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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자의 딜레마를 깨준 ‘흥’
연구자의 딜레마를 깨준 ‘흥’
  • 이지혁 가천대·이길여암당뇨연구원 박사후연구원
  • 승인 2018.05.21 09:5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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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문후속세대의 시선’이라는 주제로 글을 써줄 것을 요청받고 많은 고민에 빠졌다. 무엇을 이야기해야 할까.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고 있고 당사자들은 무척 불안한 비정규직으로서의 비애, 연구자로서의 사명감, 어느 것 하나 정하기가 어려웠다. 처음에는 부정적인 생각만 머릿속에 가득 떠올랐다. 하지만 결국은 사회에서의 삶은 경쟁이며 그로 인해 불가피하게 발생하는 부정적인 측면이 사회에 속해 있는 나를 옭아매는 것은 당연하다는 생각에, 연구를 수행함에 있어 내가 있는 이 필드에서 고려해야만 하는 것을 한 번 이야기해보자는 결론에 이르게 됐다.

박사학위를 받은 연구자가 지속적으로 연구를 수행하기 위해선 과제가 필수적이다. 개인적으로 목표로 삼고 있는 정년교수나 정부출연연구기관 연구원 등의 정규직 자리에 오르기 위해선 과제를 받고 이행하는 게 절실하다. 물론 그 자리에 오른 뒤에도 과제는 멈추지 않고 계속된다. 하지만 박사후 연구원이나 연구교수 등 비정규직에게 부여되는 과제의 양은 매우 적기 때문에, 한정된 기회만을 노리고 있을 수밖에 없다. 그렇기 때문에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과제 선정을 위해 부단히 노력한다. 

여기서 딜레마에 빠졌다. 과제가 선정되기 위한 연구주제, 즉 지도교수님께서 여태까지 해 오신 연구와 크게 다르지 않은 연구주제를 제안해야 하는가? 아니면 현재는 사람들에게 주목을 크게 받지 않더라도 차후 연구주제로서의 가치가 높은 연구, 즉 현재는 성과는 적을지 모르지만 장차 미래에 내가 추진하고 싶은 연구 주제를 제안해야 하나?

현재는 고민할 것도 없이 전자다. 과제를 평가하는 평가위원들도 너무나 당연히, 기존에 다져진 연구자의 성과를 토대로 하는 과제를 우선 선정해야 한다고 본다. 한국연구재단 리서치펠로우 과제를 지원할 때도 내가 기존에 해오던 성과를 바탕으로 한, 나에게 있어 지극히 당연한 연구내용을 제안하고 선정됐다. 하지만 이런 과제는 뻔한 결과만을 불러올 게 분명하고 독창성이 매우 제한적이라고 할 수 있다. 결국 이런 연구내용은 내가 바라던 앞으로의 나의 연구가 아니다 보니, 요새 유행하는 ‘흥’이 빠졌다. 연구에서 흥이 빠지니, 연구의 깊이는 잃고, 빨리 나올 수 있는 특허나 논문 등 양적 성과 위주에 빠지게 됐다.

그러다가 한국형 SGER(이공학개인기초연구지원사업)이라는 기존과는 사뭇 다른 독창성을 강조한 과제를 알게 됐다. 그리고 내가 해오던 연구와는 조금 다른, 나 자신조차 기존에 시도해보지 않았던, 내가 도전해보고 싶었던 흥미로운 주제의 과제를 제안하면서, 연구의 ‘흥’이 생겨났다. 1차년도 연구수행을 마치면서, 얻을 수 있는 연구 성과의 양은 다른 과제보다 줄었다. 하지만 나의 흥을 이끌어 낼 수 있는 독창성이 가미되다 보니 양적인 성과보다는 앞으로 진행될 필요가 있는 연구의 다양한 면을 제안할 수 있었다. 나아가 한국 최초뿐만 아니라 세계 최초가 될 수 있는 질적인 성과의 가능성을 볼 수 있었다. 향후 큰 연구 성과를 도출할 수 있는 밑거름이 될 것이라고 확신하게 됐다. 

당장은 보다 체계적인 과학적 증명으로 내 연구 결과를 뒷받침해야 한다. 가야 할 길이 매우 멀고 어렵다. 하지만 앞으로 내가 선두주자가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은 연구에 흥을 돋우는 데  충분하다. 너무 앞선 생각일지는 모르지만, 연구자의 흥을 극대화시킴으로써 새로운 연구와 연구를 수행하는 연구자의 길의 토대가 열렸다고 해도 무리가 없을 것이다. 한국형 SGER과 같은 모험적인 연구지원이 커지면 커질수록 독창적인 주제의 연구를 무수히 많은 연구진들이 제안할 것이다. 보다 똑똑하고 창의적인 연구들이 연구의 깊이를 깊어지게 할 것이다. 그러면 그토록 많은 사람들이 바라마지 않는 노벨 수상자가 나오는 그날도 앞당겨질 것이다. 그리고 연구자의 흥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창의적이고 흥미로운 성과들이 지속적으로 우리 사회에 나온다면, 노벨상을 타고 안 타고가 문제겠는가.

 

이지혁 가천대·이길여암당뇨연구원 박사후연구원
제주대에서 방사무늬김을 활용한 항염증 및 항당뇨 기능성 소재개발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미세먼지에 대한 호흡기 질환 개선 및 치료 소재 개발을 연구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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