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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가로부터 무엇을 배울 것인가?
역사가로부터 무엇을 배울 것인가?
  • 전진성 부산교대·사회교육과
  • 승인 2015.11.09 1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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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gitamus 우리는 생각한다] 전진성 부산교대·사회교육과
▲ 전진성 부산교대 교수

현재 우리사회를 뜨겁게 달구고 있는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 논란의 열기 속에 단연 ‘문제적 인간’으로 떠오른 이가 국사편찬위원회 김정배 위원장이다. 평생 주류 역사학계에 몸담아온 원로 학자가 역사에 대한 이해도만큼은 한참 아래임이 분명한 대통령 각하의 ‘올바른 역사’ 교시를 순순히 암송하는 모습도 놀랍지만, 동학들을 못 믿겠다는 듯 국정교과서의 근현대사 분야 집필진을 정치, 경제, 법학 등 인접 전공자로 채우겠다는 가시 돋친 발언을 해 주변을 씁쓸하게 하고 있다. 평생 모교에 재직하며 총장까지 역임하신 분이 정작 교과서 집필 하나 믿고 맡길 후학을 양성하지 못했단 말인가.

물론 역사는 역사가의 전유물이 아니다. 아니, 어쩌면 역사가라는 칭호자체가 반드시 역사학계의 자격증이나 직함으로 규정될 필요도 없다. 그렇지만 김 위원장의 발언이 전문가적 근시안을 질타하는 취지에서 비롯됐는지는 의문이다. 그간 동업조합적 폐쇄성 속에 안주해온 역사가의 자기비판이라면 고무적이지만 권력 아래 줄서지 않는 역사가를 탓하는 의도라면 비난받아 마땅하다. 역사가는 직함이 아니라 소명이라고 볼 때, 정치학자나 경제학자가 역사를 더 잘 쓴다는 고백은 스스로를 부정하는 것과 다름이 없다. 역사가란 과연 어떠한 존재인가. 그들은 평생 무엇을 고민하고 행하는가. 독일 역사가 루츠 라파엘이 편집한 『역사학의 거장들 역사를 말하다』 (이병철 옮김, 한길사, 2015)는 역사가를 일종의 문제적 인간으로 다룬다.

루츠 라파엘은 특히 프랑스 역사학의 사정에 밝은 독일 역사가로 알려져 있다. 그는 매우 국제적인―물론 다분히 서구중심적인―안목으로 다양한 층위의 역사가들과 인접분야 거장들을 선별했다. 이들의 생애 및 저술과 영향에 대해 각 분야의 권위자들이 맡아 기술했다. 근대적 역사서술의 개척자인 에드워드 기번과 역사학의 창시자로 알려진 레오폴트 랑케로부터 테오도르 몸젠 등의 고대사가, 마르크 블로크 등 중세사가, 조지프 니덤 같은 과학사가를 거쳐 현존하는 정치사상사가인 퀜틴 스키너에 이르기까지 이 책이 다루는 시기와 전공영역은 광범위하며, 그밖에 마르크스와 베버, 그리고 미셸 푸코 등 인접 분야의 역사서술가들까지 망라했다. 모두 27명에 달하는 거장들은 개념사가 라인하르트 코젤렉이 명명한 이른바 근대의 ‘안착기(Sattelzeit)’로부터 20세기 후반의 68세대에 이르기까지 각자 자기시대의 문제를 해명하기 위한 목적으로 역사를 탐구했다는 점에서 공통적이다. 이들은 진리의 발견자이기보다는 진리에 접근하는 새로운 길을 연 개척자였다.

역사적 진실의 ‘인식’을 소명으로 삼는 역사가 집단은 자칫 ‘전문가’의 특권의식에 빠져 진리를 독점하려고만 들뿐, 정작 진리를 갈구하게 만들었던 애초의 고뇌를 망각하기 쉽다. 마치 정답을 이미 손에 쥐고 있어 공개하는 절차만이 관건인 듯 말이다. 그럼 역사학의 거장들은 어떠했던가. 이들은 실로 분과학문의 좁은 울타리를 넘어 우리 삶과 세상에 대한 남다른 성찰을 보여주기에 말 그대로 거장일 수 있는 것이다. 이렇게 볼 때, 듣기도 거북한 ‘올바른 역사’ 코스프레와 그 발단이 된 ‘식민지 근대화’를 둘러싼 우리 학계의 논란은 무언가 심히 부족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수많은 사람들의 피맺힌 고통보다 공업화의 수치가 더 중요하다는 천박한 국가주의도 문제지만, 이에 맞서 억눌린 민중 혹은 국민의 주체적 역량과 성취를 부각시키는 또 다른 승리사관도 사유의 부실함을 입증할 뿐이다. 그토록 ‘자랑스러운 우리 역사’ 속에 과연 정치적 패배자, 사회적 낙오자, 항변할 자격도 없는 소수자의 자리는 어디인가. 우리사회의 현재를 옥죄는 사안들에 대해 역사가는 대체 어떠한 통찰을 제공할 수 있는가.

이 책에 나오는 ‘거장’들은 확실히 다른 면모를 보여준다. 역사가는 각자의 삶의 문제에서 출발하지만 그 시공간적 한계에 머물지 않고 이를 좀 더 보편적인 세계상 속에 자리매김한다. 누구에게나 제 삶보다 소중한 것은 없겠지만 그로부터 얻은 신념은 대체로 편견에 물들기 쉽다. 이 책에 나오는 미국의 ‘신역사학’ 개척자 제임스 로빈슨의 말처럼 역사가는 우리가 절대시하는 신념의 기원을 밝혀줌으로써 우리의 사고를 자유롭게 한다. 이처럼 가치의 상대성과 보편성을 인식함으로써 편협한 우리 삶을 고양시키는 것이야말로 역사가의 소명이다. 작금에 목도하듯이, 한치 앞을 못보고 질주하는 권력에 휘둘려 그 무상함을 인식하지 못하는 어리석은 역사가는 우리 삶에 기여하기는커녕 해를 끼치고 만다.

전진성 부산교대·사회교육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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