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4-26 18:40 (금)
기초학문 붕괴 알면서도 ‘당근 ’미련 못버리는 대학들
기초학문 붕괴 알면서도 ‘당근 ’미련 못버리는 대학들
  • 이재·최성욱 기자
  • 승인 2016.01.11 09:4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프라임·코어 ’선정 3개월 앞두고 혼돈에 빠진 대학가

교육부가 야심차게 내놓은 ‘사회수요 맞춤형인력양성 사업(프라임 사업)’은 한국대학을 어떻게 바꿀까. 단일 사업으로는 역대 최대 규모인 6천억원(3년)을 투입한 이 사업은 변화무쌍한 사회의 인력수요에 맞춰 대학의 학과별 인원을 조정하라는 게 골자다. 보다 구체적으로 얘기하면 인문·사회·예술과 사범대학 등 이미 사회수요를 넘어선 학과의 인원을 줄여 실용학과 위주의 개편을 단행하라는 사업에 가깝다. 대학가에서는 이 사업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을까. 전국 대학의 살림을 책임지는 기획처장들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기획처장들 “특성화하라더니 이제는‘대중화’냐” 성토

“사회수요라는 게 분명하게 파악되면 좋겠지만 매년 나오는 통계치라고 해도 정확할 수는 없다. 특히 모든 대학이 그 사회적 수요에 맞춰 개편해야 한다고 하면, 대학 특성화 사업은 대체 왜 한 것인가? 전년도에는 대학만의 강점을 기르라며 돈을 주더니 이제는 한 방향으로 똑같은 학과를 찍어내라고 돈을 주고 있다. 앞뒤가 맞지 않는다.”(경기도 소재 사립대 ㄱ 기획처장)

프라임 사업을 접한 대학가의 첫 번째 반응은 당혹감이다. 각종 사업이 많지만 학령인구가 감소한다는 ‘진단’을 제외하면 모두 제각각 다른 목적을 내세웠다. ㄱ기획처장의 말처럼 지난해 교육부는 학령인구 감소에 선제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대학의 특성을 개발하는 사업에 2천467억원 규모의 ‘대학 특성화사업’을 진행했다. 그리고 이번엔 6천억원을 들여 프라임 사업을 진행한다. 이 사업은 예산만 6천억원(3년)에 달해 단일 사업으로는 최대규모다.

이와 함께 진행되는 대학인문역량강화사업(코어사업)도 1천800억원의 예산을 배정 받았고, 평생교육단과대학 육성사업(평단)도 900억원을 배정 받았다. 교육부가 근거로 내세운 통계는 고용노동부와 한국고용정보원이 분석한 ‘2014~2024 전공별 인력수급 전망’이다. 이에 따르면 경영·경제분야는 2014년까지 약 12만2천명 초과공급될 전망이다. 중등교육 분야는 약 7만8천명, 사회과학분야는 약 7만5천명이다. 반면 기계금속과 전기·전자분야는 각각 약 7만8천명, 7만3천명 가량 수요가 생긴다. 건축분야에서도 3만3천여명 정도의 인력이 더 필요할 것으로 내다봤다.

대학들은 교육부의 사업을 결국엔 기초학문을 통폐합해 발생한 정원을 취업이 용이한 이공계로 돌리라는 신호로 받아들이고 있다. 이 같은 통계에 근거해 대학 입학정원을 조정할 경우 많은 대학이 유사한 직군과 학문분야의 정원을 늘릴 공산이 크다. 그렇게 되면 향후 분야만 다를 뿐 똑같은 초과공급·수요의 문제가 발생한다.

부산 소재 대학의 ㄴ 기획처장은 “인문사회계만 무턱대고 줄이다보면 나중에 이공계 공급이 늘어서 역전현상이 발생한다고 아우성치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대학가에 퍼지고 있는 당혹감은 비단 프라임 사업의 성격에만 국한된 일이 아니다. 사업의 기본계획이 발표된 뒤 당혹감은 더욱 강해졌다. 지난해 12월 겨우 기본계획을 발표한 교육부가 오는 3월까지 모든 선정작업을 마무리한다고 밝혔기 때문이다.

우선 이번 사업에서 신설된 ‘전공 정원조정’이라는 평가지표가 관건이다. 지난 6일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서울대 등 9개 대학 총학생회 등이 주관한 기자회견에서 학생들도 이를 성토했다. 이날 학생들은 프라임·코어사업 등 정부의 대학 재정지원사업에 대해 “기초학문을 축소하고 공대 위주로 학과를 재편할 것을 암시하는 고용노동부의 중장기 인력수급 전망에 기대고 있다”며 “대학교육에 예산 투자를 통해 학문의 균형적 발전을 도모해야 할 정부가 돈줄을 쥐고 대학을 ‘취업몰입식’기관으로 길들이고 있다”고 비판했다.

