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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직 박차고 나와 18년간 ‘야인생활’했던 까닭
교수직 박차고 나와 18년간 ‘야인생활’했던 까닭
  • 박수선 기자
  • 승인 2010.12.27 15:4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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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옛 사람의 발길을 따라가는 우리 건축 답사 1·2』 출간한 최종현 한양대 교수

또 하나의 건축 답사책이 나왔다. 그런데 이전에 봐왔던 책과는 다르다. 『옛 사람의 발길을 따라가는 우리 건축 답사 1·2』는 지금까지 나온 건축답사와 전혀 다른 방식으로 우리 건축을 읽는다. 옛 건축의 양식을 장황하게 설명하지 않는다. 대신 이 탑이 왜 여기에 놓이게 됐는지를 집요하게 파고든다.


여기에는 이 책의 저자인 최종현 한양대  교수(도시공학과)의 철학이 담겨있다.“건축학은 결국 인간과 땅의 관계를 규명하는 학문입니다. 땅을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건축물도 다르게 보이죠.”산이 둘러싸인 곳에 터를 잡고 살았던 선조의 눈으로 바라본 관점이다.


최 교수는 우리 옛 건축이 자리를 잡는 방법을 ‘정면성’으로 설명한다. 정면에서 바라본 모습에 가치를 부여하는 서양건축과 달리 우리의 건축은 자연과의 조화를 중시했기 때문이다. 예컨대 창덕궁은 북쪽으로 북한산을, 남쪽으로는 청계산을 마주하는 일직선상에 위치한다. “우리나라 옛 건축의 주요 건물은 이 원칙을 거의 지켰습니다. 주변환경에 마주보는 산이 없으면 산과 물을 축으로 한다거나 그나마 물도 마땅치 않으면 나무를 심어 산과 나무를 연결한 축선 상에 건물을 배치한 사례도 찾아볼 수 있습니다.”

땅에서 읽는 우리 건축의 미학 


이 책은 ‘풍수지리’나 감상적인 평가로 건축을 읽는 것도 철저하게 배제했다. 그의 주장은 예부터 내려오는 전설이나 상식에 기대기보다는 객관적인 문헌과 답사에 근거한다. 
“풍수지리설로 설명하는 곳도 정면성의 원칙을 따른 경우가 많습니다. 한양정도는 풍수지리가 아닌 유불합의 과정입니다. 풍수지리는 달리 할 이이야기가 없어서 만들어 낸 것일 뿐이죠.”

전국을 누비며 우리 건축을 기록해왔던 최종현 한양대 교수. 지난 22일 연구실에서 만난 그는 ‘세상에 없는 지도’를 직접 그리고 있었다.


그가 이렇게까지 말할 수 있는 이유는 교수직까지 버리고 객관적인 증거찾기에 천착했기 때문이다. 그는 원광대 건축공학과에 재직 중이던 1982년 교수직을 박차고 나왔다. 그리고 18년 6개월간 자발적으로 시간강사 길을 택했다.‘야인생활’은 1997년 한양대로 복귀할 때까지 계속됐다. 그는 이 시기에‘개발’구호에 밀려 사라져간 우리 전통 건축을 찾아 기록하는 데 전념했다. 전국 곳곳 답사를 다니는 한편 문헌연구에 집중했다. 왕조실록을 비롯한 사서, 각종 문집을 섭렵했다. 옛 지도를 구해 현재의 지형과 건축이 얼마나 달라졌는지 비교작업도 병행했다. 하지만 그는 이 시기를 행복했던 시간으로 회고했다.“개인적으로, 경제적으로 어려웠지만 마음만 먹으면 무엇이든지 할 수 있었거든요.”


