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4-28 22:55 (일)
제도에 흔들리는 교수 신분
제도에 흔들리는 교수 신분
  • 손혁기 기자
  • 승인 2003.03.17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교육부, 구제범위 놓고 고민

구 사립학교법의 교수재임용제도에 대해 헌법 불합치 결정이 난 가운데 현재 적용되고 있는 교수계약제도 폐지나 전면적인 수정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현재 사립학교법 53조의 2 제3항은 “대학교육기관의 교원은 정관이 정하는 바에 따라 근무기간·급여·근무조건, 업적 및 성과약정 등 계약조건을 정하여 임용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재계약 조건 및 절차는 교육부 지침으로 정하고 있다. 재임용제도에 대해 헌법 불합치 결정의 근거가 된 “교원의 지위에 관한 기본적인 사항은 법률로 정한다”는 헌법 제 31조 제 6항에 마찬가지로 위배되는 것이다.

또한 각 대학이 그 동안 실정법을 임의대로 적용해와 재임용제와 계약제를 따로 구분할 경우 혼란도 예상된다. 개정된 사립학교법은 2002년 1월 1일 이후부터 계약제를 적용하도록 했다. 법률대로라면 2002년 이전에는 사립대도 교수를 계약제로 임용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 많은 사립대학들이 개별교수와는 계약을 맺으면서도 교육부에는 재임용제 교수로 임용보고를 해왔다. 자리를 얻기 어려운 상황에서 교수들은 법적 보호도 받지 못한 채 불리한 조건을 수용해 왔던 것이다. 따라서 헌법 불합치 결정이 난 재임용제도만 개정할 경우, 적용 범위를 놓고 또다시 혼란을 불러오게 된다.

계약제 이후의 혼란은 교육부가 자초한 측면이 크다. 사립학교법은 ‘계약조건을 정하여 임용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각 대학들은 계약제를 시행하지 않아도 된다. 그러나 교육부는 각종 평가에서 계약제를 강요해왔다.

아직도 한신대 등 일부대학은 불이익을 받으면서도 재임용제를 유지하고 있다. 최근에는 안산공과대학에 지난해 계약제로 임용된 3명의 교수가 계약제 연장을 거부하고 재임용제 적용을 요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계약제의 위헌성에 대해서는 이미 학계에서도 누차 지적돼 왔다. 김종서 배재대 교수(법학)는 계약제 실시여부를 대통령령으로 위임하고, 조교수와 전임강사에 대해 계약제를 강요함으로써, 헌법이 보장하고 있는 교원지위 법률주의와 대학의 자율성을 어기고 있다고 지적한 바 있다.

지난 8일 총회를 가진 교수신분보장을 위한 협의회(회장 박동희 전 건국대 교수·법학, 이하 교보협)도 현재 시행되고 있는 계약제가 “자유롭게 계약할 수 있는 여건이 안되는 상황에서 계약제는 헛점 투성이”라며, 전향적인 법개정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이들은 “재임용제도는 군사정권이 부패사학에 준 최대의 선물이었다”며, 불합리한 법제도로 인해 피해를 보았던 교수들에게 공정한 평가의 기회를 달라고 요구했다.

유신헌법하에서 급조돼 양심 있는 수 백명의 교수들을 강단 밖으로 몰아낸 교수재임용제도와 여건도 갖춰지지 않은 상태에서 성급하게 도입된 교수 계약제가 설자리를 잃고 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