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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와 편집자는 어떤 관계?
저자와 편집자는 어떤 관계?
  • 김정규 한국방송대 출판문화원·시인
  • 승인 2015.10.19 1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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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gitamus 우리는 생각한다] 김정규 한국방송대 출판문화원·시인

국제도서전  전시장이나 서점 신간 진열대에 폼 잡고 서있는 책을 보며 눈물을 흘리는 편집자들이 있다. 그 한 권의 책을 거기에 세우기 위해 저자와 디자이너와 마케터와 수없이 부대끼며 속앓이를 했던 과정들이 생각나기 때문일 것이다. 눈물 날 때가 또 있다. 커버도 벗겨지고 여기저기 긁힌 채 물류창고 반품실에 널브러져 있는 책들을 볼 때다. 이런 감정은 저자를 비롯해 책을 만드는 과정에 참여했던 모든 사람들도 느끼겠지만, 중추적 역할을 맡으면서도 ‘음지’에서 일을 해야 하는 편집자에게는 그 느낌이 좀 더 특별할 수 있다.

모 대학출판부 편집장은 원고 교정 문제로 저자와 충돌했다. 저자가 물러서질 않자 교직원 게시판에 올려서 누구의 주장이 타당한지 공개적으로 물어 보자고 밀어붙여서 관철시켰다고 했다. 그러고 나서 이 편집장은 자기 재직기간 중에 그 저자가 출판부장으로 부임하지 않기를 기도했다고 한다. 극단적인 사례이긴 하지만 시사점은 찾을 수 있다. 파트너십의 중요성 말이다.

그렇다면 하나의 책을 탄생시키기 위해 만나야만 하는 저자와 편집자는 어떤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바람직할까. 이 고민을 해결하기 위해 편집자 입장에서 저자의 유형을 대별해 보겠다.  최고의 저자는 마감 1주일 전쯤에 원고를 보내오는 분들이다. 이 분들의 원고는 경험적으로 볼 때 완성도가 매우 높고 편집과정에서 변덕스러운 상황이 별로 발생하지 않는다. 애초 기획대로 콘셉트가 잘 유지돼 책으로 나올 가능성이 매우 높다. 그 아래 단계는 마감일에 일단 초고를 보내오고 며칠 말미를 주면 미진한 부분 보충해서 보내겠다고 하는 타입이다. 이 원고는 편집과정 내내 넣고 빼고 하기 때문에 교료 단계에서 전체 흐름을 다시 체크해야 제대로 된 책이 나올 수 있다. 최악의 경우는 마감일 따위에는 별 의미를 두지 않고 카톡, 문자, 이메일, 전화를 총동원해서 압박을 해야 간신히 원고를 받을 수 있는 유형이다. 이 경우에는 대부분 급조된 원고여서 편집기간 내내 저자와 편집자가 충돌하게 되고, 서로 충분하게 합의하지 못한 채 내용적 오류를 안고 출판될 가능성이 크다. 그리고 후유증으로 그 저자와 편집자는 상대를 깎아내리는 뒷담화의 주역이 된다.

다음으로 편집자 유형을 대별해 보자. 보통 편집자들은 1년에 10종 정도 책을 만드니 10년  경력자는 100종을 만든 경험을 하게 된다. 그에 비해 저자는 평생 10권을 쓰는 분도 많지 않다. 근현대 한국문학의 권위자인 김윤식 서울대 명예교수는 100여 권이 넘는 저서를 내놨다지만 웬만해서는 매우 어려운 일이다. 따라서 책이라는 미디어에 대해서는 저자들보다 편집자들이 그 특성을 잘 알고 있다고 보는 게 맞다. 그러나 개인차는 어디에나 있게 마련이다.

편집  경력 1~2년차 초년병 시절에는 책이 가진 의미라든가 속성이 뭔지를 정확하게 모른다. 이미  책을 출판해 본 저자들과 일하게 되면 “아, 네. 그렇군요”를 연발하며 보조 역할에 머무르게 된다. 5년차쯤 돼 20, 30권의 실적을 쌓게 되면 자신감이 붙는다. “별것 아니네” 하면서 원고를 받아들면 마치 숙적이라도 만난 듯이 교정의 칼을 휘두른다. 저자의 문체는 사라지고 편집자의 문장으로 원고가 탈바꿈한다. 그러다가 임자를 만나서 혼쭐이 한번 나야 강호에는 고수가 널려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정신을 차리게 된다. 저자와 편집자의 역할이 다르다는 것을 깨우치게 되는 것이다. 편집자로서 나름의 철학을 갖고 저자와 잘 소통하는 능력을 갖게 되는 시기는 ‘1만 시간의 법칙’에 맞추려는 것은 아니지만 대략 10년차쯤이 아닐까 한다.

상황이 이러하므로 어떤 저자와 어떤 편집자가 만날지는 ‘운수소관’이라 해야 할 것이다. 때문에 좋은 책을 출판하기 위해서는 이 둘 간의 관계 설정과 운용이 매우 중요하다. 예를 들어 기획단계에서부터 편집자가 콘셉트를 정하고 저자를 섭외했다면 편집자가 저자를 이끌고 가는 게 마땅하다. 그러나 저자가 기획해서 집필한 원고일 경우 편집자는 그것을 책이라는 미디어로서 만들어 내는 역할에 머물러야 한다. 물론 홍보나 마케팅을 위해 콘셉트를 수정하는 정도는 관여해야 한다. 또한 저자는 편집과정에서 편집자가 원고에 집중해 많은 아이디어를 내고 최초의 독자로서 자유롭게 의견을 개진할 수 있도록 분위기를 만들어 주어야 자신의 원고 완성도가 올라간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편집자 또한 영화감독이 배우의 끼를 마음껏 발휘하도록 촬영에 촬영을 거듭하는 것처럼, ‘쓴다’라고 하는 행위를 통해 존재감을 느끼는 저자가 좋은 원고를 써낼 수 있도록 몸과 마음으로 뛰면서 지원을 아끼지 않아야 한다.

『논어』  「자로 편」에 군자는 ‘和而不同’해야 한다는 말이 나온다. 자기의 원칙과 중심을 잃지 않으면서도 타인과 조화를 이뤄야 한다는 의미다. 여러 사람이 합심해 조화를 이룰 때 멋진 작품이 탄생하는 것이다. 편집자가 빨간펜으로 문장을 난도질했더라도 저자는 언짢아하지 말고 원고의 완성도를 더 높이기 위해 맡은 바 역할을 하는 것이라고 인정할 수 있어야 한다.  서점에 진열되고 반품실에 널브러져 있는 것이 저자의 책인데도 편집자가 더 기뻐하고 더 슬퍼하는 것이 저자로서 고맙지 아니한가.

 
 

 

김정규 한국방송대 출판문화원·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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