『옛 사람의 발길을 따라가는 우리 건축 답사1·2』는 이 시기 그가 개인적으로 연을 맺은 건축사무소 직원을 대상으로 진행했던 강의와 답사를 엮은 것이다. 17차례의 강의와 13번의 답사 흔적이 오롯이 기록돼 있다. 구어체로 풀어쓴 글은 쉽게 읽히고 페이지 중간 중간 들어간 문헌은 글의 이해를 돕는다. 책에는 사진과 도면 등 400여점에 이르는 이미지가 담겼다. 80여점이 넘는 주요 건축물 도면을 비롯해 ‘대동여지도’,‘여지도’등 다양한 고지도도 수록돼 있다. 이 뿐만이 아니다. 2만 5천분의 1 지도 위에 ‘대동여지도’를 바탕으로 최 교수가 일일이 손으로 그려 넣은 지도를 발견할 수 있다. 『신증동국여지승람』, 『조선왕조실록』을 비롯해 각종 문집에 인용된 자료도 각 장 끝에 꼼꼼하게 붙였다.


첫 번째 발길은 『도담행정기』에 기록된 여정을 따라갔다. 우리 선조들이 그랬던 것처럼 산맥과 물길을 따라 이어진 여정이다. 저자도에서 시작한 남한강 물길은 여주의 신륵사를 거쳐 풍기향교와 금양정사에 이른다. 전남지역은 해안선에 가까운 사찰을 둘러봤다. 왜 전남지역에는 해안선을 따라 지어진 사찰이 많을까. 여정을 따라가다 보면 이에 대한 답도 얻을 수 있다.   


“해안 지역에 위치한 절들은 해안의 동태를 살피는 기능을 가진 堡나 城의 역할을 겸했다고 생각합니다. 승려들이 국가 안보에 어느 정도 기여했기 때문에 조선시대 이후까지 이 지역은 절이 남게 되었던 것입니다.”해안선에 절을 많이 지은 이유가 군사적인 목적이라는 것이다. 『옛사람의 발길을 따라가는 우리 건축 답사』는 건축 이야기에서 끝나지 않는다. 건축에 대한 고찰에서 시작했지만 책을 읽다보면 사상, 종교, 문화까지 흘러간다. 이 책을 인문지리 기행이라고 명명한 이유이기도 하다.

내년 정년퇴임 … 첫 저서의 무게


이 책은 내년 8월 정년퇴임을 앞두고 있는 그의 첫 번째 저서다. 최 교수는 연구성과를 출판하라는 주변의 권유에 지금까지‘공부할 시간도 없다’며 거절해왔다. 『옛사람의 발길을 따라가는 우리 건축 답사』도 세상에 쉽게 나온 게 아니다. 답사를 함께 했던 건축사무소 대표의 부탁을 수락하면서 간신히 빛을 보게 됐다. 3년 만에 책이 어렵게 나온 뒤에도 그는 출판 홍보활동은 피했다. 언론사의 인터뷰도 거절해 출판사를 곤혹스럽게 했다. 책의 내용으로만 평가받겠다는 자신감이다.


이런 자세는 한양대에 재직하는 동안에도 나타났다. 1997년부터 흔한 보직인 학과장도 한번 하지 않았다. 연구와 강의에만 몰두했다. 최근에는 활발하게 해오던 자문활동도 거의 정리했다. 서울 정도 600주년 행사, 서울역사박물관 개관 전시 등은 모두 그의 손을 거쳤다.


기자가 22일 찾은 그는 산맥도를 그리는 작업 중이었다. 그는 “이 세상에 없는 지도”라고 했다.  각 지역마다 산이 어떻게 연결되는지 한눈에 보였다. 그에게 지금까지 봐왔던 건축물 가운데 무엇이 가장 뛰어난지 물었다.“인간은 땅 위에서 사는 존재입니다. 그래서 땅과 조화롭게 자리 잡은 모든 건축물은 아름답죠. 조선시대 초기의 건축물을 보면 매번 놀라고 감탄했어요. 그런데 지형과 시대를 담은 건축물이 사라져가고 있어 안타깝습니다.”


건축학자가 보는 4대강과 청계천 복원은 어떤지 궁금해졌다.“돈의 논리를 따라가면 추하게 됩니다. 도시는 시간이 흐르면서 변화는 과정이 건강해야 오래 남습니다. 국토가 박살나는 데 정부는 마냥 밀어붙이고 있습니다. 이 땅에 잠깐 살다 가는 존재라는 것을 모르는 것 같아요.”

글·사진 박수선 기자 susun@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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