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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화 시대, 한국어를 부탁해!
세계화 시대, 한국어를 부탁해!
  • 안재원 서울대 인문학연구원 HK연구교수·서양고전문&
  • 승인 2015.12.21 1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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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gitamus 우리는 생각한다] 안재원 서울대 인문학연구원 HK연구교수·서양고전문헌학
▲ 안재원 서울대 연구교수

『세계화 시대의 인문학 책읽기』(아포리아, 2015)라는 책이 새롭게 탄생했다. 제목이 거창해서 사람들이 주목할 줄 알았다. 한데 그렇지 못해서 못내 아쉽다. 책은 ‘한국어로 학문하는 일은 가능한가’를 묻는다. 저자 배수찬 울산대 교수(국어국문학)는 이렇게 결론을 내렸다.

“서양인들의 로고스가 보유한 수준과 그것을 가능케 하는 내적 장치들에 주목해야 한다. 그것은 외국어 실력을 포함하는, 문헌비판 장치와 사전학으로 구현되는 ‘문헌학적 능력’이다. 나는 감히 말한다. 인문학을 대충 하는 방법은 많지만, 제대로 하는 방법은 오직 이 길 하나뿐이라고 말이다.“ (20쪽)

‘이 길 하나 뿐’일까. 꼭 그렇지는 않다. 인문학의 연구 방법이 ‘문헌학적 능력’하나 만을 요구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저자도 이를 모르지는 않을 것이다. 사정이 이러함에도, 배수찬이 이런 단정을 서슴지 않는다. 이유는 무엇일까. 우선, 안타까움 때문이다.

“한국어를 최대한 많은 외국어와 끊임없이 충돌시켜야 하며, 어휘를 확충해야 하고, 어원사전을 만들어야 한다. 나는 몇몇 국어학자에게 이 일에 동참하자고 권유했지만, 그들은 편협한 ‘언어 내부’의 세계에 갇혀 나오려고 하지 않았다. 나보고 ‘모국어를 폄하하는 자, 한국어를 사랑하지 않는 자’라는 딱지 붙이기를 서슴지 않았다.” (19쪽)

그런데 막상 책을 읽어보니, 배수찬이 한국어를 진정으로 사랑하는 학자라는 사실 하나만큼은 분명했다. 한국어를 학술어로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 책의 핵심 주장이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서 배수찬은 ‘문헌학’ 기초 방법론을 도입과 수용을 주장한다. 한국어의 정비를 위해서 서둘러야 할 일이기에 별다른 이의가 없다. 이와 관련해서 배수찬이 소개하는 여러 사례 중에 가장 눈길 가는 대목 하나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정본은 반드시 비판장치를 둬야 한다. 한국문학의 수많은 텍스트 가운데, 이러한 문헌비판장치를 구비한 정본은 『바로잡은 무정』 (김철 교주, 문학동네, 2003)뿐이다.  (……) 김철 교수는 우연히 한국 현대문학의 대표 작품을 일본어로 번역하는 사업에 자문을 하게 됐는데, ‘춘원 이광수의 대표작 『무정』(1917)을 일본어로 번역하려고 하니, 底本으로 믿을 만한 한국어 번역본을 추천해 달라’라는 일본인의 요청을 받고 난감해졌던 것이다. (……) 자기가 한국문학전문가임에도 불구하고, (……) 1917년에 연재된 <매일신보>의 판본부터 시작해, 시중에서 출판된 모든 『무정』 판본을 조사하는 작업에 뛰어들었다. 그리고 그 이본들의 차이를 모두 제시한 정본을 만들었으니, 그것이 이른 『바로잡은 무정』인 것이다. (……) 그러나 해방 후에 나온 많은 『무정』의 판본들은, 이런 일본어 표현들을 (아무런 표시 없이) 슬쩍 한국말로 바꿔놓거나, 지워버리기까지 했다.” (201~202쪽)

 『무정』이 출판된 지도 벌써 13년이 지났다. 『무정』과 같은 비판정본들이 뒤이어 출판됐다는 소식을 듣지 못했다. 이 점에서 배수찬의 안타까움에 십분 동의한다. 적어도 한국어가 학술어가 되기 위해서 기본 전제로 요청되는 비판정본 작업이 전혀 진행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춘향전』을 영어로 번역한다면, 어떤 판본을 저본으로 삼아야할까. 단적으로, 이에 대해서 자신 있게 답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누굴까.

요즘, 한국학을 세계화시키는 방법의 하나로 한국 문헌들을 영어로 번역하는 사업이 유행이다. 국가의 지원까지 받고 있다, 물론, 해야 할 일이고 좋은 일이다. 그런데 이 문헌들에 기초 연구 상황이 『무정』의 경우와 비슷한 것이라면, 그 결과에 대한 책임은 누가 져야 할까. 이 물음들에서 『세계화 시대의 인문학 책읽기』와 세계화의 출발점이 비판 정본을 만드는 것이어야 한다는 배수찬의 주장은 그 정당성이 확보된다.

하지만 한국어를 학술어로 만드는 것과 관련해서, 아쉬운 점도 눈에 띈다. 이와 관련해서, 배수찬은 한국어의 ‘어휘를 확충’하기 위해서 ‘최대한 많은 외국어와 끊임없이 충돌시켜야’ 한다고 주장한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충돌만이 만사는 아닐 것이다. 그 충돌을 흡수해서 자기화 시키는 기제가 한국어에 있을 때 그 충돌도 의미 있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서 배수찬은 ‘키케로와 볼프’(126쪽)를 언급한다. 라틴어를 학술어로 만든 이가 키케로이고, 독일어를 학문어로 끌어 올린 사람이 볼프이다. 키케로와 볼프가 어떻게 구체적으로 어떤 문법 기제(예를 들면, 무한 유추를 가능케 하는 어미형태(~tas, ~taet)를 이용해서 라틴어와 독일어를 학술어로 만들었는지를 보여주는 사례를 제시해 줬으면 좋았을 것이다. 이게 없어 아쉽다. 요컨대 한국어의 추상어를 만드는 문법 기제, 즉 추상화와 일반화를 표기하는 유추 표기를 만드는 데 좋은 참조 사례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부탁한다. 키케로가 그리스어를 라틴어에 충돌시킬 때 했듯이, 볼프가 라틴어를 독일어 충돌시킬 때 했듯이, 그렇게 한국어를 외국어와 충돌시키는 김에, 낱말 차원을 넘어서서 조어 방식 일반으로, 여기에서 더 나아가 통사 차원 일반으로 충돌의 범위를 확장해 줄 것을! 한국어를 부탁한다. 이제부터는 한국어가 우리를 먹여 살릴 것이기에. 자연어의 경쟁력이 국가 경쟁력이기에.

 

안재원 서울대 인문학연구원 HK연구교수·서양고전문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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