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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셸 투르니에의 죽음에 부쳐
미셸 투르니에의 죽음에 부쳐
  • 박아르마 건양대·불문학
  • 승인 2016.02.02 16:2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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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gitamus 우리는 생각한다
▲ 박아르마 건양대·불문학

2016년 1월 18일 저녁 7시경 프랑스 작가 미셸 투르니에가 작고했다. 투르니에는 1924년생으로 90세가 넘는 고령이었기 때문에 그의 죽음은 어느 정도 예견된 일이었다. 다만 그의 죽음에 대해 그리고 그의 작품과 삶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마치 부고를 쓰는 심정이 되는 것은 이 작가와의 특별한 인연이 한 몫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프랑스 소설을 공부하겠다는 생각은 늘 마음에 두고 있었지만 우연한 기회에 미셸 투르니에를 전공하게 됐고 그의 작품을 가지고 석사와 박사학위 논문까지 썼으니 그에 대한 애정은 남다를 수밖에 없다. 그는 프랑스에 유학 온 한국 학생의 편지에 늘 답장을 보내줬고 자신의 책까지 선물할 정도로 독자와의 문학적 교감을 중요하게 생각한 ‘친절한’ 작가였다.

AFP 통신은 ‘20세기 프랑스 문학의 초상인 미셸 투르니에가 사망했다’라는 제목으로 그의 죽음을 알렸고, 프랑수아 올랑드 대통령은 ‘사실주의와 마술 사이에서’, ‘엄청난 재능을 지닌’ 등의 표현을 써가며 그를 칭송했으며, 마뉘엘 발스 총리는 그를 ‘견줄 데 없는 이야기꾼’이라고 말했다. 이런 의례적인 찬사 말고 프랑스의 저명한 도서 프로그램 진행자 베르나르 피보가 트위터를 통해 “생존하는 가장 위대한 프랑스 작가가 누구인지 묻는 질문에 나는 내일부터 더 이상 미셸 투르니에라고 대답할 수 없을 것이다”라고 한 말에 좀 더 공감이 간다. 특히 <르 피가로>紙가 제목으로 뽑은 「『방드르디』의 아버지의 죽음」이 미셸 투르니에라는 작가가 누구인지 가장 잘 말해주는 표현일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이미 많은 독자들이 읽은 『방드르디, 태평양의 끝』은 1967년에 발표된 작가의 첫 작품이자 대표작이다. 주지하다시피 이 작품은 대니얼 디포의 『로빈슨 크루소』에 대한 ‘다시쓰기’이다. 그는 이 작품을 통해 인간의 근원적인 고독의 문제와 로빈슨 크루소과 프라이데이로 대표되는 서구인과 원주민의 관계, 나아가 문명과 자연의 문제로까지 자신의 철학적, 인류학적 관심을 확대했다. ‘항해와 난파, 고립과 고독, 생존을 위한 싸움, 문명세계로의 귀환’이 핵심 요소인 이른바 ‘로빈슨類’ 소설의 계보에서 『방드르디, 태평양의 끝』은 ‘같은 것을 통해 다른 것’에 도달한 가장 독창적인 작품이다. 투르니에의 로빈슨은 문명세계로 돌아가는 것을 거부하고 섬에 남아 자연과 교감하며 또 다른 고독의 길을 선택한다.

파리에서 태어난 작가는 근교의 소도시 슈아젤의 사제관에서 로빈슨 크루소처럼 평생을 혼자 살았다. 그렇다고 그는 은둔자도 세상과의 소통을 거부한 별난 작가도 아니었다. 오히려 그는 주요 작품들을 어린 아이들을 위한 책으로 다시 쓸 정도로 자신의 작품이 철학적 논의는 물론 아이들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독서의 대상이 되기를 원했던 소통과 교감을 중시한 작가였다. 『방드르디, 태평양의 끝』은 어린아이를 위한 글쓰기인 『방드르디, 야생의 삶』으로 다시 태어났다. 투르니에는 아이들과의 만남을 좋아해 세계 여러 곳을 여행하면서 어린이 독자들과 대화를 나누기를 즐겨했다. 특히 아프리카에서 『방드르디, 야생의 삶』을 읽은 어린이 독자와의 만남은 특별했다.

그는 작품을 통해 방드르디(프라이데이)를 로빈슨의 노예가 아닌 친구이자 스승으로 만든 것과 자연에 순응해 사는 원주민의 삶을 예찬한 자신의 글에 대해 평가해주기를 내심 기대했다. 하지만 어린 독자는 “먹고 사는 것이 중요한 아프리카에서는 방드르디처럼 야생에서 빈둥거리며 사는 것보다 로빈슨처럼 계획하고 부지런히 일하는 삶이 더 중요해요”라고 말해 작가를 당황하게 만들기도 했다. 오늘날 환경문제를 쉽게 해결하기 어려운 이유 중 하나도 이미 성장을 이룬 유럽의 선진국과 당장 산업화가 절실한 저개발 국가의 서로 다른 입장이 상충하는 데 있는 만큼 로빈슨과 방드르디의 서로 다른 삶의 방식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미셸 투르니에의 죽음 이후 그에 대한 추모 분위기에 편승해 그를 20세기 문학사에서 가장 위대한 작가의 반열에 올려놓아야한다고 말하려는 생각은 없다. 다만 20세기 프랑스 작가 중에 작품을 통해 인간과 우주의 근원에 대한 탐구, 역사적·신화적 상상력의 현재화, 대지적·식물적 상상력을 통한 인간에 대한 이해를 시도한 작가는 거의 없었다. 유목민의 후손으로서 동프러시아라는 신화적 공간으로 떠난 『마왕』의 아벨 티포주, 정주성과 유목성이 교차하는 가운데 우주적 합일을 꿈꾸며 전세계를 떠돌아다니는 『레 메테오르』의 ‘폴’과 ‘장’이 그의 작가적 상상력이 만들어낸 불멸의 인물들이다. 이제 투르니에의 우주적 상상력이 만들어낼 현실의 모습을 더 이상 볼 수 없게 되었으니 그의 죽음이 독자로서, 전공자로서 애석하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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