회란 이른바 ‘전 국민 중류사회’가 붕괴되고 소득이나 교육, 직업 등 각 방면에서 양극화가 심화된 현실을 날카롭게 도려낸 말이고, 워킹 푸어는 글로벌화와 신자유주의가 전경화되면서 급속히 사회 양극화가 진전되고 금융위기 등에 따른 세계적 경기침체에 따라 고용불안에 허덕이는 빈곤층이 갈수록 고착화되는 현상을 일컫는 말로서 유행했다. 그리고 이들은 이윽고 일본의 프롤레타리아문학의 대표작인 고바야시 다키지(小林多喜二)의 『게공선(蟹工船)』(1929)을 읽게 됐고, 이 작품은 발표된 지 80년 후에 공전의 붐을 맞았는데, 오호츠크해의 게공선에서 혹사당하는 가난한 노동자들의 군상이 격차사회, 워킹 푸어 등의 사회문제와 중첩돼 일본열도를 휩쓴 유행어로까지 됐다. 구조개혁에 따른 규제완화 등으로 대량으로 발생한 비정규직 젊은이들이 노동조건의 가혹함을 이르는 말로 ‘게공한다’라는 신조어가 탄생하기도 했다.

이 유행어들은 세계적인 버블붕괴에 따른 장기불황의 쓰나미가 일본의 젊은이들도 예외 없이 삼켜버렸음을 단적으로 나타내는데, 중요한 것은 저임금·장시간노동을 강요당한 끝에 해고당하여 빈곤의 악순환을 끊지 못한 채 ‘자기책임’이라는 ‘呪文’에 걸리고 마는 비정규노동자들이, 이윽고 자본주의의 모순에 눈을 뜨고 『게공선』을 읽으며 노동조합을 결성하거나 소송으로 대항하고 전국적으로 연대해 마침내 ‘자유’와 ‘생존’을 호소하는 운동을 개시한 것이다. 이른바 ‘프레카리아트 운동’이 그것이다. 초창기인 이 운동은 아직 조직적으로 전개되지도 않고 있으며 공통적인 사회변혁의 플랜을 가지고 있지도 못하다. 

하지만, 한번 고도자본주의를 실현한 이른바 선진국에서 종래의 억압과 착취와 달리 사회적 배제에 의한 새로운 빈곤의 현실은 복지국가의 이념이나 포디즘적 체제유지에 심각한 균열을 초래하는 것으로서 인식됐다. 이에 따라 기존의 각종 보호법제의 최대한 활용뿐만 아니라 ‘기본소득’, 즉 어떠한 선별 없이 모든 개인에게 생활에 필요한 소득을 제공해야 한다는 레디컬한 주장도 활발히 논의되고 있다. 또한 2008년에 방일 강연 등이 일본정부에 의해 제지돼 여러 가지로 화제를 낳기도 했던 안토니오 네그리를 비롯한 좌파에 의한 새로운 그랜드 네러티브가 운동의 비전으로 음미되고 있기도 하다. 즉 새로운 글로벌한 통치시스템의 비전과 ‘멀티튜드’라는 글로벌한 ‘공(common)’적인 변혁의 주체가 추구되고, 또한 자기표상-자기결정-자기가치화를 통한 개체의 삶의 전반적인 해방이 차이, 다양성 등의 전면긍정을 전제로 한다는 점에서 정치·경제적인 요구임과 동시에 문화적인 운동의 성격도 띠고 있다.

이 운동을 종래의 일본 사회운동의 흐름 속에서 어떻게 자리매김할 것인가에 대한 논의도 전개되고 있는데, 인터넷 등의 활용을 통한 네트워크형의 유연한 운동이라는 점 등의 새로움이 주목되기도 하지만, 종래의 전쟁책임, 종족적 소수자 인권, 남녀평등 등의 운동에서 각각 강조됐던 아이덴티티의 정치학이 계급 등을 중심으로 새로이 재편돼 가는 계기가 되고 있는 것만은 확실할 것이다.

임경화 성균관대 연구교수·일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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