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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우리의 결정을 받아들일 수 있는가
우리는 우리의 결정을 받아들일 수 있는가
  • 홍창남 부산대·교육학과
  • 승인 2018.06.11 1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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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_교육정책 결정 과정에서의 여론 수렴 문제

한 동안 대입제도 개편 논란이 뜨거웠다. 잠시 수면 아래 잠복해 있으나, 언제든 다시 불거질 사안이다. 대학 진학의 결과에 따라 평생의 삶이 좌우되는 우리 사회에서 대입제도 개편은 전 국민의 관심사이기 때문이다. 

논란의 흐름을 되짚어 보자. 시작은 문재인 대통령의 대선 후보 당시 교육공약이었다. 문 대통령은 후보 시절 ‘2015 교육과정 개정에 따라 수능을 절대평가로 추진하고, 수시에서 수능 최저학력기준의 폐지를 검토’하겠다고 약속했다. 이에 교육부는 작년 8월 31일 수능 개편 확정안을 발표할 방침이었다. 그러나 절대평가 확대 방안을 두고 논란이 벌어졌다. 절대평가의 범위를 일부 과목으로 제한할 것인가, 아니면 전 과목으로 확대할 것인가를 두고 의견이 충돌한 것이다. 결국 교육부는 사회적 합의가 충분치 않다고 판단해 수능 개편을 1년 유예했다. 이것이 논란의 시작이었다. 

8개월이 흐른 지난 4월 11일, 교육부는 대입제도와 관련된 쟁점을 추려 국가교육회의에 이송했다. 교육부가 이송한 방안에는 대입 선발 방법, 선발 시기, 수능 평가 방법 등 대입제도와 관련된 거의 모든 쟁점이 망라돼 있었다. 이에 대해서도 비판 여론이 거셌다. 백화점식으로 쟁점만 나열했을 뿐, 교육정책의 주무부처로서 구체적 대안을 제시하지 못한 채 사회적 논란에 휩싸이는 것이 두려워 책임회피에 급급하다는 비난이 쏟아졌다. 대입제도 개편을 두고 두 번째 논란이 벌어진 것이다.  

교육부로부터 공을 넘겨받은 국가교육회의는 대입제도 개편 방안을 공론화 방식을 통해 결정하기로 하고, 대입제도 개편 특별위원회(이하 대입개편특위)와 공론화위원회(이하 공론화위)를 구성했다. 대입개편특위가 공론화의 범위를 정하면, 공론화위는 그 범위 내에서 공론화 결과를 도출하도록 절차를 마련했다. 그리고 세 번째 논란이 일었다. 대입제도와 같은 복잡하고 민감한 사안을 여론에 따라 결정하는 것이 옳은가 하는 지적이 제기됐다. 심지어 ‘교육부→국가교육회의→대입개편특위→공론화위’의 순서로 이어지는 의사결정의 하청 구조는 전형적인 ‘폭탄 돌리기’라는 말까지 나왔다. 

현재 비판 여론의 핵심은 이 쟁점을 해결하는 데 국민 여론을 동원하는 것이 부적절하다는 것이다. 지난 번 공론화 방식을 통해 사회적 합의를 도출했던 원전 문제와 달리, 대입제도 개편은 단순히 이해관계가 대립하는 수준을 넘어 교육적으로 고려할 점이 복잡하게 얽혀 있는 사안이기 때문에 여론재판식 결정은 위험하다는 것이다. 나 역시 이러한 비판에 일정 부분 동의한다. 그러나 이 사안의 본질을 꿰뚫고 있는 전문가들의 의견이 교육적으로 바람직하더라도 다수의 시민이 그에 동의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교육전문성이 부족한 시민들은 교육정책 결정의 주체가 될 수 없는가?  

이 질문에 답하기 전에 한 가지 언급해 둘 것이 있다. 나는 개인적으로 이번 대입제도 개편 작업은 중지하는 편이 낫다고 생각한다. 우리나라 교육문제의 근원에 대한 철저한 분석을 토대로 중장기적인 교육 비전과 정책 방향을 수립하고, 그 맥락 속에서 대입제도 개편 방안을 구상하는 것이 올바른 길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는 교육 비전과 방향에 대한 사회적 합의에 도달하지 못한 상태에서 대입제도 개편이라는 뜨거운 쟁점을 먼저 처리하겠다고 나선 셈이다. 이러한 사안에 대해 결정을 서두는 것은 지혜롭지 못하다. 그럼에도 현 시점에서 대입제도 개편 논의를 멈추는 것은 정치적으로 위험한 선택이다.  

대입제도 개편을 추진할 수밖에 없다면, 숙의민주주의를 다시 활용하는 것도 그리 나쁜 선택은 아니라는 것이 나의 입장이다. 물론 대입제도 개편의 복잡한 성격을 잘 이해하지 못하는 시민들이 잘못된 결정을 내릴 수도 있다. 눈앞에 보이는 현실적 이해관계에 매몰돼 공교육의 장기적 전망과 어긋나는 방향으로 결론을 낼지 모른다. 이러한 위험을 최대한 막는 것이 국가교육회의를 비롯한 교육전문가 집단의 역할이다. 교육전문가들은 시민들에게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고 그들이 올바른 결정을 하도록 도와야 한다. 

그럴 바에는 차라리 교육전문가에게 결정을 맡기는 편이 낫지 않느냐는 주장이 있을 수 있으나, 거기에는 또 다른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교육전문가들의 입장도 천차만별이기 때문이다. 가령, 대학 관계자들은 대입제도 개편에서 대학 자율성과 입시 변별력을 중시하지만, 고등학교 관계자들은 학교교육의 정상화를 우선시한다. 교육전문가들의 다양한 입장과 주장이 공론화의 테이블에 오르고 시민들의 충분한 숙의를 거쳐 결론이 내려진다면, 설령 그 결론이 중장기적인 교육 비전에 못 미치더라도, 그것이 현재 우리 사회의 인식 수준이라는 것을 받아들여야 한다. 

故 노무현 대통령은 시대를 앞서간 진보적 지식인이었으나, 그로 인해 불행히도 동시대 국민들에게 외면 받았다. 문재인 대통령은 취임식에서 국민을 앞서 가지 않고 ‘국민과 함께 가겠다’고 선언한 바 있다. 자신의 생각이 옳다 하더라도 국민이 납득하지 않으면 추진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이번 정부의 탄생 과정에서 우리 국민이 보여준 품격과 역량은 세계사적 유례를 찾기 어려운 수준이었다. 그런 국민의 뜻을 존중하고 실천하는 것이 이 시대의 정신이다. 이러한 시대에 전문가의 역할은 ‘결정’이 아니라 ‘설득’이다. 이번 대입제도 개편 결정 과정에서 교육전문가들의 풍부한 식견과 보통 시민들의 현명한 결정이 조화롭게 어우러지기를 기대한다. 

 

홍창남 부산대·교육학과
서울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부산대 교육학과에 재직 중이며, 한국교원교육학회 수석부회장, 국가교육회의 유초중등교육 전문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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