서울 소재 사립대 ㄷ 부총장은 “3개월 남짓한 기간에 구성원들과 합의를 통해 정원구조조정을 마치라는 것이 현실적으로 가능한 이야기인가? 대학들이 구성원들과 다투고 싶어서 다투겠나? 교육부 사업이 대학들을 계속 줄 세우면서 재정을 압박하니까 울며 겨자먹기로 사업비를 따내려고 하는 것인데, 교육부는 이 같은 선후관계를 무시하고 대학이 마치 구성원을 억압해서 사회적 논란이 벌어지는 것처럼 ‘면피’하려한다”고 지적했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일부 대학은 이미 지난해부터 ‘작업’에 들어갔다. 부산지역의 또 다른 사립대 ㄹ 기획처장은 “1월부터 시작하는 대학은 없을 것이다. 이미 지난해부터 선정 가능성과 지원여부를 타진하는 계획을 진행했다. 우리 대학도 이미 약 3개월간 연구를 통해 최종안을 만들고 교수들 대상으로 설명회를 진행했고, 피해학과에 대한 지원 동의서를 양해각서로 체결했다”고 전했다.

프라임 사업을 준비하고 있는 이 대학은 코어사업에는 지원할 자격이 없다. 프라임 사업의 두 유형 중 대형사업에 선정될 경우 코어사업에서는 자동으로 제외되기 때문이다. 단, 프라임 사업 가운데 소형사업에 선정되면 코어사업과 동시에 사업을 따올 수 있다. ㄹ 기획처장은 “지방대에서 입학자원이 감소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이를 만회하기 위해 중위권 지방대로서 학생 선호도, 다시 말해 학부모 선호도가 높은 학과를 위주로 대규모 개편을 단행하는 대형사업에 지원을 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학과·정원 대이동 급물살 … ‘주인공’ 인문학과는 교양대학으로 쫓겨나

흥미로운 것은 인문학 분야다. 프라임 사업은 사업비의 10%를 반드시 인문학 발전을 위해 쓰도록 하고 있다. 이를 위해 프라임 사업에 선정된 대학은 인문학 발전을 위한 학내 발전계획도 수립해야 한다. 대학들이 고심하는 인문학 발전방안 중 유력하게 떠오르는 것이 ‘교양대학’이다.

교양대학이나 교양교육원 등 다양한 이름으로 대학가에 존재하는 교양대학은 독립적인 교양과정 연구·강의기관이다. 기존에 교양교육위원회 등이 학과가 주관한 교양강의를 배정하는 단순한 행정단위에 그쳤다면 교양대학은 단과대학으로 독립된 학사행정 뿐만 아니라 교양과정의 개설과 폐지 등 전 과정을 주관한다. 국내에서는 2000년대 중반부터 일부대학에서 교양강의 혁신을 명분으로 설립됐다가 대학이 구조조정 여파로 투자여력을 상실하면서 주춤했다.

이 같은 교양대학에 다시 대학들이 눈길을 돌리는 이유는 뭘까? 경남지역 사립대 ㅁ 기획처장은 “이참에 취업률에 도움이 되지 않는 인문학과를 통합해 교양대학에 다 편입시켜버리려는 것”이라며 “인문학 육성이 거꾸로 인문학을 통폐합하는 쪽으로 역이용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실제로 이런 일이 대학가 곳곳에서 발생할 수 있을까? 이 기획처장은 “학과를 신설하는 것은 교육부가 바라는 일이 아니다. 사회수요의 미스매치를 해소하는 측면이 있을 수 있으나 현재 갖고 있는 인문계열 학과 중심으로 다른 인문사회계열 학과들을 뭉치는 것이 관건이다. 2~3개 인문학과를 조정해서 교양대학으로 통합하는 식의 구조조정이 용이하다”고 분석했다.

ㄷ 부총장 역시 “교양강의를 강화하는 것은 인성교육을 강조하는 현 정부의 정책과도 부합한다. 융복합등 명분도 좋다. 프라임 사업 설계로 여력이 없는 대학들은 이 같은 교양대학 설립을 적극적으로 원할 것이다. 교양대학으로 개편하면 시간강사 수를 줄일 수 있다는 이점도 대학에 매력적인(?) 요인 중 하나”라고 전했다.

이재·최성욱 기자 jael@kyosu.net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