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4-28 13:15 (일)
대학, 이것만은 버리고 갑시다 - ③ 강요되는 발전기금
대학, 이것만은 버리고 갑시다 - ③ 강요되는 발전기금
  • 손혁기 기자
  • 승인 2002.05.29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2002-05-29 17:59:28
발전기금을 모으기 위해 거의 모든 대학의 대외협력처가 두 팔을 걷어붙였다. 그러나 ‘대외’를 향해 손을 내밀어야 할 대학이 최근 들어 그 팔을 자꾸만 안으로 굽히고 있다. 발전기금이 기업이나 동문이 아니라 구성원들의 주머니에서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대학마다 경쟁적으로 하다보니 무엇을 위해 모으겠다는 구체적인 목표도 없어졌다. 일단 모아놓고 보자는 것. 그 사용내역이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는 것도 ‘즐거운 기부’를 막는 걸림돌이 되고 있다.

지방대학의 아무개 교수는 지금도 급여명세서를 보면 씁쓸하다. 몇 년전 대학으로부터 공문서 하나를 받았다.

내용은 “대학발전기금을 내줘서 감사하다”는 것. 어찌된 일인가 싶어 자세히 보니 총장과 교수협의회장이 대학발전을 위해 교수들의 상여금 가운데 100%를 기금으로 내놓기로 합의했다는 설명이 붙어있었다. 캠퍼스를 확장한다는 소문이 있었고, 총장이 대학발전기금을 모으기 위해 지역의 기업체 사장과 동문들을 만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던 터라 이 교수도 다만 얼마라도 내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자기 동의도 없이 상여금 100%를 기부한다고 결정한 것은 상여금 100%를 삭감한 것으로 밖에 달리 생각되지 않았다. 이러한 일은 지난해까지 3년 동안 계속됐다. 경제적 사정이 나은 교수들은 일시불로 내놓았지만 ㅇ 아무개 교수의 봉급에서는 아직까지 발전기금 명목으로 십여만원씩 꼬박꼬박 공제되고 있다.

서울 ㅈ대학은 2001년 한해동안 6억5천만원의 발전기금을 모았다. 그런데 그 내역을 보면 절반 가까운 금액이 교수와 교직원 등 대학 내부 구성원들로부터 거둬들인 것이다. 대학측은 자발적인 참여라고 말하지만 발전기금 납부 내역을 보면 ‘담합’의 흔적이 엿보인다. 의학과 법학과 교수들이 같은 날 같은 금액을 냈고, 심지어 몇몇 교수는 백원단위까지 같게 기록돼 있다. 지방 ㄱ대학에서도 2001년 1백만원 이상을 약정한 1백50명 가운데 62명은 이 대학에 재직하고 있는 교수들이었다.

심지어 서울의 ㅅ대학에서는 아예 총장이 교수들의 직급에 따라 1백만원에서 3백만원까지 기부금액을 정해주고 다달이 급여에서 공제했다. 이 대학은 ‘ㅅ대학의 밤’을 개최하면서 교수들에게 10만원짜리 티켓을 5장씩 떠넘기기도 했다.

“대학차원에서 결정하는 문제에 어떻게 혼자서 반기를 드냐”는 교수들의 항변이 결코 엄살이 아닌 것을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다.

발전기금을 많이 모아 다른 대학들로부터 부러움의 대상이 된 또 다른 ㅅ대학은 동문 출신 시간강사들에게까지 ‘기금’을 강요해 빈축을 사고 있다. 물론 대학측은 “동문으로서 자발적으로 참여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 대학 관계자는 “매 학기 강의를 배정 받기 위해 이 눈치 저 눈치 봐야 하는 강사들이 기본생계비도 안돼는 강사료에서 발전기금을 ‘흔쾌히’ 덜어냈겠냐”고 반문했다.

이처럼 대학들이 내부의 ‘주머니’돈으로 기금을 조성하다보니 교수들은 발전기금이 점점 부담스러워 지고 있다. 박병덕 국교협 사무총장(전북대 독어교육과)은 “일부 대학에서 총장이 각 단과대학을 순회하면서 금액을 제시하고 약정서를 받는다”며, “교수들에게 심리적인 부담을 주고 있다”고 지적했다.

‘왼손이 하는 것을 오른손이 모르게 하라’는 미덕은 한푼이라도 더 모아야 하는 대학들에게 더 이상 유효한 경구가 아니다. 기업이나 동문들로부터 발전기금을 받으면서 이들의 좋은 뜻을 널리 알리는 것은 대학이 할 수 있는 최소한의 보답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러한 노력들이 내부 구성원에게는 또 다른 부담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현재 많은 대학들이 대학소식지를 통해 발전기금을 약정한 이들의 명단을 소개하고 있다. 심지어 몇몇 대학은 매주 발행되는 학보에 명단과 금액을 공개하기까지 한다. 비교 대상이 없는 외부 기부자들과 달리 바로 동료교수들과 비교되는 교수들은 명단에 이름이 없을 경우 곱잖은 시선을 피할 길이 없다.

이에 대해 발전기금 모집을 담당하고 있는 대학의 관계자는 “구성원들부터 자발적으로 나서지 않으면 외부에서 누가 기부하겠냐”며, 내부모집의 정당성을 강변했다. 또 다른 담당자는 “기업 기부금이 서울대 등 몇몇 특정대학에 제한되고 있는 상황에서 다른 대학, 특히 지방대학들이 외부로부터 기부를 받기는 어려운 상황”이라고 하소연했다.

그러나 교수노조에 참여하고 있는 박 아무개 교수는 “내부 구성원들의 호주머니를 털기에 앞서 대학재정의 효율성을 높이고 투명성을 확보해야 한다”며, “구성원들조차 재정운영에 대해 의구심을 가지는 상황에서 자발적 참여는 곧 강제일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함께 참여해 주십시오.

교수신문 창간 10주년기념 연중기획 ‘대학, 이것만은 버리고 갑시다’는 독자분들과 함께 만들어 가는 기획입니다.

대학과 교수사회가 과감하게 떨쳐버려야 할 내용이나, 기획의 방향과 관련해 조언을 주실 내용이 있다면 언제든지 연락 주시기 바랍니다. 독자분들의 참여가 이 기획을 더욱 알차게 꾸미고, 대학의 부도덕한 면을 하나씩 지워가는 밑거름이 될 것입니다.
연락처 : 편집국 02-738-8769
이메일 : editor@kyosu.net

손혁기 기자 pharos@kyosu.net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